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2.05 04:16 수정 : 2013.02.05 04:18

1937년생인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는 1952년 10대 시절에 이미 바이로이트에서 <니벨룽겐의 반지> 공연을 관람했고, 그 뒤 지금까지 바그너에게 매료되어 있다. 바그너가 끼친 영향, 20세기가 가진 폭력성, 바그너 작품에 등장하는 좌절한 영웅과 사람들을 강력하게 사로잡는 바그너 음악의 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차이트 바그너는 처음에 어떻게 접하셨습니까?

알랭 바디우 어머니가 바그너의 팬이었지요. 14살 때 78rpm 레코드판으로 바그너의 음악을 처음 들었습니다. 그 음반에는 <발퀴레의 기행> <마이스터징거의 서곡> 등이 들어 있었죠. 바그너의 음악을 듣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실제 공연을 보게 되었습니다. 1952년 가족 전체가 바이로이트로 초대되었습니다. 아버지가 툴루즈시의 시장이었는데, 아마 정치적 연유로 초대받은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시장직을 맡고 있었을 뿐 아니라 오페라단도 이끌고 있어 아리아를 즐겨 부르셨습니다. 바이로이트에서 <니벨룽겐의 반지> 공연을 보았죠. 바그너의 손자인 빌란트 바그너1가 감독한 공연이었습니다.

차이트 그렇다면 게르만적 색채가 사라진 바그너 공연이었겠군요.

바디우 네, 양쪽에 뿔 달린 헬멧은 등장하지 않았죠.(웃음) 정화된, 나치 색을 벗은 바그너였죠. 독일을 가로지르는 여정 동안 완전히 파괴된 독일을 목격했습니다. 뮌헨은 돌이 굴러다니는 황량한 벌판이었어요. 우리는 어떤 아주머니의 집에서 민박을 했는데, 그 집 벽난로 위에는 세 아들의 사진이 놓여 있었죠. 그들은 모두 죽었다고 했습니다. 독일은 온통 잿빛이었죠. 그렇지만 그 나라에는 바이로이트가 있었습니다. 바그너가 폐허에서 다시 일어서고 있었습니다.

 

폭력의 20세기, 실패의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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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트 당신의 책 <바그너에 대한 다섯 개 강의>는 바그너가 파시즘의 원형을 보여준다는 비판, 모든 차이와 고난과 좌절이 단지 위대한 결말로 향하는 과정에 불과하다는 점에 대한 비판에 맞서 그를 옹호하고 있습니다.

바디우 이런 시각은 바그너가 진정한 비극을 아는 자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그는 모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의 작품에는 불확실함과 좌절이 많이 등장합니다. 오페라의 많은 부분은 보상받지 못하는 기다림, 재앙으로 끝날 계획, 되돌릴 수 없는 분열 등으로 이뤄집니다. 바그너가 등장시키는 상황은 성공이나 성취라기보다는 좌절과 실패에 가깝습니다. 오직 <마이스터징거>의 마지막에서 성공적인 상황이 등장하죠. 전통과 혁신의 통합입니다. 하지만 이것도 대가가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한스 작스는 사랑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바그너 작품에서 대가는 항상 따라다닙니다. 혹은 반지를 가지게 되죠. 이것은 파멸을 의미합니다. 1976년 파트리스 셰로가 연출한 <신들의 황혼> 결말에서 등장인물들은 무대 위에 서서 의문에 가득찬 얼굴로 관객들을 쳐다봅니다. 우리는 혼자이고 버려졌다. 우리에게는 신도 반지도 없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차이트 브레히트적인 순간이군요.

바디우 맞습니다. 당연히 바그너는 모순들을 해소할 능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순이 해결될 경우 <파르지팔>에서처럼 납득하기 어려운 결말을 맺게 됩니다. 이것은 좋은 결말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왜 상황이 더 나아진 거지?’ 하고 궁금해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을 빼고 대부분은 실패투성이입니다. ‘로엔그린’은 떠나야만 했고, 신들은 몰락했고,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모든 것을 잃는 것으로 결말을 맺습니다. 이졸데는 노래를 부르고 있지만 사실상 이미 죽은 것이지요. 바그너는 어렵고 실행할 수 없으며, 불가능한 길을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그는 단정적 어조로 성공을 제시하는 작곡가가 아닙니다.

차이트 20세기는 바그너의 주제와 비슷한 점을 지닌 것 같은데요.

바디우 그렇습니다. 20세기는 바그너 작품에 등장하는 그 주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세계의 근본적인 탈바꿈’이라는 계획입니다. 몰락의 위험에 처한 인간이 잠시 유보했던 계획이지요. ‘오딘’(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최고신(神))의 경우를 볼까요. 그는 계율의 힘, 폭력의 힘 등 모든 힘을 갖고 싶어 합니다. 이것은 전체주의적인 계획입니다. 오딘은 신의 세계의 스탈린 같은 존재입니다. 모든 형태의 권력을 갖고 싶어 하고, 거기다 창과 반지까지 갖고 싶어 하지요. 바그너는 자신이 이 체계 안에서 더 이상 자유로이 행동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을 대신해 행동할 ‘지그프리트’라는 자유로운 영웅을 창조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도 성공하지 못했어요. 이런 것들은 20세기 전체주의와 해방이데올로기 사이의 문제적 관계를 연상케 합니다. 혁신의 문제를 예로 들어볼까요. 로엔그린은 그의 이름이 불리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과거는 완전히 사라져야 했고, 그럼으로써 그는 새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20세기가 바로 그러했습니다. 바그너는 20세기를 예언한 사람입니다.

 

반자본주의적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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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트 바그너의 신화적 세계에 어떻게 물질적인 것, 예를 들어 ‘라인의 황금’같이 지상에 속한 것이 등장할 수 있었는지 설명해주시지요.

바디우 바그너는 마르크스와 동시대인이지요. 그들은 서로를 전혀 알지 못했지만.

차이트 하지만 바쿠닌은 알고 지냈지요.

바디우 그렇습니다. 당시 세계는 점차 돈의 지배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이야기 속에는 금이 가진 힘이 등장합니다. 신들조차 금을 갖고 싶어 하지요. 바그너의 주제는 이런 ‘힘’이 저주라는 것입니다. 신들이, 지배자들이 이 힘에 의존한다면, 이 세계는 몰락할 것이라는 거죠. 이것은 마르크시즘과는 다른 반자본주의입니다. <신들의 황혼> 결말에 브륀힐데가 소리칩니다. “사라져라, 황금은 저주받았다!” 그리고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가버리지요.

차이트 바그너 작품에는 마지막에 모든 것이 숭고해지는 웅장한 결말이 있지요. 이런 숭고함이 의도하는 바는 무엇인가요. ‘발퀴레’, ‘오딘’, ‘클링조르’ 등 이 모든 것은 신화의 내용과 상관없이 숭고함을 만들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볼 수 있을까요?

바디우 바그너에게 숭고함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바로 비극입니다. 어떤 것이 끝이 났고 미지의 것이 시작된다는 것을 장엄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반면에 <파르지팔>이나 <마이스터징거>같이 앞으로의 일을 미리 알 수 있는 경우에는 숭고함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신들의 황혼>에서는 명확한 내용 없이 미래의 일이 하나의 가능성으로 제시됩니다. 어떤 것을 기대하게 하는 것은 바로 음악입니다. 바그너의 작품에서 음악은 많은 가능성을 열어두는 하나의 약속입니다. 음악은 분쟁을 해결해주지 못하지만 분쟁이 해결되리라는 암시를 합니다. 음악이 어떻게 전개될지 관객이 짐작할 수 없는 가운데, 바그너는 고유의 음악적 긴장을 만들어냅니다. 이런 긴장은 오래 지속될 수 있지만 지루하지는 않습니다.

차이트 한스 위르겐 지버베르그가 만든 영화 <파르지팔>에서는 등장인물이 몇 시간을 걸어다니는데, 마치 의식(儀式)같이 보입니다.

바디우 <파르지팔>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이 오페라를 하나의 의식으로 본다면, 오페라는 사실상 실패한 것입니다. 장엄한 장면들이 있지만 <파르지팔>은 예술 작품입니다. <파르지팔> 초기 공연 때 사람들은 공연이 경건하다고 생각해 박수칠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이 참 순진했지요! 하지만 <파르지팔>이 제기하는 문제들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신들이 죽은 지금, 진정으로 의미 있는 의식이 있는가? 이것 역시 20세기가 가진 또 다른 질문 중 하나였지요. 공산주의와 파시즘은 정치적 의식을 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바그너 작품처럼 과장되고 극단적이며 강제된 것이었습니다.

차이트 바그너는 이 문제점을 예측해야 했을까요?

바디우 순수하게 예술적 측면에서 보면 그렇습니다. 예술가로서 바그너는 <파르지팔>의 결말에 저속한 수단을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일까요? 예술가 바그너는 사상가 바그너가 포기한 문제들의 해결책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기독교 이후에는 무엇이 와야 하는가? 예술가로서 바그너는 결국 그 해결책을 찾지 못했고, 그 공백을 극장 무대 효과로 채웠습니다. 오페라를 다 보고 난 뒤 관객들은 “대체 파르지팔이 한 게 뭐야?” 하고 되묻게 됩니다. 제1막에서 그는 약간 바보 같았고, 제2막에서 어머니를 부르다가 마지막으로 창을 가지고 옵니다. 이것이 그가 한 전부입니다. 노래를 부르는 분량은 채 20분이 안 될 정도로 적습니다. 이 작품에도 숭고한 순간은 있지만, 예술과 사상은 그 안에서 완전히 따로 돕니다. 바그너는 실패를 몸소 보여주는 위대한 예술가입니다.

 

독재적인 음악?

바이로이트 오페라 극장 내부를 그린 삽화. <뉴욕타임스> 1874년 6월 22일자에 실렸다. 한겨레 자료
차이트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는 1860년 파리에서 <탄호이저>를 봤습니다. 이 작품을 ‘독재적인 음악’이라고 평한 보들레르는 그럼에도 이 작품을 마음에 들어했지요.

바디우 바그너에겐 고유의 근본적인 모순이 있지요. 그는 어떤 면에서 매우 혁신적인 작곡가입니다. 작은 디테일까지도 혁신적이지요. 음악적인 추상의 극한에서 아주 섬세하게 작업을 했습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 그는 효과를 좋아했지요. 니체가 비판했듯이 극적이고 서커스 같은 역사적인 효과 말입니다. 니체는 바그너가 음악을 극에 종속시켰다고 했습니다. 나는 그 반대라고 믿습니다. 바그너가 극을 음악에 종속시켰다고 말입니다. 오페라는 음악과 극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바그너는 항상 광대한 무대효과를 사용했습니다. 사람들이 홀려서 넋이 나가기를 원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그의 작품은 독재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차이트 보들레르가 마음에 들어했음에도 파리에서 바그너는 호평받지 못했습니다. 프랑스 잡지 <르뷔 데 되 몽드>에서는 <탄호이저>를 두고 음악이 아니라 ‘카오스’(무질서·혼돈)이라고 혹평했습니다.

바디우 모든 위대한 예술은 기존 형식을 뛰어넘어버리기 때문에 형식이 없고 예술이 아닌 것으로 간주되곤 합니다.

차이트 당시 파리에서는 보수적인 부르주아의 모임이 있었는데, 그들은 바그너가 전복적이라고 야유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그들이 바이로이트의 공연을 본다면 전복적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바디우 바이로이트에서는 독일 부르주아를 위한 공연이 계속되고 있어요. 하지만 이 때문에 바그너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내리는 것이 방해받아서는 안 됩니다. 공식적인 문화로 변질되는 것은 위대한 예술이 처한 운명입니다. 한때 아주 새로웠던 것은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뻔한 것이 됩니다. 이것은 유클리드 기하학과 같지요. 처음에는 도전적으로 받아들이던 것이 일반적인 것이 되는 겁니다.

차이트 하지만 유클리드의 증명을 따라가보면 과거에 그것이 가져왔던 놀라움을 쉽게 상상해볼 수 있는데요.

바디우 그렇지요. 소수의 무한성에 대한 유클리드의 증명과 바그너의 <신들의 황혼>은 모두 여전히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클리드의 증명 이후 사람들의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죠. 이와 비슷하게 바그너 이후 사람들은 음악을 완전히 다르게 듣습니다

게로 폰 란도우 Gero von Randow <차이트> 파리특파원

ⓒ Die Zeit

번역 이상익 위원

* 바그너의 맏손자. 히틀러에 의해 나치 궁정 극장처럼 사용하게 된 바이로이트 극장은, 미군이 바이로이트에 진주한 뒤 미군을 위한 여흥 무대로 사용되었다. 미 군정은 1946년 극장을 바이로이트시에 돌려주었다. 바이로이트 축제는 1951년부터 재개되었는데, 그때부터 빌란트 바그너가 바이로이트 축제의 무대 연출을 맡았다. 그는 배경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사실적 무대를 없애고, 추상적이고 현대적인 무대를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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