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6.11 16:59 수정 : 2013.06.12 16:02

영국 런던의 에콰도르 대사관 앞에서 영국 경찰들이 보초를 서고 있는 가운데, 피신생활을 하고 있는 위키리크스 설립자인 줄리안 어산지를 지지하는 손팻말이 내걸려 있다.런던/AP뉴시스

철학자 알렉상드르 라크루아가 영국의 에콰도르대사관에 피신해 있는 줄리언 어산지를 만났다. 그는 어산지와 함께 인터넷의 정치 현상, 새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어산지는 “인터넷 정보 조작에 대응하는 방식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

위키리크스의 설립자 줄리언 어산지는 2012년 6월 영국 런던에 있는 에콰도르대사관으로 피신해, 현재까지 그곳에서 정치적 망명 생활을 하고 있다.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죄목으로 스웨덴으로 보내질지 모른다는 위협을 느낀 그는 망명을 결심했다. 스웨덴으로 가게 되면 미국으로 송환되고, 거기서 더욱 위험한 일이 기다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꼈다고 한다.

알렉상드르 라크루아 어떻게 지내는지요.

줄리언 어산지 잘 지내고 있어요. 어떤 기자들은 내가 징징 짜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미국이라는 권력을 상대한 결과가 어떠한지 냉정하게 깨달았을 테니, 한판 연극을 해주기 기대한 거죠. 말도 안 되지요. 우리는 싸워야만 하는 전투를 하고 있고, 모든 면에서 승리했습니다.

라크루아 에콰도르대사관 안에서 하루 종일 무슨 일을 하십니까.

어산지 미국과 그 동맹국은 내가 오직 일밖에 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들어준 꼴이 되었습니다. 동시에 그들은 우리 조직과 수백만 사람들을 그들에게 대항하게 만들었습니다. 정말 바보같지 않습니까.

라크루아 만일 스웨덴 정부가 당신을 미국으로 보내지 않는다는 것을 보장한다면 스웨덴에 가서 판사를 만나 이야기할 것인가요.

어산지 사람들이 이 부분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판사를 만날 일도 없고, 기소되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증인으로 출석하라고 할 것입니다. 나는 진술만 하면 됩니다. 하지만 내가 스웨덴에 전화를 걸어도 경찰이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에콰도르는 외교 채널을 통해 내가 송환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문서로 보장받고 싶어 합니다. 나는 처음부터 그러기 바랐습니다. 스웨덴은 이를 계속 거부했고, 왜 거부하는지 이유를 밝히지도 않았습니다.

라크루아 당신의 인터넷 활동가 초창기에 대해서 얘기해보죠. 당시 인터넷은 유토피아 같은 것이었을까요.

어산지 나는 1990년대 초 오스트레일리아에 인터넷이 구축되기 시작할 때 한창 일했습니다. 실제로 초기 해커들은 유토피아적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죠. 우리가 꿈꾼 것은 지식 유토피아였지요. 사람들의 지식을 넓히고 쉽게 교환하도록 하는 네트워크를 발달시키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1990년대 말 우리가 바라는 것을 해볼 만한 충분한 동력이 갖춰졌습니다. 그 후 몇 년간은 네트워크의 황금 시대였습니다. 자유가 보장되었죠. 2000년대 들어 다른 동력이 인터넷 무대에 등장했습니다. 구글, 페이스북 같은 거대 기업은 표현의 자유를 위해 노력한 이들, 즉 개척자 정신을 가진 해커나 인터넷을 기반으로 글 쓰는 사람들을 억압했습니다. 대중을 효율적으로 검열하는 여러 수단이 발달했고, 이는 우리의 유토피아를 망쳐놓았습니다.

라크루아 당신은 초창기부터 인터넷을 정치적 현상으로 보았습니다. 왜 그랬나요.

어산지 국제적인 공적 공간으로서 인터넷은 국가의 통제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여기에 인터넷 고유의 폭발력이 있습니다. 인터넷 사용자들은 국경을 넘나듭니다. 이것은 인터넷이 우리 사회의 신경 체계가 된 놀라운 힘입니다. 인터넷은 특정한 주제나 질문에 대해 결정과 동의가 이루어지는 공간입니다. 인터넷은 매스미디어같이 통제할 수 있거나 서열화되지 않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인터넷은 전형적인 민주주의 시스템입니다. 인터넷은 의회 바깥에서 시민이 연대하고 상호 교류하며, 지속적으로 의견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을 연 것입니다. 이 때문에 권위적인 국가나 전형적인 민주주의 국가나 인터넷을 두려워합니다.

라크루아 인터넷이 가까운 장래에 민주 국가나 비민주 국가들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을까요.

어산지 여러 나라를 방문해보았는데, 세계 모든 곳이 사는 게 거의 동일하더군요. 자동차 타고 출근하고, 전기 사용하고, 결혼해 가족을 일구고, 똑같은 제품을 소비하고…. 전형적인 민주주의 국가와 독재 국가 사이의 차이가 냉전시대처럼 크지 않습니다. 그리고 인터넷은 이런 세계화에 중요한 역할을 했지요.

라크루아 2000년대 중반 당신이 쓴 이론적인 글이나 블로그에 쓴 흥미로운 질문이나, <국가 운영 음모>라는 에세이에서 새로운 국가 개념을 제시한 것으로 보입니다.

어산지 인터넷은 완전히 새로운 출구를 마련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국가를 어떤 정보가 들어오면 다른 정보는 나가는 상자 같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 상자 한구석에 권력남용이나 부당함이나 비리 등에 관한 특정 정보들이 조심스레 숨겨져 있었지요. 이 관점에서 보면, 시민들이 민주주의적 방식으로 한 국가가 독단적으로 변하는 것을 막으려 할 때 이 상자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아야만 합니다. 다르게 말하면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가라는 상자가 투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라크투아 그것이 정치적으로 의미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어산지 이것은 정치적 투쟁의 성격을 바꾸어놓았습니다. 펜타곤(미국 국방부)을 예로 들어봅시다. 펜타곤에는 정보만 드나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도 드나듭니다. 국가를 위해 일하는 많은 사람 중에 몇 명은 도덕적 양심이 있습니다. 이들이 부정부패나 불법적인 고문 등에 대해 알게 되면 알리고 싶어 합니다. 국가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스캔들을 외부에 공개하는 것을 막기는 어렵습니다. 인터넷을 이용하는 정보 시대가 시작된 이래로, 민감한 데이터를 사람들에게 공개하는 것은 정치적 투쟁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라크루아 이제 인터넷의 어두운 면을 이야기해보죠. 감시 말입니다. 인터넷을 통한 감시가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어산지 아주 쉽지요. 당신이 인터넷상에서 하는 모든 행위, 방문한 모든 사이트, 모든 소식이 탈취되어 저장됩니다. 당신이 지리상 어디에 있는지 알게 하는 스마트폰도 마찬가지입니다. 2000년대에는 개인 정보를 탈취하고 저장하는 일이 더욱 많아졌습니다. 미국 치안 당국은 의회 답변에서 매일 16억 개 정보를 수집한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라크루아 당신은 2010년 4월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의 토론수업에서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을 전했습니다. 나쁜 소식은 우리가 영원히 감시당한다는 것이고, 좋은 소식은 어느 누구도 이 방대한 데이터를 걸러낼 시간이 있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당신은 더 비관적이 되었나요.

어산지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감시 장치를 기술적으로 완전하게 발전시켰습니다. 누가 누구와 만남을 가지는지 등 사람들의 사회적 지형도를 그리는 것은 오늘날 아주 쉽습니다. 또한 인터넷이나 전화상에서 이상한 행위를 하는 것도 자동적으로 감지해낼 수 있으며, 어떤 규정을 넘어서거나 특정한 정보만 찾아다니는 것도 알아낼 수 있습니다. 게다가 국방부와 외교부에서는 감시 프로그램을 만들어낼 노하우가 없기 때문에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민간 사업체들과 손을 잡습니다. 2011년 위키리크스는 도청이나 인터넷 감시 기술을 제공하는 민간 기업에 대해 밝힌 ‘스파이 파일’(Spy File)을 공개했습니다.

라크루아 이런 감시에 대해 우려할 점은 무엇입니까.

어산지 이 모든 서비스는 민간 사업체에 의해 제공됩니다. 19세기부터 국가는 시민에 관한 기록과 데이터를 수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이 정보 수집은 오직 경찰만 할 수 있었죠. 물론 경찰도 때론 비리를 저지릅니다. 하지만 경찰이 이런 권위를 잘못 사용하는 경우 국회가 바로잡으려 하고 감찰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민간 사업체에 대해서는 불가능합니다. 현재 민간 사업체에서는 수집하고 저장된 정보를 국가 기관뿐 아니라 다른 기업에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라크루아 <사이퍼펑크스(Cypherpunks): 인터넷의 미래와 우리의 자유>에서 당신은 사이버 감시를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데이터의 암호화를 주장했습니다. 나 같은 평범한 인터넷 사용자도 개인 정보를 암호화해서 보호해야 합니까.

어산지 모든 인터넷 사용자는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이미 암호화 도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마존이나 온라인 뱅킹에 로그인하면, ‘HTTPS’라는 가장 많이 사용되는 암호화 기술을 사용하고 있는 겁니다. 만일 인터넷 브라우저가 당신을 미국 중앙정보국(CIA) 홈페이지로 안내한다면, 어떤 근거로 그 홈페이지가 진짜 CIA 홈페이지인지 알 수 있습니까. 당신의 컴퓨터는 그 답을 알고 있습니다. 파이어 폭스 같은 당신의 브라우저는 60여 개 기업이 미리 설치해놓은 암호화된 키(key)나 인증서가 있고, 이것들은 모든 웹사이트의 암호화된 신호에 관여합니다. 이 기업들이 완벽하다면 문제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런 기업은 부패해서 잘못된 인증서를 만들어냅니다. 또한 이런 기업 중 많은 곳이 해킹당하고 있고, 따라서 누군가가 인증서를 일부러 틀리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증서 시스템 전체가 믿을 수 없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다음 몇 년간 야망찬 프로젝트에 헌신하기로 한 것입니다.

라크루아 새로운 프로젝트가 있습니까.

어산지 그렇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데이터의 암호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믿는 바와는 달리 인터넷은 비물질적 가상현실이 아닙니다. 인터넷은 유리섬유 케이블을 기반으로 하고 있고, 데이터 저장 장소가 있습니다. 데이터 저장 장소를 제공하는 곳 대부분은 캘리포니아에 있습니다. 인터넷의 물질적 인프라 구조는 주로 미국 기업에 의해 조정됩니다. 도메인 이름이나 IP(인터넷 주소)는 미국의 비정부 기관인 국제도메인관리기구에서 조정하며, 사실상 그들은 어떤 웹 주소를 없애버릴 수도 있습니다. 또한 케이블을 운영하는 회사들은 케이블을 통해 흘러가는 정보들을 가로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터넷 인프라 구조나 인터넷상 정보가 진짜인지 확인하는 시스템이 기업이나 기관의 통제 아래 놓여 있을 때, 인터넷 사용자들이 인터넷 공간을 어떻게 사용하는지가 문제입니다.

라크루아 그리고 현재 이러한 일을 하고 있는 건가요.

어산지 나는 인터넷 사용자들이 원래 그대로의 온라인 정보를 받을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을 개발하고 싶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디지털로 주고 받는 문서의 진위 여부와 변형 여부 등은 암호를 사용하면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한 문서에 견고한 암호가 있다면 그 문서의 진정성이 보장되는 것입니다. 나는 한 정보가 공개될 때 그것이 원본이 맞고 조작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장하기 위해 암호화된 인증서를 만들려고 합니다. 원본 내용이 변형되거나 파괴되지 못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라크루아 이것은 원칙상 위키피디아와 반대되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문서를 바꿀 수 없다니 말입니다.

어산지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이 오직 우리 지식의 견고한 기초를 쌓는 길입니다. 인터넷 사용자들은 IP를 갖고 있지 않으며 광섬유 케이블도 없습니다. 따라서 접근하는 정보의 진정성을 보장하는 다른 방식을 우리가 직접 가져야만 합니다.

라크루아 새로운 정보 보호 방식을 연구하는 바탕에는 사회적 유토피아에 대한 생각이 깔려 있는 겁니까.

어산지 앞서 언급한 인터넷상의 유토피아가 무엇인지 기억하죠. 인터넷의 물리적 인프라는 인터넷 사용자가 소유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공동 지식 네트워크’라는 유토피아를 형성하는 데 실질적인 해결책은 개개인이 힘을 합쳐서 정보 조작에 대항하는 방식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라크루아 마치 인터넷에 대한 새로운 행동가들이 등장하는 역사의 단계가 도래한 것처럼 보입니다. 헤겔식 관점에 의하면 역사는 위대한 인물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위대한 생각이 전환점을 만들어냅니다. 나폴레옹, 처칠, 아인슈타인 등. 인터넷에서는 현재 큰 집단적 힘이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아랍의 봄’이나 ‘어나니머스’나 ‘오큐파이 운동’ 같은 것은 한 사람의 지도자가 이끄는 것이 아니지요. 집단이 카리스마 있는 한 명의 지도자를 대신하는 것은 좋은 일 아닌가요.

어산지 지도자가 사라진 것에 대해 그리 좋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떤 지도자도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사람들의 생각을 대변해줄 상징적인 지도자는 필요할 것 같습니다. 어나니머스를 예로 들어봅시다. 그들은 작은 그룹으로 만들어졌고, 실상 엄청난 일을 해냈습니다. 실제로 그들 안에는 리더가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어나니머스가 하는 일은 매우 긍정적입니다. 하지만 어나니머스가 위장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사실상 그들 안에서 가장 잘 알려진 리더는 ‘Sabu’라고 부르는 해커인데, 그는 FBI 정보원으로 활동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는 여전히 비밀리에 미국 연방수사국(FBI)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라크루아 오큐파이 운동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산지 오큐파이 운동에 리더가 없다는 것은 유감입니다. 철학자 슬라보예 지제크가 그 운동에 함께하고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나는 그를 좋아하고 내 친구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공산주의 규율 아래서 성장한 슬로베니아 학자로서 그는 이 시기에 걸맞은 사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미국 출신의 젊은 학자가 리더로 등장해서 도전해야 합니다. 미국의 지식인 사회가 정신적으로 완전히 망가져서 오큐파이 운동에 상징적인 리더를 배출하지 못하는 것은 유감입니다.

라크루아 그렇다면 위키리크스의 리더는 누구입니까. 누가 민감한 정보들을 공개하는 데 따른 책임을 지고 있습니까.

어산지 위키리크스를 전투함에 비교할 수 있습니다. 모든 선원이 중요하지요. 기술자도 중요하고, 프로그래머도 중요합니다. 우리가 전투 중이라면 변호사도 중요해집니다. 우리 조직에서는 모든 기능이 대체불가능합니다. 내 역할은 대변인입니다. 나는 이 운동을 대표하는 역할을 하는데, 이는 효율적 측면에서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나는 헤겔적 의미에서 위대한 인물은 아닙니다. 나는 그저 고집이 센 사람에 불과하지요. 하지만 그걸로 충분합니다.

라크루아 10년 후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을 것 같습니까.

어산지 10년 후 내 개인적인 상황은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느냐에 달려 있겠죠. 만일 세계가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고 국제사회가 표현의 자유를 인정한다면, 그리고 국가들의 행위가 투명해진다면, 당신은 내가 한 활동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겠죠.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실체를 밝힌 위키리크스를 높이 평가하겠죠. 그리고 아랍의 봄을 가져온 인터넷상의 촉진제였다고 생각하겠죠. 미국대사관의 비밀문서들이 공개됨으로써 무라바크, 벤 알리, 카다피 같은 독재자들의 정권을 약화시키는 데 기여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가정에 불과합니다. 다른 방향으로 세계가 굴러간다면, 나는 어딘가에 갇혀 있겠죠. 그러면 당신은 모든 것이 나 때문에 일어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겠죠!

글 알렉상드르 라크루아 Alexandre Lacroix 철학자·소설가 편집장

번역 이상익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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