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6.03 10:15 수정 : 2014.07.03 11:13

한국 생활 20년째인 칼리드 마흐무드는 한국말이 능숙하다. 교통이 편리하고 치안 환경이 좋은 평지의 주택가를 선호하는 그는 파키스탄인들의 주요 거점인 이태원을 떠나 마포구 서교동에 주거지를 마련했다. 그는 이슬람성원을 중심으로 형성된 무슬림 거리와 서교동 주변의 대형마트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서울 생활에 만족한다. 한겨레 박승화
“아니샤, 준비 다 됐니? 늦겠다. 아빠도 지각하겠어. 빨리 가자.”

“아빠, 다 됐어. 조금만 기다려줘. 머리핀만 꽂으면 돼.”

칼리드 마흐무드(40·사잠통상 한국지사 부장)의 하루는 큰딸 아니샤(7)를 유치원에 데려다주는 것으로 시작된다. 지난 5월19일에도 평소대로 오전 9시께 집을 나섰다. 아니샤가 다니는 유치원은 마흐무드의 집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다. 짧은 시간이지만, 한국어를 매개로 둘만의 밀담(?)이 오간다. 한국어에 능숙한 그와 아니샤와 달리 아내 모나는 아직 서툴다. 그는 딸과 함께 지하철 합정·홍대입구·망원역 중간에 위치한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적한 주택가 골목길을 걸으며 생각한다. ‘이 동네로 이사 온 건 탁월한 선택이었어.’

파키스탄 국적의 마흐무드가 한국에 온 건 20년 전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냉동수산물, 섬유와 가죽을 취급하는 사잠통상에 취직했다. 그의 형들이 공동 설립한 회사로, 1994년 한국에 지사를 내면서 바로 위의 형과 함께 서울에 첫발을 디뎠다. 그의 첫 정착지는 파키스탄 출신들의 선택이 대체로 그렇듯, 당연하게(?) ‘용산’이었다. 이태원 주변은 파키스탄대사관, 이슬람성원이 있을 뿐 아니라 교통이 편리하고 집값이 저렴해 갓 이주한 파키스탄 출신들이 가장 선호하는 주거지역이다. 특히 이슬람성원을 기점으로 파키스탄 레스토랑, 내셔널마트, 베이커리, 여행사, 서점 등의 상점이 즐비해 생활도 편리한 이점이 있다.

그는 집과 사무실을 각각 해방촌과 4호선 삼각지역 인근에 얻었다. 특히 회사가 위치한 한강로는 교통이 편리한데다 은행과 우체국이 가까이 있어서 업무 효율성을 극대화할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건물과 주택 임대료도 저렴했다. “주한 파키스탄대사관에 근무하던 큰형이 스페인으로 발령이 나서 떠난 뒤 집값이 더 싼 광진구 화양리에 잠시 거주했다”며 “교통, 종교, 각종 모임, 생필품 구입 등 모든 면에서 용산보다 생활 조건이 열악했다”고 말했다.

치안 좋은 한국인 주택가 서교동에 안착

같은 날 정오 무렵, 사무실을 나선 마흐무드가 6호선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오후 2시30분에 예정된 아니샤의 유치원 공개수업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무슬림 여성들은 바깥 출입을 좀처럼 하지 않는다. 마흐무드는 “아내는 집에서 2살 된 둘째딸을 돌보고 있다”며 “공개수업은 나만 갈 것”이라고 말했다.

10여 분 만에 합정역에 도착했다. 저층의 단독주택과 빌라가 밀집한 서교동은 전형적인 서민 주거지 모습을 띠고 있었다. “출퇴근할 땐 무조건 지하철입니다. 합정역에서 삼각지역까지 30분도 안 걸립니다. 평소에 자가용을 끌거나 택시를 타는 일은 없어요. 서울 시내가 복잡하고 또 항상 막혀서요.”

하지만 매주 금요일 오후 1시 합동예배(루바)에 갈 때는 예외다. 지하철이 아닌 마을버스를 탄다. “회사 앞에서 타면 이슬람사원까지 한번에 바로 갑니다. 지하철을 탈 때처럼 계단과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내리지 않아도 되니까 더 편해요.”

그가 현 주거지인 서교동으로 이주한 건 3년 전이다. “2007년 결혼 당시 아내가 한국에 잘 적응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태원에 신혼집을 얻었지만 반응이 시큰둥했다. 아내는 평지, 외국인이 없는 주택가에 살고 싶어 했다.” 아내 모나는 한국인 주거지가 치안이 안정됐다고 믿고 있었다. 마흐무드가 새 주거지를 고를 때 가장 염두에 둔 건 삼각지역에서 멀지 않으면서 교통이 편리한 곳, 한국인이 거주하는 전형적인 주택가라는 조건이었다. 굳이 합정역 인근부터 알아본 건 한때 사무실이 있던 동네여서 다른 지역보다 익숙했기 때문이다. “몇몇 부동산에 의뢰해 집을 알아봤어요. 6호선 지하철 라인인데다 인근에 대형마트가 있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죠. 비탈길도 외국인도 없는데다 주택가였고. 공원은 없지만 집세·교통·치안이 우리의 요구 조건과 맞았지요.”

그의 집은 방 2개가 있는 18평 빌라의 반지하다. 골목과 빌라 앞 전봇대에 방범용 폐회로텔레비전(CCTV)이 설치돼 있는 것이 이 집을 선택하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낮 동안 여자들만 집에 머무는 터라 방범과 보안 문제에 더 신경을 썼다”며 “아파트는 둘 다 선호하지 않아 애초 고려 대상에서 제외했다”고 말했다. 임차료 조건도 좋았다. 주택이 밀집된 지역의 빌라이긴 하나, 이웃과의 교류는 없다. 그는 “평소 동네 주민과 마주칠 일이 거의 없기도 하거니와 굳이 이웃과 친분을 쌓을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요즘 들어 그는 부쩍 집이 협소하다는 생각을 한다.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침대, 장롱, 소파 등이 차지하는 공간이 상당하다. 전부 이전 거주자에게 50만원을 주고 한꺼번에 구입한 것들이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식탁, 책상 등 필요한 가구 목록도 생겼다. 그의 바람은 방 3개와 욕실 2개를 갖춘 25~30평형대 빌라 1층으로 이주하는 것이다.

한국어 능숙… 시장·대형마트 수시로 이용

홈플러스, 이마트, 망원시장…. 그의 집 주변은 쇼핑 천국이다. 반경 2~3km 안에 대형마트뿐 아니라 편의점, 슈퍼마켓, 재래시장이 있다. 홈플러스 합정점은 걸어서 5분 거리다. 마흐무드는 “샴푸, 비누, 치약, 휴지 등 생필품과 우유가 떨어질 때마다 수시로 집 근처 마트에서 장을 본다”며 “감자, 양파, 당근 등의 채소는 마트보다 저렴한 망원시장에서 구입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했다.

어린이날을 앞둔 5월3일 오후, 마흐무드 가족은 모처럼 주말 나들이를 겸해 이마트 용산점을 방문했다. “한 달에 한두 번꼴로 이곳에 온다”는 그는 “매장이 넓어서 구경거리가 많다”고 말했다. “생필품과 식료품뿐 아니라 아이들의 옷과 신발, 책, 장난감을 구입해요. 값도 싸고 종류도 많고, 무엇보다 눈치 보지 않고 물건을 고를 수 있어서 좋아요.” 마흐무드 가족에게 이마트 용산점은 단순히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는 공간이 아니다. 아이들의 놀이터이면서 외식과 여가를 즐기는 곳이다. 한번 오면 서너 시간이 훌쩍 지난다. 아이들은 마트에서 장난감을 구경하고, 책을 읽으며, 물고기·새·햄스터 등 애완동물을 관찰한다. 마트 안에 있는 푸드코트나 패스트푸드점에서 간단히 끼니라도 해결하는 날에는 머무는 시간이 더 늘어난다.

“주말에는 가족이 오전 11~12시까지 늦잠을 자는 편입니다. 방에 누워 뒹굴뒹굴하다가 식사를 하고 나면 금방 오후가 되지요. 이쯤 되면 갈 곳이 대형마트 말고는 딱히 없어요. 마트에서는 모든 게 가능하고, 목돈을 들이지 않고 다양한 소비생활을 즐길 수 있지요.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하고. 백화점은 너무 비싸서 절대 안 갑니다.”

이날 마흐무드는 마트에서 아니샤의 어린이날 선물도 장만했다. 이전부터 아니샤가 갖고 싶어 했던 ‘뽀로로 운동화’다. 아니샤는 새 운동화를 신고 환하게 웃었다. 마트에서 볼일을 끝낸 뒤 맥도널드로 향했다. 모나가 오랜만에 햄버거를 먹자고 제안했다. 햄버거를 다 먹고 나니 시계는 어느덧 저녁 7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평소엔 아이들 옷, 신발, 양말, 속옷 등을 마트에서 구입합니다. 하지만 계절이 바뀌어 사야 할 목록이 많을 때는 더 저렴한 남대문시장에 갑니다. 겨울 코트나 점퍼를 사야 할 때, 청바지를 여러 벌 구입해야 할 때죠. 한번 가면 10만~15만원어치 옷을 구입합니다. 그나마 아내의 옷과 신발을 한국에서 사지 않고 파키스탄에서 공수받아 지출이 적은 편이죠. 어느 달엔 의복비 지출이 없는데, 월 단위로 환산하면 3만~4만원쯤 됩니다.”

대형마트를 애용하는 그이지만 절대 마트에서 사지 않는 품목도 있다. 양고기, 닭고기, 밀가루, 향신료다. 이슬람신자인 그는 ‘이슬람식 알라의 이름으로 도살된 고기’(Halal·할랄)만 먹는다. 주식인 육류와 밀가루는 한번에 대량 구매하므로 내셔널마트가 더 편리하다. 금요예배 때 주문하거나, 주말에 가족과 함께 이태원을 방문해서 주문한다. 내셔널마트는 1~2주 단위로 방문하는데 그때마다 지출이 10만원가량 된다. 그는 “생필품과 식료품을 주로 마트에서 사기 때문에 신용카드로 결제한다”며 “카드 포인트를 적립해 물건을 구입하는 재미를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집·회사만 왔다갔다… 공적 장소 소비 못해

마흐무드의 고정 월수입은 150만원이다. 노동자 5명 이상 사업체의 1인당 월평균 임금인 311만1천원의 절반 수준이고, 올해 책정된 4인 가족 최저생계비 163만원에도 못 미친다. 그는 “파키스탄에서 직장인들이 받는 월평균 급여 30만원에 비하면 월등히 높고, 한국 내 파키스탄인들 가운데서도 고소득에 속한다”면서도 “간신히 생계만 꾸릴 수 있을 뿐이지 여가·문화 생활은 전혀 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하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돈이 많아야 해요. 그나마 저는 파키스탄에 집과 땅이 있어서 형편이 낫지요. 한국에서 재산을 모아 노후를 대비해야 하거나, 고국에 생활비를 보내야 하는 축에 속하지 않으니까요.”

무슬림은 매주 금요일 오후 1시 이태원에 있는 한국이슬람중앙성원에서 ‘주마’(합동예배)를 한다. 마흐무드는 사무실이 있는 삼각지역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이슬람성원에 간다. 지인들을 만나고, 양고기·닭고기·향신료 등 파키스탄에서 온 식료품을 구입하는 것도 이때다. 한겨레 신소영
그가 마트에서 쇼핑·문화·여가 등을 원스톱으로 즐기는 건 낮은 소득도 한 원인이다. 교통비는 물론이고 충동구매 등을 막아 지출을 줄일 수 있다. “보면 사고 싶고 먹고 싶기 마련”이라며 “쇼핑, 외출, 문화생활을 줄이는 것이 상책”이라고 말했다. 공연을 보거나 미술관에 가는 일이 그에겐 사치처럼 느껴진다. 기타·피아노 등의 악기를 배우거나 등산·헬스·수영 등을 하는 것도 금전적 이유로 머뭇거린다. 가족여행, 과한 의료비 지출, 문화생활, 잦은 외식을 하게 되면 지출이 턱없이 늘어나 수입을 초과할 수밖에 없다. “되도록 수입액과 지출액을 맞추려고 하는 편이에요. 지난 5월에는 남대문시장에 다녀오고, 어린이날 선물을 구입하고, 가족여행으로 <아리랑TV>에서 소개된 경북 영주의 부석사에 다녀온 터라 무려 50만원이나 지출이 초과됐어요. 형한테 도움을 받아 적자를 메웠지만, 6월부터 지출을 줄여볼 생각입니다.”

지난달처럼 지출이 수입을 초과하는 달에는 사잠통상 한국지사장인 형(그의 급여도 170만원에 불과하다)에게 도움을 청한다. 월급을 가불하거나, 연말 성과급을 미리 당겨서 쓰는 식이다. 저축은 꿈도 못 꾼다. 단, 연말 성과급은 예외다. 만약을 대비해 무조건 저축한다. 그는 “형제들이 만든 회사여서 연말에 이익을 똑같이 배당하고 있다”며 “그해의 매출과 영업 실적에 따라 수백만~수천만원으로 편차가 크다”고 말했다.

마흐무드에게는 딱히 취미랄 것이 없다. 집과 회사, 일주일에 한 번 이슬람성원에 가는 일상에 만족하고 있다. 그의 관심사는 오로지 가족의 건강과 행복, 그리고 회사와 종교뿐이다. 이슬람 율법에 따라 하루에 다섯 번 예배를 봐야 해서 장시간 외출이 자유롭지 않기도 하다. “파키스탄에 있을 때도 극장이나 박물관, 미술관 같은 곳에 간 적이 없다. 쉬는 날 집에 있는 것이 가장 좋다.” 아내가 좀처럼 바깥 출입을 하지 않는 것도 마흐무드가 외출을 자제하는 한 이유다.

한국에서 경복궁·덕수궁 등을 견학하거나 청와대와 국회 같은 주요 관공서를 견학한 기억도 없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니샤가 ‘한국의 집’에 소풍을 다녀온 뒤 한옥과 한국의 민속놀이를 자랑 삼아 이야기하는 걸 듣는 것만으로 족하다. 마흐무드는 스포츠에도 무관심한 편이다. 축구·농구·야구 등의 경기를 관람하거나 직접 하는 것도 즐기지 않는다. 다만 서울랜드와 에버랜드 등 놀이공원에는 아이들 때문에 1년에 두세 번 정도 방문하려고 노력한다.

이슬람 율법에서는 도박을 금지한다. 그는 경마와 경륜을 즐기지 않는다. 그 흔한 복권도 산 적이 없다. 유일한 취미는 짬이 날 때 인터넷으로 영화를 내려받아 감상하는 것이다. 그는 인도 영화를 즐긴다. 독서를 좋아하지도 않고, 텔레비전 리모컨을 달고 사는 스타일도 아니다. “집에서는 주로 딸들과 대화하며 놉니다.”

모나는 음식 솜씨가 좋다. 마흐무드는 결혼 전에 생선구이, 볶음밥, 된장찌개, 불고기 등 한국 음식을 주로 사먹었지만 지금은 사먹지 않는다. 결혼 이후 1일2식을 실천 중이고, 아침·저녁 식사는 모두 집에서 해결한다. 마흐무드 가족의 공식적인 외식은 한 달에 두 번, 집 근처 레스토랑에 가는 것이다. 마흐무드는 “이슬람 율법에 따라 돼지고기를 먹지 않기 때문에 매번 생선가스를 먹는데 값이 싸면서도 맛있다”며 “가족이 이날을 손꼽아 기다릴 정도”라고 말했다. “이태원에 파키스탄 레스토랑이 여럿 있지만, 그곳에서 외식을 하지 않아요. 아내의 음식이 더 맛있거든요. 굳이 사먹을 이유가 없어요.”

평소 자가용을 이용하지 않지만 가족과 이동할 때는 예외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청계천, 광화문, 종로, 남대문, 이태원 등지로 나들이가 잦아졌다. “아이가 생긴 이후 차가 필요하다고 느껴서 3년 전 뉴카렌스를 구입했어요. 청계천이나 광화문에는 자주 가는데, 요즘처럼 더울 때 제격입니다. 청계천에 가는 날에는 종로3가 골드마켓에 들러요. 파키스탄 사람들은 몸에 금을 걸치고 있으면 건강과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믿거든요. 아내와 딸들에게 금으로 된 목걸이, 귀고리 등을 선물할 때 가장으로서 흐뭇합니다.”

유흥가 강남·신촌·홍대 앞 갈 일 없어

파키스탄 국적자이지만 회사원인 그는 국민건강보험에 가입돼 있다. 병원을 이용할 때 딱히 불편한 기억은 없다. 동네의 소아과·이비인후과·치과·안과 등을 주로 다니는데, 친절하고 진료비 부담이 적어서 만족스럽다. 대형 병원 진료는 아내가 둘째를 임신했을 때 자궁에 혹이 있는 것으로 진단받아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은 게 전부다.

한국 국적자가 아니어서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도 있다. ‘미취학아동 무상보육’ 대상에서 두 딸은 제외된다. 이에 따라 아니샤의 유치원 교육비로 매달 45만원을 내고 있다. 월수입의 3분의 1을 차지해 부담이 상당하다. 그는 조만간 한국 국적을 취득할 계획이다. 무상보육 혜택과 별개로 내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해야 하는 아니샤를 위한 선택이다. “아니샤를 국제학교가 아닌 일반 초등학교에 보내려고 합니다. 국제학교 학비가 월 150만~200만원으로 비싸기도 하지만, 아니샤가 한국과 한국 문화에 더 잘 적응하고 친구들과 잘 지냈으면 해서요.” 유치원비 외에 자녀들에게 별도로 들어가는 사교육비는 없다. 그는 “아니샤가 요즘 태권도를 배우고 싶다고 해서 고민”이라고 말했다.

매달 생활비 중에서 수도·가스·전기 등 광열비가 차지하는 금액은 월평균 3만~4만원으로 높지 않다. 대신 교육비 못지않게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통신요금이다. 그와 아내의 휴대전화 요금만 월 14만원에 이른다. “업무 때문에 전자우편 확인이나 인터넷 검색을 해야 하니까 스마트폰을 쓸 수밖에 없어요. 현재 삼성 갤럭시S4를 쓰고 있는데, 보통 2~3년 주기로 교체하고 있고요. 신형이 나오면 바꾸고 싶은 마음이 생겨요. 집에서 쓰는 인터넷 요금(3만원)도 통신비네요.”

마흐무드의 공공기관 이용 빈도는 매우 낮다. 집 근처에 동사무소가 있지만 갈 일이 없다. 민원 서류를 뗄 일도 없을뿐더러 동사무소에서 진행하는 각종 교육 프로그램에도 참여하지 않는다. 심지어 도서관 나들이도 안 한다. 파키스탄대사관도 여권을 갱신하거나 서류 확인이 필요할 때만 방문한다. 요즘 그는 출입국관리사무소 글로벌센터(종각), 여의도 글로벌비즈니스센터(여의도)를 자주 간다. 외국인의 귀화와 사업을 지원하기 위한 각종 교육 프로그램을 수시로 수강하기 때문이다. 각종 산업전시회가 열리는 코엑스(삼성동)도 가끔 가는 편이다.

마흐무드는 이슬람 율법에 따라 술을 마시지 않는다. 유흥가가 밀집한 강남, 신촌, 홍익대 앞 등에 갈 일이 없다. 지인들과의 모임은 이태원에서 주로 하고 간혹 집에 초대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마흐무드의 생활(주거·소비·여가) 공간은 합정·삼각지·이태원·종로로 압축된다. “국적·인종·언어 외에 ‘무슬림’이라는 특수성이 직간접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을 겁니다. 이슬람성원이 있는 이태원을 중심으로 무슬림이 모이고, 상권과 커뮤니티가 형성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서울에서 꺼리는 장소가 있을까. 마흐무드는 “한 곳도 없다”고 말했다. 한때 빵 1개조차 살 수 없어서 끼니를 거른 적도 있지만, 한국말을 모국어 수준으로 하게 되면서 서울 생활이 획기적으로 개선됐다. 거리에서 사람들과 부딪치는 것도 꺼리지 않게 되었다. 심지어 낯선 외국인들과의 접촉도 두렵지 않다. 백인을 마주할 때 위축된다거나, 흑인을 만나는 게 무섭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어차피 한국에서는 다 똑같은 외국인이잖아요. 형이 대사관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고, 형제들이 글로벌 무역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저를 둘러싼 환경의 특수성 때문인지도 모르지요. 어찌됐건 한국에서는 국적·인종·종교보다 ‘한글 습득 여부’가 생활공간을 결정하는 데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 같아요.”

그러나 마흐무드의 공간 이용과 동선은 매우 패턴화돼 있다. 인구 10명에 1.4명꼴로 외국인이 많이 사는 도시에서 언어장벽을 넘어섰지만, 그는 가본 곳보다 가보지 못한 곳이 훨씬 많다. 인종적·종교적 이유, 무엇보다 경제적 이유가 가장 클 것이다. 마흐무드의 바람대로 한국 국적을 취득한다면 그의 공간 이용과 동선은 과연 획기적으로 달라질까.

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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