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12.28 03:48 수정 : 2012.12.28 03:48

그녀의 이름까지는 모르더라도, ‘코 잘린 여성’ 하면 한 장의 강렬한 사진이 기억의 속도보다 빠르게 떠오를 것이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의 2010년 8월 1일치 표지를 장식했던 젊은 아프가니스탄 여성 아이샤. 남편은 18살 그녀의 코를 베었다. 그 사진을 처음 보았을 때, 내 반응도 그랬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외로 돌렸고, 한참 망설이고 마음을 다스린 뒤에야 겨우 다시 쳐다볼 수 있었다.

 그녀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를 좌우 반전한 뒤 몸을 내처 더 돌린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잘려나간 코는 폭력의 무참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그러나 내 시선이 오래 머문 곳은 그녀의 두 눈이었다. 눈길은 비스듬했지만 정확히 카메라 렌즈를 응시하고 있었다. 눈을 마주친 나를 무장해제하는 눈이었다. 그 눈은 뭔가 말을 건네고 있는 듯했다. “당신은 어때? 내 코에 대해 할 말 없어?”

 이번 호를 준비하며 받아든 사진 한 장에서 나는 기시감 비슷한 걸 경험했다. 육체 노동자 풍의 쇠잔한 중년 남자가 나를 멀쑥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그의 눈을 응시했다. 푸석한 얼굴에 눈빛만 유독 촉촉했다. 여느 노동자의 삶에 남다른 극한의 경험이 더해지면서 말갛게 증류된 물기 같았다. 그의 눈은 나지막하게 말하고 있었다. “삶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는 것 아닐까요.”

 창간호를 내고도 흐릿하기만 했던 표지 사진의 콘셉트가 명징하게 잡히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진취재를 한 기자가 그 사진을 쓸 수 없다고 했다. 당사자가 한사코 거절하는 것을 ‘자료용으로만 찍어놓겠다’면서 포즈를 잡게 했다는 것이다. 한번 빼앗긴 마음은 쉽게 돌이켜지지 않았다. 모자이크 처리를 해서라도 표지에 싣고 싶었다. 이마저 당사자는 완곡히, 그러나 단호하게 거절했다.

 얼핏 <나·들>에서 모자이크가 가당키나 한지 의문이 든다. 하지만 약자가 가면을 쓸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면 민낯을 드러내게 하는 건 폭력적인 아우팅이기 십상이다. 오히려 가면이야말로 현실을 폭로하는 역설의 기호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나·들>은 ‘민낯’과 ‘가면’ 사이에서 오래 길항할지도 모르겠다. ‘노동자 열사’의 형인 노동자가 익명으로 살아야 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라면. (관련 기사 12면)

 다행히 이번 호 표지엔 커밍아웃한 사람의 사진을 실을 수 있었다.

안영춘 편집장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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