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3.06 02:03 수정 : 2013.03.06 02:04

인터넷의 발달로 여러 가지 형태의 커뮤니케이션이 새로 일어나면서, 악플러(인터넷 게시판에서 악의적 댓글만 다는 사람)로 알려진 인물들이 세상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악플러들은 직접 얼굴을 보고 있지 않으면서도 마치 마주보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실시간으로 나타나는 반응을 지켜본다. 그리고 익명 속에 숨어서 타인에게 나쁜 언동을 하는 것으로 쾌감을 느끼거나 아무 생각 없이 분쟁을 일으키기도 한다. 점점 도가 지나치더니, 그들은 결국 인터넷 속에서의 분쟁을 현실로 끌고 와서 상대방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일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것이 이른바 ‘현피’(현실에서의 PK. PK는 플레이어를 해치는 행위인 게임 속의 단어 Player Kill을 말함)다. 게임 속에서 플레이어의 아이템을 갈취하거나, 게임이나 게시판에서 상대에게 욕설을 퍼부은 것을 문제 삼아 실제 싸움으로 번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편 이 과정에서 키보드 하나로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이들을 가리키는 신조어 ‘키보드 파이터’ 혹은 ‘키보드 워리어’(키보드를 무기로 사람들에게 상처 입히는 사람)도 생겼다.

2011년 5월 15일 서울 영등포에 있는 한 격투기 체육관에서 재미있는 격투기 대회가 열렸다. ‘글래디에이터 챌린지’라는 아마추어 격투기 대회 속에 또 하나의 미니 대회가 열린 것이다. 미니 대회에 참가한 사람들은 다름 아닌 키보드 파이터 혹은 키보드 워리어로 불리는 이들이다. 키보드로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는 악플러가 아니라, 격투기 선수로서 직접 링 위에 올라 무작위 폭력이 아닌 정해진 룰에 따라 정식으로 경기를 겨루면서 서로를 만난 것이다. 이들이 모니터 뒤에서 뛰쳐나와 링 위의 세상으로 나선 까닭은 무엇일까?

‘디시인사이드’(www.dcinside.com)라는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격투기 초창기부터 자생적으로 운영되는 격투기 갤러리가 있었다. 초창기 격투기 갤러리는 기존 파이터들이나 방송 해설자 등이 방문하면서 나름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그러다 격투기 대회와 방송이 활성화된 2004년 이후 수많은 시청자가 흘러들면서, 이견을 보이는 사용자들 간의 충돌이 잦아졌다. 건전한 토론의 장에서 욕설과 심지어 부모에 대한 모욕까지 난무하며 그야말로 키보드 파이터들이 날뛰는 세상으로 삽시간에 바뀌었다. 이런 현상은 2011년까지 계속되었고, 서로에게 “현피 뜨자”고 외치는 상황이 이어졌다. 현피 장소에 나가보면, 한 명은 와 있는데 다른 한 명은 오지 않는, 이른바 ‘낚시질’까지 일어나기도 했다.

<기사 전문은 <나·들> 인쇄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천창욱 종합격투기 해설가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