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7.03 17:04 수정 : 2013.07.12 15:51

지난 1월 프로그래머 이준행씨가 만든 ‘충격 고로케’는 기사 함량보다 ‘클릭’과 ‘조회 수’에만 연연하는 온라인 뉴스 세상에 통쾌한 펀치를 날린다. 안타깝게도 ‘충격’과 ‘경악’으로 도배된 뉴스 제목의 범람은 6개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하다.
“이거 뉴스 제목 맞아? 뭐, 이 따위야!”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대하는 이들이라면 한번쯤 가졌을 법한 의문이다. 지난 6월 18일치 한 스포츠신문의 인기 기사 목록을 보자. 『씨스타 보라, 물에 ‘흠뻑’ 젖으니 가슴이… 헉!. .“한가인보다 환상!” 풍만한 가슴라인 ‘헉!’. .섹시 여스타 굴욕? 남편 불륜녀 “성관계까지…”.. 비단 스포츠·연예 매체만이 아니다. 주요 유력 일간지들도 예외가 아니다.

낚시 제목에 ‘충격’ 먹고 언론사 검증

지난 1월 4일, 언론사 내부가 발칵 뒤집혔다. “충격 고로케가 도대체 뭐기에…. 우리 신문도 뽑혔어?” 탄식과 실망, 기대감이 교차했다. <한겨레> 온라인편집팀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충격 언론사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매체는 한탄했고, 순위에서 비켜선 매체는 안도했다. ‘충격’, ‘경악’ 이란 단어를 제목에 쓴 기사 목록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사이트 ‘충격 고로케’(hot.coroke.net)가 첫선을 보인 날이다. 이날 이곳에서는 기사 제목에 ‘충격’, ‘경악’을 쓴 기사 목록과 이 단어를 많이 쓰는 언론사 순위를 공개했다. 스포츠·연예·경제 매체뿐 아니라 유력 일간지들도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언론의 낚시 행위라는 굳건한 성역(?)을 깬 주인공은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서른 살의 평범한 직장인 이준행(30)씨다. 프로그래머인 그는 지난해 12월 29일 퇴근길, 스마트폰으로 우연히 연예기사를 접한 뒤 충격 고로케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소향이라는 연예인이 자궁암 수술로 자연임신이 안 된다는 기사였어요. 슬픈 사연인데, 제목은 .자연임신 불가능, 충격. .자연임신 안 돼, 헉.이었죠. 화가 났어요.”

‘소향’으로 기사를 검색했다. 대부분의 언론이 이런 식으로 제목을 달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날 하루에만 2천여 건의 기사가 제목에 ‘충격’, ‘경악’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2009년 네이버 뉴스캐스트 이후 두드러진 현상인데, 이런 식으로 제목을 다는 언론사가 어딜지 궁금해지더군요. 재미있는 결과가 나오겠다 싶었죠.”

곧바로 한 달간 포털사이트에 제공된 언론의 기사 제목을 검색했다. 그리고 포털의 검색엔진에 주로 사용되는 정보 엔트로피 기법을 활용해 ‘충격’, ‘경악’ 단어가 들어간 문장을 추출했다. “<뉴스엔> <스타엔> <마이데일리> 같은 군소 연예매체가 당연이 이런 단어를 많이 쓸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조·중·동을 비롯한 유력 일간지들의 기여도가 상당해 깜짝 놀랐어요.”

첫 발표 때인 지난 1월에는 <매일경제>와 <한국경제>가 나란히 ‘충격받은 언론사’ 1, 2위를 차지했다. 제목마다 경쟁(?)적으로 ‘충격’, ‘경악’을 끼워넣은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당시 1~2위 싸움이 치열했어요. <한국경제>가 줄곧 1위였는데, 막판에 <매일경제>에 순위를 내줬죠. 지금도 이 매체들은 충격 고로케에 자주 등장합니다.”

그에게 충격(?)적이라던 낚시 기사 제목 소개를 부탁했다. 북한의 김정은 시찰 기사에 .김정은의 어여쁜 처가 밤마다 하는 짓이 ‘경악., 윤진숙 장관 청문회 준비 기사에 .얼짱 여장관 후보자 밤마다 하는 짓이 ‘충격’. 등을 꼽았다.

“윤 장관이 얼짱이라니요. 그뿐인가요? 박근혜 대통령 패션을 언급하는데 굳이 ‘섹시’라는 단어를 집어넣고, 검사 부부 활약상을 소개한 기사에 .얼짱 여검사 밤마다 하는 짓이 경악.이라고 제목을 달더라고요.”

충격 고로케 등장은 언론뿐 아니라 시민들에게도 신선한 충격을 줬다. ‘○○ 등의 단어도 자주 쓰이니 분석해달라’는 댓글이 쏟아졌다. ‘감사하다’, ‘애썼다’는 응원글도 이어졌다. 제보를 모아보니 ‘충격’과 ‘경악’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결국 ‘멘붕, 발칵, 헉!, 폭소, 무슨 일, 이럴 수가, 알고보니, 화들짝, 이것, 살아 있네, 몸매, 미모, 숨막히는, 물오른, 얼짱女’ 등의 단어가 낚시 기사에 단골로 등장했다. 누리꾼의 호응에 힙입어 이런 단어를 충격 고로케 집계 순위 목록에 포함시킬 수 있었다. 아참, 사이트 이름을 ‘고로케’라고 지은 이유는? 딱히 없다. 당시에 갖고 있던 도메인이 이것뿐이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충격 고로케는 오픈 10일 만에 4만여 명이 다녀갈 정도로 화제였다. 이제는 날마다 제집 드나들 듯 방문하는 열혈 마니아도 생겼다. 언론과 포털에서 자성론이 대두했다. <미디어다음>은 지난 1월 12일 “‘충격 고로케’에서 언급한 제목의 기사는 편집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SBS를 비롯해 몇몇 언론이 제목에 ‘충격’, ‘경악’을 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네이버의 지난 3월 뉴스캐스트 도입 역시 충격 고로케 발표 결과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충격 고로케로 언론이 ‘충격’에 빠진 지 6개월, 변화가 있었을까. 그는 “낚시성 제목 빈도가 줄지 않았다”며 “언론사별 뉴스스탠드 페이지로 가면 온통 낚시 기사뿐”이라고 말했다. “지난 5월 충격상을 받은 <동아일보>는 그중 단연 ‘갑’입니다. 이제는 <세계일보> <서울신문> <국민일보>까지 낚시 제목에 집착하는 느낌이에요. 진보지조차 연예 기사를 쏟아내고 있고요. 요즘엔 <아시아경제>의 활약이 독보적입니다. 특히 북핵 문제가 불거지고 남북관계가 악화된 지난 3~4월에는 조·중·동 등 보수 언론의 낚시 제목이 최고조였어요. ‘충격’, ‘경악’도 모자라 [긴급], [속보] 표시는 물론 특수문자인 ‘★’까지 등장하더라고요. 언론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언론과 학계의 진지한 성찰의 흔적이 없어 안타까워요.”

‘알바 고로케’로 국정원 댓글 알바 알려

이준행씨를 만난 건 지난 6월 10일이었다. 애초 11일로 예정돼 있었는데, “일정을 당겨도 상관없다”는 그의 전화 한 통에 급히 변경했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 게 ‘언론사 인터뷰 많이 해보셨죠?’라는 첫 질문에, “아니다”라며 고개를 흔들던 모습이다. 그러고 보니, 전화로 인터뷰를 요청하자 그는 흔쾌히 수락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전화로 몇 마디 물어보는 인터뷰 말고, 대면 인터뷰는 <나·들>이 처음이나 다름없어요.” 예상 밖이었다.

“충격 고로케와 일베 리포트 데이터에만 관심을 갖더군요. 그걸 만든 나나 내 생각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아요. 보이는 현상만 좇는 것이 요즘 기사 생산 형태잖아요. 언론이 ‘소울드레서’(소드)나 ‘일간 베스트 저장소’(일베)에 올라온 글을 인용하는 것에만 관심을 갖지 분석 기사를 안 쓰는 것과 마찬가지죠.”

‘한국 언론이 유독 선정적 제목에 집착하는 이유를 어떻게 보느냐’고 물었다. 간단명료하게 “수익 때문”이라고 답했다. 하긴 신문의 위기다. 구독자는 줄고 광고시장이 줄면서 존폐 위기 상황이다. 온라인 매체는 수입원이나 유료화 콘텐츠가 딱히 없다. 결국 네이버 클릭 수에 의존해 광고 수입을 챙기는 쪽으로 방향으로 선회하다 보니, ‘클릭 수=수입’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그거 아세요? 네이버가 언론사 관리를 위해 의도적으로 뉴스캐스트를 도입했다는 사실이요. 그걸 알면서 언론은 문제 제기를 안 했어요. 네이버가 재편한 구조에 순응하면서 현실에 안주했죠. 사실상 포털 종속과 위기는 언론 스스로 자처한 거나 다름없어요.” (그는 네이버에서 1년 남짓 근무했다!)

문제는 포털이 굳건하게 콘텐츠 유통 플랫폼이 된 지금 해결책이 딱히 없다는 사실이다. 대안은 없을까. 그는 “시민 참여를 끌어낸 의 아이리포트, 데이터와 시각물을 다양화한 <가디언>과 <뉴욕타임스>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언론이 이슈 발굴이나 의제 설정을 강화하는 것도 대안이지 않을까? “사실 깊이 있는 분석·탐사 기사가 없어졌어요. 안타까워요. 독자로서도 손해죠. 언론이 제구실을 못하니까 일베 회원들이 활개치고, 결과적으로 민주주의 위기를 가져오는 거죠.”

지난 5월 극우 인터넷 커뮤니티 ‘일베’ 논란이 한창이었다. 이들은 5·18 민주화운동을 ‘폭동’으로, 희생자를 ‘홍어’로 매도하며 역사 왜곡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언론의 분석은 ‘또라이, 사회 부적응자’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일베가 궁금했어요. 제가 걸그룹 ‘미쓰A’ 수지1 팬이기도 하고…. 일베 회원 중에는 교수나 의사도 있는데, 실체를 제대로 파헤친 기사는 없었어요.” 2011년 7월 19일∼2013년 5월 24일 일베에서 작성된 4만6174개 게시글을 한데 모아 이들이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를 추렸다. 나흘간의 분석을 거쳐 지난 5월 28일 분석 결과를 ‘일베 리포트’(ilbe.coroke.net)에 공개했다. 가장 많이 쓰인 단어는 ‘X발’, ‘존X’, ‘개XX’ 등 욕설(5417개)로 압도적 1위였다. 여자(4321건), 노무현(2339건), 종북(1633건), 광주(1622건), 오유(1247건), 민주화(1204건), 섹스(616건) 등이 뒤를 이었다.

“어떤 생각이 들었어요?”

“똥인 줄 알았는데, 진짜 똥이었어요. 쓰레기 같은 내용뿐이어서 더 볼 필요도 없겠다 싶었죠. 민주주의와 정치에 대한 진지한 토론이나 성찰은 전무했어요. 노무현 전 대통령과 광주·전라도라면 무조건 욕부터 했고, 여자와 관련한 내용은 모두 폭력적이었어요. 공개해야 하나 잠시 망설였죠. 특히 여자친구가 말렸거든요. 테러(?)당할지 모른다면서, 하하. 저도 솔직히 두렵긴 했어요.”

일베 회원들의 신상털기나 이메일 폭탄 등의 공격은 없었을까. 그는 “기우였다”며 “100% 통계 결과여서 반박할 게 없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실제 이들은 리포트 내용을 부정하거나 반박하지 않았다. “‘노무현이 가장 많아야 한다’, ‘김치녀가 더 많아야 한다’며 오히려 논쟁을 벌이더군요. 제가 ‘똥’, ‘쓰레기’라고 한 것을 두고 ‘그래, 우리 똥이고 쓰레기야. 몰랐어?’ 하며 쿨하게 반응했어요.”

“최근 국정원 선거 개입 논란이 뜨거운데, 댓글 알바 존재를 처음 알린 ‘알바 고로케’2 역시 이준행씨 작품이죠?”

“네.”

그는 “대선 전 트위터에서 특정 정당 알바로 의심되는 계정이 자주 눈에 띄었고, 이 계정을 잡아보자고 만들었다”며 “당시엔 국정원이 개입돼 있다는 걸 전혀 몰랐다. 그나마 뒤늦게 그 실체가 드러나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문득 언론계 뒷담화 위키인 ‘대나무숲 고로케’를 만든 사람도 이씨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충격 고로케 발표 뒤 한 언론사 기자가 전화를 했어요. 자신은 기사만 썼을 뿐인데 마치 문제의 제목을 직접 단 것처럼 오해받고 있다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위키’를 만들어줄 테니 여기에 털어놓으라고 제안했죠.” ‘대나무숲 고로케’의 시작이다. 언론사 연봉에서부터 야근수당 존재 유무, 사내 분위기, 근처 맛집, 노사 문화 등 다양한 이야기가 올라와 기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다.

충격·알바·대나무 고로케에서 일베 리포트까지. 공교롭게도 그는 올해 언론과 언론단체, 검·경이나 학자들이 해야 할(?) 일을 해냈다. 대중은 언론과 일베의 민낯을 발견했고, 국정원 댓글 알바의 실체를 목격했다. ‘놀랍다’고 했더니, “워낙 필요한 사이트를 ‘뚝딱’ 만들어 쓰는 스타일”이라며 겸손하게 웃었다. ‘이쯤이면 수익모델도 고민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농담처럼 질문을 던졌다. “돈 버는 재주가 워낙 없어요. 지금처럼 제가 만들고 싶은 사이트를 꾸준히 만드는 걸로 만족합니다.”

“언론사 책무와 사회적 미래 고민했으면”

그가 본격적으로 홈페이지를 제작한 건 15살 무렵이다. 청소년 커뮤니티 ‘아이두’(idoo.net)가 첫 작품인데, 당시 회원이 10만 명에 이르렀다. 점으로만 그림을 그리는 ‘도트 고로케’, 인디 공연 정보를 나누는 ‘인디스트릿’(indistreet.com), 서평을 써서 올리고 관리하는 ‘북키’(boooki.com), 개인 비밀 일기장인 ‘로피피’(ropipi.com), 애니메이션 정보를 나누는 ‘투애니’(toani.com) 등을 비롯해 지금껏 10여 개 사이트를 만들었다.

언론에 바라는 점을 물었다. 충격 고로케를 계기로 많은 이들이 언론의 책무와 사회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면 좋겠어요. 우리 스스로도 낚시 제목에 현혹되기보다 훌륭한 기사를 소비하려는 노력을 했으면 좋겠어요.”

그의 다음 분석 대상은 무엇일까. 현재로서는 예정이 없단다. 그럼에도 그의 활약상(?)이 기대되는 건 어쩔 수 없다. 궁금한 분들에게 팁 하나. 그의 트위터(@rainygirl_)와 페이스북(facebook.com/rainygirl)을 자주 눈팅하길! 아이디가 ‘rainygirl’인 이유? 남성임을 숨기려 한 게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에서 맘에 안 드는 것(남성성 과시)을 도려내어 지은 것이라고 한다.

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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