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12.28 11:51 수정 : 2012.12.29 01:16

섹시한 개그우먼과 퀴어(성적소수자)영화 감독.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인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두 관념의 현 실태인 곽현화와 김조광수를 만났을 때 보기 좋게 빗나갔다. 곽현화는 김조광수를 “언니”라고 부르면서 스스럼없이 대했다.

 서로 먼 지점에 있는 것처럼 보였던 두 사람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섹슈얼리티’라는 난해하기 그지없는 범주였다. 간단하게 ‘성욕’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성적 뉘앙스만을 포함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섹슈얼리티라는 낯선 말을 그대로 옮겨 쓰는 것이 좋겠다.

 질문은 곽현화에게 먼저 던져봤다. 개그우먼인데 섹시함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구축한 까닭이 무엇인지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개그우먼인데 제대로 웃기지 못해서”란다. 무슨 겸손인가? 자세히 들어보니, 반드시 그랬다기보다 곽현화가 개그계에 입문한 그 시절에 유행했던 개그 코드와 곽현화의 이미지가 조금 맞지 않은 결과인 것 같았다.

 온 국민의 개그 프로그램이라고 할 <개그콘서트>로 데뷔한 곽현화는 해당 코너에서 주연을 맡기보다 주로 배경 역할을 했는데, 그 이유가 ‘섹시한 외모’ 때문에 ‘망가지는 연기’를 할 수 없어서였다. 그래서 곽현화는 무엇을 선택했는가? 모두가 알고 있는 섹시함을 돋보이게 하는 방법을 택했다.

 요즘에야 개그 코드가 바뀌어서 예쁜 개그우먼이나 잘생긴 개그맨도 별 문제 없이 개그를 소화할 수 있지만, 곽현화가 데뷔할 무렵만 해도 개그맨이나 개그우먼은 평균보다 ‘못한’ 외모여야 주목받을 수 있었다. 여하튼 곽현화는 자신의 선택을 궁여지책이라고 했지만, 그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섹시함과 개그우먼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을 접한 대중은 처음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곽현화의 변신은 논란을 낳았고, 그의 섹시 이미지에 대한 반론도 만만찮았다. 그는 가끔 트위터를 통해 의도적인 도발을 했는데, 상반신 누드로 투표 독려를 한다든지,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포즈로 바나나 먹는 장면을 올린다든지, 여하튼 대중의 성의식에 반하는 행동을 스스럼없이 했다. 왜 그랬는지 이유를 물었다. “나는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는 개방성을 좋아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 모든 ‘도발’의 원인은 편협한 인간이기 싫다는 곽현화 특유의 취향이었다. 취향의 여인, 상당히 근대적인 동기부여다. 옆에 있던 김조광수가 되물었다. “본인이 건전하고 합리적인 보수라고 생각한 적 없는가?” 곽현화의 취향이 자유주의자의 호사취미 아니냐, 이런 떠보기였다. “그렇게 생각해본 적 없는데”라는 곽현화의 대답.

<기사 전문은 <나·들> 인쇄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택광 경희대 영미문화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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