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4.01 14:11 수정 : 2014.05.02 15:02

한때 ‘진보 간지’ 혹은 ‘패션 좌파’ 논쟁이 뜨거웠다. 촛불시위를 경험한 88만원 세대들이 ‘진보는 멋있어야 하니까, 간지 나게 입자’를 주장하면서 패션좌파라는 말이 등장했을 때 마치 그 중심에 있었을 것 같은 이 남자 허지웅은 되레 실소를 금치 못하겠다며 이렇게 썼다.

“멋있는 좌파가 필요하다. 그러나 옷 잘 입는다고 멋있는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다. 옷 잘 입어서 새로운 좌파가 되겠다는 생각은 심지어 코미디다. 누가 시키거나 부르짖지 않아도 닮고 싶고 알고 싶은 진보가 되자는 이야기다.”

물론 옷을 잘 입는 건 좋다. 특히나 방송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허지웅을 보면 알 수 있다. JTBC의 최고 인기 프로그램 <썰전>과 <마녀사냥>에 출연 중인 허지웅을 보면 ‘패션은 타인의 시선을 빼앗음으로써 일종의 권력관계를 창출해내는 것’이구나 싶다. 아니, 그 말의 의미가 머리가 아니라 그냥 느낌으로, 시각적 유희로 전달되어 동공 뒤편 어딘가에 꽂힌 다음 지속적으로 심장을 자극한다고 할까?

카메라가 돌아가고 허지웅이 미처 입을 벌리기도 전이다. 시대를 잘 타고난 듯한 얼굴과 스키니한 몸매, 그 몸과 얼굴에 아주 잘 어울리는 패션으로 무장한 남자가 앉아 있다. 약간 삐딱하게. 직업이 기자 출신 글쟁이란다. 그 때문인지 방송 생활을 못해도 전혀 아쉬울 것 없다는 듯 약간 삐딱하게 앉아 있는 게 뭔가 느낌이 다르다. 연예인들 사이에서, 연예인보다 더 멋있어 보이는 글쟁이 남자의 그 쿨한 태도라니!

그런데 두고 보니 옷만 잘 입는 빈 수레가 아니다. 옷 입는 것 못지않게 말도 잘한다. 솔직하고 소신 있게, 때로는 거침없이 자기만의 경험과 생각을 드러내는 데 능수능란하다. <썰전>에서 보여주는 촌철살인의 논평은 물론 신동엽과 함께 19금 토크를 즐기며 시시덕거릴 때조차 그는 어딘지 지성적으로 보인다. 방송에서 처음 보는 캐릭터. 발견, 놀라움, 설렘. 20대 여성에게 ‘그 모든 게 새롭고, 그 모든 게 매력적으로 다가온다’니, 그럼 게임 끝인 거다. 그리하여 허지웅은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이른바 대세가 됐다. 그 대세를 만나봤다. ‘패션 코드’로서의 허지웅을 더 가까이 느껴보기 위해.

- 자의가 아니었다 해도 여하튼 ‘패션 좌파, 진보 간지’의 최종 우승자처럼 보인다. 아이콘 같은 존재랄까. 당신이 생각하는 멋있는 좌파, 진보의 핵심은 뭔가.

= 진보는 뭐뭐 해야 한다는 식의 당위론에 함몰돼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공익에 대해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 모범적인 시민상이라면, 제가 생각하는 진보는 그보다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좀더 예민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면에서 닮고 싶은 진보. 그게 단지 옷 잘 입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는 거죠.

- 하지만 허지웅이 옷을 잘 입어서 보기 좋은 것도 사실이다. 패션의 힘을 받고 있는 것도 분명하고.

= 혼자 오래 살다보니까, 자연스레 저한테 뭐가 어울리는지 알아서요. 힘은 힘이겠죠. 저는 저한테 안 어울리는 거 입고 있으면 아무것도 하기 싫거든요. 인터뷰하러 가서도 남의 옷 입는 걸 극도로 싫어하니까.

- 근데 즐겨 입는 그 스타디움 재킷이 200만원짜리라고 하던데 진짜인가.

= 그렇다니까요. 안경도 스트리트 안경점에서 2만5천원 주고 산 돋보기인데 명품이라고 인터넷에 떠돌고. 스타디움 재킷도 그래요. 옷을 주로 인터넷에서 구매하는지라, 그것도 한 쇼핑몰에서 자체 제작한 거라 해서 샀더니 에디 슬리먼의 생로랑 카피였던 모양이에요.

재밌는 얘기다. 코코 샤넬이 돈 많은 고객을 부채질하고 벼락부자를 멸시하는 제스처로 값싼 모조 보석류를 몸에 걸치고 다닌 것처럼 난 허지웅이 일부러 명품 카피를 입고 다닌다면 더 의미심장하겠다는 다소 괴변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원숭이가 될지 모른다’라는 글에서 허지웅은 이렇게 썼다. “하느님 맙소사, 이건 정말 끔찍한 이야기다. 잘생긴 자본가는 잘생긴 배우자를 얻고, 심지어 자본과 (비싼) 의학의 힘을 빌려 2세의 유전적 형질을 더 나은 방향으로 조작한다. (…) 확실한 건 자본주의 사회가 진행될수록 아름다움과 부를 향한 자본가들의 집착이 사회적으로 보장, 장려되고 있다는 점이다. (…) 자본가는 인간으로 남고, 노동자는 원숭이가 된 세상. 진보를 가장한 정부의 분열증 때문인지 계급적으로 사고하고 말하는 일이 낡은 패션처럼 치부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실상 자본주의가 진행될수록 계급적으로 판단하고 사유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태도가 오히려 더욱 절실하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원숭이가 될지 모른다.” 너무도 인상적인 글이었다. 무늬만 아니라, 뼛속까지 멋있는 좌파만이 쓸 수 있는…. 역설적으로 스스로 원숭이인 듯 자본가의 값비싼 옷을 카피한 싸구려 옷을 입고 있지만, 이 세계와 인류의 미래를 고민하고 사유하기 때문에 자본가보다 더 멋있어 보이는 남자. 계급적으로 사유하는 걸 좋아하는 나로서는 최상의 패션 아이콘다운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 그나저나 (목 뒤에 보이는) 그 문신 너무 멋있다. 혹 직접 디자인한 건가.

= 네. 디자인은 제가 해서 가져갔어요. 한 지는 꽤 오래됐어요. 10년 전쯤. 왼쪽 목 문신은 5년쯤 됐고요.

- 우와, 스타일 감각은 타고나는 것 같다. 그걸 직접 디자인한 거 보면.

= 아뇨, 오리지널리티가 떨어져요. <황혼에서 새벽까지>에서 조지 클루니가 연기한 세스의 문신을 응용한 거라서요.

- 역시 스타일 감각을 배우는 데 영화만 한 교과서는 없는 듯하다.

= 그건 있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간 이후 집에서 돈을 받아본 적이 없거든요. 돈이 궁하고 일을 더 많이 해야 했는데 없는 돈으로 사는 걸 운용하다보니 싼값에 나에게 어울리는 걸 저비용·고효율로 찾아내는 감각이 훈련됐다는 것 정도. 물론 영화로 학습된 것도 있지만.

- 바로 그거다. 그래서 비비언 웨스트우드나 톰 포드가 말하지 않나, 부자는 되레 스타일을 갖기 어렵다고.

= 앗! 부자가 스타일리시할 수 없다는 말, 어저께도 들은 거 같은데…. 솔직히 그게 무슨 말인지….

그냥 돈만 많은 사람들은 같은 옷을 어떻게 하면 더 멋지게 입을까 고민할 필요가 없으니까. 이것저것 다 사면 되니까. 스타일은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다른 사람에게 내 철학이나 신념을 외형에 어떻게 반영해서 보여줄지 고민하는 데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단지 돈으로 살 수 있는 옷이 아니라 옷을 입는 방식, 태도, 말투 등이 포함된 게 바로 스타일이라는 점에서.

허지웅에게는 허지웅만의 스타일이 있다. 평균적인 삶이나 사회의 기준과는 별개로 가난한 시절을 포함한 자기만의 삶과 경험, 생각을 누가 뭐라든 적극적으로 글에 반영해왔고, 또 그걸 바탕으로 옷을 입고 방송하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허지웅이 “월세 때문에 방송에 출연하게 됐다”는 말을 해도 섹시함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고.

- 의도했든 안 했든 ‘섹시한 글쟁이’로 통하는데, 허지웅에게 섹시한 남자는.

= 성의 없게 들릴지 모르지만 제게 섹시한 남자는 존 매클레인이에요. 영화 <다이하드>의 주인공. 끊임없이 노력한다는 점에서요. <다이하드> 시리즈를 보면, 매 편의 시작에서 가족 관계가 완전히 산산조각 나 있어요. 1·2편은 아내를 살리기 위해서, 3편은 아내에게 미안하다고 전화하기 위해서, 4편은 딸, 5편은 아들. 결국 전부 제때 사과하지 못했던 가부장 마초가 사과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그게 다시 어그러지고 부서진다는 걸 알면서도 온몸이 부서져라 ‘다이 하드’하게 뛰어다니는 게 존 매클레인이거든요. 그게 제 눈에는 섹시해 보이는 거죠.

- 이혼이 허지웅의 아킬레스건 혹은 트라우마가 아닌가 싶다, 미안하지만….

= 아뇨. 그 훨씬 전에도 제게 섹시의 아이콘이 존 매클레인이라…. 제게는 대개의 인간관계가 트라우마인 것 같아요. 저는 책임지는 인간, 책임지는 삶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인데요. 그런데 역설적으로 저는 타인을 굉장히 피로해하는 타입이거든요. 정말 뭔가 확실하게 공유되지 않는 한은요. 결혼은 제게 굉장히 큰 결심이었어요. 가정을 책임진다는 거니까요. 그런데 결과적으로 그런 인상이나 확신을 주지 못했던 거고 그게 관계의 파행으로까지 갔으니…. 트라우마의 연장선이라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아무튼 책임지는 삶을 살자’와 ‘그러니까 책임지지 못할 일은 최대한 만들지 말자’는 게 제 삶의 모토가 됐고요.

바로 이런 부분일 거다. 5년 만에 나온 허지웅의 신작 <개포동 김갑수씨의 사정>을 읽은 허지웅의 한 여성팬이 이런 리뷰를 남길 수 있는 거. “가끔 놀랄 정도로 솔직한 말을 할 때가 있다. 그때 나는 우습지만 마음이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다.” 솔직해도 괜찮다. 솔직한 내 욕망은 물론 다른 사람을 열받게 할 수 있는 나만의 생각, 치유 불가능해 보이는 내 오만과 결점에 대해서도. 여하튼 글을 쓰고 방송을 하는 공인으로서 그가 가장 바라는 건 ‘누구든 자기가 잘할 수 있는 걸 할 수 있는 세상이면 좋겠다. 집단의 대의나 명제에 얽매이지 말고’니까.

그런 그가 ‘대세’란다. 그런 일이 있었던가? 글쟁이가 엔터테인먼트계의 ‘대세’였던 적이…. 적어도 한국에서는 없었다. 미국에서라면 트루먼 커포티 정도? 하지만 그는 게이였고 허지웅은 스트레이트다. 그 때문에 여대생들 사이에서 ‘허지웅 앓이’가 감기 바이러스처럼 퍼지고 있다니, 난 솔직히 반갑다. 글쟁이가 TV와 패션잡지만 보는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대책 없이 마구마구 끌리는 요즘 가장 ‘핫한 오빠’로 각광받을 수 있다니!

허지웅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방송을 하다보니 정말 제가 생각했던 ‘대중’이라는 덩어리의 크기와 결이 완전히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제가 주로 보고 관심 있어 하고 대화 나누던 사람들에게 익숙한 주제를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요.” 난 그래서 종합편성채널에 출연하는 허지웅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한다. 더 많은 멋있는 좌파, 진보들이 종편에 출연하면 좋겠다는 게 내 생각이다.

글 김경 패션지 에디터로 17년을 살았다. 2003년부터 <한겨레21>에 ‘김경의 스타일 앤 더 시티’를 연재했고, 칼럼니스트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지금은 강원도 평창에서 살며 생애 첫 번째 소설을 집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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