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5.08 10:45 수정 : 2014.06.13 13:29

미국 연방대법원이 2012년 정치 기부금 상한 규제를 풀면서 이제 미국에서 표현의 자유는 우파 정치인에게 선거자금을 원하는 만큼 대줄 수 있는 2천명 미만의 부자들만의 자유로 전락했다. 찰스 코크(왼쪽)와 데이비드 코크 형제는 막강한 재력을 이용해 자신들이 원하는 정치인을 밀어주고, 그들을 통해 자신들의 뜻대로 법을 주무르려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
숀 매커천은 미국 앨라배마주 버밍햄에서 제법 규모가 큰 전기설비 전문업체를 운영하는 사업가다. 정치에도 관심이 많은 그는 공화당 앨라배마주 제퍼슨카운티 집행위원도 맡고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그는 선거 때마다 한 가지 불만이 있었다. ‘원하는 만큼’ 선거자금을 내놓을 수 없다는 점이다.

1974년 워터게이트 스캔들 여파로 정치개혁 여론이 높아지면서, 정치권의 부패 고리를 끊기 위한 개혁 입법이 잇따라 이뤄졌다. 개인이 기부할 수 있는 정치자금의 한도를 명확히 규정한 연방선거자금법(FECA)도 이때 개정됐다. 선거자금법은 2002년 민주·공화 양당의 합의에 따라 한 차례 더 개정을 거치는데, 이후 연방선거관리위원회(FEC)가 연방의회 선거가 치러지는 2년 단위로 물가상승률을 감안해 개인이 기부 가능한 선거자금 총액을 제시하게 됐다.

보수 대법관들에 무너진 기부금 상한선

2013~2014년 선거 주기에 맞춰 선관위가 설정한 기부금 상한액을 살펴보자. 후보자 개인에 대한 정치자금 후원액은 연간 2600달러를 넘지 못한다. 후보자 여러 명에게 기부할 때도 총액은 4만8600달러를 넘을 수 없다. 정당에 직접 기부하는 금액 상한선은 7만4600달러로 정해졌다. 여러 명의 후보와 정당에 각각 상한선까지 기부를 해도 총액은 12만3200달러를 넘을 수 없다는 얘기다. 매커천의 ‘불만’이 쌓인 이유다.

2011년 공화당 청년조직 모임에서 매커천은 당 선거자금 모금책이자 변호사인 댄 배커를 만났다. 둘 사이에 ‘공통의 관심사’에 대한 토론이 오갔다. 2012년 11월 대선과 연방의회 선거를 앞두고 매커천은 후보자 16명에게 총 3만3088달러를 기부했다. 또 공화당 조직에 2만5천달러를 전달했다. 예년 같으면 이쯤에서 멈췄을 텐데, 후보자 12명에게 추가로 선거자금을 건넸다. 선관위가 제시한 상한선을 의도적으로 넘어선 게다.

다음 수순은 정해져 있었다. 매커천은 공화당 지도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2012년 6월22일 선관위를 상대로 소송에 나섰다. 1심에선 패소했지만, 목적은 딴 데 있었다. 매커천은 그해 10월9일 사건을 연방대법원으로 끌고 갔다. 선거자금 기부 상한선을 연방법으로 정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로운 정치활동’을 제한하는 것으로 위헌이란 게다. 이런 주장의 법적 근거로 그가 내세운 것은 ‘표현의 자유’를 규정한 수정헌법 제1조였다. “의회는 종교를 만들거나, 종교의 자유를 억압하거나, 표현의 자유 또는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거나, 평화로운 집회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정부에 대한 불만을 해소하기 위한 청원을 가로막는 어떤 법도 제정해선 안 된다.”

미 대법원의 판단은 어땠을까? 존 로버츠 대법원장을 포함해 공화당 정권이 임명한 대법관 5명과 민주당 정권이 임명한 대법관 4명의 의견은 극명히 엇갈렸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지난 4월2일 내놓은 다수 의견에서 “신문이 후보자 수에 관계없이 얼마든지 지지 의사를 밝힐 수 있는 미국에서, 유권자에게 정치자금을 기부할 수 있는 후보자 수 등에 대해 정부가 제한을 두는 것은 옳지 않다”며 매커천의 손을 들어줬다.

이로써 후보자 1명에 대한 연간 기부 상한선(2600달러)은 유지됐지만, 다수의 후보에게 지원하는 총액(4만8600달러) 제한은 사라졌다. 또 정당에 직접 지원할 수 있는 금액(7만4600달러)도 상한선이 풀리게 됐다. 사실상 선거자금을 원하는 만큼 뿌릴 수 있게 된 셈이다. ‘돈 정치’를 가로막아온 수문을 통째로 열어젖힌 꼴이다. 스티븐 브레이어 대법관은 반대 의견에서 이렇게 썼다.

“정치권의 부패를 막기 위해선 단순히 뇌물 수수를 금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정치인에게 접근하고, 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통로까지 차단해야 한다. (…) 그간 선거자금 총액 제한제도가 지켜온 민주적 정당성을, 후보자 개인에 대한 선거자금 기부금 제한만으론 지켜낼 수 없다. 정치자금 제한제도는 이제 찌꺼기만 남은 셈이다.”

앞서 미 대법원은 2010년 1월21일 이른바 ‘시티즌 유나이티드 대 연방 선관위’ 사건에서도 비슷한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보수(5) 대 진보(4)로 극명히 갈린 당시 판결에서도 다수 의견은 “미합중국 헌법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다. 기업이 특정 후보를 지지하기 위해 정치자금을 기부하는 것을 정부가 막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보수파인 앤서니 케네디 대법관은 다수 의견에서 “기업이 특정 후보를 지지하기 위해, 해당 후보와 조율을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독립적으로 선거자금을 사용하는 것은 정치적 의사표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수정헌법 제1조가 조금이라도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면, 의회는 어떤 경우라도 시민 또는 시민들의 결사체가 정치적 의사표현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벌금을 부과하거나 투옥하는 내용을 담은 법률을 만들어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반면 반대 의견 집필을 맡은 존 폴 스티븐스 대법관은 “기업에 인간과 똑같은 표현의 자유를 허용하는 것은 중대한 오류”라며 “기업의 자금이 자유롭게 정치권으로 흘러든다면, 정치마저 시장 논리에 휘둘려 민주주의 자체가 위협을 받게 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뉴욕타임스>는 4월3일치 사설에서 이렇게 썼다.

“매커천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은 그간 지속돼온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 돈의 힘이 미국 선거판을 왜곡하는 것을 막기 위해 쌓아놓은 장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보수파) 대법관들이 벌여온 ‘십자군 전쟁’ 말이다. 오해해선 안 된다. 로버츠 대법원장의 주장과 달리 매커천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은 표현의 자유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저 돈을 더 많이 가진 소수의 사람들에게 더 큰 정치적 목소리를 실어주자는 주장일 뿐이다.”

실제 2012년 특정 정당에 선관위 상한선까지 정치자금을 기부한 개인은 1715명, 후보자에 대한 한도까지 기부한 개인은 591명에 그쳤다. 매커천 사건 판결은 이들의 ‘표현의 자유’를 확대한 판결이라고 봐도 좋겠다. 이제, 이들 거액 기부자를 맨 앞에서 이끌고 있는 ‘용감한 형제’를 만나볼 차례다.

빌 게이츠 다음 다음 다음, 코크 형제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해마다 9월이면 ‘미국 400대 부자’ 순위를 집계해 발표한다. 이 매체가 지난해 발표한 최신 순위표를 보자. 자산 총액 720억달러를 기록한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이 단연 1위다. 2위는 585억달러를 보유한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이, 3위는 410억달러를 보유한 래리 엘리슨 오라클 회장이 각각 차지했다. 4위는 각각 360억달러의 자산을 자랑하는 찰스 코크·데이비드 코크 형제가 공동으로 차지했다.

찰스 코크는 1935년 11월1일, 데이비드 코크는 1940년 5월3일 캔자스주 위치토에서 각각 태어났다. 네덜란드 출신 이민자인 할아버지 해리 코크는 텍사스주 서부에 정착해 언론과 철도 사업으로 상당한 재산을 모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를 물려받은 형제의 아버지인 프레드 코크는 1925년 캔자스주에서 ‘록아일랜드 정유’를 창업해 성공적으로 운영했다.

찰스 코크는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서 기계공학과 화학공학을 전공해 석사 학위를 2개나 받았다. 학업을 마친 뒤인 1961년 고향으로 돌아와 당시 아버지가 운영하던 록아일랜드 정유회사에서 경영 수업을 마쳤다. 1967년 아버지의 사망과 함께 회장직에 오른 그는 회사 이름을 코크인더스트리로 바꿨다.

데이비드 코크도 형의 뒤를 따라 MIT 화학공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시절 야구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는 그가 코크인더스트리에 합류한 것은 1970년이다. 그는 1979년 자회사인 코크엔지니어링 회장에 오른다. 이후 형제는 정유·화학 부문을 뼈대로 소비재까지 사업 영역을 넓히며 막대한 부를 쌓았다. <포브스>는 “찰스 코크가 경영 일선에 나선 지 40년째를 맞은 2006년 코크인더스트리의 매출은 900억달러를 돌파했다”며 “이는 40년 전에 견줘 무려 2천 배나 성장한 것”이라고 전했다.

게다가 코크인더스트리는 다국적 곡물 메이저 ‘카길’에 이어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비상장 기업’이다. 형제는 코크그룹 주식의 84%를 보유하고 있다. 코크인더스트리가 연평균 18%의 수익률을 올리고 있으니, 이들이 2012년 한 해에만 자산 총액을 각각 60억달러나 불린 것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두 사람에게 관심을 갖는 이유는, 물론 따로 있다.

공화당 돈정치의 막후 실세

“코크 형제가 나라를 통째로 사들일 작정인 모양이다.” 지난 2월 해리 리드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의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대표적 업적인 ‘오바마 케어’를 비난하는 정치광고가 민주당 열세 지역에서 일제히 불을 뿜고 있다. 수천만달러에 이르는 그 뒷돈을 대주는 게 바로 코크 형제다. 리드 대표는 4월28일에도 원내대표 연설을 통해 코크 형제를 “권력에 취한 억만장자들”이라고 비난했다.

코크 형제의 정치놀음은 이미 오래전부터 관심을 끌어왔다. 이른바 ‘극단적 자유주의’(리버테리언) 성향인 이들 형제는 자기들과 뜻을 같이하는 케이토연구소 등 보수 싱크탱크의 ‘지갑’ 노릇을 도맡아왔다. 형만 한 아우 없다지만, 실제 정치무대에 도전장을 낸 것은 동생 데이비드다.

그는 1980년 대선에서 에드 클라크 리버테리언당 후보와 함께 부통령 후보로 직접 출마했다. 이들은 사회보장제도, 연방준비제도, 최저임금제, 기업세와 각종 보조금 제도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당시 선거에서 이들이 얻은 92만여 표(약 1.06%)는 1971년 창당 이래 리버테리언당이 얻은 전무후무한 성적이었다. 당시 데이비드 코크는 “미국의 선거는 정책을 중심으로 치러지는 게 아니라 후보자 개인을 보고 투표한다”고 한탄했는데, 1984년 결국 리버테리언당과 결별을 선언하고 공화당 우파와 손을 잡았다.

이후 형제의 정치활동은 좀더 비밀스럽게, 하지만 훨씬 직접적인 방식으로 이뤄진다. 첫째, 자기들의 신념을 공약으로 내건 후보에게 거액의 정치자금을 떠안기는 식이다. 사실상 돈 주고 공직 후보자를 사들이는 셈이다. 둘째, 코크그룹 노동자들에게 직접 정치선전을 하는 방식이다. 대선이 코앞이던 2012년 10월14일, 미 진보매체 <인 디즈 타임스>가 인터넷판에 올린 기사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간 치러진 모든 대통령 선거가 중요하다고 역사적이라고 말해왔지만, 다가오는 대선이야말로 미국의 미래 세대가 어떤 세상을 물려받을지 결정하게 될 중요한 선거입니다. 수천억달러의 자금을 빌려다 일부 우호적인 기업에 보조금을 주려는 후보가 당선돼선 안 됩니다. 기업에 전례가 없을 정도의 규제 부담을 지우려는 후보가 당선돼선 안 됩니다. 중요한 신규 토목공사를 가로막거나 늦추려는 후보도 안 됩니다. 자유무역을 방해하는 후보도 마찬가집니다. 이런 후보가 당선된다면 우리는 물론 협력업체 임직원까지 고통받게 될 것입니다. 기름값은 치솟고, 물가는 급등할 것이며….”

이 편지는 코크그룹 계열사인 조지아퍼시픽의 임직원 4만5천여 명 전원에게 회사 쪽이 보낸 ‘선거정보’ 우편물의 일부다. 회장의 편지와 함께 코크그룹이 지지하는 후보자들의 면면이 상세히 소개돼 있었다. 당시 회사 쪽은 우편물 발송의 이유로 “상당수 직원들이 회사가 지지하는 공직 후보자에 대한 정보를 원했다”고 주장했다.

코크 쪽이 지지 의사를 밝힌 후보자 명단의 맨 위쪽엔 ‘밋 롬니-폴 라이언 공화당 정·부통령 후보’가 적혀 있었다. 그 아래로 연방 상·하원 의원과 각 주 상·하원 의원에 출마한 공화당 후보들의 이름이 빼곡했단다. <인 디즈 타임스>는 “그룹 총수인 찰스 코크가 쓴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비난 글과 데이비드 코크가 쓴 롬니 후보 지지 글도 동봉됐다”고 전했다. 리드 원내대표의 ‘작심 발언’은 하루아침에 나온 게 아니었다.

<워싱턴포스트> 등의 보도를 종합하면, 2014년을 맞아 코크 형제의 소원은 민주당이 장악한 연방 상원을 다시 공화당 품으로 가져오는 것이다. 이들이 오는 11월 중간선거 때까지 얼마만큼의 돈을 풀 것인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다만 형제의 소원이 이뤄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상원을 다시 공화당 품으로’

지난 3월 말 테네시주 상원은 지방자치단체가 광역버스 환승시설(BRT)을 건축·운영·유지하는 행위를 엄격히 금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 법안(SB-2243)을 압도적으로 통과시켰다. 최근 주도인 내슈빌시 당국이 주민 숙원사업임을 들어 1억7400만달러의 예산을 마련해 추진하고 있는 이른바 ‘앰프’ 사업을 정조준한 것이다. 주지사가 법안에 서명해 효력이 확정되면 향후 테네시주에선 광역버스 환승사업이 추진될 수 없게 된다.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광역버스 환승시설이 효과를 거두려면 버스전용차선과 별도의 신호등 체계가 수반돼야 한다. 자가용 운전자들에겐 딱히 반가울 게 없는 일이다. 현지에선 “버스 운행이 늘어나면 흑인이나 라틴계 주민들이 백인 중산층 지역을 쓸데없이 오갈 것”이란 생뚱맞은 주장까지 나왔단다. 지역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반대운동이 벌어진 것도 이 때문이다. 인터넷 매체 <살론>은 지난 4월1일 “현지 단체에 활동자금을 대주고 반대운동을 배후에서 조종한 것은 ‘번영을 위한 미국인’(AFP)이란 단체의 테네시주 지부”라고 전했다.

버지니아주 알링턴에 본부를 둔 이 단체는 2004년 창립됐다. 이 단체 누리집을 보면 “경제정책에 대한 시민교육과 공공정책 과정에 대한 시민 참여”를 목적으로 내세웠다. 이 단체는 2010년 선거에서 공화당의 연방 하원 장악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영향력이 막강하다. 연간 예산도 4천만달러에 이르며, 미 전역 35개 주에서 190만 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이쯤에서 대충 짐작이 가능해진다. 이 단체의 창립 회원이자 최대 기부자가 누구일까? 바로 코크 형제다. 그런데 형제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테네시주에 왜 관심을 기울였을까? 이 단체 테네시주 지부장 앤드루 오글리스는 <살론>과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테네시주는 상·하원 모두 공화당이 압도적 다수를 점하고 있다. 선례가 될 만한 법안을 통과시켜, 다른 주 의회에 영향을 끼치는 데 아주 이상적인 환경을 갖추고 있다.”

글 정인환 <한겨레> 국제부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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