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3.06 02:10 수정 : 2013.03.06 20:09

미국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을 그린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링컨>은 무너진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는 가끔 덜 깨끗한 방법을 쓸 필요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마치 현직 대통령 버락 오바마에게 요청하는 것처럼 읽히는 장면들도 눈에 띈다.

미국 백악관의 동편 건물에는 40석짜리 영화관이 하나 있다. 객석은 우단을 씌운 안락의자고 실내는 나무 장식으로 꾸며 있다. 자주 사용하는 방은 아니다. 하지만 이 영화관에서 자기 작품이 상영된 감독이라면, 자신이 만든 영화가 특별한 작품으로 인정받았다고 일단 믿어도 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다시 한번 선거전에서 승리하고 난 지 일주일 남짓 지난 지난해 11월의 어느 목요일, 오바마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을 백악관 영화관으로 초대했다. 최근 완성한 영화 <링컨>을 지참한 스필버그는, 영화의 주인공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시나리오 작가 토니 쿠시너를 대동했다. 오바마는 스필버그에게 인사할 일이 몇 가지 있었다.

그중 가장 굵직한 사안을 꼽으면, 오바마의 대통령 선거전을 지지하는 뜻에서 스필버그가 희사한 후원금 100만 달러일 것이다. 스필버그는 후원금에 이어 이번에는 뭔가 ‘일러줄 말’이 있는 것 같았다.

“아니, 그런 거 전혀 아니에요.” 누군가 이날 오후에 대해 좀 물어보기라도 할라치면 스필버그는 손사래를 친다.

“교훈이라니, 정말 말도 안 되는 말입니다. 내가 누구라고 감히 대통령을 가르치려 들겠어요? 난 링컨에 관한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 얘기가 아니고요.” 그러나 그가 뭐라고 하든, 지금까지 스필버그의 영화 <링컨>을 본 사람 치고 그 자리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그의 업적에 대한 평가를 생각하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로부터 3주일 후, 스필버그는 비벌리힐스에 위치한 호텔 포시즌에서 기자들과 환담하는 시간을 가졌다. 정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면서 말이다. 그는 이 자리에서 자신을 ‘뉴스중독자’이자 ‘정치광’이라고 소개했다. 스필버그하면 가장 먼저 상어와 공룡, 또는 외계인을 소재로 한 블록버스터부터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에게 이 말은 주목할 만한 뉴스거리일 것이다.

백악관 영화관에서 상영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스필버그는 책 두 권을 기자들에게 건네줬다. 한 권은 역사학자 도리스 컨스 굿윈이 쓴 링컨에 관한 책인데, 이 책에서 영감을 받아 영화를 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다른 한 권은 스필버그 자신의 얘기를 다루고 있는데, 척 보기에도 앞의 책보다 훨씬 거창한 인상을 줬다. 책 두 권을 함께 제시하는 뜻은, ‘한 거인이 다른 거인에 대해 완전히 파악했고 그 결과를 또 다른 제3의 거인에게, 다시 말해 이제 두 번째로 직무를 수행하게 되는 대통령에게 가져 간다’. 뭐 이 정도가 되지 않을까?

스필버그가 이 영화를 제작하는 데 꼬박 13년이 걸렸다. <링컨>은 <쉰들러 리스트>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같은 작품계열, 즉 역사라는 맷돌의 틈바구니에서 투쟁하는 개인을 다룬 이야기에 속한다. 오스카 쉰들러가 유대인 학살이라는 광기 한가운데에서, 제임스 라이언이 유럽 해방을 위한 전투에서 필사적으로 싸웠던 것과 마찬가지로, 에이브러햄 링컨은 노예제도 폐지를 위해 분투한 것이다. 스필버그는 이런 장르의 영화로 이미 오스카상을 몇 차례 받았다. 이렇게 유명세를 탄 것 외에 흥행 면에서도 그의 전체 수입 32억 달러 중 대부분을 이런 영화로 벌어들였다. 이제 막 66살로 접어든 그는 명실상부하게 할리우드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이다.

백악관에서 시사회가 끝나자 오바마 대통령은 이 영화의 감독을 축하해줬다. 기자가 이 일에 대한 입장을 묻자 잠시 생각하던 스필버그는 “아마 대통령이 이 영화에서 무슨 영감을 받았나 보지요. 대통령에겐 자기 이외의 다른 대통령이 최고 관심사니까요”라고 대답했다. 그의 말이 과히 틀리지 않을 성싶은 것이, <뉴욕타임스>가 얼마 전 되짚어 세어본 결과, 에이브러햄 링컨을 오바마만큼 여러 번 입에 올린 대통령은 일찍이 없었다고 한다. 하긴, 자신이 앞으로 4년간 통치해야 할 이 지쳐빠진 나라를 눈앞에서 보는 그로서는, 150년 전의 선임자를 생각하는 것이 위로가 될지도 모르겠다. 당시 링컨이 통치해야 할 나라는 지금과 비교해볼 때 분열의 골이 훨씬 더 깊이 파인 상태고 내전까지 벌어졌다. 그러나 링컨은 결국 전쟁을 종식시켰고, 나라를 통일시켰으며, 노예제도를 폐지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의회에서 반대파를 속인 덕분이었다. 반면 오바마는 그야말로 무진 애를 쓰고서야 겨우 공화당 의원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 비상한 수단을 써서 자동적으로 채택될 뻔한 ‘재정감축’을 마지막 순간에 뒤집어버리는 계획에 동참하게끔 말이다. 그럼, 노예제도 폐지를 어렵게 하는 국가적 장애를 피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이었을까?

링컨이 오바마보다 뛰어난 점은 (바로 이 점을 현 대통령은 스필버그의 영화에서 간파했다는 것인데) 다음의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리라. 위대하고 신성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그와는 전혀 다른 수단, 이를테면 거짓말, 뇌물, 비열한 막후협상처럼 위대함이나 신성함과는 완전히 거리가 먼 수단을 어쩔 수 없이 사용해야 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는 것 말이다. 잡지 <뉴요커>가 지적했듯이, 스필버그의 영화는 오로지 이 메시지만 담고 있는 가상의 ‘입법 스릴러’다. 영화는 링컨의 삶과 성장 과정을 보여주는 대신, 그가 암살되던 그해 4월을 코앞에 둔 저 위기의 시간, 즉 1865년 1월의 극적인 몇 주간을 그려내고 있다.

암살 직전의 극적인 몇 주일

배역을 위해 1년 동안 준비한 주연배우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키 크고 굼뜬, 흡사 자기 몸이 자기 것이 아닌 듯 움직이는 링컨을 연기한다. 나라에 헌신하는 정치가로 지혜와 정의감이 넘치지만, 자신의 직위가 허락하는 모든 권력을 남김없이 활용할 줄도 아는 링컨의 모습을 그린다. 우울증에 빠진 아내를 둔 링컨에게는 아들이 셋 있는데 그중 두 아들은 일찍 잃었다. 첫째는 결핵으로, 둘째는 남북전쟁 중에 티푸스로 죽었다. 그런데 남은 셋째가 전쟁에 참가하겠다고 선언한다. 아버지가 종식시키지 못한 이 전쟁에 나가 싸우겠다는 것이다.

4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 전쟁으로 나라는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져 있었다. 노예를 계속 부리기 위해 연방에서 탈퇴하겠다는 남부 진영은 패배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사정은 북군에게도 유리하지만은 않아, 이제 더 이상 흘릴 피도 없을 지경이었다. 남군의 교섭 중개인이 이미 워싱턴을 향해 출발했다. 항복의 조건을 협상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링컨으로서는 전쟁을 그렇게 종식시킬 수 없었다.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노예제도의 완전한 철폐를 보장해줄 헌법 수정안 제13조를 그 전에 의회에서 통과시켜야 했다. 어렵기 짝이 없는 여건이었다. 의회에서 3분의 2 찬성을 얻으려면 아직도 찬성표가 서너 장 부족했다. 이런 상황에서 평화협정이 체결된다면 제13조 헌법안의 의회 통과는 불가능하다. 남부 진영이 연방으로 복귀해서 남부 의원들이 의회 의석을 차지하게 되면 말이다. 그래서 노예제 완전 철폐를 표결에 부칠 때까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평화조약 체결을 저지해야 했다. 단 몇 주일만 견디면 되는 일이었다. 그동안은, 그동안 만큼은 모든 괴로움과 비참함을 다 묵과해야 했다. 조국의 아들들이 계속 죽어가는 것까지 감수해야 했다. 설사 링컨 자신의 아들이 죽음의 행렬에 포함된다 해도 말이다. 이것이 도덕적 갈등을 일으키는 두 가지 요인 중 하나다.

두 번째 갈등은 법안을 통과시키려면 확보해야 할 몇 장의 찬성표에 원인을 두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마 오바마라면 시도함 직한) 고상한 연설로는 링컨이 필요한 표를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이에 링컨은 로비스트들을 고용해 정부 직책을 뇌물로 주어 의원들을 매수하게 한다. 스필버그 손에 연출된, 마치 소극장 실내극 같은 이 장면은 밀실 공포를 불러일으킬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게다가 등장 인물들의 대사는 대화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긴데, 그럼에도 보는 사람들을 잠시도 한눈 팔 수 없도록 완전히 사로잡는다. 스필버그의 이런 연출력은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결국 링컨은 두 마리 새를 다 잡는다. 남북전쟁은 끝이 나고 헌법 수정안 제13조는 통과됐다. 우리는 모름지기 (이 영화가 알리려는 핵심 내용이 바로 이것인데) 아주 근원적인 것, 도덕적으로 훨씬 중요한 것,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을 민주주의 제도라는 범위 안에서 이루어낼 수 있다. 단,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순수성을 기꺼이 더럽힐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자기 발로 정치의 진흙탕 속으로 걸어 들어갈 자세가 될 때 비로소 그 일이 가능해진다.

영화 '링컨'
오바마에게 던지는 메시지

보수적인 일간지 <뉴욕타임스>의 평론가 데이비드 브룩스는 이에 관해 “신성한 비전과 비천한 노회함을 결합하는 것이야말로 정치가 우리에게 던지는 과제”라고 했다. 또 “현재의 암담한 상황 때문에 정치에 대해 신뢰를 잃어버린 사람은 누구나 이 영화를 한번 보는 게 좋을 것”이라며 관람을 권한다. 그는 칼럼에 오바마 이름을 직접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의 순수성을 걸고라도 나라를 건지겠다는 링컨과 같은 단호함이 현 대통령에게는 결여되어 있다는 메시지가 행간에서 읽힌다.

버락 오바마와 밋 롬니의 1차 텔레비전 토론 장면이 미국 국민의 뇌리에 아직까지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때 오바마는 신사의 품격을 유지하는 쪽으로 멀찌감치 후퇴해, 연막 전술과 거짓말까지 동원하며 쟁점을 이끌어가는 도전자를 저지할 아무런 의지도 보이지 않았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전에 대해 스필버그는 “아, 무시무시했지요!”라며 손으로 뒷머리를 탁 친다. 의도적으로 대선 직후 상영관으로 내보낸 이 영화가 선거전 동안 발생했던 온갖 이념적 갈등과 거짓을 정화하는 효과를 내줄 것으로 그는 믿고 있다. 스필버그는 “정치가 진행되는 과정이 늘 아름답게 보일 수는 없다”고 운을 떼고, 이어 “설사 그 과정이 좀 모호한 데가 있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헌법 수정안 13조를 의회에서 통과시키는 것 자체가 어떤 방법으로 그 안을 통과시키느냐 하는 문제보다 훨씬 중요했어요”라고 말한다. 그러다가 잠시 말을 끊고 공격적인 표정으로 장내를 둘러본다.

물론 그도 잘 알고 있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원칙을 희생하는 사람이 결국 어떻게 될까요?” 같은 비난을 수도 없이 듣게 되리라는 걸. “그래요, 위험한 결정입니다.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한번 생각해보세요. 지금 아니면 100년 후에나 노예제 폐지를 다시 시도해볼 수 있을 텐데, 별 비중도 없는 의원 한 사람에게 체신부 장관직 하나 주기 싫어서 노예제도를 그냥 놔두겠다는 게 과연 옳은지.”

재미있게도 요즘 할리우드의 정치영화 대작 두 편이 모두 비슷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오사마 빈 라덴 추적을 다룬 캐슬린 비글로 감독의 <제로 다크 서티>는 빈 라덴을 체포하는 데 결정적인 단서를 고문을 통해 얻어낼 수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 영화도 도덕적 측면의 ‘비용-효용 계산’이란 사고방식을 비판적으로 깊이 천착하고 있다.

1952년 무렵, 소년 스필버그는 아버지를 따라 미국의 수도 워싱턴으로 여행을 갔다. 둘은 당시 트루먼 대통령이 사는 백악관과 국회의사당을 구경했다. 의사당의 건너편에 링컨이 있었다. 높은 주춧돌 위에 자리잡고 앉은, 거대한 대리석상으로. “링컨 대통령이다.” 아버지가 그에게 알려줬다. “놀라서 죽을 뻔했어요.” 스필버그는 그때 경험을 이야기한다. “장엄하기도 했지만, 또 한편 너무 경직되어 보이고 멀건 인상을 주는데다 해골 같아서….” 그때 이후로 소년은 링컨을 잊을 수가 없었다.

링컨 처음 보고는 “놀라서 죽을 뻔했어요”

“링컨은 어쩌면 오늘날 이 나라의 모든 국민이 다 같이 동의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 미국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마지막 한 점일지도 모릅니다. 현재 우리는 두 파로 완전히 갈려 있어요. ‘청색’(민주당)과 ‘적색’(공화당)으로 말이지요. 나는 만나는 사람 열이면 열 모두, 그 사람이 어느 진영에 속하는지 즉시 알아낼 수 있어요.”

하버드대학의 진화심리학자 스티븐 핑커는 논문에서 이념적 갈등이 미국을 양분하게 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이념은 사람마다 인간의 본성에 관한 시각이 서로 다른 데 그 근원을 두고 있다. 우익 이데올로기의 근간이 되는 것은 전통적으로 인간을 보는 비극적 관점으로서, 인간에게는 도덕·지식·이성 등이 늘 제한되어 있다고 본다. 인간 본연의 공격성이 인간을 늘 유혹하기 때문에 인간 세계에는 강력한 군대와 자기를 보호할 수 있는 가능성, 그리고 윤리적·종교적 구속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국가는 인간의 손으로 만든 것이어서, 사회와 경제 시스템을 제대로 통제할 능력을 충분히 갖추기 어렵다. 이를 정치적 정강으로 바꾸어놓으면 군대는 호전적으로, 종교 권한은 더 많이, 경제 조정은 느슨하게, 개인에게는 무기 소지권을 허가하고 세율은 낮춘다 등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는 미 공화당의 프로그램과 정확히 일치한다. 반면에 좌파 이념은 인간을 ‘유토피아적 관점’에서 본다. 인간은 무엇이든 배울 능력이 있고, 남들과 함께 좀더 나은 삶을 꾸려가기 위해 합리적 사유를 하고, 이를 공공의 제도를 통해 실현하고자 한다. 정치 정강으로 번역하면 이 말은 국가 간의 연결은 돈독히, 종교에 관해서는 학술적 연구를, 무기 소지는 법으로 제한하고, 생활 양식과 성은 자유롭게, 사회적 평등을 보장하도록 정부를 감시할 것 등이 된다.”

“듣고 보니 이 나라를 150년 전에 분열시킨 것도 결국엔…” 하고 스필버그는 말을 잇는다. “바로 이 차이인 것 같습니다. 유토피아적 관점과 비극적 관점에서 야기된 정반대의 의견 말이죠.” 그러면서, 스티븐 핑커라는 이름을 수첩에 적는다. 그에게 전화할 생각이란다. 정말? 아, 물론이고 말고. 학자들과 늘 함께 작업해왔는데. <링컨>을 제작하면서는 특히 더.

다시 한번 물어보는데, 영화 <링컨>은 정말로 오바마에게 할 말이 있어서 만든 영화가 아닌가요?

“지금까지 오바마의 아이디어란 아이디어는 거의 모두 반대세력의 정치력에 의해 매장되고 말았어요. 링컨은 어느 시점에선가 자신의 순수성을 걸고 행동했습니다. 그러자 위험해졌죠. 이제 좀 지켜보시지요. 오바마 대통령이 게임을 시작할 겁니다.”

필립 욈케 Philipp Oehmke <슈피겔 >문화 에디터

번역 장현숙 위원

ⓒ Der Spieg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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