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12.29 01:16 수정 : 2013.01.22 18:33

곽현화 / 박승화 기자
 나는 1981년 3월 2일생, 세는 나이로 현재 서른두 살이다. 나이를 잊고 사는 내가 가끔 이렇게 ‘커밍아웃’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면 다시금 내 나이가 각인된다. 32살.

 솔직히 너무 놀랍다. 지금 내 나이에 우리 엄마는 나를 낳으셨다는 사실이. 나도 누군가의 부모가 되고, 누구의 부인이 될 수 있는 나이니까 말이다.

 서른두 살이 되기까지 나는 누구의 무엇이었을까? 나는 어떤 존재로 살아온 걸까?

 부산에서 태어나 엄마, 아빠에겐 늦둥이었고, 언니 오빠에겐 등교할 때 손을 꼬옥 잡고 데리고 다녀야 할 아기 같은 동생이었고, 초등학교 때부터 반장 부반장 등 학교활동은 무조건 열심히 해서 부모님께 이쁨받고 싶어 했던 욕심 많은 아이였고, 잘 다니던 부산대학교에서 갑자기 부모님 몰래 휴학을 하고 학교 다니는 척하며 완전 범죄를 꿈꿨던, 친구들 사이에서는 용감한 또래였고, 스무 살 때는 헤어지자고 하는 첫사랑 남자친구 집 앞에서 밤새 울며 초조하게 기다렸던, 그 남자에겐 스토커 같은 여자친구이기도 했고, 대학 때 우연히 들어간 연극 동아리에서 미친 듯이 연극하고 밤새 술 마시다가 시험칠 때 답안지에 교수님께 사죄의 편지를 쓰던 골칫거리 제자이기도 했다.

 그랬던 내가 스물네 살 때 방송에 입문했다. 그때부터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남들은 청소년기에 했을지도 모를 고민을 뒤늦게 시작한 셈이다. 그런데 누가 시작이 반이라고 했던가? 고민을 시작했지만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반의 반도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곽현화 / 박승화 기자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욕심을 버렸다 

 단지 주어진 일을 닥치는 대로 하고, 텔레비전에 비친 나의 외모가 어떤지를 고민하고, 조금이라도 나의 존재를 알아주는 누군가가 있으면 열광하다가 그렇지 않으면 실망하면서 그렇게 20대를 보냈다. 그때 내가 본 세상은 재미있다가도 재미없었다. 무언가 있을 것 같아 앞으로만 전진하다가 앞에 있는 유리막이 있는지도 모르고 머리를 부딪쳤다. 그리고 주저앉아 그저 슬퍼하다가, 또 다른 길로 전진하기 위해 자신을 추스르다가 우울해 하기도 하고….

 그때 나의 옷차림과 언행, 미디어에 비치는 나의 존재는 예쁠 때도 있지만 가끔은 숨고 싶을 정도로 부끄럽기도 했다. 노출증 환자, 막말 연예인, 관심병자, 학벌 팔아 연예인이 된 여자….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여러 가지 타이틀로 누군가의 무엇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 나는 많이 변해 있었다. 일을 하다 보면 가끔 내가 알고 있는 내가 아니라 움츠러들고 잔뜩 주눅이 든 자신감 없는 내가 튀어나오기도 했다. 그럴수록 여자라는 사회적 소수자, 게다가 남들의 눈에 띄고 입에 오르내리는 연예인이라는 직업을 의식해, 사람들이 말하는 어떤 기준에 적합한 사람이 되려고 나를 몰아붙였던 것 같다.

 하지만 그건 내게 질곡이었다. 20대 후반쯤부터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심각하게 들었다. 이 일은 나의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나를 조금씩 흔들고 있었다. 나는 누군가의 존재로 살기 싫었던 것이다. 꼭 집어 말하자면 내가 아닌 나의 모습으로 살고 싶지 않았다는 말이다.

 견딜 수 없을 지경에 도달했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닌 가짜의 내가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내가 원하는 것, 내가 말하고 싶은 것, 내가 분노하는 것,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모든 것들을 감추고 가짜인 모습으로 살아 갈 수 있을까?

 계기는 뚜렷이 기억나지 않는다. 어느 날 꾸게 된 꿈 때문인지, 우연히 읽게 된 책 때문인지, 어떤 사건과 사람들 때문인지….

 여하튼 어느 순간 나는 포기하게 되었다. 내가 가진 욕심이 나를 가로막고 숨 쉴 수 없게 만든다면 그 욕심을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고, 모든 일에 성공하고 싶고, 멋지고 쿨한 모습을 보이고 싶은 나의 욕심이 오히려 나를 불행하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나는 야한 옷을 입고, 생각 없이 말을 하고, 관심받기 위해 미친 듯이 애쓰는 사람이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부정하고, 나 자신을 감추고 꾸미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내 욕심을 포기했다. 포기한 지금은 어떠냐고?

 욕심을 포기하고 난 지금, 나는 내 일이 너무 좋다. 그리고 나에 대한 모든 시선과 평가를 긍정하고 있다.

 

 내가 아닌 가짜의 모습으로 살지 않겠다 

 내가 노출증 환자? 글쎄. 난 섹시한 옷이 잘 어울리는 내가 너무 좋다. 그리고 남의 시선에 신경쓰지 않고 기분에 따라 마음껏 옷 스타일을 골라 입을 수 있는 나의 자유와 바디(!)를 사랑한다. 그런데 내가 생각해도 가끔 환자 같을 때가 있기는 하다. 그럴 땐 너무 뭐라고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노출증도 병인데, 아픈 사람한테 뭐라고 하면 서러우니까. 크크크.

 곽현화는 막말 연예인? 맞다. 나는 막말 연예인이다. 옳은 건 옳다, 나쁜 건 나쁘다라고 말하는 게 막말이라면 난 기꺼이 막말 연예인이고 싶다. 노동자, 소수자, 위안부 할머니 얘기에 눈물 흘리고 돕고 싶은 게 종북이고 빨갱이라고 비난받을 일이라면 나는 종북, 빨갱이라고 불리는 게 두렵지 않다. 내가 생각하는 것을 눈치 보지 않고 말할 수 있는 나는 막말 연예인이다.

 곽현화는 학벌 팔아 연예인 한다? 나는 이화여대 수학과를 나왔다. ‘섹시한’ 수학 참고서도 썼다. 가끔 나도 내가 이대 수학과를 나오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나 싶다. 크크크. 그나마 나의 이미지를 좋게 포장해주는 데 큰 도움이 된 건 사실이니까. 그래서 출신 학교 덕에 받은 관심을 학교에 보답하고 싶은 마음을 늘 가지고 있다. 정말로 학교 행사에 진행자가 필요하거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언제든지 불러주셨으면 좋겠다. 무료로 최상의 기량을 발휘할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내 인생의 서사를 말해달라고 했는가? 내 인생은 누군가의 무엇이 되는 과정이었다.

 부모님에겐 말 잘 듣는 딸이기도 했지만 때론 깜짝 놀랄 일(?)들을 마구 벌이는 간 큰 아이였고(지금까지도!), 학교에서는 활발하고 적극적이기도 했지만 때론 엉뚱한 친구이자 제자였고, 방송 일을 하면서 나를 모르는 누군가에게 비호감의 존재로, 나 자신에게는 곽현화가 아닌 다른 껍질을 쓴 존재로 살아가기도 했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지금의 나도 누군가의 무엇이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누군가’는 무엇이든 상관없다. 나를 아는,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라고 말해도 좋겠다. 그렇다면 누군가의 무엇이라 할 때 그 ‘무엇’은 무엇인가? 그것은 ‘솔직한 나’다. 한때 내가 아닌 나의 모습으로 포장하고 껍질로 둘러싸여 있었다고 인정하고, 그것까지 사랑하고 보듬는 ‘나’다.

 앞으로의 나는 자연스럽고 유쾌한 나였으면 좋겠다. 지금 솔직한 나의 모습과 나의 욕망에 충실하고, 때로는 나의 실수나 과오도 스스로 귀엽게 여길 수 있는 여유 있는 모습의 나이고 싶다.

 곽현화

곽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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