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6.03 10:34 수정 : 2014.07.03 11:14

이제 막 첫발을 내딛는 ‘모듈러 주택’은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 무사히 둥지를 틀었다. 모듈러 주택은 주거 사각지대에 놓인 청년들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이지희
오토바이 한 대가 건물 앞에 멈춰선다. 곧이어 번쩍거리는 철가방이 눈에 들어온다. 짜장면 배달을 위해 자동문 앞에 선 배달부는 익숙하지 않은지 인터폰을 몇 차례 눌렀다. 트레이닝복을 입은 학생이 내려와 짜장면 한 그릇을 들고 올라간다. 이번엔 어두운 복도에 불이 켜졌다. 주광색 불빛 사이로 남학생 한 명이 밖으로 향하는 걸음을 재촉했다. 신호를 기다리는 그의 입에는 꽈배기 하나가 물려 있었다. 공릉동에 위치한 국내 최초의 ‘모듈러 기숙사’ 앞 풍경이다. 빵 한 조각, 짜장면 한 그릇. 혼자 사는 학생들이 저녁을 때우는 방법도 각양각색이다. 하지만 이내 빵 한 조각과 짜장면 한 그릇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대학생들의 고단한 삶이 눈앞에 선연하게 그려졌다.

집들이 차곡차곡… 3개월 만에 뚝딱

서울 노원구 공릉동 657-7.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공터였던 이곳에 대형 트레일러가 왔다갔다를 반복하더니 약 3개월 만에 번듯한 건물이 들어섰다. 총 4층으로 이뤄진 이 건물은 대학생을 위한 공공 기숙사다. 공릉동 기숙사의 첫인상은 거대한 장난감 블록 같았다. 노란색의 상자 모형 가구가 차곡차곡 쌓인 모양이 꼭 닮았다.

2012년 5월 노원구청은 서울시에 구유지를 활용한 대학생 희망 하우징 건립을 제안했다. 처음부터 모듈러 공법의 기숙사를 계획했던 것은 아니다. 서울시에서 다양한 유형의 임대주택 공급 사업의 일환으로 구유지 활용을 고민하다가 시범사업으로 모듈러 공법 기숙사를 채택했다. 2013년 11월 공사에 착수한 기숙사는 3개월여 만인 2014년 2월에 완공됐다. 2월25일부터 실입주가 시작된 총 43가구의 기숙사에는 5월 현재까지 공실이 2곳 남아 있다. 활발한 홍보도 없었을뿐더러 입주 조건도 까다로운 편이지만 예상외로 학생들의 관심이 높았다.

공릉동 모듈러 기숙사의 입주 조건은 1~6순위로 구분된다. 1순위는 본인이 기초생활수급자이거나 수급자 자녀로서 서울제외지역 거주자여야 하고 서울 소재의 대학교에 재학 중이어야 한다. 서울 외 거주 학생이 우선 배정되며 수급자 자녀, 차상위계층 자녀, 도시근로자 월평균 소득 70% 이하 세대 자녀 등의 순으로 입주자를 선정한다. 관련 서류를 SH공사에 제출하면 입주 절차가 이뤄진다. 계약은 기본 2년, 1회에 한해 2년 연장이 가능하다. 1학년 입주자의 경우 4학년까지 거주가 가능하다. SH공사와 계약이 완료되면 월세 및 관리비 징수, 시설 유지·보수 등의 관리는 각 권역에 위치한 SH공사 통합관리센터에서 전담한다. 일종의 관리사무소 역할을 하는 셈이다. 학생들의 요구 사항이나 불만 사항도 통합관리센터에서 담당한다.

월 10만원 이하… 가난한 대학생의 보금자리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부는 5월의 밤. 이제 막 과외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귀가하던 김난영(23·가명)씨와의 첫 만남이 이뤄졌다. “무슨 일이신데요?” 여느 학생들처럼 난영씨도 낯선 이의 등장에 경계심을 숨기지 않았다. 모듈러 기숙사 완공 이후 많은 언론사가 이곳을 방문하면서 학생들의 경계심은 더 깊어졌다. 더 분명히 말하자면 이들에게 자꾸 귀찮은 일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이날 인터뷰는 모듈러 기숙사 1층에 위치한 ‘마을과 마디’ 북카페에서 진행됐다. 구에서 운영하는 마을 공동체 개념의 카페지만 가격은 저렴하지 않아서 난영씨는 이곳을 자주 찾지 않는다고 했다.

“사실 처음엔 이상한 사람인 줄 알았어요. 요즘 멀쩡하게 생긴 사람들이 자꾸 뭘 믿으라고 돌아다녀서. (웃음)” 시원한 음료수를 한 모금 들이켠 뒤 비로소 난영씨 얼굴에 앳된 미소가 걸렸다.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컴퓨터공학과 4학년. 어색한 인사와 통성명을 끝내고 우선 난영씨의 입주 과정에 대해 물었다. “제가 일란성 쌍둥이예요. 저는 이 기숙사에 대해 잘 몰랐거든요. 원래는 학교 기숙사에 살았어요. 그런데 이번에 기숙사 입주 자격이 안 돼 언니 학교 주변인 서울여대 근처 기숙사를 알아보고 있었거든요.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언니가 여길 알려줘서 구할 수 있었죠.” 난영씨는 매월 기숙사비로 가장 저렴한 7만5천원을 낸다. “저는 수급자라 가장 싸요.” 다소 민감한 질문에 ‘혹시 불편하지는 않을까’ 했던 우려는 그녀의 망설임 없는 대답에 말끔히 씻겨 내려갔다.

난영씨는 기초생활수급자 가정 자녀다. 부모가 학비를 대줄 형편이 못 되지만 수급자라 전액 장학금이 지급된다. 학비 부담은 던 셈이다. 난영씨의 언니도 마찬가지다. 난영씨가 다니는 서울과학기술대학은 기숙사 입주를 성적순으로 받는다. 대학교에 입학해서 3년 동안 기숙사에서만 살았는데 이번엔 아쉽게 떨어졌다. 난영씨 언니가 다니는 서울여대는 수급자의 경우 신청만 하면 입주가 가능한 시스템이다. 편하게 머물던 기숙사에 들어가지 못한 게 아쉽지만 그래도 난영씨는 공릉동 기숙사로 옮기면서 생활비를 많이 줄일 수 있었다. “우리 학교 기숙사비는 한 학기에 120만원이에요. 여기에 식대가 포함돼 있는데 저는 사실 학교에서 밥을 안 먹을 때가 많거든요. 그럼 돈 아깝죠.” 한 달 생활비는 얼마나 될까. “월세 7만5천원에 가스비·전기요금·수도요금을 포함한 관리비가 3만원 내외로 나와요. 원래는 15만원을 예상했는데 그보다는 적게 나오더라고요.”

모듈러 주택의 장점은 많이 알려져 있지만 실제 거주하면서 느꼈던 불편함은 없는지 궁금했다. “여기가 도로 주변이라 외부 소음이나 진동 같은 거 말고는 딱히 불편한 건 없어요. 혼자 사는 데 좁거나 불편하진 않아요. 여름에 더울 것 같긴 한데 아직 잘 모르겠어요. 겨울에 단열은 잘돼서 춥지 않고 괜찮았어요. 원룸에 살았던 친구들은 훨씬 낫다고 해요. 일단 가격이 워낙 싸니까. 공용시설은 식당, 냉장고, 취사장. 세탁기 2대가 있는데 이용자가 그다지 겹치지 않아서 불편하지는 않아요. 다만 냉장고는 하나 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외에도 건물 외부에 있는 쓰레기장이나 공동시설 공간의 위생 문제는 더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해 보였다.

저녁은 먹었는지 묻자 난영씨는 “아까 빵을 먹었다”고 답했다. 불현듯 그녀를 만나기 전에 1층에서 조우한 남학생이 떠올랐다. 빵 한 조각을 우물거리며 기숙사를 나서던 모습이 난영씨와 데자뷔를 이뤘다. 늦은 밤까지 이어지는 인터뷰 탓일까, 부실한 저녁 탓일까. 난영씨의 얼굴에는 깊은 피로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녀가 들려준 하루 일과는 예상보다 더 빡빡했다.

“오늘도 과외를 하고 왔어요. 일주일에 3번씩 가거든요. 공릉시장 근처에 사는 중학생을 가르쳐요. 재작년부터 가르쳤던 학생이라 좀 싸게 받는 편이에요. 학교에서는 근로를 해요. 시급은 이번에 올라서 8천원 정도.” 생각보다 높은 시급에 놀라 금액을 재차 확인했다. “일반 학교 근로랑은 조금 달라요. 장학재단과 연계해서 하는 국가근로 장학금 형태거든요. 저는 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해요. 일반 아르바이트보다 훨씬 낫죠. 힘은 덜 들고 자기 시간도 쓸 수 있고. 학교 수업 시간을 제외하고 일주일에 20시간까지 할 수 있어요.” 아무리 편한 일이라고 해도 취업 준비를 해야 하는 난영씨에게는 부담일 수밖에 없다. “학교 공부나 취업 준비를 할 시간이 부족하지만 어쩔 수 없죠. 취업 준비를 해야 하는데 다른 동기들처럼 하고 있지는 못해요. 동기들은 인턴도 하고 그러는데.”

졸업하면 자격 상실… 청년 주거 해결 키워드

이제 4학년인 난영씨는 계약이 끝나면 이 공간을 떠나야 한다. 당장 졸업이 1년도 남지 않은 난영씨의 언니는 더 급한 상황이다. 앞으로 주거지에 대한 고민이 있을 게 분명했다. “처음엔 언니랑 같이 살려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하는 대학생 전세 임대주택을 알아봤는데 기간을 놓쳤어요. 보증금 개념의 전세금을 LH에서 대주고 거주자가 월세처럼 얼마를 내는 방식인데 대학생밖에 신청을 못해요. 기숙사를 나오게 되면 집을 구해봐야죠.” 대학생 신분도 아닌, 직업도 없는 청년층은 졸업과 동시에 주거 사각지대에 놓일 수밖에 없다. 난영씨는 이런 청년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주택협동조합에 대해 알고 있을까. “들어보긴 했는데 자세히 알아보지는 않았어요. 고향은 대전이지만 앞으로 취직해서도 계속 서울에 살고 싶은데 사실 좀 막막해요. 이 기숙사에 최대 2년까지 있을 수 있으니까, 지금 1년은 구직활동을 하고 남은 1년은 천천히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요? (웃음)” 미래에 대한 불안함인지, 막연한 희망인지 모를 미묘한 감정이 난영씨의 얼굴을 스쳐지나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뜨거운 감자였던 ‘행복주택’에 대해 말을 꺼내자 조용했던 난영씨의 목소리가 제법 커졌다. “들어봤죠, 뉴스도 보고. 집값이 떨어진다고 반대하는 건데. 집을 못 가진 사람이 많고, 집을 가진 사람만 여러 채를 가진 게 지금 구조잖아요. 그런 사람들이 너무 욕심을 부리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저렴한 임대주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흐름은 자연스레 청년들이 원하는 주택 정책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서울에 거주하는 난영씨는 더욱 서울시의 주택 정책에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마침 6·4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이라 난영씨도 서울에서 투표를 하는지 물었다. “주민등록상 주소가 대전이라 서울시장 투표는 저랑 상관이 없죠. 근데 앞으로 제가 직장을 구하고 계속 살 곳이니까 서민들의 고충을 잘 이해하는 분이 정책을 만들고 추진해야겠죠. 저처럼 집 없고 힘겹게 사는 대학생과 사회 초년생들을 위한 주택 정책이 계속 이어졌으면 해요.”

이제 걸음마… 제도 보완·기술 표준화 시급

난영씨의 서울살이는 팍팍하다. 아르바이트와 학점 관리, 취업 준비까지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다. 그나마 다행인 건 모듈러 기숙사로 들어오면서 전보다 저렴한 생활비로 지낼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듈러 기숙사의 공동생활 공간. 이지희
짧은 공사 기간과 단순한 공정, 영구성과 이축 가능성, 안정성과 친환경성…. 모듈러 주택에 붙는 장점은 한두 가지에 그치지 않는다. 그럼에도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큼 공릉동 모듈러 기숙사는 국내에선 아직 생소한 건축 공법이다. 싸고 편리한, 게다가 내구성까지 인정받은 주거 형태임에도 모듈러 주택이 이제야 주목받게 된 이유는 뭘까. “우리가 지금 말하는 모듈러 주택의 정확한 명칭은 ‘공업화 주택’입니다. 이와 관련한 법은 1993년부터 있었죠. 그런데 공업화 주택에 대한 세부적 기준이 2010년부터 생겼습니다. 세부적 기준에 의해 공업화 인증을 받은 회사는 모듈러 주택을 건설하는 4곳 중 2곳입니다. 사실상 이제 시작인 셈이죠.” 공릉동 모듈러 기숙사의 발주처인 SH 임대주택 건설2팀 배양수 팀장은 이렇게 답했다.

배양수 팀장은 모듈러 주택 공급의 제약 요인으로 두 가지를 꼽았다. 관련 제도 미흡과 제품의 표준화 문제가 그것이다. “입찰제도의 문제가 가장 커요. 하나 예를 들자면 입찰제도 중에 물품 구매 방식이란 게 있어요. 모듈러 주택을 구성하는 구조재, 마감재, 가구류 등을 통틀어서 하나의 물품으로 조달청에 등록하는 방식입니다. 입찰을 하려면 등록한 업체들의 기술이 같아야 하는데 지금 모듈러 공법을 쓰는 업체 4곳의 기술력이 다 다르거든요. 거기다가 제품이 항상 똑같아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건물 대지 형태가 달라서 평면 자체가 똑같을 수 없어요.” 아직 시행 초기라 업체마다 표준화된 기준이 없는 것도 문제다. “입찰, 도면, 시공, 설계, 운반 등 전반적인 과정이 표준화되지 않았어요. 사업 과정 속에 계속 문제점을 찾아야죠. 그 문제점을 해결하려면 반복해서 시행착오를 겪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해외에서는 이미 모듈러 주택이 저렴하고 안전한 대안 주택으로 각광받고 있다. 유럽과 북미 지역은 1950년대부터 기술 개발을 시작했다. 영국은 울버햄프턴 지역에 25층짜리 대학생 기숙사를 완공했고, 미국도 뉴욕에 32층 높이의 모듈러 주택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아직 4층 이하의 소규모 주택 보급에 머물러 있다. “고층이어도 안정성이나 구조적 문제는 없습니다. 다만 비용이 문제죠. 내화 기준이란 게 있습니다. 불났을 때 쉽게 타지 않게 고온에 필요한 강도를 유지하면서 견디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나라는 내화 기준이 꽤 까다로워요. 4층까지는 1시간 내화, 5~12층까지는 2시간 내화입니다. 그 2시간을 맞추려면 주요 구조에 내화 페인트를 칠해야 하는데 원가가 많이 올라갑니다. 5층부터는 내화 기준 때문에 대량생산을 해도 원가가 절약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모듈러 주택과 같은 다양한 임대주택을 공급받는 미래는 요원한 것일까. “7월에도 영등포 지역에 쪽방촌 임대주택 시범사업이 계획돼 있습니다. 수서, 가양지구에도 모듈러 임대주택을 지을 예정입니다. 이런 사업이 계속해서 생기면 업체들의 자체 기술력도 쌓이고 원가도 점차 절약되지 않겠습니까. 아직 비용이 많이 들긴 하지만 짧은 시간에 품질 좋은 건축물을 짓는다는 게 모듈러 주택의 가장 큰 장점이죠. 요즘 건설 현장에는 한국인을 찾아보기가 어려워요. 일할 사람도 점차 줄어들고 있습니다. 인건비만 계속 올라가는 거죠. 공장에서 만드는 모듈러 공법을 활용하면 인건비 부담을 줄일 수 있고 공사장의 소음이나 먼지도 줄일 수 있습니다.”

“월세 내랴 굶고 안 해본 게 없네. 이래 힘들라꼬 집 떠나온 것은 아닌데 점점 더 지친다. 이놈에 서울살이.” 인기밴드 ‘장미여관’의 노래 <서울살이>의 한 대목에는 이 시대를 힘겹게 살아가는 청춘들의 애환이 그대로 녹아 있다. 노래 가사처럼 ‘삼포세대’ ‘88만원 세대’로 표상되는 2030 청년들의 서울살이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이제 막 첫발을 뗀 모듈러 주택은 미래 주거 서민들을 위한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인터뷰를 마치고 서울 강남의 빽빽한 아파트 숲 사이를 지나치는 동안 난영씨의 간절한 바람이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글 이지희 객원기자 amour.fat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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