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7.03 12:55 수정 : 2014.07.03 12:57

영주댐 공사 이전 내성천(위쪽)과 공사 이후 내성천. 모래가 사라진 자리에 자라난 풀들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포클레인에 의해 파괴된 내성천은 강바닥이 낮아지고 수량도 크게 줄어들었다. 그러나 아직 끝난 건 아니다. 영주댐 건설이 중단되고, 내성천에게 배후습지를 돌려주면 강은 다시 살아날 것이다. 박은선 제공
‘내 모래톱에 풀이 자라고 있다! 내 허리에 댐을 지으면 낙동강에 맑은 물과 모래를 수혈하고 있는 나도 죽고, 낙동강도 죽는다.’

자연은 말이 없고 대신 몸으로 보여준다. 내성천이 인간이 알아듣게끔 인간의 언어로 한마디 해주면 좋겠지만 자연은 말이 없다. 톨킨의 판타지 소설처럼, 불의를 참다 못한 산신령 같은 나무들이 번쩍 두 다리를 들고 일어나 한국수자원공사와 삼성물산이 정신 차릴 때까지 혼쭐내주고 댐도 부수면 좋겠지만, 우리 세계에서는 애석하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인간이 저지른 오류에 대해서는 인간이 온전히 그 대가를 치르고 원상 복구를 해야 하는 게 법칙인 모양이다. 그런데 그 대가가 무엇인지, 언제 그 대가를 치르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내성천은 경상북도 봉화~영주~예천을 흐르는 길이 110km의 낙동강 지류인데, 낙동강 본류가 500km 남짓하니 상당히 긴 지류라고 할 수 있다. 내성천은 예로부터 맑은 물로 유명했는데 그 이유는 모래 때문이다. 주변에 있는 산들이 모조리 화강암·편마암층이라는 아주 오래된 지질이라 모래가 많아 옛부터 사천(沙川), 즉 ‘모래강’이라고도 했다. 지율 스님은 ‘모래강 내성천’이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그런데 수자원공사와 삼성물산이 4대강 공사의 일환으로 영주댐을 내성천 허리 중간에 짓고 있다. 옛 영주 사람들은 지금 댐이 생기는 자리를 ‘운포구곡’(雲浦九谷)이라고 불렀다. 얼마나 아름다우면 ‘구름의 나루터’일까. 수자원공사는 내성천에서도 가장 빼어난 부분에 댐을 건설하는 것이다.

말없는 강

4대강 공사는 짧은 기간에 너무 급격한 변화를 일으켰다. 3년 만에 한강·낙동강·금강·영산강 네 강의 본류에 댐이나 다름없는 22개의 보와 3개의 큰 댐을 지었다. 영주댐은 그 가운데 하나다. 2009년부터 낙동강 본류에서 심하게 모래를 퍼내는 바람에, 내성천이 맑은 물과 모래를 보내주지 않으면 낙동강은 회복되기 힘든 상황이다. 자연은 늘 항상성을 유지하려 하고, 강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갑자기 모래를 잃어버린 낙동강을 위해 상류의 내성천은 자신의 살과 같은 모래를 계속 내려보내주었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내성천 상류가 댐으로 막히면서 내성천 본류의 모래톱이 하루가 다르게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낙동강에 1급수를 공급해주던 100km 넘는 금모래 강에서 모래가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 언제부턴가 돌부리가 나오더니 이제 심지어 풀이 무성해지고 있다. 모래강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올해 5월까지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무척이나 가물었던 6월이 지나면서 뽀얀 모래톱을 온갖 잡풀이 덮어버렸다. 내년에도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모래강은 보기 힘들어질지 모른다.

“내 평생 내성천을 끼고 살았지만 강에 풀이 이렇게 많이 난 건 처음 본다. 내성천을 그전에 한 번이라도 와봤던 사람들은 소름이 끼칠 거 같은데….” 예천의 농부 이현부씨는 잠깐 강으로 내려와달라는 부탁에 일손을 놓고, 농촌활동을 온 학생들까지 데리고 내성천 강가로 나왔다가 갑자기 변한 강의 모습에 적지 않게 충격을 받으셨다.

지율 스님은 풀이 무성히 자란 모래톱을 바라보면서 낮은 목소리로 물으셨다. “은선씨, 계속 이렇게 풀이 자라서 내성천이 더는 걸어 들어갈 수 없는 강이 되면 어떻게 할래요?”

할 말이 없었다. 내성천에 내려와서 운 적이 두 번 있다. 내성천 운포구곡에서 나무를 홀랑 베던 때, 수리부엉이가 퍼덕퍼덕 나는 숲이 삽시간에 뎅강 사라지고 아름드리 왕버들이 잘려나갔을 때다. 또 한 번은 지율 스님과 잠시 낙동강 답사를 다녀온 사이 영주시에서 지율 스님 텐트가 있는 동호교 앞 강변을 엉망으로 준설했을 때다. 스님은 “너무 속상해 마요. 앞으로 다가올 일은 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에요”라고 하셨다. 슬프게도 스님 말씀은 거의 틀린 적이 없었다. 강은 더 거칠어지고, 나무를 베는 수준이 아니라 산이 헐려 나갔다. 영주댐 건설을 멈추지 않는다면 앞으로 더 험한 모습을 볼지 모른다.

고향을 지키고 싶은 사람들

4년 넘게 거의 매주 방문했지만, 내성천 모래톱 한가운데서 풀이 무성하게 나는 모습은 나도 처음 본다. 모래강의 항상성이 깨진 것이다. 내성천의 이웃 강인 안동천에 1970년대에 댐이 생기면서 하류에는 모래톱이 사라지고, 병산습지·마애습지가 생성됐다. 내성천도 탄성이 절로 나오는 예쁜 모래강에서 머잖아 습지로 변할지 모른다. 습지도 중요한 생태 요소이지만 내성천 본래의 모래강은 아니다. 모래강은 얕고 풀숲이 많지 않아 걷기 좋고, 아이들도 들어가서 놀기 좋다. 하지만 풀이 많아 들어가기 쉽지 않은 습지가 되어버린다면, 더 이상 예전처럼 맑지 않다면, 이 강을 지키기 위해 어떤 활동을 해야 할까 많은 생각이 오갔다.

나는 4대강 공사 현장 중에서도 주로 낙동강을 상류에서 하류까지 여러 차례 오갔지만, 지역 주민이 공사를 반대한다고 당당하게 나서는 경우를 본 적이 거의 없다. 선비의 고장이니 보수적인 동네니, 경상북도를 그리 부르지만 대부분은 보수가 아니라 자신이 나고 자란 강과 산도 지킬 맘이 없는 그냥 ‘지방 토호 세력’이었다.

‘영남의 젖줄’이라 불리는 낙동강은 상주의 옛 이름인 상락(上洛)의 동쪽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지만, 상주에서도, 아니 낙동강 525km 구간 어디에서도 조상이 물려준 땅을 지키겠다는 농부는 드물었다. 초라한 행색으로 자전거를 타고 강을 답사하는 지율 스님을 ‘개발 반대하는 스님’이라며 홀대하거나 욕하는 사람들은 심심치 않게 보았다. 물론 농사를 지을수록 가난해지는 우리 사회가 농부들이 농사를 포기하고 고향을 등지게 만들었지만, 이산의 고택 주인들조차 고향 지키기를 포기했을 때는 무척이나 실망스러웠다. 우리 사회에는 진보가 아니라 제대로 된 보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와중에 내성천에서 고향을, 선조가 물려준 옥토를 지키겠다는 농민을 만났다. 내성천 최하류 회룡포의 농민 박영환씨다.

박영환- 모래강에, 우리 강에는 이런 게 없는데, 지금 온갖 잡풀이 자랐다. 망초, 명아주, 바랭이… 뭐, 안 난 게 없네.

은선- 강에 이렇게 풀 난 거 본 적 있으세요?

박영환- 처음이지. 모래강은 이러지 않았어. 근래 와서 이리 됐지. 원래 모래가 많은 곳은 영양분이 없어서 풀이 살 수 없는데, 지금 강바닥이 모래가 아니고 땅(펄)이랑 가깝다는 증거야. 불과 몇 년 사이에 모래강 구경하기도 힘들까 걱정이네.

은선- 영주댐을 만들면 이런 변화가 나타난다는 설명을 들으셨나요?

박영환- 하류에서는 영주댐 짓는 것도 몰랐지. 그리고 댐을 만들면 생태가 어떻게 변한다는 사실 자체를 들은 바가 없지.

수자원공사는 내성천 상류에 영주댐을 짓고, 부산국토관리청은 하류에 ‘내성천 정비사업’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두 기관은 지난 10년간 제방 못 만들어 죽은 귀신이 붙었나 싶을 정도로 강에 제방을 남발해왔다. 내성천 정비사업은 내성천 하류 회룡포, 삼강 지역에서 지난 몇백 년 동안 다져온 자연제방을 헐어버리고 콘크리트 제방을 높게 쌓아올린 다음, 멀쩡한 농토와 습지를 잘라 생태공원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이런 수변 공원화 계획은 이미 4대강 본류에서 크게 실패했다.

박영환씨는 부산국토관리청이 마련한 환경영향평가 초안 설명회에 가서 화가 잔뜩 났다. 공무원들은 공사장에 먼지가 나면 물을 뿌리겠다는 둥 엉뚱한 소리만 했다. 박영환씨는 “공사할 때 먼지가 나면 물을 뿌리는 건 당연한 거다. 대체 홍수 없는 강에다 멀쩡한 땅을 깎아서 제방을 왜 만드는지 합리적으로 설명해야지, 이게 무슨 설명회냐”고 따졌다.

“정부에 꼭 필요하면 물론 해야 하고, 주민들이 정말 제방이 필요하다고 했으면 벌써 해달라고 민원을 넣었겠지. 홍수도 안 나는 곳에다 왜 제방을 만들고 남의 멀쩡한 논을 잘라서 공원을 만들겠다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 국토관리청 공무원이 ‘땅을 안 주면 하천구역으로 다 묶어버리고, 땅을 주면 묶이는 데만 하천구역으로 만들고 나머지는 내버려두겠다’고 했다. 이게 협박이고 공갈이지 뭐냐 말이지. 할아버지 때부터 내려온 땅을 이렇게 허망하게 내줄 수 없지. 요 아래 향석 쪽엔 그동안 콘크리트 제방을 몇 번이나 쌓았는지 몰라. 쌓아도 쌓아도 무너진다고. 쓸데없이 제방 쌓을 돈으로 마을을 다 사고도 남았지.”

난데없는 회룡포 정비 사업도 심란하지만, 요즘 심상치 않은 강의 변화에도 박영환씨 부부는 마음이 쓰인다. 마을에서 묻어놓은 양수기가 바닥을 드러낼 정도로 강바닥이 낮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강바닥이 낮아지면 농사지을 물을 쓰기 힘들게 된다. 내성천 영주댐 공사현장 바로 하류인 미림마을에서는 이미 지난해부터 강바닥이 너무 낮아져 농사지을 물이 나오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악순환이 시작됐다. 주민들이 작은 보를 쌓아 물을 가둬달라고 요청해 한 달 전쯤 완공됐지만, 강물은 급속히 탁해지고 보 하류의 수량은 크게 줄어들었다. 지율 스님이 늘 하시는 말씀처럼 ‘강은 시스템’이기 때문에 영주댐을 철거하지 않는 한 내성천 전역의 지하수위는 계속 내려가고, 수량은 줄어들고, 물은 썩게 될 것이다. 이런 강의 순리를 농부 박영환씨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여기 내성천 하류에는 상류 봉화·영주에서 비가 200~300mm 정도 오면 모를까, 아무리 비가 많이 와도 홍수 피해가 난 일이 거의 없지. 안동댐이 생기기 전에는 모래가 쓸려 내려가는 양도 별로 없었는데 안동댐이 생긴 뒤로 본류에 물과 모래가 안 내려오니까 본류 수위를 맞춰주느라고 내성천 유속이 빨라졌어. 더군다나 4대강 공사를 한다고 본류 모래를 많이 채취했으니 내성천이 모래로 수위를 맞춰주느라 모래가 더 많이 떠내려갈 수밖에 없지. 모래 쓸려 내려가는 거 방지한다고, 내성천 하류에 보를 하니 마니 하다가 그것은 취소됐는지 모르겠지만, 한번은 파내고 한번은 보 하고…. 모래 파내면 당연히 강 수위가 내려갈 줄 알 텐데, 그걸 또 모래가 못 내려가게 막고, 또 파내고, 뭐 그게 말이 앞뒤가 안 맞잖아? 4대강 사업을 한 다음에는 유속이 빨라져서 모래가 빨리 내려가. 홍수 한번 나면 모래가 줄어드는 게 육안으로도 보인다니까. 뭘 보고 아느냐면, 강섶 바닥을 포클레인으로 파고 동네에서 쓸 물탱크를 묻었는데, 물이 하도 깊어서 잠수부까지 와서 밑에 자갈을 깔고 작업을 했거든. 그랬는데 지금 물탱크가 이렇게 드러나 지상으로 번쩍 나와 있으니까 그만큼 모래가 없어졌다는 결론이지.”

강과 기억

이번 내성천 답사에는 내성천 하류가 고향인 엄마를 모시고 갔다. 내성천이 아직 본래 모습을 지니고 있을 때 와보고 2년 만의 방문인데, 엄마는 많이 변한 강의 모습을 보고 이제 더 이상 내성천 같지 않다고 안타까워하셨다. 어릴 때 기억이 거의 없다는 엄마는 강에 대한 추억을 물었더니 “내성천으로 흘러 들어가는 작은 개천이 있었는데 그 개천에도 모래가 많이 있었어”라고 짧게 답하셨다. 사실 내성천 근처의 어르신들에게 물어도 강에 대한 특별한 추억을 가진 분이 별로 없다. 강은 공기와 같이 으레 여기 있는 존재였고,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그 존재가 비로소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내성천 삼강까지도 낙동강 하구에서부터 소금배가 올라왔고, 수몰 위기에 처한 금강마을도 회룡포마을도 갯배로 강을 건넜다고 한다. 박영환씨는 강에서 배를 “주우러” 가던 때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강에 대한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 이제 얼마나 남았을까?

“회룡포는 여름에는 배로 강을 건넜고, 겨울에는 다리를 놓아 건너다녔지. 1981년 여름이었는데 갑자기 비가 많이 와서 배가 떠내려간 거라. 당장 아쉬우니까 배를 관리하던 사람이랑 동네 남자들이 배를 찾으러 강을 걸어 함창 퇴강(상주시)까지 갔지. 그런데 못 찾았어. 그랬는데 퇴강에서 풍양까지 오가는 배를 모는 뱃사공이 폐기처분한 배가 있는데 우리더러 필요하면 건져가라는 거야. 강에 사는 사람들 모두 헤엄을 잘 쳐요. 그래서 홀딱 벗고 들어가서 가라앉은 배를 건져올렸지.

그 배를 끌고 다시 내성천으로 거슬러 오는데 밥을 제대로 못 먹어 배가 어찌나 고픈지, 강에 둥둥 떠내려오는 땅콩이니 퍼런 사과 꼭지까지 먹었어. 그런데 삼강에서 회룡포로 배를 끌고 오다가 그만 배가 침몰해버렸어. 왜냐면 내성천은 유속이 빠르고 낙동강 본류는 유속이 느리거든. 우리 마을 배는 뱃머리가 높아서 물이 들이쳐도 배를 넘지 않는데 본류 배는 뱃머리가 낮아서 배가 그만 부서져버리더라고. 그래서 배 없이 집에 돌아왔지. 지금도 마을에서는 젊은 사람들이 밥맛이 있네 없네, 반찬이 이렇네 저렇네 하면 배 찾으러 한번 가봐야 한다고 말해요.”

문제는 ‘홍수 나는 강’이 아니라 ‘홍수 나지 않는 강’

지율 스님과 내성천 활동을 함께해온 지역 주민, ‘내성천 습지와 새들의 친구’ 회원 등 18명이 삼성물산, 국토교통부, 삼안을 상대로 변호사도 없이 내성천 영주댐 공사 중지 가처분 소송을 진행 중이다. 소송의 핵심은 댐으로 인해 내성천의 모래와 물이 흐르지 않는 것에 대한 손실을 입증하는 일이다. 멸종위기종 14종이 사는 강, 그중 먹황새와 흰수마자는 우리나라에서 내성천에서만 발견된다. 이 사실만으로도 공사는 시작돼서는 안 되었지만, 우리 사회는 시작을 막을 수 없는 구조였다. 그러나 지율 스님에게는 소송에 이겨서 댐 건설을 중단시키더라도 훗날 댐을 철거한 다음 이 강의 습지로 무엇을 할지도 걱정이다.

지율 스님은 강을 방문한 한 기자에게 ‘내성천 한 평 사기’ 운동에 대해 설명했다. “만약 댐 건설이 중지되거나 댐을 철거하게 되었을 때, 350만 평 땅에 정부는 뭘 할까요? 그게 더 고민인 거예요. 지금 우리 사회구조로 볼 때 골프장이 들어올지 그보다 더한 개발이 들어올지 아무도 상상할 수 없잖아요. 우리 사회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선호하지 않으니까요. 그럼 누군가 어떤 식으로든 개발을 할 거 아녜요. 그러면 영주댐보다 더 나쁠 수도 있지요. 저는 시스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봐요. 강이 자유롭게 범람하게끔 배려하기 위해, 내성천을 배후습지로 만들고 범람원으로 만들어주기 위해 미리 습지투어를 하고 기록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내성천 한 평 사기 운동도 한 것이죠. 강의 땅을 강에게 돌려주자는 취지예요.”

지금 내성천에서 ‘일어나는’ 일은 사실 세계의 강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댐과 제방으로 물을 다스리겠다는 생각은 강에 대한 인간의 오만함과 무지에서 비롯된다. 지율 스님은 누구에게나 한결같이 “강을 지키려고 하기 전에 먼저 이해하라”고 말한다.

강을 다스리고 전기를 얻기 위해 1900년대 초부터 유럽인들과 미국인들은 댐을 만들기 시작했고, 100년이 지난 지금 그 댐들을 가능한 한 모두 철거하려고 노력 중이다. 미국에서는 8만 개의 댐이 19세기 말부터 건설됐으나 수질 오염, 지하수 고갈 등의 문제로 1936년부터 현재까지 1150개의 댐을 철거했다. 대부분(850여 개)이 근 20년간 철거됐으며, 2013년에만 51개가 철거됐고 올해도 비슷한 수의 댐이 철거될 예정이다. 심지어 미국 정부 산하 개발국에서 댐을 지어왔던 대니얼 비어드는 댐 철거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대형 댐은 생물 종의 절멸과 숲·습지·농지의 손실을 포함해 되돌릴 수 없이 환경을 파괴했기 때문이다.

세계의 큰 강 중 60%가 댐과 배수로에 의해 조각조각 나뉜 것으로 추정되며, 대형 댐으로 인해 수중 생물의 종 다양성, 하류와 상류의 어장과 하류의 범람원, 습지, 강변, 강어귀, 인근 해양 생태계의 혜택을 상실하게 되었다. 대형 댐에 의해 관개된 토지의 20%가 염분과 침수로 손실됐고, 세계 담수 총량의 5%가 저수지에서 증발하고 있다.

강의 땅을 강에게

<강의 죽음>의 저자 프레드 피어스는 “강의 범람은 심장박동과 같아서, 범람을 멈추면 강도 죽는다”고 말한다. 지구온난화로 여름철 비의 양은 예측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홍수를 예방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강에 제방을 쌓아 습지를 없애고 직선화한 뒤 물을 빨리 바다로 내보내는 방법, 즉 강을 배수로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자연의 섭리에 따라 천천히 시간을 보낸 뒤 자연스럽게 빠져나가게 하는 것이다. 과거에 공학자들은 첫 번째 방법을 선호했으나 아무리 큰 배수로를 만들고 강을 넓혀도 홍수는 계속 일어났다. 두 번째 안을 선택하려면 강물이 넘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 네덜란드 네이메헌대학 피에트 니후이스 교수는 말한다. “최근 홍수로 인해 강을 바라보는 생각이 완전히 변화하고 있습니다. 강을 위해 더 넓은 공간을 허락해야 합니다”라고.

2002년 홍수로 유럽 내륙에 많은 이재민이 발생했다. 이때 홍수가 났던 곳들은 모두 습지를 간척하고 사행천을 곧게 직행화한 구간이었다. 이런 작업은 홍수를 없애기는커녕 물의 흐름이 빨라지는 병목 구간 근처에 홍수 피해가 집중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했고, 유럽 관료들은 이 전략이 실패했음을 인정해야 했다. 오스트리아 세계야생동물보호기금(WWF)의 범람원 생태학자 귄토 루트슁거는 “강 주위의 습지와 범람원이 없어진 곳에서 좁은 물길을 따라 많은 물이 부자연스럽게 흘러가면서 더 거세고 파괴적인 홍수가 되었다”라고 말했다.

영국 환경청은 런던의 홍수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제방을 없애고 옥스퍼드 외곽에 10m² 넓이의 옛 템스강 범람원을 복원하기 시작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알프스에서 발원하는 드라바강의 60km 구간을 복원하는 유럽 최대의 강 복원 사업을 벌이고 있다. 강을 넓히고, 버드나무가 있는 배후습지를 만들어주고 있다고 한다. 범람원이 복원되면 1천만m³의 물을 더 가둘 수 있게 돼 폭풍우 때 불어난 물이 알프스산으로 오는 시간을 1시간 이상 늦춰 강 하류 마을을 보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네덜란드는 1990년대 초반 대홍수 이후 국토의 6분의 1을 습지화하고 있으며, 독일에서는 라인강 하구에 1300km²의 범람원을 조성 중이다.

지율 스님과 ‘내성천 습지와 새들의 친구’가 350만 평의 강 습지를 만들자고 하는 제안은 이상적이거나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아닌 ‘예측하기 힘든’ 자연재해를 맞이하는 미래지향적이고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다. 얼마 전 한 방송사에서 <굿바이 내성천>이란 프로그램을 만들어 공분을 샀다. 강이 거칠어졌어도 내성천을 지키는 활동은 이제 시작이다. 내성천의 모래가 다시 깨끗해지고, 더 나아가 우리나라 최초의 강 복원 사례가 되도록 우리는 계속 내성천을 걷고 관찰할 것이다. 함부로 이별을 고하지 말라.

글 박은선 예술디자인 행동그룹 ‘리슨투더시티’에서 활동하며 수유너머N 회원이다. 예술과 행동으로 만든 대항문화 형성에 관심이 많고, 지율 스님과 함께 내성천 지킴이를 한다. www.listentothecity.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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