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7.03 13:06 수정 : 2014.07.03 13:06

남양유업의 ‘밀어내기’로 촉발된 갑을개혁 투쟁이 1년을 맞았지만, 이미 8년 전 인태연씨는 갑을개혁 투쟁을 시작했다. 인씨가 설립한 전국유통상인연합회는 ‘을들의 민주노총’이라고 불리며, 대기업에 골목상권을 장악당한 소상공인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그의 궁극적인 목표는 노동자나 농민처럼 상인도 하나의 사회적 세력을 형성하는 것이다. 한겨레 박승화
남양유업의 ‘밀어내기’로 촉발된 갑을개혁 투쟁이 1년을 맞았다. 그간 한 번도 말을 갖지 못했던 을들의 아우성이 터져나왔다. 아우성은 경제민주화 요구로 이어져 시대정신이 됐다. 하지만 갑을개혁 투쟁은 갑자기 튀어나온 것도 새로운 싸움의 출현도 아니다. 이미 앞서 시작한 상인운동의 연장선이다. 한때 상인의 정체성은 모호했다. 노동자와 사장, 갑과 을, 중산층과 서민 사이에 걸쳐 있었다. 2008년 무렵 대기업의 골목상권 장악이 본격화하면서 상인은 소상공인으로 호명됐고, 2013년에는 시대를 대표하는 을이 됐다. 이들은 불공정 계약에 따른 노예노동으로 ‘병’에게 동정받는 ‘을’이 되어 도시 빈민의 언저리를 맴돌고 있다. 이같은 사달을 우려하며 일찍이 상인운동을 시작한 이가 있다. 어디선가 을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나타나는 을들의 홍반장, 인태연(54)씨다.

“이름 없는 소상공인에게 새로운 사회 변화를 이끌어갈 주체로 ‘자영업 노동자’라는 새로운 계층 의식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아울러 시민사회와 정치권이 700만 명에 이르는 소상공인 문제를 함께 풀어야 할 사회문제로 인식하게 된 것도 성과입니다.” 지난 6월24일 서울 여의도 대안언론방송 팩트TV에서 만난 인태연씨는 갑을개혁 투쟁 1년에 대해 이같이 평가했다. 갑을개혁이 공론화된 지는 1년이지만, 그가 갑을개혁 투쟁을 시작한 지는 8년째다. 인씨는 ‘을들의 민주노총’이라고 불리는 전국유통상인연합회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남을 위해서도 아니고 제가 잘나서도 아니에요. 상인의 촉으로 계산해보니, 소상공인이 대기업과 공존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남은 인생을 장사하며 살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전쟁이 터졌는데 혼자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잖아요.” 인씨가 상인운동을 시작한 계기다. 그는 “대안이나 답이 보여서 상인운동을 시작한 게 아니다”며 “장사꾼으로 지속 가능한 삶을 살기 위한 다른 선택지가 (나에게) 없었다”고 했다. 에둘러 말하는 법 없이 거침이 없다.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은 그를 일컬어 “살면서 만난 사람 중 가장 말을 잘하는 사람”이라며 “저잣거리 언어로 핵심을 찌른다”고 했다. 제윤경 에듀머니 대표도 인씨의 말솜씨를 눈여겨보고 팩트TV 방송 진행을 권유했다.

그는 “상인의 눈높이에 맞는 상인 교육 방송을 만들어보자는 똥배짱”으로 방송을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을짱시대>가 38회를 넘어섰다. 매주 화요일 을과 전문가를 초대해 생방송으로 진행하는 <을짱시대>는 현장성과 전문성을 동시에 아우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본 쓰기, 출연진 섭외 등 방송 준비는 연합회 회원들과 함께 한다. 그는 방송을 통해 콤플렉스도 해소했다. “제가 어렸을 때는 얼굴이 커야 남자답고 머리도 똑똑해서 성공한다고 했어요. 그래서 작은 얼굴이 항상 콤플렉스였는데, 요즘엔 사람들이 방송용 얼굴이라며 오히려 좋아하네요. (웃음)”

어쩌다 방송까지 맡게 됐지만 그의 본업은 장사다. 인씨는 인천 부평 문화의 거리에서 의류대리점을 한다. 아버지가 중풍으로 갑자기 쓰러져 대학교 4학년 때 가업을 이어받았다. 옷장사의 경우 브랜드에 대한 고객의 취향이 다양해 대기업의 잠식에 따른 피해가 상대적으로 덜하다. 덕분에 인씨는 방송·상인운동·강연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다.

갑을 투쟁의 발원지, 부평 상인운동

첫 싸움은 2006년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 투쟁이었다. 대형 매장이 2%의 수수료를 내는 반면 중소상인은 같은 물건을 팔아도 3~4%의 높은 수수료를 내야 했다. 강자가 이득을 취하고 약자가 손해를 보는 불공정 구조였다. 인씨는 불공정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를 내걸고 상인운동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여당의 표밭이라 불렸던 상인들에게 ‘싸움’ ‘운동’ ‘투쟁’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했던 시절이다. 민주노동당이 힘을 보태면서 상인의 의제가 처음으로 공론화됐다. 인씨는 “싸움을 제안한 나조차 과연 상인들이 모일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지만 공통 현안을 놓고 상인들이 뭉치는 모습을 보며 자신감이 생겼다”고 회고했다.

그러던 2007년 부평에 새로 롯데마트가 들어섰다. 이미 롯데마트 2개와 롯데백화점이 입점해 있었다. 마트가 들어설 때마다 골목상점이 줄줄이 도산했다. 재벌이 보기엔 하잘것없는 작은 상점일지언정, 지역경제에 숨을 불어넣고 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삶의 터전이었다. 반면 대형마트로 인해 생긴 일자리는 최저임금조차 안 주는 저질 일자리이거나 단기계약직이었다. 이 와중에 부평구청이 나서서 롯데마트를 위한 일자리 박람회를 열었다.

“대형마트가 벌어들인 수익 대부분이 서울 대기업 본사로 빠져나간다는 것도 모르고 막연히 대기업을 유치하면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게 당시 부평구청의 인식이었어요. 정작 무엇이 무너지고 짓밟히는지 몰랐던 거죠.” 그는 롯데마트 입점 저지를 위해 상인들의 마음을 모았다. 부평 시민사회단체들을 찾아다니며 싸움의 필요성을 알렸다. 쉽지 않았다. ‘빨갱이’라는 소리를 듣는 건 예삿일이었다.

“당시 사회적 분위기는 감히 소상공인 나부랭이가 갑 중의 갑인 재벌에 반기를 든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어요. 동료 상인들이 재벌에 맞선다는 공포와 긴장감을 감추느라 몰래 술을 먹고 단상에 올라 발언을 했던 시절이죠. (웃음)” 끝내 대형마트 입점은 막지 못했다. 하지만 관과 주민들에게 대형마트가 들어서면 골목상권과 지역공동체가 망한다는 것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소상공인들의 투쟁을 단순한 밥그릇 싸움으로 바라보던 시민단체들의 시선도 달라졌다. 보수적인 상인들도 시민단체의 도움을 받으면서 그들에 대한 색안경을 벗고 대화를 시작했다. 이 움직임은 골목상권 지키기 싸움의 시발이 돼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인씨는 대형마트 규제 운동을 조직하기 위해 2010년 전국유통상인연합회를 설립했다. 기존 관변 상인단체로는 운동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느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소상공인들과 전국 규모의 연합회를 출범시켰다. 이후 연합회는 전통시장 반경 1km 안에 대형마트 입점을 금지하는 유통산업발전법 제정, 대형마트 의무휴업제 실시 등 재벌 규제 운동의 역사를 써나갔다.

대기업의 반격 vs 알바노동자의 연대

그에게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매번 ‘지금’이었다. 첫발을 디딘 사람의 숙명이다. 모든 것이 처음이다보니, 하나의 고비를 넘으면 예상치 못한 또 다른 고비가 기다리고 있었다. “싸움에서 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어요. 장사꾼 집안에서 성장해서 그런지 언제든 길바닥에 나앉을 수 있다는 마음의 준비가 돼 있었죠.” 인씨에게 가장 어려웠고, 지금도 가장 어려운 과제는 상인들의 조직화다. 한때 전형적인 중산층이었던 상인들에겐 하층민으로 떨어진 현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정서가 남아 있다. 모래알처럼 흩어져 제각기 다른 현장의 다른 업종에서 일하다보니 사정도 천차만별이다. 인씨에 따르면, 상인들은 두 가지 형태로 묶여 있다. 특정 이해관계로 묶인 관변 조직과 싸움을 통해 자발적으로 뭉친 형태다.

“전자는 국가보조금 등을 받아야 하기에 소상공인들을 위해 독립적인 목소리를 내는 게 쉽지 않아요. 구체적인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인 후자를 조직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교육이 필요해요.” 교육을 통해 노동자·농민처럼 하나의 사회적 세력으로 만들어내자는 주문이다. “각 정당들이 선거 때만 시장에 와서 표를 구걸하지 말고 정당 산하 공식기구로 소상공위원회를 만들었으면 해요. 이를 통해 민주시민·민주상인의 정체성을 가질 수 있도록 일상적으로 상인들과 교류했으면 합니다.”

이는 갑을개혁 투쟁 1년이 되어도 달라진 것 없는 현실에 대한 갑갑함과 맞닿아 있다. 여론에 떠밀려 상생 협상에 나섰던 기업들이 정부의 대기업 규제 완화 정책에 힘입어 다시 갑질에 나서고 있다. 갑들 사이에서는 ‘소나기 피하는 매뉴얼’(을 대처법)이 나돌 정도다. 정부와 국회의 책임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남양유업 방지법’으로 불리는 대리점 거래 공정화법조차 통과되지 못하는 등 불공정거래를 막는 최소한의 법안들이 국회에만 들어가면 소식이 없다. 국회 밖에서는 동반성장위원회의 중소기업 적합 업종제 무력화, 공정거래위원회의 모범거래 기준 폐지 등 갑의 반격이 본격화하고 있다. 동시에 희망의 증거도 있다. 인씨는 소상공인들과 연대하는 알바노조·청년유니온 등의 청년노동단체를 보며 사람의 존엄을 느꼈다고 전했다

“편의점 대리점주 투쟁 당시 최저임금도 못 받는 청년노동자들이 점주와 함께 공정계약과 적정이윤 보장을 촉구하며 대기업과 싸우는 걸 보며 희망을 봤어요. 재벌이 보면 알바생들이 우스울지 몰라도 우리가 보기엔 재벌보다 더 높은 수준의 인격과 도덕을 가진 사람들이에요. 쓰러지기 직전의 사람들끼리 처절히 연대하는 모습에 가슴이 아프기도 했지만 많은 용기를 얻었어요. (웃음)”

동료 상인들의 변화도 힘이 된다. 한때 그에게 빨갱이라고 손가락질했던 한 상인은 연합회 회원이 돼 열혈 활동을 벌이고 있다. “자신이 불공정한 사례를 겪고 나니 남의 고통이 아님을 자각하게 됐어요. 오늘 죽나 내일 죽나 순서의 차이일 뿐 함께하지 않으면 대기업을 당해낼 수 없다는 걸 느낀 거지요. 요즘엔 잇속을 위해 내 밥벌이만 하며 살았던 일개 장사꾼이 공동체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게 되니 자존감도 생기고 보람도 느낀다며 즐겁게 일해요.” 그는 재벌에 대한 소상공인들의 공포를 정당한 분노로 바꿔야 한다고 역설했다. “막연히 불황으로 힘들다고 하지만 그건 본질이 아니에요. 경기는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해요. 이와 무관하게 재벌의 골목 독점은 계속 가속화하고 있어요. 상인운동을 시작할 때만 해도 재벌과 골목상권의 점유율이 3 대 7이었는데 지금은 7 대 3으로 바뀌었어요. 수많은 소상공인들이 쓰러지는 건 자신이 못나서가 아닙니다.”

‘자전거 도시’는 서민·소상공인의 도시

인씨 뒤에는 따라붙는 직함이 많다. 전국중소상공인자영업자 살리기 비상대책협의회(전국 을 살리기 비대협), 부평 문화의 거리 전 회장, 부평구지속가능위원회, 서울시 전 명예부시장, 인천 자전거 도시 만들기 운동본부 대표 등. 제각기 다른 직함이지만 ‘공동체’라는 키워드가 관통한다. 인씨가 특히 애정을 갖는 것은 ‘자전거 도시 만들기’다. 영혼 없는 자전거 도로 건설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자전거 도시로 대변되는 ‘사람 중심의 도시’에 방점이 찍혀 있다.

“자전거는 공간의 질서를 바꿔놓습니다. 자전거는 사람 중심의 공간을 만들어요. 사람을 중심으로 보다보면 자연스레 보행 약자,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게 돼요. 이러한 구조가 만들어지면 서민과 소상공인이 함께 살기 좋은 공동체로 이어집니다.” 그는 장사의 공간이 소통의 공간이 돼야 한다고 믿는다. “상인은 지역주민이 먹여 살려주는 만큼 그들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할지, 어떤 가게를 운영할지 고민해야 해요. 내 장사를 오래 하기 위해서라도 옆 가게와 더불어 사람 중심의 거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지역주민은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 재래시장을 이용하고, 재래시장은 주민을 위해 기여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자는 얘기다.

이러한 상상은 현실이 됐다. 인씨는 1998년 부평 상인들과 부평 문화의 거리를 만들었다. 대형마트에 맞서 재래시장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만든 거리로 ‘사람이 찾고 싶은 거리’ ‘차 없는 거리’로도 불린다. 사람이 찾고 싶은 공간이 되면 장사도 잘될 것이라는 게 인씨의 판단이었고, 그 결과 선진국에서도 답사를 올 정도로 유명한 곳이 됐다.

그는 부평 안에서 이동할 때는 주로 자전거를 탄다. 페달을 밟은 지 10년이 돼가지만 여전히 서툴다. 그렇다고 자전거를 잘 타기 위해 애써 노력하지도 않는다. 인씨는 자전거가 주는 소소한 행복을 즐긴다. 사람·시장·자연이 어울리는 풍경을 자전거의 속도로 바라보는 게 좋다고 했다.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자전거로 동네를 어슬렁거리다보면 풀리지 않는 고민들의 실마리도 찾게 된다.

요즘 인씨는 을들의 세력화 방안을 찾고 있다. 갑을개혁 투쟁은 법안 개정과 현장 정착 등이 이뤄지지 않는 한 반복되는 ‘논란’에 그칠 공산이 적지 않다. 당장 오늘을 넘기기 힘든 소상공인들은 싸움이 오래가면 버티지 못한다. 설사 싸움을 통해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도 다시 제가끔 밥벌이를 위해 현장으로 흩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인씨는 소상공인 협동조합을 고민 중이다. 대박은 없어도 조금씩 같이 오래 벌며 최소한의 존엄은 유지하며 살 수 있는 유통 생태계를 만들자는 취지다. “을들로 대변되는 사람들이 불안에 시달리지 않고 각자 운명의 주인으로 살 수 있는 상권을 만들고 싶습니다.”

글 김은성 객원기자 frame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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