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2.05 04:25 수정 : 2013.02.06 16:56

56살의 안경 쓴 보수 운동가인 그로버 노퀴스트는 어떻게 미국 공화당 전체를 천천히 흔들고 있는 것일까? 그의 누리집(인터넷 홈페이지)을 보면 자신을 ‘우파의 세금반대교 어둠의 마법사’라고 일컫는다. 하지만 노퀴스트의 신비로운 마법의 진실은 값비싼 정치적 조종술에 불과하다.

그로버 노퀴스트 / 게이지 스키드모어 제공
그로버 노퀴스트는 ‘재정절벽’(Fiscal Cliff) 협상과 관련해 텔레비전에 출연해 미국 공화당의 증세 반대 원칙의 대변인이자 집행자 노릇을 해왔다. 사실 노퀴스트의 주장 중 몇 가지는 당의 주요 노선과 어긋난다. 하지만 노퀴스트와 공화당은 원칙적으로 증세에 반대하고 있다. 대부분의 공화당 입법자들은 정부 부채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1년 넘게 증세안을 다루고 있으면서, 여전히 이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노퀴스트는 1986년 만들어진 ‘납세자 보호 서약’(노퀴스트 서약. 세금 인상에 반대한다는 내용)으로 유명해졌다. 현재 의회에 진출한 공화당 의원의 95%가 이 서약에 서명했다. 노퀴스트가 영향력 있는 이유는 힘 있는 기부자들과 가깝기 때문이다. 노퀴스트는 어떤 관직에도 선출된 적이 없으며, 그가 설립한 ‘조세 개혁을 위한 미국인’(ATR)은 미국은퇴자협회 AARP)나 전미총기협회(NRA) 같은 워싱턴의 다른 이익단체와 달리 회원 수가 많지 않다. 그럼에도 노퀴스트가 보수세력의 존경을 받는 이유는, 그의 뒤에 의회에서 정치적으로 활발하게 움직이는 공화당의 갑부들과 산업계의 거대 조직이 있기 때문이다.

 

부시 측근 단체가 거액 기부

<네이션>은 노퀴스트 단체의 최근 세금 관련 공개 자료를 살펴봤다. 2010년 ATR은 전체 예산 중 66%를 단 두곳에서 지원받았다. 대표적인 보수 후원자 코흐 형제가 관련된 ‘특허권 보호 센터’에서 418만9천 달러(약 44억5천만원), 부시 전 대통령의 측근이자 공화당의 전략가인 칼 로브가 이끄는 ‘갈림길의 GPS’(Crossroads GPS)에서 400만달러(약 42억5천만 원)를 받았다.

앞의 상황을 종합해볼 때, 이는 미국 정치권의 보수시민단체인 ‘시민연합’(Citizens United)의 검은돈 사건을 야기한 두 조직의 결합이다. ‘특허권 보호 센터’는 코흐 형제가 이끄는 갑부 조직이 설립한 단체로 관련 조직에 자금줄 노릇을 한다. 2년 전 건설회사인 벡텔사의 스티브 벡텔, 세계 최대 사모펀드 업체 블랙스톤그룹의 스티브 슈워츠만이 몰래 만나 보수운동을 하기 위해 기금을 모았다. ‘갈림길의 GPS’는 로브가 민주당을 네거티브 광고로 공격할 때 활용하는 단체다. ‘갈림길의 GPS’ 기부자로 유일하게 드러난 사람은 폴 싱어다. 그는 부실 기업을 헐값에 인수해 경영을 정상화한 뒤 비싸게 되팔아 단기간에 고수익을 추구하는 ‘벌처 펀드’의 황제다. 폴 싱어는 보수 성향의 정치인에게 거액을 기부하며, 제3세계 부채에서 거액의 이자를 쥐어짜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노퀴스트 서약’은 부자들을 위한 것이다. “같은 비율의 감면이 없다면 세금을 올리거나 세금 감면 혜택을 낮추는 어떤 움직임에도 반대한다”고 되어 있다. 이렇게 되면 부유한 투자 매니저와 갑부들은 낮은 세율로 이익을 본다. 그들의 투자 수익에는 소득세가 아니라 은 세율의 자본이득세가 적용된다. 이런 조세제도의 허점을 통해 어떤 펀드 매니저는 회사 경비원보다 낮은 비율의 세금을 내기도 한다. 이런 틈새를 막거나 고소득자의 세율을 높이기 위한 어떤 시도도 ‘노퀴스트 서약’에 반한다. 혹시 세금 공제를 제한하거나 한계 세율을 높이는 데 찬성하는 이단적 사고를 가진 공화당원이 있다면, 이들을 회유하기 위한 조직도 있다.

서약의 두 번째 조항은 세금 공제 항목을 줄이지 않도록 촉구하는 것이다. 이 부분은 노퀴스트가 어떻게 기업의 로비 활동과 K스트리트(워싱턴의 로비스트 사무실 집중 지역, 로비 집단을 상징)의 대리인이 되었는지 잘 설명해준다. 비용으로 따져보면, 특별히 지정된 세금 감면은 기본적으로 국가가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에탄올 정제 시설에 대해 100만 달러(약 10억6천만 원)의 세금을 공제해주는 것과 에탄올 정제 시설에 100만 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의 주된 차이점은, 세금 감면은 국세청에서 하는 것이고 보조금은 연방기관에서 준다는 것뿐이다. 하지만 노퀴스트는 “세금 공제 내역을 줄이는 것은 세금을 대폭 인상하는 것과 같다”고 비난한다. 세법에 따르면 여러 가지 보조금이 있다. 그중에는 천연가스 회사인 듀크에너지같이 수익성 좋은 여러 기업이 실효세율로 보면 마이너스 세금을 내도록 하는 것도 있다.

 

K스트리트의 대변인

노퀴스트의 또 다른 후원자를 살펴보면 그와 기업 로비의 관계를 들여다볼 수 있다. 제너럴 일렉트릭(GE)을 보자. <뉴욕타임스>는 GE가 다양한 세금 공제와 여러 보조금 덕에 2010년 연방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그러자 여·야 정당을 가리지 않고 GE를 비난했다. 이때 노퀴스트가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를 통해 GE를 변호하고 나섰다. 그는 GE에 대한 세금 감면 혜택을 없애면, 결국 소비자가 세금을 물게 될 것이며 ‘노퀴스트 서약’을 깨는 일이 될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폈다. 2011년 기부 내역을 보면 GE는 그해 노퀴스트의 재단에 5만 달러(약 5300만 원)를 기부했다. 잠깐, 그 액수에 대해 생각해보라. 5만 달러는 GE가 2010년 국세청에 낸 소득세보다 많다. GE는 한 해 동안 142억 달러(약 15조 원)의 이익을 냈다.

노퀴스트는 모든 종류의 세금 공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의 관심은 모든 사람이 아닌 몇몇 조직에만 온통 집중되어 있다. 노퀴스트재단의 누리집(홈페이지)을 살펴보면 석유와 가스기업에게 가는 수백억 달러의 보조금을 포함해 국고에서 새나가는 에너지 보조금을 없애기 위한 입법가들의 노력에 저항하기 위한 행동강령이 셀 수 없이 많다. 어떤 글에는 석유기업에게 주는 1천억 달러(약 106조 원)에 달하는 세금 보조를 없애는 것은 ‘에너지 생산자와 가족에 대한 증세’와 같다고 썼다.

<네이션>의 보도에 따르면 2008년∼2011년 셰브론과 엑손모빌 같은 석유 및 가스 대기업으로 조직된 미국석유협회(API)는 ‘조세 개혁을 위한 미국인’에 52만5천 달러(약 5억6천만 원)를 기부했다.

기업을 홍보하는 처지에서 보면 석유기업이 세금 감면을 받는 문제에 대해 스스로 변론하고 나서기는 어렵다. 한 분기에만 수십억 달러의 이익을 내는 석유기업이 유정을 파는 비용을 공제받고, 원유를 정제하면서 ‘제조’ 명목으로 세금 감면을 받는다. ‘조세 개혁을 위한 미국인’의 신념인 ‘노퀴스트 서약’은 빈곤한 납세자가 누려야 할 수십 억 달러에 달하는 세금을 ‘세금 감면’을 유지해 건드리지 못하게 만들려 한다. 노퀴스트는 석유 산업을 비롯해 재계의 후원자를 위한 이론적 보호막을 제공하는 셈이다.

그는 1980년대 들어 기업을 옹호하기 위한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을 개발해냈다. 언론인이며 역사학자인 토머스 프랭크는 그의 책 <난파선의 선원>(The Wrecking Crew)을 통해 노퀴스트는 일찌감치 재계 거물을 후원자로 이끌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노퀴스트는 비영리단체인 ‘조세 개혁을 위한 미국인’을 앞세워 대학에 기반을 둔 소비자 활동 단체인 ‘공익조사단’(PIRGs)의 활동에 반대했다. 그 대가로 기업에서 후원금을 받았다. 예를 들면 ‘공익조사단’ 같은 그룹은 오염 유발 기업을 규제하기 위한 법령을 재정하기 위해 노력한다. 노퀴스트는 오염 유발 기업에 자신의 비영리조직에 기부금을 요청하고 그 대신 ‘공익조사단’의 이상적인 개혁가들과 맞서 싸우는 것이다.

그는 로비스트로 등록되어 있다. 로비스트로서 그의 첫 번째 일은 아프리카 동부 인도양에 있는 작은 섬나라 세이셸의 좌파 지도자인 프랑스알베르 르네(전 대통령)를 대변하는 것이었다. 논평가이자 작가인 터커 칼슨은 미국의 정치 잡지 <뉴 리퍼블릭>을 통해 돈만 주면 움직이는 노퀴스트의 보수주의에 대해 처음으로 폭로했다. 이 기사에서 그는 노퀴스트를 단지 ‘돈에 흔들리며 도덕적으로 왔다 갔다 하는 로비스트’라고 표현했다.

돈만 주면 좌파 정치인도 지원

노퀴스트는 이후 ‘야누스-메리트 전략’이라는 자신의 로비회사를 차렸다. 고객 명단에는 패니 메이(국책 주택보증 회사)를 비롯한 유명 조직과 인물들이 올랐다. 1990년대 후반 마이크로소프트(MS)사는 워싱턴주 시애틀의 테아트로 진자니의 만찬과 공연, 시애틀 매리너스 야구 경기 관람까지 포함된 3일간의 행사 일정에 ‘조세 개혁을 위한 미국인’의 대표들을 초대했다. 그리고 이틀 뒤 ‘조세 개혁을 위한 미국인’은 하원 공화당 의원들에게 편지를 썼다. 당시 MS와 대형 소송을 벌이던 법무부 반독점 부서의 예산을 대폭 삭감하도록 촉구하는 내용이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MS는 노퀴스트를 MS의 로비스트로 등록하면서 그에게 4만 달러(약 4260만 원)를 지급했다.

같은 방식의 활동이 지속적으로 반복됐다. 담배 대기업 필립모리스가 ‘조세 개혁을 위한 미국인’에 돈을 주자 노퀴스트는 담배세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펼쳤다. 한 휴대전화 로비그룹이 ‘조세 개혁을 위한 미국인’에 돈을 지불했을 때 노퀴스트는 휴대전화 관련 세금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펼쳤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첫 번째 임기 초에 노퀴스트는 국제화물 운송 서비스 업체인 페덱스(FedEx)에 같은 업종인 UPS 반대운동에서 손을 떼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당시 UPS 노동자들의 산별노동조합에 페덱스 노동자들이 가입하지 못하도록 페덱스 회사 쪽이 ‘UPS 반대 누리집’을 운영하고 있었다. 위스콘신주 등에서 단결권을 엄격하게 제한한 데 대해 찬사를 보낸 것을 감안하면 보수주의자인 노퀴스트에게는 놀랄 만큼 친조합주의적인 행보다. 그러나 노퀴스트가 편지를 보내고 난 몇 달 뒤 UPS가 ‘조세 개혁을 위한 미국인’에 2만5천 달러(약 2660만 원)를 기부했다는 사실을 알면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가장 추악한 예는 거물 로비스트인 잭 아브라모프의 로비에 대한 상원 조사에서 드러났다. 에 따르면 아브라모프의 고객 중 하나인 미시시피 원주민 촉토족은 120만 달러(약 12억8천만 원)를 아브라모프에게 사례비로 보내려고 준비했는데, 노퀴스트가 ‘조세 개혁을 위한 미국인’을 거쳐 돈을 전달하는 방식이었다. 돈세탁을 해주는 대가로 노퀴스트는 양쪽에서 5만 달러(약 5300만 원)를 챙겼다. 무슨 수를 썼는지 노퀴스트는 아무 탈 없이 아브라모프 스캔들에서 빠져나왔고, 이전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언론은 별다른 생각 없이 노퀴스트를 ‘시민운동의 지도자’ 또는 ‘이론적 순수주의자’로 부른다. 이와 같은 명칭은 그의 명성을 더욱 확고하게 만들고 있다. 아마 좀더 정확한 명칭은 ‘기업 로비스트’일 것이다

글 리 팡 Lee Fang ‘네이션 연구원’ 소속 리포팅 펠로

번역 하수정 위원

ⓒ The N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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