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12.29 02:53 수정 : 2013.01.08 16:15

한국 격투기의 유망주 최두호 선수가 경기 일정이 잡힌 뒤 감량훈련에 들어갔다. 지옥의 문이 열린 것이다. / 천창욱 제공
 격투기 세계에는 체급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체급 분류는 공정한 경기를 위한 것이다. 70~80kg의 선수가 100kg 이상 나가는 거구의 선수와 맞붙는다면 체중에서 오는 압도적인 파워의 차이를 감당하기 힘들다. 또한 동일한 체중 조건에서 대결할 때 선수들은 더 탁월한 경기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체급이 매우 세부적으로 분할돼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나 선수들 처지에서는 평소 자기 체중보다 한 단계 낮은 체급에서 경기를 한다면 훨씬 유리하다. 복싱처럼 입식 경기가 아니라 상대를 쓰러뜨린 뒤 위에서 누를 수 있는 경기라면 더욱 그렇다. 이 때문에 선수들에게 ‘다이어트’는 실력 못지 않게 중요하다. 선수들은 경기 전 실시하는 계체에 맞춰 체중 조절에 나선다. 그것이 얼마나 힘든지는 몇 마디 말로 결코 실감할 수 없다. 뼈와 살을 에는 수준을 넘어서 영혼을 깎아내는 듯한 고통이 따른다. 그 과정이 그나마 변화무쌍하다면 나을 텐데, 지독한 단순반복이다.

 계체를 통과해도 지옥이 천국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또다른 고통이 기다리고 있다. 이미 죽을 만큼 지옥을 맛보았고 난관이었던 계체도 통과했으니 든든하게 식사를 하고 체력을 보충하면 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감량으로 약해진 몸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일련의 단계와 조처가 필요하다.

 우리가 보는 경기 당일 선수 모습은 계체 통과 때의 모습이 아니다. 계체 통과 뒤 회복을 위해 주어지는 하루 동안 엄청난 일이 벌어진다. 선수들은 체중을 급격히 불리는 데 진력한다. 그러나 매우 조심조심. 경기 당일이면 계체 때보다 한 체급, 심하면 두 체급 위의 체중으로 경기에 나서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경기 결과를 좌우할 만큼 큰 영향을 미친다. 이 때문에 이 감량법은 승리를 위한 중요한 작전의 일환으로 받아들여진다.

 체중 되불리는 ‘리바운드’가 생명 

 “리바운드를 제압하는 자가 경기를 제압한다”는 말은 만화 <슬램덩크>에 나왔던 대사로, 농구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승리 공식이다. 그런데 이 공식은 격투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물론 여기에서 ‘리바운드’는 튕겨나가는 공을 다시 잡는 게 아니다. 뺐던 체중을 되돌리는 것도 ‘리바운드’라고 부른다.

 선수들의 감량은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이뤄지는 다이어트와 다를 바 없다. 다만 처음부터 체중을 다시 불리는 것이 목적이라 10일에서 3일 사이에 6~10kg 사이를 감량한다. 일주일 동안 7kg을 뺀다면 ‘다이어트의 신’이라고 불려도 될 정도다. 물론 이 방법은 몸에 무리가 많이 간다. 젊고 강인한 격투기 선수의 육체라고 해도 눈에 안 보이게 무리가 가고 나중에 후유증이 나타날 수 있다. 더욱이 운동으로 다져진 선수들의 몸은 완전히 균형잡힌 신체 밸런스 때문에, 같은 무게를 빼더라도 일반인보다 더 어렵다.

 선수들의 감량 방식은 역설적으로 일반인들이 요요현상을 일으키는 과정을 응용한 것이다. 살을 빼기 위한 운동을 시작했다가 조삼모사 식으로 곧 운동을 중단하거나, 식사 조절이 되는 동안에는 괜찮았는데 식사를 늘리면 금세 다시 살이 찌는 원리를 이용한다. 운동을 많이 하지 않아서 살이 찐 사람은 운동을 하다 말다 하는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일종의 ‘리바운드’를 경험하게 된다. 심지어 이전보다 체중이 더 늘기도 한다. 선수들은 좀더 빨리 살을 찌우기 위해 ‘실패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선수들의 감량 과정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경기 전날 계체를 하고 있는 박원석 선수. / 길 포토 제공
 감량은 경기 3주 전부터 

 격투기 선수들의 나이는 군대를 다녀온 지 한두 해 뒤인 24~25살이 많다. (물론 그보다 어린 선수들도 있다.) 이 나이대의 성인은 기초대사가 활발해 따로 운동을 하지 않아도 일정 정도 감량이 가능한 부분이 있다. 이를 감안하면서 안정적으로 10kg을 감량하려면, 일주일에 1kg씩 총 10주간 같은 전략을 쓰면 된다. 하지만 실제 선수들의 감량 페이스는 이런 산술과 확연하게 다르다.

 주된 원인 가운데 하나는 갑작스럽게 경기 일정이 잡히는 상황이 많다는 점이다. 사실 종합격투기는 복싱처럼 확실한 메이저 스포츠라고 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그렇기 때문에 선수들은 한 번 기회가 찾아왔을 때 놓치지 않고 경기를 할 수 있도록 항상 몸을 만들어간다. 워낙 부상이 많은 종목이어서 애초 경기가 잡혀 있던 선수가 다치면 대체 요원으로 들어가는 상황이 많기 때문이다. 경기가 잡혀 있던 선수의 부상은 일반적으로 경기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상태에서 마무리 연습을 하다 발생한다. 대체 선수들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보통 3주 정도다. 경기를 앞두고 있지 않을 때 선수들의 체중은 자기 체급보다 10kg 정도 무거운 상태라, 3주 전부터 10kg를 빼기 위한 감량에 돌입하게 된다.

 경기가 3주 앞으로 다가온 상황이라면 기본적으로 수분을 조절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경기 날짜가 잡히면 선수는 감량을 위한 준비를 하면서 물을 마신다. 단순히 물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 지옥이 시작되는 것이다.

 

 온종일 물 11ℓ를 마셔라 

 경기가 잡히면 일단 몸에 수분을 축적시킨다. 한 달 전부터는 하루에 7ℓ를 틈틈이 생각날 때마다 마신다. 물을 마시는 시간은 따로 정하지 않는다. 이렇게 물을 마시다 경기가 10일 정도 앞으로 다가오면 마시는 양을 더욱 늘린다. 이때부터는 하루 종일 11ℓ의 물을 마신다. 물이라고 해도 계속 마시다 보면 오히려 갈증을 느끼게 된다. 입이 마르는 때도 있다. 물을 마시다 구역질을 하는 상황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실제로 선수들이 겪는 일이다. 선수들은 구역질을 참아가며 마시고 또 마신다. 사실 11ℓ면 아침 8시에 일어나 하루종일 물통을 옆에 달고 마셔도 잠들기 전까지 다 마시기 힘든 양이다.

 물을 마셔서 살을 뺀다는 건 얼핏 말이 안 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보는 땀복 입고 사우나에 앉아 있는 모습은 오히려 몸에서 수분을 빼는 과정이 아니던가. 그렇다. 끝까지 물을 마실 수는 없다. 계체를 이틀 정도 앞두고, 드디어 ‘물고문’이 끝난다. 적당량만 마시는 것이 아니라 물을 완전히 끊는다. ‘수분 로딩’은 종료되었지만 선수의 몸은 엄청나게 수분이 공급되던 상태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왕성하게 수분을 몸밖으로 배출한다. 들어오는 수분은 없고 나가는 수분은 엄청나게 많은 것, 이것이 바로 막판 감량의 기전이다. 이런 방식은 계체 뒤 하루 만에 체중을 다시 불리는 데도 도움을 준다. 다시 적절한 수준으로 수분이 들어오고 음식물이 더해지면 리바운딩 효과가 극대화되는 것이다.

 이 방식은 미국에서 들어왔다. 한국에서도 선호하는 선수가 많다. 하지만 사람 몸이 모두 똑같지 않고, 모두가 이 방법으로 감량에 성공하는 것도 아니라는 게 문제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과다한 수분 섭취로 화장실을 자주 간다는 점이다. 잠을 자면서 회복하는 시기에도 이 때문에 숙면을 하기 힘들고, 성격이 예민한 선수는 컨디션이 망가지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한국인 최초의 미국종합격투기대회(UFC) 파이터인 김동현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경기를 15일 정도 남겨둔 상황에서 8~10kg을 감량하는데, 10kg 이하의 감량은 선수의 평상시 체중이 80kg 이상이면 별 무리가 없다. 다만 10kg 이상 감량은 무리가 가는데, 마지막 1~2kg을 남겨놓고 더 이상 뺄 수분이 없어지면 매우 힘들다. 이때부터 1kg은 이미 뺀 10kg에 맞먹을 정도의 고통이 따른다. 쥐어짜야만 한다. 한마디로 마지막 2~3kg의 감량은 거의 지옥을 경험하는 것과 같다. 10kg 이상 감량을 하려면 한 달 이상 기간을 두고 해야 하며, 몸 상태를 늘 최선으로 유지하면서 감량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김동현 선수의 이야기처럼 평소 기본적인 수분 섭취 습관을 들이는 것이 신체적으로 유리하다. 특히 마지막에 체중이 빠지지 않을 때에는 초조해지면서 스트레스가 늘어나는데, 이러면 결국 컨디션 유지에 큰 지장을 준다. 집중해야 할 것은 경기인데 체중을 빼야 한다는 사실이 발목을 잡아 양쪽 다 집중할 수 없게 만든다. 집중의 지향점이 바뀌어 마인드 컨트롤이 되지 않고 경기를 준비하기 힘들어진다. 뭐든지 미리 준비해두는 것이 좋다. 감량도 마찬가지다. 다만 몸이라는 것은 공통점도 있지만 사람마다 이렇게 저렇게 다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마인드 컨트롤이 더욱 중요해진다.

 

하루 만에 10kg 다시 불리는 비결 

 감량에는 이렇게 큰 고통이 따른다. 지옥을 지나 드디어 계체를 통과했다. 이제 다시 원래 체중으로 돌아가기 위한 문이 열린다. 그 문은 천국으로 나 있지만 입구부터 천국은 아니다. 탄수화물 위주의 음식을 몸 속으로 쏟아넣는다. 경기 당일 선수의 체중은 일반적으로 계체 때보다 7~8kg, 많게는 10kg 이상 리바운드되어 있다.

 소재현 선수는 리바운딩의 대가로 불린다. 일본 무대를 거쳐 현재는 로드FC 무대에서 활약 중이다. 소재현은 평상시 체중이 72kg에 달한다. 그는 살을 찌우기도 힘들고 더 이상 뺄 것도 없는 페더급(61.2kg 이하)에서 뛴다. 당연히 빼기도 힘들고 되돌리기도 힘들다. 그런 그가 하루 사이에 리바운드하는 무게는 일반적인 상식을 넘어선 10kg이다. 그의 리바운드 비결은 다음과 같다.

 “계체가 끝나면 서서히 수분을 섭취하기 시작한다. 찬물보다는 미지근한 물을 살짝 마시는데, 급하게 찬물을 마시면 장염이나 설사할 가능성이 있어서다. 수분 섭취를 하며 1시간 안에 첫 소변을 볼 때까지 물을 마신다. 소변이 나온다는 것은 어느 정도 수분 보충이 되었다는 의미여서 소변을 본 후 유동식인 죽으로 음식물을 섭취하기 시작한다. 탄수화물 음식 중에서 부담이 적은 바나나를 먹은 뒤 상황에 따라 포도당 주사를 맞기도 한다. 저녁쯤에는 일반식을 먹는데 이때에도 기름지고 맵거나 짠 자극적인 음식은 피하고 밥 위주로 천천히 씹어서 소화할 수 있게 한다. 경기 당일에는 일반식으로 가는 편이지만 아침에는 죽이나 샐러드, 바나나 등을 먹는다. 이렇게 진행하면 평상시 체중인 72kg에 육박하게 리바운드가 된다.”

 리바운드에 대해 중량급인 김동현 선수의 의견을 들어보자.

 “처음 미국에서 감량했을 때의 일이다. 컨디셔닝 코치가 평소에는 하루 6끼를 먹게 했다. 신진대사가 빨라지고 신체에 좋다고 했으나 실제 해보니 동양인에게는 전혀 맞지 않는 방법이었다. 특히 미국 선수들은 리바운드를 할 시기에 탄수화물 섭취를 위해 양념이 되어 있지 않은 파스타 면만 먹거나 닭 가슴살 등을 섭취하는데, 체질적으로나 섭취해온 음식의 종류가 전혀 다른 나에게는 맞지 않는 방법이었다. 한국선수에게는 한국음식이 가장 잘 맞는다는 게 내 경험에서 나온 판단이다. 나는 적당히 양념도 돼 있고 약간의 고기도 있는, 그러면서 기름지지 않은 한식이 리바운딩에 더 큰 도움이 되었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결국 느낀 것은 자신에게 맞는 감량과 리바운드 방법을 스스로 만들고 개선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격투기는 화려하고 멋진 세계일지 모르지만 우리가 보지 못하는 뒷무대에서는 한 번 링에 올라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운동으로, 그리고 운동 외적으로 뼈를 깎고 정신을 깎는 수련과 고통을 감내하는 선수들이 있다. 얼마 전 열린 UFC 마카오 대회를 앞두고 임현규 선수가 감량 과정에서 탈진해 경기 바로 전날 아웃되는 일이 있었다. 안타까워하는 목소리 못지않게 비난의 목소리도 많았다. 이런 어려움을 겪으면서 꿈을 향해 가는 선수들에게 너무 심한 말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야 경기를 못 보는 아쉬움뿐이지만,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선수에게는 자신의 인생과 기회가 무너지는 순간이다. 화려한 격투기의 세계. 그 무대에 나서는 선수들에게는 이런 고통과 인내가 있기에 열매를 딸 수 있는 자격도 충분하다.

천창욱 종합격투기 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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