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12.28 01:57 수정 : 2012.12.28 01:57

‘아마추어’의 시대다. 직업적 ‘작가’(Auteur)의 특권과 입지가 점차 사멸하고 있다. 창작의 영역은 이제 더 이상 전문가만의 영역이 아니다. ‘무엇인가를 사랑하는 이들’을 뜻하는 아마추어의 라틴어 어원이, 이제는 오히려 소극적 정의다 싶을 정도다. 디지털 시대 아마추어들의 활동은 사랑의 도를 넘어 거의 프로이자 직업에 가까운 수준이다. 나는 새롭게 등장하는 창작 주체들에게서 그 옛날 20세기 초 아방가르디즘의 ‘반예술’적 정서까지도 느낀다. 부르주아적 위선을 뒤집어 예술과 일상 삶의 합일성을 강조했던 아방가르드 작가들의 비전은 오늘날 아마추어리즘의 창작과 표현 문화에서 극적으로 실현되는 듯하다.

 대개 평범한 수동의 관객들은 ‘나’의 영역에 머물면서 특정의 관심을 개인적으로 소비하고 표현하는 행위를 보인다. 아마추어는 자신의 창작 행위를 만인에게 드러내놓고 보여주거나 자랑하지 못하고 부끄러워 숨기기 마련이다. 누군가 전문가의 미학적 식견을 지닌 이의 눈에 띄어 대중적 ‘들’의 시선을 받는 경우란 흔하지 않다. 전문 작가들의 경우 역시 ‘나’로부터 시작하나, 이들이 크게 다른 점은 대중의 영역, ‘들’을 위해 그만의 작가적 표현을 드러내는 데 몰두한다는 점일 게다. 그래서 프로 작가들에게 화랑 공간 내 전시는 인정 투쟁이요 명성을 얻어나가는 기본 과정이 된다.

 오늘날 새로운 관객들은, 전통적 관객·작가의 이분법으로 보면 ‘나’에 소극적으로 몰입하는 것도 ‘들’만을 향한 욕망을 가진 자들도 아니다. 비유적으로 보자면 이들은 새로운 혁신의 코드, 즉 아마추어리즘에 기대어 무수한 ‘나’를 공통의 정서로 묶어 함께 ‘들’의 표현 방식을 찾는 쪽으로 진화하고 있다. 다시 말해, 비슷한 관심을 지닌 ‘나’를 규합해 서로 공유하는 관점을 ‘들’이라는 표현의 장에 실어나른다. ‘나’와 ‘들’의 감성을 동시에 지닌 채, ‘나·들’의 수준에서 창작의 희열을 맛보는 신종족에 해당한다. 이들은 창작에 대한 사랑이 지나쳐 얼추 작가의 반열에 오를 만하지만, 프로 작가들만큼 전시를 통한 인정과 예술 시장 내 명성에 욕심이 적다.

 예컨대, 국내에서 온라인 패러디 문화는 반권위주의와 아마추어리즘에 기댄 누리꾼들의 건강한 정치적 표현 형식으로 기능해왔다. 이는 단순히 개인적 놀이의 과정이라기보다는 수많은 ‘나’로 구성되는 패러디 전체의 집단적 ‘들’의 에너지, 즉 즉흥성·일시성·대규모성·상호연결성에 기반한다. 예선 프로 작가들에게 중요할지도 모르는 개개의 예술적 완성도나 성찰성의 문제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다수 누리꾼들이 ‘나·들’의 간텍스트성(상호텍스트성)에 기반해 만들어내는 패러디 생산에서 뿜어져 나오는 집단적 문화 생산과 해석의 힘에 있다. 이것이 오늘날 ‘관객스타일’ 창작의 새로운 혁신적 조건이다.

<기사 전문은 <나·들> 인쇄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광석 서울과학기술대 IT정책전문대학원 디지털문화정책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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