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7.03 15:09 수정 : 2014.07.03 15:09

한겨레 강재훈
지금은 종영됐지만 MBC <컬투의 베란다쇼>(이하 <베란다쇼>)에 나오는 ‘웃기는 기생충 박사’ 서민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못생겨서 고생이 많았다고 하더니, 와 정말 많이 못생겼구나.” 게다가 내가 본 방송분에서는 그가 마침 여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볼품이 없었다. “저 얼굴로 여자였으면 사는 게 정말 내내 울적하고 괴로웠겠다. 남자여서 다행이지.” 심지어 <베란다쇼>에서 그는 패션 테러리스트로 통했다. 그 때문에 어느 회에서는 서민 교수에게 스타일리스트와 메이크업팀을 붙여 대대적으로 외모를 개선하고 옷도 패션 리더처럼 입혀서 강의에 내보내는 난리법석을 피우기도 했다. 그런데 웬걸…, 서민 특유의 꾸미지 않은 매력이 증발되는 역효과가 나타나 진정한 ‘킹왕짱’ 패션 테러리스트처럼 보이는 게 아닌가? 그 때문에 서민의 유머를 사랑하는 팬이었음에도 전혀 웃을 수 없었다는 슬픈 얘기.

그러던 얼마 전 지승호가 특유의 성실함으로 엮은 인터뷰집 <서민의 기생충 같은 이야기>를 봤다. 서민의 팬임을 자청하기에 기꺼이 내 돈 주고 사서 봤다. 역시…. 펼친 지 불과 2분도 채 안 됐을 무렵이다. 어릴 때 못생기고 말을 더듬고 소심하고 심지어 틱 장애까지 있어서 무서운 검사 아버지가 아들 서민을 미워했다는, <한겨레> 인터뷰를 통해 이미 널리 알려진 이야기로 시작하는구나, 했는데 순식간에 폭소가 터져나왔다.

“돌이켜보면 제가 좀 맞아도 싼 측면이 있었어요, 장남인데 마음은 좁고, 말도 잘 못했으니. 성격도 나빴어요. 그 당시에도 한번 삐치면 2년씩 가고 그랬으니까요. 형제간에 1~2년씩 말 안 하고 그러는 게 정상은 아니죠. 4남매 중 성격이 제일 안 좋았어요.”

웃었다. 웃으면서 ‘아, 이게 바로 서민 특유의 자기비하식 유머의 정수지’ 하며 무릎을 쳤다. 웃으니 아침부터 살짝 찌뿌둥하던 기분이 좋아졌다. 신이 나서 몇 페이지 더 넘겼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어떤 애가 ‘너처럼 병신같이 생긴 애는 처음 보았어. 넌 어떻게 그렇게 생겼냐?’고 한 적도 있어요. 그때 제가 뭐라고 그랬냐 하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뭐, 그럴 수도 있지’라고 했어요.”

특유의 소심함으로 관대해진 인간

이걸 읽으며 정말이지 난 미친 듯이 웃었다. 타인에게 인정받지 못해서 자신을 낮게 평가하게 된 소심함, 그 특유의 소심함으로 관대해진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이렇게 즐겁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워하며…. “인간이 이토록 많은 유머를 얻으려면 얼마나 오랫동안 괴로웠어야 하는 것일까!” 니체가 셰익스피어를 읽으며 감탄했던 그런 경지의 유머가 아닌가 싶었다. 아니 그보다는 셰익스피어에 공자를 합친 유머 같았다. 어려운 처지에 빠진 공자를 보고는 누군가 ‘초라한 행색이 마치 상갓집 개 같더라’ 하는 얘기를 제자에게 전해들은 공자가 흔쾌히 웃으며 “모습은 아니지만, 상갓집 개라고 한 말은 맞다! 맞고 말고!” 했다는 얘기. 그 일화 때문에 잘 알지도 못하는 공자를 단박에 좋아하게 된 나다.

개인적으로 난 당대 ‘최고의 논객’이라는 진중권의 유머를 결코 좋아하지 않는다. 그의 유머는 유머라기보다는 조롱에 가깝다. 무지몽매한 대중이나 덜 지성적인 사람들을 ‘닭대가리’로 간주하는 조롱. 마치 내 눈에는 그가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자신이 아주 우월하다는 허영심을 충족하기 위해 상대방의 무식함을 밝혀내고 그걸 신랄하게 냉소하고 비꼬는 데 희열감을 느끼는 사람 같다. 그래서 그가 아무리 똑똑하게 말해도 이제는 듣기 싫다.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약점이 있기 마련이다. 약점 좀 있고, 편견도 좀 있고, 속된 부분도 있고, 미처 덜 깨우쳐서 모자란 부분도 있다. 이 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없다. 모두가 근본적으로 불완전한 존재, 그래서 깨지기 쉬운,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분투하며 자신의 결핍과 불완전함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 그래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조르바가 그랬던 것 아닌가? “인간은 두루 불쌍하지요”라고. 그걸 아는 서민의 유머는 너그럽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를 조롱하고 그 조롱의 대상을 담백하게 동정할 수 있을 만큼.

“유머의 인생관을 부처의 자비의 인생관이라고 해도 안 될 것이 없다”라고 한 건 중국 작가 린위탕(임어당)이었다. “유머는 이렇게 해서 인류의 동정심을 일깨워 모두가 한배를 타고 강을 건너가고 있다는 생각을 갖도록 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그게 바로 서민의 유머라고 나는 <서민의 기생충 같은 이야기>와 린위탕의 <유머와 인생>을 동시에 읽으며 생각했다.

정치적 올바름을 겸비한 이들 중에 서민과 같은 유머를 구사할 줄 아는 이들이 거의 전무하기 때문일까? <경향신문> 지면에서 서민 특유의 반어법적 유머가 절정에 달한 기사를 처음 접했을 때 나는 심장이 멎을 정도로 놀랐다. ‘서민의 기생충 같은 이야기’라는 칼럼 타이틀 아래 단국대 의대 교수라는 자가 “우리가 뽑은 대통령을 우리가 사랑해야지, 과테말라 국민들이 사랑하겠는가? 반성하라, 좌파들아”라고 외치는 글이었다. 처음엔 그게 서민 특유의 유머인 줄 모르고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머리가 아득해질 정도의 분노심에 치를 떨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철도 민영화, 의료 영리화 문제를 두고 대통령을 옹호하는 글처럼 읽혔는데 무엇보다 최소한의 논리마저 갖추지 못한 엉터리 주장이어서 말문이 막혔다. 어이가 없을 정도로. 그건 한마디로 거의 윤창중식 논리였다. 그래서 더 찾아 읽어보니 ‘윤창중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는 글이 있었다. 그걸 읽고 알았다. 대통령이나 정부를 비판하면 무조건 종북 좌파로 모는 극우 보수들의 논리를 그대로 가져와서 그들의 엉터리 논리를 우회적으로 조롱하기 위한 서민 특유의 반어법적 유머라는 걸. 대한민국에 좌파가 득실거리는 이유가 수도가 왼쪽으로 약간 치우쳐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쓴 ‘수도 이전만이 살길이다’라는 글을 읽을 때는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동반한 폭소가 마치 폭죽처럼 ‘펑펑’ 터졌다. 아이고, 즐거워라.

패션은 사람의 첫인상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다. 제아무리 못난 사람도 옷을 세련되게 입으면 잘나 보인다. “못생겨서 고민이 많다”는 ‘기생충 박사’ 서민 교수는 예외다. 꾸미지 않아 볼품없는 그만의 매력이 증발되면 ‘패션 테러리스트’로 전락하고 만다. MBC 〈컬투의 베란다쇼〉 방송 화면 갈무리
그 즐거움 때문이었을까? 내 눈에는 어릴 때부터 못생겨서, 그렇게 줄곧 계속 못생겨서 마음고생이 심했다는 그의 얼굴이 제법 귀엽게 보였다. 심지어 애처로울 정도로 작은 그 눈마저 사랑스럽게 보였다. 무엇보다 그에겐 유머가 있지 않은가? 게다가 그의 유머는 개그맨들의 유행어나 따라하는 저급한 유머가 아니고, 타인에게 모욕감을 안겨주는 잔인한 유머도 아니다. 상대를 엄하게 나무라지 않고 자신의 에고에 대해서도 가벼운 유머. 살아온 자신의 인생에서 우러나오는 한없이 진실하고 너그러우며 동정적인 유머. 그러면서도 한 개인이 아니라, 이 사회의 악과 부조리에 대해 비판하고 저항할 줄 아는 유머. 난 그 유머가 좋다. 아니 사랑한다. 중학교 때부터 남몰래 유머를 갈고닦게 만든 그의 유서 깊은 외모 콤플렉스마저 사랑스러울 정도로….

정치적 올바름과 유머를 겸비한 남자

<서민의 기생충 같은 이야기>를 읽어보면 그 자신이 외모 지상주의 피해자이며 아이러니하게도 그 수혜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내가 절세미인이라는 자랑을 얼마나 해대는지 미인 아닌 여자들은 책 읽다가 단박에 주눅이 들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서민 교수가 특별히 페이스북 쪽지로 보내준 결혼 사진을 보고 알았다. 보통 사람들 눈에 평범하게 예쁜 얼굴이 그에게는 절세미인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는, 뜻밖의 효과. 심지어 내 눈에 매우 귀엽긴 하지만 못생긴 견종에 속하는 페키니즈 세 마리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각별한지(눈이 유난히 작아서 그런지 서민은 페키니즈가 눈이 큰 미모의 개라고 했다) 잔잔하게 밀려드는 감동에 살짝 눈물이 날 지경이다.

서민은 “약점 때문에 자신감 없는 사람들, 특히 못생긴 남자들이 이 책 <서민의 기생충 같은 이야기>를 읽으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동의한다. 글쓰기와 책읽기, 그리고 유머로 자기 비하를 극복하고 재미나게 새 인생을 살고 싶은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듯하다. 그리고 여자들에게도 추천하는 바이다. 특히 좋은 남자와의 좋은 결혼에 대해 알고 싶거나 알아야만 하는 미혼 여성들!

서민은 훌륭한 학자이며 출중한 유머 작가이고, 또 좋은 남자다. 자기보다 용모가 뛰어나다는 이유로 아내를 구세주로 모시는 남자가 어디 흔한가? 가장 혹은 교수로서의 권위 의식은커녕 집에 오면 그날 일어난 일을 요약해서 아내에게 2시간에 걸쳐 이야기해주고 강아지들과 눈높이를 맞춰 놀아주는 일을 일상에서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남자라니. 그러면서 방송에서 웃음 팔아 번 돈을 아내에게 보내줄 때 제일 행복하다는 남편. 거짓으로 위선 떨 사람이 아니다. ‘연구의 아름다움에 푹 빠졌다고 하면 멋지게 들리겠지만 실은 이걸 하면 적어도 교수는 되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기생충학을 선택했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남자이므로….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게 솔직한 남자, 가식도 꾸밈도 없이 자기 자신을 투명하게 드러내고 또 표현할 줄 아는 남자, 태생적 결핍을 인정하고 자기만의 미덕을 만들 줄 아는 남자, 설사 실수했다 해도 잽싸게 반성하고 교정할 줄 아는 남자, 노력해도 어쩔 수 없는 건 과감하게 포기할 줄도 아는 남자. 무엇보다 감사할 줄 아는 남자이기에 난 서민이 좋고 또 존경스럽다.

좋은 남자가 되고 싶은가? 혹은 좋은 남자를 만나고 싶은가? 그럼 서민이라는 한 인간을 여행하고 탐구해보자. 마치 무해하고 양심 있는 한 마리의 기생충인 듯, 서민이라는 한 인간의 몸속으로 들어가 혈관을 따라 폐를 지나 장으로 갔다가, 다시 뇌나 심장으로 이동하는 여행을 해볼 것을 권한다. 기생충학자 서민의 책들이 그 길을 안내할 테니.

글 김경 패션지 에디터로 17년을 살았다. 2003년부터 <한겨레21>에 ‘김경의 스타일 앤 더 시티’를 연재했고, 칼럼니스트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지금은 강원도 평창에서 살며 생애 첫 번째 소설을 집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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