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1.05 14:41 수정 : 2014.01.06 16:12

좋아하는 후배 기자가 있다. 김도훈이라고, <씨네21>에 있다가 지금은 라는 남성 패션지로 자리를 옮긴 친구다. 그 친구가 얼마 전 정우성을 만난 모양이다. 그 친구 왈, 17년 전 길거리에서 우연히 정우성을 처음 봤을 때 자기만의 성경을 만들게 됐단다. ‘신은 6일 동안 세상을 창조하고 7일째 되는 날 정우성을 창조했다’로 시작하는…. 겁나게 느끼하고 요란스러운 말이지만, 지금도 그 말을 철회하거나 사과하고 싶은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다며 이 친구 되레 큰소리를 친다. ‘당신이 정우성을 직접 본 적이 있다면 이해할’ 거라며.

안다. 왜 모르겠나? 누구나 정우성과 대면하면 신의 완벽한 창조물로서 그의 아우라에 압도된다. 물론 눈부시게 잘생긴 외모 때문만은 아니다. 그에겐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다. 누구도 흉내낼 수 없고 대체 불가능한…. 개인적으로 기자 생활 17년을 하는 동안 정우성만큼 여러 번 인터뷰한 배우가 없는데, 그건 정우성의 처지에서도 마찬가지일 거다. 우리는 12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2~3년에 한 번꼴로 다섯 번 만났다. 공식적인 인터뷰와 화보 촬영을 목적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는 여자는 만날 때마다 매번 놀라고 말았다. 그 빛나는 존재감에.

맨얼굴로 화보 촬영하는 남자

정확히 2000년 1월이었다. 그때 나는 <하퍼스 바자>라는 라이선스 패션 매거진에 이제 막 합류한 5년차 에디터였고 정우성은 정우성이었다. 당대 최고의 청춘스타였다고 말하지 않고 ‘정우성은 정우성이었다’고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에디터인 내게 그는 처음부터 스타가 아니라 정우성이라는 한 개인으로 먼저 다가온 최초의 단독자였다. 당시 스물여덟 살이던 그는 약속한 시간보다 10분 이른 시간에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스튜디오에 있던 스태프들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혼자 조용히 들어왔다. 주변에 여러 명의 스태프들과 매니저를 훈장처럼 대동하고 나타나는 일군의 스타들과는 달랐다. 다만 그 순간에도 아무리 떼어내려 해도 떼어낼 수 없는 눈부신 후광 같은 게 그의 머리 위에 오로라처럼 걸려 있었다.

정우성이 스태프들과 인사를 나누는 동안 데뷔 때부터 그와 동고동락해온 친구이자 매니저인 남자가 나타났다. 그러자 정우성이 매니저에게 배고프다며 가까운 식당에서 뭔가 시켜줄 것을 요구했다. 매우 누추하고 어쩌면 음산하게 지저분할 수도 있는 인근 중국집 주방에서 정우성이 먹을 볶음밥이 만들어지는 동안 우리는 사진 작업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준비된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당일 취소시키고 맨얼굴에, 심지어 자고 일어난 다음에 만들어진 헤어스타일 그대로 화보 촬영에 임하겠다고 했던 그라 크게 문제될 건 없었다. 근데 예상외의 부분에서 마찰이 생겼다. ‘지오다노’라는 자신의 전속 브랜드 옷을 입어야 할 상황에 그가 약간 화를 냈다. “내 인터뷰인데 왜 꼭 그 브랜드 옷을 입어야 하는 거죠?” 하며 그는 자신이 입고 온 옷 그대로 찍고 싶다고 했다. 모두들 식겁했다. 죽을 고생을 해서 정우성과 인터뷰를 연결한 지오다노 담당자가 바로 옆에 있었기에. 그러자 정우성이 개구쟁이같이 짓궂은 미소와 함께, 실은 자신이 입은 옷이 지오다노라는 사실을 알려줌으로써 관계자를 안심시켰다. 모두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예상외로 분방하면서 소탈하고 동시에 귀여운 악동 같은 그 모습에.

그랬다. 13년 전 그날 정우성은 지오다노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살 수 있을 만큼 만만한 가격의 저가 브랜드. 그런데 달랐다. 자기 몸에 맞게 잘 길들인 청바지는 더 이상 지오다노가 아니라 정우성표 청바지였다. 게다가 스틸 카메라 앞에서 그렇게 완벽하게 자유로워 보이는 피사체는 처음이었다. 감정적으로 유연하되 통제되어 있고, 진지하되 초연하며, 나르시시즘적이되 꾸밈없는 그만의 독특한 몸짓 언어. 그의 몸짓은 ‘질서와 형식보다 감정과 내용에 대한 강조, 그러나 인습적이지 않은’ 정우성만의 개성을 표현하고 있었다. 놀라웠다. 본질과는 거리가 먼 인위적이며 피상적인 것이라 믿기 마련인 한 사람의 포즈나 제스처가 개인화된 반동을 표방하는 하나의 표현주의 예술 작품 같을 수 있다는 사실. 거의 충격적이었다.

스타일이 있는 남자

타인의 시선으로 이미지를 만들고 영화의 캐릭터를 구축하고 돈을 버는 이들이 영화배우다. 그 때문에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형벌을 그들은 정당한 대가인 듯 받아들인다. 하지만 정우성은 아니었다. 처음부터 아니었다. “배우가 되겠다는 생각에 경기상고 1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었어요. 학교라는 데가 내 기질에 맞지 않고 더 이상 배울 게 없다고 생각했기에 아무런 미련이 없었어요.” 그렇다. 그는 고등학교 중퇴, 엄격히 말하면 중졸이다. 하지만 그게 그에겐 콤플렉스가 되지 않았다. 어린 시절의 가난도 마찬가지다. “저는 언제나 먼저 상황을 받아들이고, 상황에 맞춰서 나를 포기하지 않는 길을 생각했어요. 저는 내 방을 평생 가져본 적이 없어요. 직업을 가지면서 내 방을 내가 가졌죠. 늘 방 하나에서 식구들이 같이 살았어요. 그래도 결코 거기에 대해서 한 번도 심각하게 생각한 적이 없어요. 허황된 꿈을 경계하면서도 저 자신이 조금씩 나은 미래를 만들 거라는 믿음이 있었으니까요.”

<남자들에게>를 쓴 시오노 나나미에 따르면 이런 게 바로 ‘스타일이 있는 남자’들의 특징이다. ‘연령, 성별, 사회적 지위, 경제 상태 등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것. 윤리나 상식 등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을 것.’ 왜냐하면 스타일이라는 건, 한 사람의 고유한 기질이나 흔적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건 누구나 구입할 수 있는 ‘패션’이 아니다. 누구나 ‘편승’할 수 있는 유행도 아니고. 생각 없이 누구나 따르는 당대의 규칙이나 규범을 거스를 수 있는 자신감에서 나오는 자신만의 기질과 선택. 심지어 자크 데리다는 <에쁘롱-니체의 문체들>이라는 책에서 ‘스타일(문체)은 뾰족한 펜 끝’을 의미한다고 했다. ‘날카롭고 뾰족한 것들은 어떤 대상을 공격해서 거기에 흔적을 남길 뿐 아니라, 그 자신을 단숨에 파악해 점령하려는 맹목적인 공격으로부터 방어하는 역할을 한다’고. 마치 고슴도치의 가시처럼 말이다.

처음 만난 정우성의 생각이나 화법은 내게 일종의 문체처럼 다가왔다. ‘대상을 날카로운 펜 끝으로 공격함으로써 새긴 저자 고유의 흔적’으로서의 문체 말이다. 지금도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순간이 있다. 그가 내게 물었다. 기자들은 왜 준비된 빤한 질문만 하느냐고? 내가 기자라면 요새 성생활은 어떠냐, 뭐 그런 것도 편안하게 물어볼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때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영화 홍보를 앞두고 하는 인터뷰에서 오고 가는 상식적인 질문과 답만 상대해온 5년차 에디터의 심장에 기분 좋은 펀치를 날린 격이었으니까. 그때 생각했다. ‘이 남자는 뭔가 다르다. 정말 다르다. 전혀 애쓰지 않는다. 근데 멋있다. 단지 외모나 포즈가 아니라 자기만의 세계가 있다.’

그날 이후 나는 계속 고대했다. 정우성과의 두 번째 만남을…. 그 남자를 만난 덕분에 나는 배우에게든 소설가에게든 더 색다른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뻔뻔한 에디터’로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더욱더 기대감이 큰 상태에서 3년 후 두 번째 만남을 가졌다. 정우성이 <똥개>라는 작품을 막 마치고 개봉을 앞두고 있을 때였다. 그래서 인터뷰 콘셉트를 ‘지난 10년 동안 재탕해왔으니 아름다운 청춘한테 어울릴 법한 질문은 그만두고, 이젠 똥개한테 어울릴 법한 질문을 던져보자’로 정했다. 역시 정우성이었다. 그는 즉석에서 답하기에 당황스러울 수 있는 그 질문들을 매우 재미있어했다.

누군가를 덥석 물고 싶을 때가 있었다?

너무 좋아서 살살 물고 싶을 때도 있었고, (웃음) 싫어서 덥석 물고 싶을 때도 있었다. 개들처럼 이 사람이 너무 좋은데 좋은 걸 말로 표현 못하니까 아프지 않을 정도로 살살 물어주는 거다. 그런데 우리는 길을 가다가 수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나와 무관한 사람들이지만 그들 각각의 역사를 생각할 때면 간혹 그 숭고함에 목이 멘다. 그런데 그 숭고함과 존엄함을 짓밟는 사람들을 보면 나는 적의에 차서 이빨을 드러내고 만다.

족보 챙겨서 미용실에 드나드는 개들을 경멸한다?

아니. 학벌이나 제 아버지의 재산을 무기로 삼은 자들을 노골적으로 경멸하지는 않는다. 내가 빈둥거릴 때 열심히 공부해서 얻은 것인데 내가 그걸 경멸한다면 나야말로 경멸받아 마땅한 인간이다. 돈도 그렇다. 나는 돈을 신주처럼 떠받드는 사람을 가엾게 생각하지만 돈을 무서워하거나 증오하는 사람들도 가엾게 생각한다.

영화 <똥개>에는 지우고 싶은 과거가 있다?

없는 것 같다. 어릴 적에 외사촌 동생이 같은 학교로 전학을 왔는데 걔가 진짜 똥을 싼 적이 있다. 수치스러워서 막 울고 어쩔 줄 몰라하더라. 그런데 그 기억도 좀 지나고 나면 ‘나 그때 똥 쌌다’ 하며 웃을 수 있는 거 아닌가? 뭔가 지우고 싶은 기억이 있다는 건 자기를 외면하는 거다. 나라는 인간이 뭔가 하나씩 쌓여서 쭉 올라온 거라면, 예를 들어 성냥개비로 쌓는 탑이라 한다면 이건 지우고 이건 빼고, 그러면 굉장히 불안정해지는 거다.

진정 스마트한 남자

이런 황당한 질문에 이렇게 멋지게 답할 수 있는 남자는 세상에 정말정말 드물다. 많이 만나봐서 안다. 일로든, 연애로든. 진정 스마트한 남자만이 이토록 ‘섹시’하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다. 남이 뭐라든 자기 내부에 강한 신념이 있고 확신에 찬 자신감을 가진 남자만의 어법이랄까, 스타일이랄까? 시오노 나나미 말마따나 이른바 지적인 직업에 종사한다는 남자들은 정답에 가까운 ‘해설’만 주절댈 뿐 진짜 자기 생각이라는 걸 확실히 드러내지 못한다. 간이 콩알만 하고 조그만 야심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텔리 남자는 매력이 없다고 잘라 말했던 시오노 나나미의 말에 백번 공감하면서 나는 정우성이라는 남자를 다시 올려다봤다.

*다음호에 정우성 2편이 계속됩니다.

글 김경. 패션지 에디터로 17년을 살았다. 2003년부터 <한겨레21>에 ‘김경의 스타일 앤 더 시티’를 연재했고, 칼럼니스트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지금은 강원도 평창에서 살며 생애 첫 번째 소설을 집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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