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6.03 10:44 수정 : 2014.07.03 11:14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들리지 않는 이야기에 귀기울이는 일은 과학수사팀 사람들의 몫이다. 망자의 주검은 과학수사를 통해 신원과 사인이 밝혀진 뒤에야 비로소 가족의 품을 찾을 수 있다. 서울 마포경찰서 과학수사팀이 한강에 떠오른 변사체를 수습하기 위해 출동한 모습. 한겨레 박승화
긴다.’(Every contact leaves a trace.) 사무실 문을 열자마자 벽에 붙은 선명한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프랑스의 법의학자 에드몽 로카르가 제시한 ‘로카르의 법칙’이다. 책상 위에 놓인 무전기에서는 시끌벅적한 사건 정보가 끊임없이 쏟아져나온다. 지지직거리는 무전기 잡음과 날카로운 전화벨 소리는 묘한 불협화음을 이룬다. “예, 마포경찰서 과학수사팀입니다!”

서울지방경찰청 마포경찰서 과학수사팀에는 총 6명의 경찰들이 근무한다. 마포서는 서울 지역에서 바쁜 것으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관할구역이 넓은데다 일대 한강다리까지 맡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은 지구대에서 과학수사 요청이 들어오지만 수시로 무전을 듣고 출동할 때도 있다. “변사, 절도, 화재…. 부르면 우린 다 나가. 밤이고 낮이고 시도 때도 없어. 어떤 날은 끼니도 제대로 못 챙긴다니까.” 경력 15년차인 이용순 과학수사팀장의 말이다.

과학수사팀에서 하는 일은 지문 감정, 족윤적 감정, 범행 수법 기록, 증거물 관리 등으로 나뉜다. 과학수사팀이 채취한 지문은 지문자동검색시스템(AFIS)을 통해 범죄자 검거, 지명수배자나 변사자의 신원 확인, 피의자의 범죄경력 조회 등에 활용된다. 족윤적감정시스템(FTIS)은 교통사고 현장의 스키드마크(타이어 문양)나 범죄 현장의 신발 자국을 분석하는 데 쓰인다. 서울지방경찰청에서는 해마다 출시되는 신상품들의 정보와 사진을 일일이 입력한다. 범행 수법에 따라 범죄자의 사진과 정보를 분류하는 범죄수법영상시스템(CRIFIS)도 있다. 범죄가 발생했을 때 같은 수법을 사용한 전과자들을 가려내기 위함이다. 그 밖에 과학수사팀이 수집해온 증거물은 오염되지 않도록 증거물관리실에 밀폐 보관한다.

2000년대 들어 과학수사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일반인들의 관심도 뜨거워졌다. 미국 드라마 시리즈 같은 인기 수사 드라마의 영향이 크다. 문제는 과학수사 정보가 노출될수록 현장 수사가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범죄자가 혼선을 주기 위해 엉뚱한 증거물을 갖다놓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구경꾼들이 “텔레비전처럼 해달라”며 황당한 요청을 할 때도 있다. “사람들은 잘 모르니까 과학수사가 쉬운 줄 알아요. 실제 현장은 드라마 같지 않죠.” 한 과학수사팀원의 지적처럼 범죄 현장은 드라마가 아니다. 마포경찰서 과학수사팀과 동행한 수사 현장은 드라마보다 한층 더 치열하고 인간적인 삶의 기록이었다.

의문의 편지

“거, 왜 자꾸 만지는 겁니까?” 어느 기업체 사무실. 직원들이 원탁 하나를 둘러싼 채 웅성댄다. 이들의 시선은 탁자 위로 흩어진 서너 장의 종이에 집중돼 있다. 컴퓨터로 빽빽하게 작성된 편지다. 몇몇이 편지에 손을 대려 하자 이용순 팀장이 살짝 언성을 높인다. “편지 만진 분들은 전부 인적사항 제출하세요!”

누군가 이 기업에 위해를 가하겠다고 협박편지를 보내왔다. 과학수사팀의 신경은 온통 편지를 보호하는 데 쏠린다. 중요한 증거물이 오염돼서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힘들게 채취한 지문이 관계자의 것으로 밝혀지거나 범인의 지문 위에 다른 지문이 겹치는 경우도 많다. 장갑을 낀 과학수사팀원이 조심스레 편지를 집어 밀폐봉지에 담는다. 증거물을 다루는 동작 하나하나가 신중하다.

현장에서 수거한 편지는 과학수사팀 증거분석실에서 지문 채취 과정을 거친다. 종이류에 찍힌 지문은 특수한 화학처리를 통해 얻을 수 있다. 작업 과정에서 보호장비 착용은 필수다. 증거 분석에 사용되는 화학약품이 대부분 독성물질이기 때문이다. 12년간 과학수사에 몸담은 변근수 경위가 찬찬한 설명 끝에 자신의 경험담을 덧붙인다. “지금은 마스크나 장갑 같은 보호장비가 잘 나오는데 옛날에는 보급품이 열악했죠. 안 좋은 분말도 들이마시고, 화재 감식 현장에 다니다보니 폐가 약해져버렸어요. 3년 전 병원에 가보니 폐기종이 왔다고 하더라고.”

반지하층 도난 사건

“××동 반지하층에 도난 사건!” 밤 9시께, 또다시 출동 요청이 들어왔다. 사건 장소인 반지하층 집 앞에는 벌써 대여섯 명의 동네 주민들이 모여 있다. 지면과 맞닿은 창문 너머로 어질러진 방 안이 엿보인다. 좀도둑이 방범창의 잠금장치 부분만 절단하고 내부에 침입한 경우다. 도난품은 18K 목걸이 하나뿐이다. “저리 잠깐만 나와주세요! 사진 좀 찍게.” 카메라를 멘 과학수사팀원이 현장 주변을 돌며 쉴 새 없이 셔터를 누른다. 구석으로 물러난 주민들의 이야기도 끊어질 줄 모른다. “이 동네만 벌써 몇 집째인지 몰라.” “방범창 바꾸는 데 혹시 알아요?”

과학수사 장비들로 가득 찬 감식 가방이 열렸다. 창문 앞에 자리를 잡은 변근수 경위가 창틀에서 지문을 채취한다. 가변광원장비(빛의 파장을 이용해 범죄 현장에 남은 지문과 족적 등을 탐색하는 장비)가 푸르스름한 빛을 비추자 희뿌연 지문 하나가 형태를 드러냈다. “여기 보면 지문이 있죠? 분명 안에서 바깥쪽으로 만진 거예요.” 베테랑 과학수사팀원의 눈에는 지문의 주인이 어떤 동작을 취했는지까지 훤히 보인다. 지문이 찍힌 부분에는 브러시로 형광분말을 묻히고 젤라틴 소재의 전사판을 붙여 본을 뜬다. 지문 주인을 찾는 과정은 더욱 섬세하다. 과학수사팀원이 일일이 특징을 잡아낸 뒤에야 지문자동검색시스템으로 조회해볼 수 있다.

“저녁에 외출할 때 불을 켜고 다니세요. 주택 밀집 지역에서 불 꺼진 집은 털어가라고 광고하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안의 창문은 꼭 잠그시고요. 방범창을 절단하더라도 문을 열려면 시간이 배로 걸리니까요.” 이용순 팀장이 피해자를 따로 불러 단단히 일러둔다. 비교적 침입이 쉬운 반지하층 집 창문은 도둑들의 단골 표적이 된다. 폐회로텔레비전(CCTV)이 없고 순찰차도 못 들어오는 좁은 골목에서는 이웃끼리 서로 감시해주는 수밖에 없다. 동네를 한 바퀴 둘러보던 팀장이 한마디 내뱉는다. “요즘 사람들이 남의 일에 너무 신경을 안 써. 옆집에 유리창이 깨져도 모른다니까.”

임대아파트 변사 사건

고요한 아침 시간대의 ○○아파트. 102동 904호의 활짝 열린 현관문이 사건 현장을 알린다. 복도에는 구경꾼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형사들이 서성이고 있다. “아들이 아버지가 화장실 가는 걸 보고 잠이 들었대요. 근데 아침에 일어나보니까 화장실 문이 안 열리더래. 쓰러져 있는 사람 발에 걸려서 말이야. 돌아가신 거지.” 강력반 변사(變死) 담당 형사의 사건 보고가 과학수사팀을 맞이한다.

비좁은 공간에 들어찬 세간살이 틈으로 이불에 덮인 주검의 형체가 보인다. 변사 현장에서는 검안의사와 과학수사팀이 함께 활동한다. 과학수사팀원은 주검의 지문을 채취하고 검안의사는 주검의 상태를 검안한다. 고인이 앓던 지병이 무엇인지, 주검에 외상은 없는지 꼼꼼히 따져야 한다. 검안을 통해 자연사 여부가 밝혀지기 때문이다. 자연사 판정을 받은 주검은 바로 가족에게 인계된다. 사망 원인이 불분명한 경우에는 부검 같은 추가 조사가 뒤따른다.

문 밖에서는 굳은 표정의 유족들이 장례식장을 문의하고 있다. 형사들이 가까운 병원을 몇 군데 추천해주자 더 저렴한 곳은 없느냐는 물음이 돌아온다. 임대아파트에 사는 유족에게는 장례비용도 큰 부담이다. 이용순 팀장은 비슷한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한다. “유족이 장례 치를 돈조차 없을 때가 있거든. 그러면 우리가 장례식장에 최소비용으로 해달라고 부탁해. 그것도 안 될 때는 구청 사회복지과에 요청해서 행정 처리를 거치면 나라에서 장례를 치러줘. 가족한테는 어디에 안치돼 있다고 통보해주고.”

인간의 죽음마저 돈을 빼놓고는 이야기가 안 된다. 빈곤한 지역이나 임대아파트에서는 고독사한 변사체도 자주 발견된다. 대부분 생활고 탓에 가족과 떨어져 사는 사람들이다. 한번은 혼자 사는 남성이 세숫대야에 머리를 박고 익사한 사건도 있었다. 세수를 하던 중 지병 때문에 정신을 잃은 것이다. 주변에 돌봐주는 사람이 없어서 생긴 사고다. 길에서 사망한 노숙인의 주검을 인계할 때면 왜 찾아왔느냐며 정색하는 가족도 있다. “그래도 가족인데…. 돌아가신 분이 가족을 얼마나 그리워했겠어. 제사라도 지내달라고 사정은 하지.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어.”

한강 변사 사건

오후 1시쯤, 대낮의 한강 둔치는 언뜻 보기에 평화롭다. 잔디에 누워 햇살을 만끽하는 연인들, 점심시간에 바람을 쐬러 나온 직장인들, 강가에서 나물을 뜯는 아주머니들도 보인다. 평화로운 정경들 사이로 과학수사팀이 등장하는 순간, 상황은 달라진다. 가까운 곳에 비극의 현장이 있다는 신호다. 이들이 멈춰선 수상택시선착장에는 주검 한 구가 하얀 천에 덮인 채 누워 있다. 한강 투신자살 사건이다.

마포경찰서 과학수사팀에는 익숙한 현장이다. 5개의 한강다리를 관할하다보니 많을 때는 하루에 대여섯 구씩 주검을 수습한다. “새벽 2시25분께 마포대교에서 투신하는 것을 본 목격자가 있는데… ‘생명의 전화’로 신고를 해서 목격자 인적사항이 전혀 없다네. 신고자 이름이 그냥 ‘생명의 전화’로 돼 있대.” 형사가 설명하는 동안 과학수사팀원이 하얀 천을 들추고 현장 사진 몇 장을 찍는다.

지문 채취와 검안은 마포경찰서가 지정한 ㄱ장례식장에서 이뤄진다. “신분증은 없고? 신발은 어디다 벗어놨나?”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 사망자는 기껏해야 30대 초반으로 추정되는 남자다. 남자가 마지막 순간까지 지니고 있었던 것은 주머니에서 나온 550원이 전부였다. 간략한 육안 검시가 끝나자 과학수사팀원이 나서서 지문을 채취한다. 마른 나뭇가지처럼 앙상한 손을 정성스레 펴서 손가락마다 스탬프를 바른다. 백지에 열 손가락의 검은 지문이 찍혔다. 고인이 마지막으로 세상에 남기는 흔적이다.

“내 손을 거친 주검이 1년에 100구라고 쳐봐. 그럼 15년이니까 1500구 아니야? 그 이상은 되지.” 이용순 팀장은 변사체의 지문 채취 분야에서 알아주는 전문가다. 이달 초에는 세월호 참사 현장에 파견되기도 했다. “가서 보니까 남 일이 아니더라고. 팽목항에 가면 노란 리본에 희망 메시지가 적혀 있는데 가슴이 아파서 다 읽어보지도 못했어. 검안소에서도 다들 울어. 법의관도 울고, 검사도 울고…. 한 사람이 울면 다 따라서 우니까 일이 진행이 안 되는 거야. 아이들이 구명조끼 입은 채로 올라오는 걸 보면 미치겠더라고. 구명조끼를 내 손으로 잘라내는 심정은 오죽하겠어. 어떨 땐 한 끼도 못 먹고 계속 일하는데 누구 하나 불평이 없어. 빨리 수습해서 가족 품으로 돌려보내야지.”

내가 한다는 것, 내가 했다는 것

“에이즈라는데요.” 밖에서 전화 통화를 하던 형사가 뜻밖의 소식을 전했다. 비슷한 인상착의의 아들을 찾던 아버지와 연락이 닿았던 것이다. 검안의사의 반응은 무덤덤하다. “전에 에이즈 환자인 줄 모르고 피범벅을 해서 부검한 적도 있었는데 뭘. 사망하면 감염률이 또 확 떨어져요. 어차피 복불복이야. 지난달에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직원들이 집단으로 결핵에 걸린 거 아시죠?” 직업적으로 사체를 접하는 사람들에게 감염은 일상적인 위험이다.

“위험해도 어쩌겠어요. 이게 우리 직업인데. 사람이 죽으면 우리도 슬퍼요. 슬퍼도 안 슬픈 척해야 하고, 무서워도 안 무서운 척해야 하고…. 우리도 감정노동자 아닌가? 알아서 스트레스를 푸는 수밖에 없죠. 이게 우리 직업이니까.” 직업의 고충을 묻는 질문에 경력 5년차인 신정민 경사가 답한다. “심하게 부패한 주검도 많이 봐요. 큰 사고가 나면 빗자루로 주검을 쓸어담을 때도 있어요. 내가 안 해도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죠. 그래도 내가 한다는 자부심이 있잖아요. 그걸 내가 한다는 것, 내가 했다는 것.” 송영철 경위가 명쾌한 한마디로 대화의 마침표를 찍는다. 오후 6시쯤에는 한강 변사체에서 채취한 지문의 조회 결과가 나왔다. 사망자는 아버지가 애타게 찾던 30살의 박아무개씨였다.

해질 무렵의 마포대교 북단. 젊은 에이즈 환자가 강물에 몸을 던진 곳이다. 자전거 한 대가 휙 지나가자 난간에 설치된 센서등이 차례대로 켜진다. ‘당신의 얘기’ ‘잘 들어줄 거예요’ ‘자, 당신의 얘기’ ‘한번 해봐요’ 다시 하나둘 힘없이 꺼지는 자살 방지 문구들의 끝에 SOS가 있다. 역설적으로 죽음의 소식을 전해온 ‘생명의 전화’다. ‘지금 힘드신가요?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드리겠습니다.’ 세상에는 들리지 않는 이야기를 파헤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증거 한 점이 말하는 단서, 사건 현장이 전하는 삶의 아우성, 망자의 주검이 고하는 사연. 아무도 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들, 바로 과학수사팀이다.

글 김효정 객원기자 genu2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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