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6.11 16:53 수정 : 2013.06.12 10:47

격투기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과연 무엇이 필요할까? 운동은 어떤 종목이 됐든 선수의 후천적 노력에 따라 결과가 많이 좌우되는 것이 사실이다.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이루어진다’고 하지 않던가. 하지만 아무나 노력한다고 천재가 될 수 없다. 운동에서는 천부적 소질도 중요하다. 거꾸로 운동선수에게 선천적 질환이 있다면 그만큼 큰 약점이 된다. 가장 격렬한 운동인 종합격투기에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이길우는 기도협착증을 안고 태어나 수술만 25차례를 받았지만 불굴의 의지로 종합격투기 선수의 길을 가고 있다. 호흡이 가장 중요한 이 종목은 이길우에겐 특히 벅찬 운동이다. 로드 FC 밴텀급 그랑프리 예선에서 연승한 이길우는 결승전을 앞두고 맹훈련을 하고 있다. ROAD F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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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천성기도협착증, 생명의 위협

이길우는 올해 31살이다. 그의 기억 속에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수술대에 오른 경험이다. 그에게 수술은 일상이나 다름없었다. 31년간 총 25회. 그의 병명은 선천성기도협착증이다. 기도협착증은 흉강(가슴 안)에 있는 기관지의 내부가 정상 범위보다 좁아지면서 호흡은 물론, 발성과 음식물 섭취에 많은 지장을 초래한다. 신생아의 경우 태어난 뒤 곧바로 숨지는 사례가 많다. 생존하더라도 즉시 기관지 절개술을 하지 않으면 사망할 수 있는 무서운 질환이다. 더 심각한 것은 환자가 성장하면서 같은 질환이 계속 반복된다는 점이다. 수술해서 일시적으로 기관지 내부의 흐름을 확보했어도 다시 살이 돋아나 수술 부위가 폐쇄되는 현상은 성장이 멈출 때까지 계속된다. 그때마다 수술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한 상황에 직면한다. 일상 생활에서도 여러모로 힘든 면이 많은데, 하물며 마우스피스를 물고 거친 호흡 속에 경기하는 종합격투기 선수로서는 치명적인 약점에 해당한다. 이 점은 이길우도 동감한다. “그냥 참는 겁니다. 운동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자주 쓰러지는데, 그때마다 머리가 핑 도는 느낌이 들어서 아찔합니다.”

그런 그가 운동선수의 길로 들어선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다름 아닌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었다. 아버지는 이길우가 스무 살 되던 해에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이길우는 “아버지는 내가 격투기 선수가 되는 모습을 보지 못했지만 챔피언 벨트를 들고 산소에 찾아가서 자랑스러운 아들이 어려움을 이기고 세상에서 잘살고 있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하며 격한 감정을 억누르는 듯했다.

이길우가 종합격투기 무대에 뛰어든 것은 2009년이다. 일본의 종합격투기 무대가 완전히 무너진 이후 새롭게 판을 짜는 시기였다. 이 무렵 ‘월드 빅토리 로드’(WVR)가 개최하는 일본 종합격투기대회 SRC(SENGOKU Raiden Championship)의 출전권을 놓고 한국 선수들끼리 국내 예선전이 펼쳐졌다. 이 대회에서 이길우는 현재 팀 동료가 된 소재현과 맞붙어 1라운드에서 서브미션(상대편에게 숨 막히는 고통을 주는 공격 방법) 공격인 리어네이키드 초크에 의해 패하고 말았다. 순탄치 않은 시작이었다. 특히 리어네이키드 초크 공격은 뇌로 가는 혈류를 차단하면서 호흡을 압박하는 기술이라 이길우에게는 ‘크립토나이트 앞의 슈퍼맨’과 다를 바 없었다. 선발권은 그렇게 멀리 날아가버렸다. 그런데 그에게 또 다른 기회가 찾아왔다. 국내 도장 선발전 이외에 별도의 라인에서 SRC가 주최하는 경량급 파이터들의 아시아 최강 결정 토너먼트에 오른 선수가 교통사고로 출장을 못하게 되어, 이길우가 대체 선수로 경기에 나선 것이다. 이길우는 우여곡절 끝에 첫 번째 기회인 일본의 SRC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경기에서 이길우는 대형 사고를 치고 만다.

SRC는 2006년 프라이드(PRIDE)가 없어진 이후 침체되던 일본 격투기 시장에 나타난 메이저 대회사다. SRC는 투명한 운영과 함께, 키노시타그룹과 돈키호테 기업의 막강한 자금을 등에 업고 종합격투기계에 뛰어들었다. 이후 일본 종합격투기의 시조 격이라고 할 수 있는 판크라스를 사들였고, 2008년 3월 5일부터 본격적으로 이벤트를 열기 시작했다. SRC와 별개로 전 프라이드 직원들이 ‘드림’(DREAM)이라는 단체를 만들면서 일본 종합격투기 시장은 메이저 대회사들에 의해 다시 한번 날개를 펼치게 되었다. 특히 SRC는 아시아 단체들로 눈을 돌려 ‘아시아 넘버원’을 뽑겠다고 나섰다.

<기사 전문은 <나·들> 인쇄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글 천창욱 어려서 프로레슬링을 탐닉하면서 삶이란 피와 땀과 쇼가 뒤섞인 것임을 직감했다. 프로레슬링과 종합격투기 전문 해설자로 활약하면서, 최무배 선수를 한국인 최초로 프라이드(PRIDE)에 출전시키고, 김동현 선수를 UFC에 최초로 출전시키는 등 세컨드 활동도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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