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12.27 21:46 수정 : 2012.12.27 21:46

노부부의 손이 닮았다. 손에서 그들의 삶의 역사를 본다.
그들을 처음 만난 30년 전만 해도, 횡성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갑천면 매일리 갑천중고교 앞에서 내리면 구불구불 산길을 따라 한 시간 남짓 걸어 들어가야만 했다. 사람이 살 것 같지 않은 곳이었지만, 그 길의 끝자락 즈음에 분명히 ‘물골’이라는 마을이 있으며, 거기에서 길 끝과 맞닥뜨리면 부부가 사는 외딴집이 한 채 있을 것이라 했다. 그래, 그때는 노부부가 아니라 부부였다.

 평안남도 개천이 할아버지(최문용·82)의 고향이며, 해방되기 직전인 1944년 고향을 떠나 이곳으로 왔다. 그리고 17살 되던 해에 15살 꽃 같은 할머니(김영자·80)와 혼례를 치렀다. “지금은 쭈그렁탱이 할망구지만 젊어서는 참 고왔지.” 그 말에 할머니는 수줍은 듯 배시시 웃음으로 화답한다. 1944년부터 그곳에서 살았다고 했으니, 거의 70년 세월을 외딴집에서 단둘이 지내온 셈이다.

 외로웠을까? 사람을 얼마나 반기던지, 강원도를 다녀오는 길이면 멀리 돌아서라도 들르는 곳이 되었다. 어느 해 겨울, 할아버지가 산토끼를 잡아왔다며 탕으로 내왔다. 어느 해 가을에는 고라니를 잡아 내왔고, 어느 해 여름에는 천렵한 민물고기를 매운탕으로 끓여 양푼 가득 내왔다. 그렇게 물골을 제집처럼 들락거렸다.

 사람을 그리워하면서도 사람들 속에 섞여 사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 물골이 가장 편안하다고 하는 노부부. 그들의 근력이 자급자족하기에 부족함이 없으면 좋으련만 가는 세월은 막지 못하는가 보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이 세월이라고 하지만, 그들에게는 조금 천천히 가면 좋으련만, 도시생활에 시달리다 3년 만에 찾으니 그 사이 몰라보게 늙으셨다.

 가을 초입에 찾은 물골 노부부의 외딴집, 이제 외딴집이 아니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은퇴를 하고 귀농한 부부가 외딴집과 가까운 곳에 집을 짓고 노부부에게 농사를 배우며 함께 살아가고 있다.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혹시라도 노부부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사라져서다

할머니께서 영정사진으로 쓸 사진을 찍어달라며 곱게 차려입으셨다.

글/사진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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