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2.05 00:48 수정 : 2013.02.05 00:48

처음엔 변호사 사무실을 ‘무변촌’(변호사 없는 지역)에 차리려고 했다. 하지만 아무 연고가 없는 곳은 어렵겠더라. 그래서 내가 자란 경기도 의정부를 택했다. 이곳은 법원과는 거리가 좀 있다. 역 앞 전통 시장을 중심으로 상권이 발달해서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곳이다. 그냥 동네 사람들과 생활하면서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을 상담하고 법률 도움을 주는 것이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언론에서 보는 그런 큰 사건은 일어나지 않는다. 인권변호사나 로펌의 고연봉 변호사가 필요하지 않다. 동네 변호사가 필요한 곳이다.

사법고시 준비할 때는 범죄자를 처벌하는 검사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사법연수원 시절 검찰 연수를 하면서 마음이 바뀌었다. 그 조직 문화가 싫었다. 또 그 문화에 물들까봐 싫었다. 여성 피의자 성추행 사건이나 헌법재판소장 청문회를 보면 알 수 있듯, 그들의 법 감정은 국민의 그것과는 차이가 크다. 그들의 특권 의식 때문인 것 같다. 로펌에 들어가는 것도 싫었다. 변호사인 나도 대형 로펌의 문을 열 때 주눅이 든다. 또한 한 변호사가 맡는 사건이 너무 많다. 내가 아는 친구는 사건을 30개나 맡고 있다.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런 생각 끝에 사랑방 같은 분위기의 ‘동네 변호사 카페’를 차렸다. (그의 사무실에 가려면 동생이 운영하는 아래층 카페를 지나야 한다.)

지난해 2월 연수원을 졸업한 뒤 ‘동변’(동네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다. 1년 동안 몇 건의 수임을 했는지 아직 정리해보지 않았다. 항상 4~5건씩 사건을 진행해왔다. 직원이 없으니 전화 상담이나 사건 기록 떼오는 것도 직접 한다. 성폭력 피해자 법률 조력인으로 철원까지 출장도 갔다. 무척 바쁘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기 때문에 힘든 줄 모른다. 앞으로도 직원 없이 혼자서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려고 한다.

법이란 보수적이다. 기존 가치를 지키는 것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다. 새로운 가치를 받아들이는 것도 늦다. 하지만 난 새로운 가치를 판결로 받아내고 싶다. 그러려면 공부를 더 해야 한다. 대학원에서 선생님이 아닌 사회단체의 현장 강좌를 찾아가 배우려 한다.

꿈? 할머니 동네 변호사다.

박승화 기자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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