등록 : 2013.04.04 00:17 수정 : 2013.04.08 18:42

신동엽은 의미와 비의미의 경계, 폭소와 불쾌함의 경계 위를 아슬아슬하게 돌아다니는 밀당의 귀재다. 위로부터 ‘SNL 코리아‘, ‘화신: 마음을 지배하는 자‘, ‘안녕하세요‘. tvN 제공, SBS 제공, KBS 제공
코미디는 위반과 일탈의 장르다. 코미디의 즐거움은 규범과 규칙에서 벗어 나 해방의 자유를 만끽함이다. 물론 규범과 규칙에서 벗어난 모든 것이 코미디는 아니다.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벗어남만이 코미디다. 괴로움과 고통을 불러일으 키는 벗어남은 코미디가 아니다. 초능력을 지녔다는 이유로 마을 사람들의 괄시 와 따돌림에 비참한 삶을 살다 우물에 빠져 죽은 다카하시 사다코의 이야기(영화 <링>·감독 나카타 히데오·1988)는 우리의 상식을 벗어난 위반과 일탈의 이야기 지만 우습지 않다. 오히려 타카와마 류지(사다코가 텔레비전에서 기어나오는 걸 보고 놀라 심장마비로 죽었다)처럼 공포와 두려움에 심장이 멎어버릴 것 같다. 호 러는 코미디의 형제, 일상의 평범함에서 벗어나 규범적인 문화의 정형을 파괴하 는 일탈의 장르지만 자신의 형제와 다르게 웃음을 일으키지 않는다.

웃음을 일으키는 일탈은 심각하지 않다. 코미디는 벗어나되 허용할 수 있는 범위 바깥까지 나아가지 않는다. 사회적이며 문화적인 관용의 범위 안에서 코미 디는 규범과 규칙을 무너뜨린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코미디’라는 이름을 외 우면 관용의 범위가 확장되는 기적이 일어난다는 점이다. 그것은 일종의 주문이 며 부적이다. ‘농담이야’라는 꼬리말이 면죄의 주술을 시전하듯 코미디는 ‘웃고 말지’ 생각하게 만드는 신비한 힘이 있다. 그러므로 코미디는 규범과 규칙이 그리 는 경계 위에 있으면서 그것에 두께를 주는 일종의 확장자 구실을 한다. 코미디 가 잘 구실하는 사회는 관용의 범위가 넓다.

코미디를 하는 사람, 코미디언은 경계 위에 서서 아슬아슬한 걸음으로 그 좁은 회랑을 따라 어슬렁거린다. 광대의 본분은 줄타기다. 이 줄은 규범과 일탈 을 가르는 경계지만, 정상과 비정상, 나아가 의미와 비의미를 구분짓는 선분이 기도 하다. 안쪽으로 떨어지면 식상한 상투적 의미의 세계에 돌 매단 시체처럼 가라앉을 것이고, 바깥으로 튕겨져 나간다면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안드로메다 로 날아가버릴 것이다. 그러므로 코미디언의 능력은 휘청거리면서도 안과 밖 어 디에도 떨어지지 않는 균형 감각이다. 심하게 흔들릴수록 그가 주는 웃음은 크 고 격렬하다. 지나친 욕심이 재앙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흔들지 않는다면 웃 음은 전혀 진전되지 않는다.

신동엽은 코미디언이다. 많은 코미디언이 코미디를 그만두고 예능인으로 살고 있다. 신동엽 또한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의 진가는 <안녕하세요>(KBS2) 나 <동물농장>(SBS)의 사회자로서가 아니라 (tvN)의 ‘사과실업 CEO’ 혹은 ‘이엉돈 PD’로 등장할 때, <화신: 마음을 지배하는 자>(SBS)의 상황 설정 개그에서 변태로 등장할 때 여실히 드러난다. 아마 많은 사람이 신동엽을 ‘레일맨’으로 기억할 것이다. ‘레일맨’(SBS <토요일 7시 웃으면 좋아요>의 한 코 너)의 ‘안녕하시렵니까’는 차갑고 공격적이며 냉소적이고 영리한 그의 개그 스타 일을 상징한다. 말을 타고 노는 천부적 재능은 신동엽 개그의 출발점이다. 하지 만 그의 개그가 끝을 보는 지점은 징그러울 정도로 능청스러운 연기와 특유의 장난기에 있다. 김원희와 함께한 <헤이 헤이 헤이>(SBS)의 ‘모델 커플’이나 ‘수상 한 가정부’ 연기는 우리 코미디 역사의 ‘전설’이 될 만했다.

한동안 그의 개그와 입담이 지겹고 재미없을 때가 있었다. 못된 장난과 야한 농담 그리고 짓궂은 놀림과 능청스러움으로 초지일관했지만 어느 순간 지루하고 상투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아마 <일밤>(MBC)의 ‘오빠밴드’ 즈음이었을까. 신동엽도 이제 재미없구나 느꼈다. 신동엽보다 기획 자체가 문제였을지 모르지만, 아무튼 그때는 그리 재미있지 않았다. 그런 신동엽을 다시 보게 만든 건 종합유선방송이었다. 미디어의 2부 리그,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지 모른다.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지만 미디어시장의 주도권은 여전히 공중파에 있다. 4%(tvN 시청률)와 10%(<동물농장> 시청률)의 차이는 무시할 만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을 상대해야 한다는 건 족쇄이기도 하다. 일요일 아침 무릎 위에 강아지와 고양이를 앉혀놓고 아이들과 함께 보는 <동물농장>은 신동엽의 진가가 발휘되기에는 지나치게 착하고 순한 프로그램이다. 그러므로 그가 ‘19금’이라는 날개를 달고 날아오른 곳은 (토요일 23:00~)였다.

신동엽을 ‘신’으로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동엽 신’은 일베(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가 추앙하는 변태 엽기 코미디의 달인이며 섹드립(성적인 언행을 했을 경우 쓰는 말)의 황제다. ‘이엉돈 PD의 먹거리 X파일’에서 ‘콩밥’, ‘대마초’, ‘소라 과자’를 던지면서 큰 웃음을 선사하는 신동엽은 전설의 자기희생의 아이콘이며 셀프 디스(자신의 허물이나 단점을 개그 소재로 삼는 것)의 화신이다. 일베 게시판을 돌아다니다 읽은 글이 있다. ‘신동엽을 추앙하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달린 답글이다. 요지는 이렇다. 신동엽은 ‘줄타기의 명수’다. 의미와 비의미의 경계, 폭소와 불쾌함의 경계 위를 아슬아슬하게 돌아다니는 밀당(밀고 당기기)의 귀재다. 코미디는 이지적인 장르다. 코미디가 작용하는 지점은 감정과 정서보다 의식과 인지의 차원이기 때문이다. 신동엽은 영리한 사람이다. ‘능수능란’은 그의 자질이고, ‘능청스러움’은 그의 태도이다.

리얼 버라이어티가 퇴조하고 그나마 정통 코미디 프로그램의 명맥을 잇던 <개그콘서트>(KBS2)도 시청률이 빠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신동엽은 사람들을 뒤집어지게 만들고 있다. 당분간 그의 세상이 아닐까. 적어도 그가 아니면 코마 상태에서 회복의 희망마저 꿈꿔볼 수 없는 종합편성채널에 그는 ‘포도당 같은 존재일 것이다. 아무튼 변태 엽기 연기와 섹드립이라는, 그동안 접근하기 힘들었던 지경에 잇닿아 새로운 줄타기를 보여주는 그는 새롭게 우리 세계의 경계를 그리는 또 한 사람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의 코미디가 거북스러운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특히 가 취하는 여성에 대한 태도는 나 또한 심하게 마뜩지 않다. 소년들의 음담패설을 바닥에 깔고 있는 그의 섹드립은 종종 물신성을 드러내며 여성을 대상화한다. 특히 ‘이엉돈 PD의 먹거리 X파일’이 그렇다. 하지 말았으면 하는 지점에서 조금 더 나갈 때가 있다. 그러나 그의 코미디가 우리에게 준 또 하나의 즐거움임은 부정하기 힘들 것 같다. 그의 코미디는 웃기다.

박근서
글 박근서 대구가톨릭대 언론광고학부 교수. 나름 학생 들의 좋은 친구가 되려고 애쓰고 있다. ‘텔레비전 코미디’ 로 학위를 받았고, 요즘 주된 관심사는 비디오게임이다. 닌텐도에게 우리를 구원할 영성이 있을지 정말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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