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10.07 11:22 수정 : 2013.10.10 17:46

안영춘 편집장 jona@hani.co.kr

마이너 의식은 실재할까. 마르크스의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를 따르자면 존재 자체가 마이너여야 하는데, 저 명제를 비틀고 싶어지는 건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계급 배반 투표 탓만은 아니다. 메이저에 끼고 싶어도 끼워주지 않는 게 현실 아닌가. 그렇다면 ‘의식이 존재를 규정할 수 없다’는 부정 논법이 현실에 더 정합적이지 않을까. 그러나 이런 생각이 오히려 현실을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

고양 원더스라는 독립 야구단이 있다. 선수들보다 구단주가, 구단주보다 감독이 훨씬 유명한 팀이다. 이곳 선수들은 무슨 생각으로 거기서 야구를 할까. ‘프로가 되기 위해서’라고 하면 틀리지는 않지만 질감이 한참 모자란다. 대한민국 최고 감독 밑에서 훈련하지만, 확률로 나타나는 그들의 꿈은 여전히 비현실적이다. ‘단 한 경기라도 프로에서 뛰어보기 위해’ 그들은 자신의 신체를 지독하게 단련한다. 봉만대라는 영화감독이 있다. 필모그래피는 에로로만 채워져 있다. 극장보다는 비디오로, 다운로드로 훨씬 많은 관객과 만난다. 추종자들은 ‘한국 영화계의 양봉(兩峰)’으로 추앙한다. 봉준호 감독이 ‘양봉’, 봉만대 감독이 ‘음봉’이다. 그가 에로에 매달리는 이유를 ‘에로가 좋아서’라고 하면 크게 빗나가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는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영화를 만들고 싶어서”라고 말한다. 리얼리스트다.

이들은 모두 마이너다. 이들에게 마이너 의식은 실재한다. 하지만 메이저 의식의 대칭은 아니다. 메이저가 파놓은 구렁텅이에서 허우적대지 않는다. 독립되고, 고유하고, 특화된 마이너다. 이들 앞에서는 개념과 질서가 재해석되고 재구성된다. 고양 원더스 선수들에게 ‘자기계발’은 권력의 주술에 대한 빙의가 아니라 주체로서의 실천에 가깝다. 봉 감독의 영화는 에로를 소재로 한 탁월한 예술적 성취다.

10월호에는 고양 원더스 선수들과 봉만대 감독이 동시에 등장한다. 우연이었지만, 우연도 반복되면 필연으로 비친다. 지속적인 반복에는 주체의 의지와 조건이 반영되기 마련이다. <나·들>도 마이너인가. 열두 번을 만들면서 의식하지도 못한 채 작은 것, 낮은 것, 가려진 것들과 꼬박꼬박 만난 것 같다. 허장성세 부리지 않고, 독자의 관심을 충실히 묻고 따른 것에 소박한 자부심을 품어도 될지 모르겠다. 다음달이면 벌써 창간 1주년이다. 읽는 매체를 만들겠다는 치기 어린 도전에 기꺼이 ‘나들’이 되어 동행해준 여러분이 없었다면 벌써 제풀에 주저앉고 말았을 것이다.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자 작은 정성을 마련했다. 그러면서 염치없게 큰 욕심을 부려본다. 계속 손잡고 동행해주시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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