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7.03 11:50 수정 : 2014.07.03 11:53

6·4 지방선거는 진보정당의 무덤이었나. 장석준 노동당 부대표의 해석은 다르다. 이전 선거와 정성적으로 비교할 때 득표율은 떨어지지 않았다. 돌파구가 필요한데, 그는 ‘세대교체론’을 말한다. 노회찬·심상정이 아닌 젊은 세대를 상징할 수 있는 정치인이 진보정당의 얼굴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겨레 박승화
실패니 패배니 하는 표현은 애써 객관주의의 포즈를 취하는 것처럼 보인다. 궤멸, 파산 정도는 돼야 사태를 직시하는 리얼리스트의 인식론 같다. 진보정당들1의 6·4 지방선거 성적표는 교육감 선거 결과와 대비되면서 더욱 묵시록적인 재앙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169명에서 55명으로, 4년 전과 비교해 당선자 수는 3분의 1로 줄었다. 광역단체장은 1명도 배출하지 못했다. 재선을 노렸던 현역 기초단체장마저 줄줄이 고배를 마셨다. 지역구 광역·기초의원은 물론이고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여온 비례대표에서도 부진을 면치 못했다. 이론의 여지는 없는가.

“창당 1년 된 ‘듣보잡’ 정당치고는 그리 나쁘지 않은 성적표라고 봅니다.”

장석준(42) 노동당 부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서울 종로구에서 시의원 후보로 처음 출마해 6%대의 득표로 낙선했다. 노동당 내부로만 보면 선전이었다. 진보신당에서 지난해 당명을 바꾼 노동당은 이번 선거에서 이갑용 울산광역시장 후보를 포함해 광역단체장 2명, 기초단체장 1명과 광역 지역구 69명, 광역비례 13명, 기초 지역구 25명, 기초비례 2명 등 모두 112명을 출마시켰다. 이 가운데 당선자는 광역의회 의원 1명과 기초의회 의원 6명뿐이다. 득표율은 지역과 비례 모두 1%를 가까스로 넘겼다.

장석준은 2000년 민주노동당 공채 1기 출신으로, 2012년까지 13년 동안 상근 당료를 지낸 진보정당계의 대표적인 소장 이론가다. 민주노동당 부설 진보정치연구소 연구기획국장, 진보신당 정책위의장 등을 역임했다. 2012년 노동당 부대표에 선출됐다. 누구보다 사태를 날카롭고 냉철하게 직시해야 할 그가 오랜 당료 생활 끝에 정신승리법을 깨우치기라도 한 걸까. 이번 선거에서 지역구 후보인 장석준 자신보다 선거 당일 투표 참관인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악수를 거부한 김한울 종로·중구당원협의회 사무국장이 더 유명세를 탄 것도 예사롭지 않다.

“선거를 관리하고 감시해야 할 사람들이 대통령이 왔다고 일제히 기립하는 것이야말로 본분을 망각한 것 아닌가요. 일각에서는 이성적으로는 그럴 수 있지만 여권 표가 결집하는 효과를 생각하면 잘못한 것이라고 하던데, 그거야말로 ‘싸가지 없다’는 비난보다 더 나쁩니다. 정치적 상황에 따라 이성도 후퇴할 수 있다는 태도 아닙니까.”

여담을 뒤로하고 본격적인 인터뷰에 들어갔다.

나·들 이번 선거에서 노동당이 목표한 성적은 어느 정도였나요.

장석준(이하 장)2% 득표였습니다. 득표율 2%는 국고보조금을 받는 하한선이기도 하거니와 정당이 ‘정치적 시민권’을 얻었다고 판단하는 기준이었으니까요. 사력을 다했지만 달성하지는 못했습니다.

나·들- 그런데 성적이 나쁘지 않다니요. 진보정당에 우호적인 사람들 다수는 극단적으로 ‘소멸’이라는 표현까지 씁니다.

장석준(이하 장)= 민주노동당이 2004년 총선 때 화이트칼라 중산층이 주로 거주하는 수도권에서 얻은 득표율이 6~7%였어요. 그 수준에 근접하면 진보정당 지지 기반이 크게 와해된 건 아니라고 봤는데, 이번에 진보정당들 수도권 득표율을 합하면 6.2824%입니다. 물론 진보정당들이 자성해야 하지만, 냉정하게 봤을 때 진보정당이 자기 소멸할 수도 있는 커다란 사태2를 지난 1~2년간 겪지 않았습니까. 이번 선거는 그 사건들을 거친 진보정당들에 대한 첫 번째 대중적 심판입니다. 유권자들이 대단히 온정적으로 심판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너희들, 그래도 살아봐라’ 한 거죠.

나·들- 그렇더라도 4년 전 성적보다는 크게 저조한 것 아닌가요.

장석준(이하 장)= 아닙니다. 이번에 진보정당들이 정당투표에서 받은 득표율을 합치면 9.8%입니다.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받았던 13%, 2012년 총선 11.4%에 크게 못 미친다고 할 수는 없지요. 유권자들이 정말 후한 겁니다. 특히 민주당을 포함해 모든 야당이 참여한 야권 연대로 치른 4년 전 선거와 달리, 이번 선거는 야권 연대의 착시 효과를 걷어내고 치른 선거였습니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이외의 정치세력이 한국 사회에 존재하고 성장하기를 바라는 대중의 열망이 언론이나 제도권에 포착된 것보다 강하다는 의미라고 봅니다.

나·들- 분식회계를 바로잡으면 진보정당 지지율은 예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다는 거군요. 진보정당이 2004년 총선으로 원내 진출에 고무돼 2012년 집권 플랜을 제시했던 것을 상기하면 지난 10년간의 진보정당사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장석준(이하 장)= 박근혜 대통령이 얼마 전 유행시킨 표현이 있습니다. ‘적폐’. 저희는 민주노동당이 절정에 올랐던 진보정당 운동 시기를 1기라고 표현합니다. 세대적으로 386이 주도했고, 운동적으로는 1987년 민주화운동과 민주노조 투쟁 1세대의 성과가 기반이었습니다. 그러다가 2007년 대선과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 과정에서 자기모순과 한계를 드러내고, 그것을 혁파하려는 움직임이었습니다. 문제는 이후 선거 과정에서 진보정당이 제대로 평가나 심판을 받지 않고 민주대연합에 묻어가면서 일종의 착시 효과가 나타났다는 겁니다. 어느 정도 당선자를 배출하니까 내부의 위기가 위기처럼 보이지 않은 거지요. 그러다가 통합진보당 사태 등을 거치면서 적폐가 다시 한번 드러났고요. 과거를 단호하게 정리하지 못했고, 그만큼 새로운 출발도 지체된 것이지요. 과거 민주노동당 때의 영광을 되돌리자는 식의 접근으로는 앞으로도 새 출발이 불가능할 겁니다.

나·들- 요즘 문창극 전 국무총리 후보자의 동영상에 나온 표현대로 하면 허송세월 몇 년 보낸 거네요.

장석준(이하 장)= 하하, 그런가요? 문창극 사관을 적용하면 앞으로 몇 년 더 시련을 겪어야 한다는 이상한 결론이 나는데, 그걸 적용하면 위험할 것 같습니다.

나·들- ‘내부의 위기’라고 말했는데, 위기의 본질은 무엇이라고 봅니까. 진보정당의 대중적 토대가 정체되거나 줄어든 건 분명한 흐름으로 보이는데요.

장석준(이하 장)= 구조적 교착상태에 처한 한국 상황과 다르지 않습니다. 386세대가 주도했던 민주화 열정이나 에너지는 한계에 봉착했고, 오히려 386세대가 기득권으로 보이거나 실제 기득권이 되었습니다. 새롭게 등장하는 세대들은 386에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지요. 결과적으로 새누리당이 상징하는 수구·보수적 구조를 깰 힘이 잘 만들어지지 않았어요. 노무현 정부가 실패하고, 새정치민주연합으로 이어진 민주당이 실패했던 거지요. 진보정당이 그 후속 타자로 등장했어야 하고, 실제 그렇게 등장하겠다고 자임했지만, 자신이 발 딛고 있는 민주노조 세력조차 386세대가 겪고 있는 딜레마에 똑같이 발목이 잡히면서 함께 대양을 떠돌며 방황하는 상황이라고 봅니다.

장석준은 진보정당 안에서 정책 부분을 맡아왔다. 10년 전 민주노동당은 단순히 급진적인 것이 아니라 매우 참신한 정책을 많이 내놓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유권자들의 기억에 이거다 싶은 정책이 드물다. 어떤 이들은 진보정당들의 정책 역량이 낮아져서 유권자 지지도가 오르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진보정당들은 꾸준히 좋은 정책을 제출하지만 유권자들이 무관심할 수도 있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최일선인 기초의회에서 눈에 띄는 활동을 펼쳤던 진보정당 후보들조차 이번 선거에서 대거 낙선했다. 이유가 어디에 있든, 그사이 양극화는 갈수록 심해지고 국민 대다수의 삶의 질은 더 악화돼왔다.

서울 종로구 시의원으로 출마했던 장석준 부대표는 선거 과정에서 가장 기억나는 에피소드로 김한울 노동당 종로·중구당원협의회 사무국장의 ‘박근혜 대통령 악수 거부 사건’을 꼽았다. 그는 “비난받아야 할 행위는 ‘싸가지 없음’이 아니라 참관인들이 선거를 감시하는 본분을 망각하고 대통령 앞에서 기립하고 직무를 태만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뉴시스
나·들- 이번 선거에서 노동당은 어떤 정책을 들고나왔나요.

장석준(이하 장)= 원래 노동정책을 많이 강조하려고 했습니다. 정책 콘셉트도 ‘노동친화적 지역사회’였고, 그 콘셉트로 여러 정책을 종합하려고 했습니다. 생활임금, 생활임금과 연동한 공기업 경영자 임금 제한 같은 것도 있었고, 당연히 복지 정책도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를 거치면서 그 내용을 말하는 방식을 전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복지와 안전을 동시에 강조하는 것이었지요. 구호로 보면 ‘돈보다 사람이다’ 같은 거였습니다.

나·들- 안전과 복지라면 어느 면에서 진보정당보다는 새정치민주연합, 혹은 민주 대연합 구도에 맞는 구호가 아닐까 싶은데요.

장석준(이하 장)- 진보정당 정책의 근본 고민 중 하나입니다. 어떻게 보면 지금 진보정당들의 정책은 공통된 부분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2000년대 초·중반 민주노동당이 만들었던 정책을 여전히 구사하기 때문이지요. 정책을 업데이트하는 데 게을렀다기보다 그때 만들어놓은 정책의 상당 부분이 아직 실현되지 않은 겁니다. 또 하나는, 민주당이 2007년 말 정권을 놓으면서부터 민주노동당의 정책을 상당히 수용한 것도 고려해야 합니다. 앞으로 진보정당 운동이 제대로 새 출발을 하려면 질서 재편도 비켜갈 수 없지만, 그게 제대로 되기 위해서라도 진보정당 정책의 2010년대판을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새정치민주연합과 진보정당의 핵심적인 차이는 자본과의 관계 설정에 있을 겁니다.

나·들- 정책의 차별성이 유권자에게 어느 정도나 소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장석준(이하 장)= 정책으로 승부하는 건 진보정당의 숙명입니다. 그런데 정책이 단순히 공보물에 나오는 글로 표현되는 것은 아니지요. 일상에서 체감되도록 해야 합니다. 한 예로, 이번 6·4 지방선거 때 서울에서 유일하게 진보정당 구의원으로 당선된 노동당 김희서 당선자는 주민들의 서명을 받아 방사능 안전급식 조례안을 제출한 것이 큰 힘이 됐다고 봅니다. 정책과 활동이 그런 식으로 버무려질 때 상승작용을 일으킬 겁니다. 유권자들은 시대정신에 민감합니다. 그래서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캠프조차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내걸 수밖에 없었던 거지요. 박 대통령이 지금 그 시대정신을 댐처럼 가로막고 있는 것은 후대에 역사적 범죄로 준엄한 심판을 받을 거라고 봅니다.

나·들- 노동당과 녹색당의 관계가 궁금합니다. ‘적록’이 노동당 강령에도 들어 있고, 어떤 이들은 두 당이 통합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도 합니다.

장석준(이하 장)= 노동당과 녹색당의 강령이나 정책을 비교하면 80~90%가 공유됩니다. 그러나 노동당원과 녹색당원이 실제 만나 대화를 하다보면 분명하게 다른 게 있어요. 자본주의로부터 이어져오는 근대 산업문명적인 측면을 어느 정도까지 계승해서 변형시킬 것인가의 차이입니다. 정책의 중심도 노동당원은 도시의 쟁점을 강조하는 반면, 녹색당원은 농촌 내지 농촌과 연계된 지방 소도시와 연계된 정책을 강조하는 뉘앙스의 차이가 분명하게 있고요. 같은 조직으로 기계적으로 묶였을 때 창조적 힘이 나타날 수 있을까요. 오히려 기계적으로 평준화될 우려가 있습니다. 우선은 각각의 정치문화를 발전시킬 필요가 있어요. 그러다가 서로 대화하고 소통하는 과정에서 공동집권까지 포함한 가장 바람직한 결론이 만들어질 거라고 믿습니다.

진보정당들과 견줘 이른바 진보 교육감 후보들의 성적표는 눈부실 정도다. 세월호 참사가 영향을 미쳤다는 데는 얼추 합의가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다른 지방선거 결과와 교육감 선거 결과 사이의 메울 수 없는 격차에 대해서는 해석이 분분하다. 앞으로도 많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나·들- 유권자라는 주체들이 내부적으로 분열적인 건 아닐까요.

장석준(이하 장)=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교육감 선거는 기본적으로 정당이 직접 개입하지 않는 구도입니다. 기존 교육계에 존재하는 준정치적인 사회세력이 주된 구도를 만들 수밖에 없고, 새정치민주연합이 오히려 숟가락을 얹는 그림이지요. 교육 이슈는 확연하게 보수와 진보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마치 유럽처럼요. 교육감 선거가 지방자치단체 선거와 다른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적 기반을 갖고 있는 겁니다. 여기에 세월호 사건이 겹치면서 다수의 유권자들이 ‘개혁’ 과제를 추진할 수 있는 선택지를 택한 거죠. 정당 개입을 법률로 차단했기 때문에 의도하지 않은 역설적인 결과가 나왔다고 할 수 있지요.

나·들- 그만큼 유권자들이 탈정치적이라는 뜻 아닐까요.

장석준(이하 장)= 글쎄요. 진보 교육감 당선의 중요한 쟁점 중 하나가 혁신학교인데, 이것이 탈정치적 쟁점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혁신학교야말로 정치적 쟁점이지요. 현재 스웨덴에서는 아이들한테 숙제를 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두고 논쟁을 하고 있습니다. 이걸 처음 제기한 정당이 사민당보다 왼쪽에 있는 당인데, 보수세력은 숙제 내는 걸 금지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거든요. 이게 탈정치적 쟁점인가요? 전혀 아니죠.

나·들- 뒤집어 해석하면 거대 양당 체계가 고착화된 정치판에서 선거제도를 바꿔내지 않는 한 진보정당이 집권하기 어렵다고 볼 여지도 있겠군요.

장석준(이하 장)= 틀린 말이 아닙니다. 민주노동당 때도 나왔고, 현재의 헌법이 만들어진 이후 계속 반복돼 나온 말입니다. 이 자리에서 제가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비약이나 비책을 제시할 수는 없지만, 2000년대 초 어쨌든 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로 전국구 제도를 비례대표제로 바꿔 50석을 확보한 전례가 있습니다. 속도에는 분명 불만이 있지만 틈은 계속해서 만들 수 있습니다. 어떤 임계점에 도달하면, 지금은 도저히 바꿀 수 없을 것 같은 제도도 바꿀 수 있습니다. 그 핵심은 유럽 방식의 정당명부비례대표제를 전면화하는 것이고요.

장석준은 대학을 나왔다. 그래서 ‘학번’이라는 게 있다. 91학번이다. 대학에 입학한 그해 5월 강경대 열사 투쟁 등을 겪으며 학생운동과 진보정당 운동에 눈을 떴다. 386세대에 대한 그의 비판적 태도는 인터뷰 내내 기본 전제처럼 느껴졌다. 그는 세대론적으로 자신을 “386의 끝물 같기도 하고 신세대 전조 같기도 해서 이상한 샌드위치”라고 설명했다. 긍정적으로 표현하면 ‘세대의 가교’일 것이다.

나·들- 올해 초 ‘안녕들 하십니까’ 열풍이 일었지요. 2008년 촛불과 현재 세월호 촛불에서도 보듯,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소통하는 젊은 세대를 주축으로 대의민주주의가 아닌 광장에서 실천하는 직접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움직임이 확산되는 추세 같습니다. 젊은 세대들은 대의정치가 자신의 삶의 태도나 주체적 특성 등과 괴리가 있다고 여기는 건 아닐까요.

장석준(이하 장)= 20세기 초의 시민과 현재 21세기 초 시민을 단순 비교하면, 같은 인류라고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분명한 차이가 있어요. 문자 해독 능력부터 갖춰야 했던 20세기 초의 시민들이 적응했던 민주주의와 엄청난 소통과 지식 능력을 갖춘 21세기 시민들의 민주주의는 질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어요. 과거 대의민주주의의 잔여 정도로 취급받았던 참여적 민주주의가 오늘날 민주주의의 중심적 역할을 맡는 건 필연입니다. 그러나 대의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거리와 광장의 민주주의도 제대로 발휘되기 힘듭니다. 그 예가 2011년 점거운동의 가장 성공한 사례로 꼽히는 스페인의 ‘분노한 시민들’인데, 그 귀결점이 정당 창당이었습니다.

또 출마할 것인가 물었다. 그는 “선거를 거쳐 공직자가 되는 루트가 내 성격에 꼭 맞지는 않지만, 내가 출마했던 종로에서 지역정치가 뿌리내리는 데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당 부대표로서 7·30 재보선에 대응하고 향후 활동을 고민하는 일도 그의 몫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더 멀리 내다보고 있었다.

“저는 이번에 노동당의 20~30대 후보들에게서 미처 기대하거나 예상하지 못했던 정치인으로서의 엄청난 자질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에게 무한한 역량이 있는데 기존 정치 구도나 정치권이 막고 있고, 이것들을 어떻게 뚫는지가 지금 진보정당에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했어요. 30대 이후 새로운 세대의 맏형이라 생각하고 그들의 길을 열어주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자신을 정치인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15년 전 정당 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 그렇게 생각해왔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말투와 표정은 우리에게 익숙한 여느 정치인들의 그것과는 많이 달랐다. 무엇보다 너무 진지했다. 그래서 끝으로 물었다. “자신의 유머 감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썰렁 개그는 곧잘 합니다. 노회찬 전 의원도 ‘썰렁 개그’에서 진화한 케이스이지 않습니까.”

최근 만난 노 전 의원은 예전만 같지 못하더라고 했더니, 이내 표정이 진지해졌다. 장석준은 “질문 자체가 무겁지는 않은데, 약간 정색하고 이야기하겠다”며 말을 이어갔다.

“유머나 문화 같은 것은 세대 변수에서 굉장히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젊은 세대들의 유머나 문화를 체현하고 상징할 수 있는 정치인이 진보정당의 얼굴이 되어야 합니다. 노회찬·심상정 두 분만 해도 1970년대 후반 학번입니다. 전대미문의 소통 능력을 구현하고, SNS를 주로 사용하는 세대의 부모 세대죠. 언제까지 이들이 진보정당의 얼굴이 되어야 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적어도 2016년 총선에서는 진보정당의 얼굴이 바뀌어야 합니다. 급진적으로 말하면 30대까지 내려와야 적어도 진보라고 얘기할 수 있는 정치세력 아닐까요?”

장석준과의 인터뷰는 이처럼 다소 급작스럽게, 그리고 단호한 분위기 속에서 마무리됐다. <나·들>이 ‘오픈 스페이스’ 코너에 싣는 마지막 인터뷰이기도 했다.

인터뷰 안영춘 편집장 jona@hani.co.kr

정리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1 통합진보당, 정의당, 노동당, 녹색당.

2 2012년 총선 때 통합진보당 비례후보 투표 부정 사태와 2013년 이석기 의원의 이른바 ‘RO’(혁명조직)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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