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12.28 04:56 수정 : 2012.12.28 04:56

지난 10월 30일 허리케인 샌디의 상륙으로 훼손된 뉴저지 해안가. 위키미디어
지난 10월 29일 오후, 초강력 허리케인 ‘샌디’가 미국 동부 해안지역을 강타하고 있었다. 가나 출신 이민자 안토니 나르는 엠파이어 주차장으로 절뚝거리며 출근길에 나섰다. 나르가 일하는 엠파이어 주차장은 뉴욕 맨해튼의 상류층 거주지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지역에 있는 지하주차장이다. 엠파이어 주차장은 허드슨강을 낀 트라이베카 지역 가장자리에 있다. 대피령이 내려진 구역의 한가운데다. 샌디는 바로 그 중심을 향하고 있었다.

 폭풍이 거세지자 트라이베카 좁은 거리에 건물 파편이 여기저기 날아다녔다.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아나스타시아 레시아(34)는 라이트가 92번지에 숙모와 함께 살고 있다. 엠파이어 주차장과 연결된 최신식 건물이다. 그날 레시아는 나르와 그의 직장 동료를 마주쳤다. 이미 대피를 마친 레시아와 숙모는 마지막으로 집에 들르러 달려가는 중이었다. 50대 후반인 나르는 심하게 절뚝거리며 막 출근하는 길이었다.

 

메릴 스트리프가 사는 아파트의 주차장

  “도대체 여기서 뭐하고 있느냐고 물었지요.” 레시아가 기억을 더듬다가 감정이 격해졌다. “출근하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레시아가 나르에게 “출근하라고 한 사람이 주차장 관리인이냐”고 묻자, 나르는 더 높은 사람이 불렀다고 말했다. “‘아뇨. 대장이 불렀어요’ 하더군요. 나는 이런 날 출근하는 건 미친 짓이라고 했어요. 거기에 있는 건 차뿐이잖아요!”

 몇 시간 뒤 허드슨강 둑이 넘쳐 강물이 곧장 주차장으로 밀려 들어왔다. 나르는 그 안에 갇혔다. 그는 결국 주차장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허리케인 샌디는 뉴욕을 강타했다. 미국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분열된 도시를 휘저어놓았다. 태풍 뉴스는 날씨에 관한 이야기이자 빈부 격차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르의 죽음만큼 속이 뒤집어지는 뉴스는 없었다. 엠파이어 주차장과 연결된 아파트에는 영화배우 메릴 스트리프가 산다. 배우 귀네스 팰트로와 이탈리아 패션모델 카롤리나 쿠르코바도 산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여배우들이 사는 빌딩의 주차장에서 가나 출신의 한 가여운 남자가 죽음을 맞이했어요. 짙은 어둠을 드리우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아무도 이 사실을 언급하지 않아요.” 레시아의 숙모 앤 템플턴이 말했다.

 나르의 죽음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대부분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왜 죽음의 허리케인이 도시 한복판에 들이닥치는 시간에 대피령이 내려진 지역의 중심에 있는 주차장으로 출근해야만 했는지(또는 출근해야 한다고 믿고 있었는지) 사람들은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알려진 사실이 몇 가지 있다.

 10월 28일 샌디가 들이닥치기 하루 전, 뉴욕시장인 마이클 블룸버그는 모든 저지대 지역에 강제 대피를 명령했다. 물론 사고가 발생한 트라이베카의 서쪽 가장자리도 포함됐다. 폭풍이 치는 그날 정오, 주차장과 연결된 라이트가 92번지의 아파트관리자는 모든 거주자에게 대피 경고를 발령했다. 하지만 엠파이어 주차장은 예외였다. 신원을 밝히기 꺼린 한 제보자에 따르면, 그날 현장의 주차장관리자가 말하길 엠파이어 주차장 쪽은 주차된 차를 지키도록 담당자를 배치하기 원했다고 한다.

사람 생명보다 차가 우선?

  “나는 주차장 담당자에게 ‘보시오. 모든 사람을 다 내보내야 합니다’라고 말했어요. 그는 ‘주차장을 보세요. 차들이 그대로 있잖아요’ 하더군요.” 제보자는 당시 어림잡아 20~30대의 차가 주차장에 있었다고 말했다.

 엠파이어 주차장 담당자는 자신의 이름은 윌프레드라고만 밝히고 성은 알려주기를 꺼렸다. 그는 누구의 출근 명령인지 묻자 ‘이 문제’에 대해 회사 쪽은 노코멘트라고 했다.

 하지만 레시아와 템플턴을 비롯해 나르와 마지막으로 말을 나눈 이웃들은 이 문제가 분명히 밝혀지기를 원했다. “나는 그에게 제발 여기서 나가라고 말한 마지막 사람이에요.” 템플턴이 말했다. 나르와 함께 일하던 또 한 명의 주차관리원은 불어나는 물 속에서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했다. 템플턴은 나르와 또 한 명의 관리원이 그날 왜 일해야 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템플턴은 “나르가 거기에 남아 있으면 안 된다는 걸 이해했는지 모르겠어요. 제 느낌에 그 두 사람은 거기에 남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거든요”라고 말했다.

 허리케인이 도시를 휩쓸고 지나간 지 2주일이 지났다. 별스럽게도 봄날 같던 11월 12일 아침, 나르가 익사한 주차장은 암흑에 잠겨 있었다. 샌디는 ‘축축한 입맞춤’으로 전기를 차단해버렸다. 사진 한 장이 입구 옆에 테이프로 붙어 있었다. 사진 속에는 둥근 얼굴의 흑인 중년 남자가 수줍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목에는 가느다란 목걸이가 드리워져 있고, 포도주색 전통의상으로 한쪽 어깨를 두르고 있었다.

 사진 너머로는 주차장을 거의 볼 수 없었다. 흠집이 난 차 몇 대가 입구 근처에 보였다. 주차장은 영업을 정지한 상태였다.

ⓒ The Nation

리지 라트너 Lizzy Ratner 언론인

번역 하수정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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