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5.08 09:40 수정 : 2014.05.08 13:38

김수민 의원의 지역구는 ‘젊은 외지인들의 도시’ 구미다. 록음악을 사랑했고 방송작가의 꿈을 꾸다 교사가 될 뻔했던 청년은 고향으로 돌아와 시의원이 되었다. 그를 부른 것은 구미의 정치 현실에 대한 부채 의식과 20대의 마지막을 장식한 패기다. 한겨레 박승화
경북 구미시가 전국 단위 뉴스로 등장할 수 있는 유력한 기회는 ‘박정희’라는 키워드를 달고 있을 때다. 드문 예외라면 ‘단수 사태’ ‘불산 유출 사태’처럼 주민들이 인재에 의해 극심한 고통을 겪을 때 정도다. 최근 경북 지역 정치권 인사가 “‘구미시’ 이름을 ‘박정희시’로 바꾸자”고 제안해 제법 소란스럽게 전국 뉴스를 탔는데, 나름 언론의 생리를 아는 사람 같아 보인다. 다만 그가 의도한 게 노이즈 마케팅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6·4 지방선거에서 경북도지사 자리를 노려 뛰고 있는 인사다. 무엇보다 구미시민들의 환심을 사고자 했을 것이다. 이마저 성공했을까.

그의 노림수는 ‘구미시민=박정희의 고향 사람’이라는 등식을 필요로 한다. 숫자가 들려주는 사정은 사뭇 다르다. 구미에서 태어나고 자란 시민은 전체 43만 인구의 20%밖에 안 된다. 도시 형성 역사가 일천할수록 토박이 비율이 낮지만, 구미시는 개중에 유별나다. 전입자들 출신 지역이 광의의 박정희 고향이라 할 수 있는 경북 지역에 집중된 것도 아니다. 구미시민들의 고향은 말 그대로 삼천리 방방곡곡이다. 더구나 구미는 젊은이의 도시다. 시민 평균나이(33살)가 전국 평균(39.3살)보다 6살 남짓 낮다. 구미시민을 대표하는 인구집단은 다름 아닌 ‘젊은 외지인들’이다.

전국 단위 언론이 구미에 적용하는 기사의 가치 척도는 구미시민의 실존과 무관하다. 진보언론이든 보수언론이든 구미를 시민의 삶터가 아니라 박정희의 고향으로 본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이들이 보도하는 건 구미시민의 뉴스가 아니라 박정희의 뉴스다. 구미의 사정에 무지해서가 아니다. 2010년 지방선거 때 이 지역 한나라당 후보들의 득표율은 같은 당 전국 평균보다 외려 낮았고, 언론도 그 사실에 주목했다. 그러고도 여전히 구미와 박정희를 등치시키는 건 언론이 한국 사회의 ‘중앙’과 ‘기성’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구미시민들은 이들에게 소외된 타자다.

‘구미시민=박정희 고향 사람’이라는 오해

“그분 제안에 찬성하는 시민은 20%도 안 된다고 보면 됩니다. 보수든 진보든 ‘미친 것 아니냐’는 반응이었어요. 박정희를 좋아하는 사람들마저 ‘구미 사람도 아니면서 왜 애꿎은 구미시를 박정희시로 바꾸자고 하느냐’고 합니다. 구미시민들이 그분 때문에 자존심에 많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저야 개인적으로 이번에 그분 덕을 많이 봤지만요. 제가 박정희체육관을 구미시체육관으로 바꾸자고 맞불을 놓아서 큰 관심을 받았거든요.”

속내야 어떻든, ‘청년’은 ‘그분’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걸 잊지 않았다. 그분은 박승호 전 포항시장이다. 박정희시 제안자가 구미시민이 아니라는 사실은 그 제안이 ‘실패’할 수밖에 없게 하는 조건이고, 그의 제안 내용은 구미에 덧씌워진 외부의 편견이 무엇인지를 확인시켜주는 사례다. 그러나 구미시민 말고 누가 그에게 가책 없이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이를테면 ‘그분’에게 맞불을 놓은 청년이 만 서른도 안 된 나이에 구미에서 당선된 녹색당 소속 현역 시의원이라는 사실을 이례적 사건으로 여긴다면, 이 또한 이 도시에 대해 똑같은 편견이 작용한 탓은 아닐까.

편견에 찬 호기심으로 구미시 인의동에 있는 김수민 의원 사무실을 찾았다. 상가가 딸린 다가구 원룸 건물 1층에 초록색 나뭇잎 두 장을 어긋나게 포갠 디자인의 작은 나무 돌출간판이 매달려 있고, 포개진 나뭇잎 위에는 상큼한 글꼴로 ‘구미시의원 김수민’이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다. 간판은 이곳이 정치인 사무실처럼 보이지 않게 하는 소품이면서, 이곳이 정치인 사무실임을 알게 하는 유일한 표식이기도 했다. 주인의 감각이나 취향이 여느 정치인들의 그것과 다르다는 건 사무실 안 책꽂이에서도 감지할 수 있었다. <헤비메탈대사전> <한국의 인디레이블>, 우라사와 나오키의 <몬스터>와 <20세기 소년> 만화 전집….

30대 초반 녹색당 시의원은 의외인가

“중학생 때부터 록에 빠져 지냈습니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에는 대중음악 잡지 기자직에 도전한 적도 있어요. 따로 시험이 있는 게 아니고 글을 써서 보내면 선발해 채용하는 방식이었는데, 잡지에 글만 실리고 합격은 못했지요. 편집장이 ‘고등학생이 쓴 글로는 대단한데, 음악보다 글이 앞서는 것이 문제다. 기자가 되려면 음악을 다양하게 들어라’라고 조언하는 편지를 보내왔어요. 하지만 그 뒤로도 록만 들었어요. 음악잡지 기자에서 점점 멀어진 거죠. <헤비메탈대사전> 같은 음악 관련 책들은 그 시절에 산 것입니다. 만화 전집은 시의원이 되고 나서 받고 있는 ‘복지포인트’를 모아서 큰맘 먹고 질렀고요.”

기성세대로부터 탈정치적이고 심지어 정치 혐오적이라고 비판받는 이 세대에게 그가 예외적인 존재인지는 알 수 없으나, 기성의 눈으로 보기에는 문화적 취향을 중시하고 기꺼이 거기에 비용을 투입하는 요즘 젊은이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는 구미시민을 대표하는 인구집단(젊은 외지인)에 속하지 않는다. 나이는 이 도시 평균의 언저리이지만, 출신 지역은 전체 인구의 20%에 속하는 구미 토박이다. 구미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다닌 뒤 서울로 유학을 갔다. 대학생이 된 그는 당시 한창 바람을 타던 언론개혁운동을 시작해 단체 대표까지 맡고 난 뒤 군에 입대했다.

“전경으로 차출됐는데 부상을 당해서 농촌 지역으로 자주 파견을 갔습니다. 독거노인, 빈곤층 문제나 농민들 문제를 가까이에서 보게 됐죠. 부모가 죽어가도록 내버려두는 자식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어요. ‘내가 이전에 했던 정치사회운동은 무슨 의미였나? <조선일보> 하나 바로 세운다고 저분들 먹고사는 문제에 무슨 의미가 있겠나’ 생각했죠. 그러다 민주노동당이 원내 진출하는 모습을 봤고, 농촌 지역 주민들이 민주노동당에 기대하는 모습을 봤어요. 30~40대 경찰들은 ‘우리도 노조를 만들어야 한다’ ‘민주노동당이 잘돼야 한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했고요.”

자유주의자로 입대한 김수민은 좌파가 되어 제대했다. 복학 뒤 민주노동당 입당은 정해진 수순과도 같았다. 거기서 노동운동과 농민운동을 가까이하게 됐고, 연대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샴페인은 너무 일찍 터졌다. 당내 정파의 폐해도 이미 심각해진 상태였다. 분당 사태 때 진보신당에 합류했으나, 2009년 울산 북구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민주노동당과 후보 단일화를 추진하는 것을 보고 깊은 회의에 빠졌다. 단일화를 하더라도 명분과 원칙, 전망이 있어야 하는데 지나치게 맹목적이었다. 원칙 없는 정당 재통합의 전조로 보였다. 말리고 싶었지만 그럴 힘이 없었다. 그래서 당을 떠났다.

“문제는 거기서부터였습니다. 당을 나오니까 할 일이 없는 겁니다. 그전부터 방송 구성작가를 해보려 했고, 교사자격증이 있어서 임용고시를 보려고도 해봤는데, 그때마다 이런저런 우연과 필연이 겹치면서 ‘내가 갈 길이 아니구나’ 하고 뜻을 접었습니다. 방세, 밥값은 들어가지…, 앞으로 뭘 하든 일단 고향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2000년대에 나름 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던 이 지역 노동운동계가 한창 힘든 시기를 겪고 있어서 거기에 대한 부채의식도 있었어요. 그리고 2010년 지방선거가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20대 마지막 크리스마스이브에 결심한 출마

2009년 12월 고향 친구와 술을 마셨다. “내가 내려가서 구미 시민사회 일을 도와야겠다”고 했더니 친구가 대뜸 “너 같은 놈이 출마를 해야 한다”고 되받았다. 직업정치에 뜻이 전혀 없었는데, 그 순간 마음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걸 느꼈다. 흔들리는 마음의 틈을 ‘기초의원은 직업정치인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파고들어 벌려놓았다. 20대의 마지막 크리스마스이브. ‘다음에 나가는 건 의미가 없다. 당선이든 낙선이든 20대 때 내가 배웠던 것, 경험했던 것을 다 쏟아내보자. 하다못해 구성작가 일을 배운 것으로 홍보물을 만들 수 있지 않겠나.’ 밤을 하얗게 새우고 나서 마침내 결심했다. 그는 10년 만에 고향 구미로 돌아왔다.

나·들- 오래 표밭을 갈아온 다른 후보들과 달리 20대를 온전히 서울에서 보내 관계망이 느슨했을 텐데 단번에 당선이 됐습니다. 지역구도 나고 자란 동네가 아니라고 들었는데요.

김수민(이하 김)- 제 지역구는 구미 안에서도 예외적인 지역입니다. 외지 출신이 90% 이상, 평균나이는 29살 정도니까, 어쩌면 가장 구미다운 지역이지요. 원룸 거주자도 유난히 많습니다. 저도 원룸에 삽니다. 하지만 그런 특성 때문에 유권자들이 젊은 후보를 밀어줬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이 지역구 의석이 3개인데 제가 후보 5명 가운데 3등으로 막차를 탔거든요. 무소속에다 인지도도 없어서 선거 초반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수도권 규제 완화, 세종시 수정안, 4대강 사업을 묶어서 ‘구미의 3적’으로 규정하고 그걸 막겠다고 한 게 막판에 주효했던 것 같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는 이색 유세도 효과가 있었고요.

나·들- 기초의원 선거에서 그런 이슈가 먹혔다는 건 이해가 안 되는군요.

- 중앙 이슈와 지역 이슈가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수도권 규제를 완화하고 세종시를 기업도시화하면 구미는 큰 타격을 받습니다. 공장들이 대거 빠져나가 당장 일자리가 줄어들 테니까요. 4대강 사업도 마찬가집니다. 강을 준설해 모래를 산더미처럼 쌓아놓으니까 모래바람이 날렸거든요. 그 모래가 정밀기계에 날아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지역은 ‘매트릭스’입니다. 예를 들면 이 지역에서 장사하는 분인데 주소지가 여기가 아닐 수 있는 거죠. 그러니까 ‘지역’을 지리적으로만 접근하면 안 됩니다. 지리적으로 접근하면 보수화되기 쉽습니다. 지역구 지도를 놓고 구역을 쪼개서 각각 개발 계획을 내놓게 되는 거죠. 지역 개념에 너무 함몰되지 않는 게 오히려 지역운동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계층별로도 보고, 성별로도 보고 여러 가지 복합적인 시선이 필요한 것 같아요.

기초의원, 하방 아닌 최전선

나·들- 이전부터 지방정치를 오래 연구하고 출마한 것 같습니다.

- 웬걸요. 처음에 ‘기초의원은 정치인이 아니다’라고 생각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지요. 잘못된 생각이라는 게 지난 4년 동안 판명됐지요. 제 지역구만 해도 인구가 8만 명이고, 구미시 전체로 치면 42만 명인데, 이런 도시에서 기초의원이라면 전형적인 정치인이라고 해야지요. 다만 저는 출마할 때도 지역을 지리적인 의미로만 생각지 않았습니다. 주변에서 저더러 농담처럼 “하방한다”고들 했는데, 저는 “낙동강이 흐르는 공단 도시의 최전선으로 간다”고 했습니다. 내려가는 게 아니라 가장 앞으로 나아가는 거지요. 지난 10년 동안 진보 진영에서 지역을 강조해왔지만, 중앙에서 안 풀리니까 지역을 일종의 도피처로 여긴 측면이 없지 않다고 봅니다. 그런 식으로 접근해서는 잘해야 기초의원은 많은데 중앙정치에서 전혀 힘을 못 쓰는 일본 공산당처럼 됩니다. 중앙에서 풀 건 중앙에서 풀어줘야 하고, 지역 운동가들도 중앙과의 관계 속에서 지역을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들- 김 의원에게는 여러 면에서 소수자성이 보입니다. 중앙 대 지방에서 지방일 뿐 아니라 이 지역 안에서도 정치적으로 소수자성이 강하고, 세대론적으로 봐도 사회적 약자인 청년이지요. 비혼, 무주택 원룸, 낙선하면 바로 백수…. 구미의 인구 구성이 아무리 독특하다고 해도 보수적인 지역 정서가 강한 건 분명한데, 지난 4년 동안 소수자성 때문에 힘들지는 않았나요.

- 아, 내가 그런 사람이었구나, 저 스스로는 되게 강하고 힘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웃음) 글쎄요. 소수자성보다는 경계에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이 동네에서는 토박이도 외지인도 아니에요. 노동운동과 연대하고 있지만 사실 현장에서 노동하는 사람도 아니고요. 내 안에서 많은 것들이 교차하고 있다는 것을 느껴요. 정치인치고는 대단히 뾰족하게 얘기하고, 할 말 다 하고, 전투적이죠. 그런가 하면 또 포용력도 있고 유연한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저는 박정희를 지지하는 분들의 3분의 1은 복지국가 지향성을 갖고 있고, 3분의 1은 온정주의적이거나 전통주의적인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정치적으로는 안 되더라도 이렇게 저렇게 사회적으로 연대하면 세상이 좀 나아지지 않을까요. 그래서 다른 의원들과도 함께 일을 잘 풀어가는 편입니다.

중도인 아닌 경계인, 전국구 기초의원

나·들- 김 의원의 생각과 태도가 어떻든 주민들이 그걸 받아들이느냐 마느냐는 다른 문제 아닐까요.

- 근데 항상 색깔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게 좋은 결과로 돌아오더라고요. 구미 시민들도 “시의원 중에 저런 친구 한둘 있는 게 뭐 어떠냐” “저런 친구가 실질적으로 일하는 게 계속 해먹었던 사람들한테도 충격을 줄 수 있지 않으냐” “저 친구가 눈치도 안 보고 열심히 싸우니까 어려운 일이 있으면 저 친구한테 가면 되겠다”고 하는 것 같아요. 저를 찾아오는 분들 가운데 상당수는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분들입니다. 예전에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이 그런 곳이었죠. 어설프게 중도화하느니 차라리 그런 존재로 남는 것이 진보정치의 길이라고 생각해요. 경계인으로 사는 것과 중도인으로 어정쩡하게 사는 것은 엄연히 다릅니다.

김수민은 ‘전국구 기초의원’이다. 지난 4년 동안 구미에서는 전국적인 사건이 많았고, 그때마다 그는 맨 앞에 서서 싸웠다. 그러면서 구미뿐 아니라 경북, 나아가 전국적으로도 이름이 많이 알려졌다. 전국 단위 언론에 정기·부정기적으로 글도 써왔다. 특히 2011년 4대강 사업 도중 터진 구미시 단수 사태에 대해 사법 사상 최대인 원고 17만 명을 모아 한국수자원공사(수공)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시작한 일은 유명하다. 재판은 우여곡절 끝에 1심에서 부분 승소했고, 현재 2심 계류 중이다. 1심에서 수공은 국내 최대 법무법인 김앤장을 소송 대리인으로 세우고도 졌고, 구미시민들은 구미에 있는 이름 없는 법무법인을 세워서 이겼다. 일대 사건이었다.

나·들들- 선거 공약이 전국적이었던 만큼 의정 활동도 전국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 그렇지 않습니다. 지역구 버스 정류장마다 와이파이 중계기를 설치하거나 거리 조경을 해서 분위기가 바뀌었을 때 무엇보다 보람이 컸습니다. 녹색당 당원들에게도 “지방정치를 하려면 안전행정부 생활민원 불편사항 접수 애플리케이션부터 내려받아서 당원들끼리 이웃끼리 짝지어 파손된 보도를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어서 올려라. 그럼 고쳐질 것이다. 그 보람에 대해서는 따로 얘기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비정규직 권리보호조례’를 대표 발의해서 통과시켰는데, 그것도 구미시립요양병원 간병인들이 위탁운영업체로부터 임금을 갈취당하다 해고된 걸 보고 함께 싸우고, 청소노동자들 민간 위탁에 반대해서 싸운 경험과 문제의식으로 만든 겁니다. 바로 제 이웃의 문제였던 거지요. 단수 피해 시민 소송도 전국적으로 유명한 사건이지만, 본질은 지역 주민의 생활과 가장 밀접하게 관련된 거고요. 다만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지역을 지리적 개념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서 전국 단위 언론을 상대로도 활동을 많이 했습니다.

나·들- 녹색당 창당 발기인이지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습니까.

- 진보신당을 탈당하면서 내 생에 다시 정당 활동을 할 일이 있을까 했습니다. 그런데 선거를 하면서 무소속이 얼마나 취약한지 절실히 느꼈어요. 심지어 당선되고 나서도 “김 의원, 새누리당 입당은 천천히 해. 지금은 인기 없으니까”, 이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내 정치적 색깔을 드러내는 게 중요한데, 무소속으로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정답은 정당입니다. 하지만 당을 스스로 나온 터라 기존 정당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들어가는 것은 원치 않았습니다. 2011년 8월께 녹색당 창당 논의가 시작됐을 때만 해도 진보신당과 녹색당이 함께하는 녹색사회당을 기대했습니다. 그냥 녹색당은 어쩐지 환경운동 정당 같았거든요. 하지만 제가 바라던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제가 녹색당이 중시하는 풀뿌리 정치를 하고 있고, 무엇보다 구미시 단수 사태나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 등을 보면서 도시 문명의 허상을 느껴서 녹색당 창당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지금은 녹색당이 뿌리를 잘 내려야 하는 건 물론이고, 독일 녹색당처럼 개량화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습니다.

록 정신의 단기필마로 싸워온 4년

나·들- 이번 재선에 도전한다. 고민이 많았다고 들었는데.

- 4년 전에 출마할 때 4년간 정치를 한 다음 그 노하우로 시민운동을 하려고 생각했습니다. 남들은 시민운동을 하다가 정치권으로 가는데, 저는 의회정치를 경험하고 나면 막강한 시민운동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본 거지요. 당연히 재선 의지가 별로 없었어요. 게다가 우리 지역구 송전탑 문제처럼 기초의원으로서 아무리 막으려 해도 막을 수 없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안주머니에 사직서까지 넣고 다니면서 일했습니다. 몇몇 문제를 상대로 싸울 땐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서 오로지 록 정신 하나로 싸웠어요. (웃음) 결과가 안 좋게 나오면 그만큼 후유증도 컸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을 비우니까 재출마를 할 의지가 생기더라고요. 선거 자체가 사회운동의 장이고, 정책 캠페인을 펼칠 수 있으니 주민들에게 지방자치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라도 다시 출마하기로 했습니다. 4년 전에는 제 색깔을 감추고 무소속으로 나섰다면 이제 녹색당 후보로서 제 색깔을 완전히 드러내고 정면 승부를 펼쳐볼 생각입니다. 당선된다면 지역 주민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지역 공동체 운동의 구심점이 되고 싶습니다.

나·들- ‘발은 지역에, 머리는 전국에’라고 해야 할까요. 그럼 이번 지방선거의 의미를 한국 사회 차원에서 말해보자면요.

- 지방선거는 사실 전국선거입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지방선거가 전국에서 동시에 치러지는데다 항상 정권심판론이 부상했지요. 하지만 이번 선거는 중앙에서 어떤 프레임이 만들어지든 지역 내에서 잘하기만 하면 단체장이든 의원이든 될 수 있는 선거라고 봅니다. 일괄적으로 여권이 이기고 야권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요. 앞으로 무슨 일이 터질지는 모르겠지만(이 인터뷰는 세월호 참사가 터지기 전인 지난 4월11일에 했다), 지금으로 봐서는 야권이 정권심판론으로 선거를 치러서는 안 됩니다. 이기면 정권 심판이 어느 정도 되는 것이지요. 구미시민들에게 정권 심판의 대상은 박근혜 대통령이 아니라 현 구미시장입니다. 누가 민생 중심으로, 풀뿌리 감각으로 잘 풀어가느냐로 경쟁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들- 녹색당은 이번 지방선거에 얼마나 기대를 걸고 있습니까.

- 게릴라부대는 함부로 교전을 벌이지 않습니다. 비를 피해다니고 숨어다녀야 합니다. 현재 녹색당은 게릴라부대라고 생각합니다. 전국에서 11명의 후보가 출마합니다. 최대한 생존율을 높이려는 겁니다. 그중에서도 경기도 과천시장 후보에 거는 기대가 큽니다. 거기서 당선된다면 앞으로 전국적으로도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또 이번 선거에서 녹색당 후보가 많이 당선되면 중앙과 지방의 ‘불일치’가 커지면서 중앙-광역-기초의 수직 위계 체계도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지방자치를 살리는 길이자 중앙을 바꿔나가는 방법이겠지요.

“보수-진보가 아니라 재생과 전환으로”

그가 이번 선거에서 내건 캐치프레이즈는 ‘구미 새로고침’이다. 변화·혁신·진보같이 좀더 뚜렷하게 색깔을 드러낼 수 있는 표현 대신 컴퓨터 용어를 쓴 것은 역시 록을 사랑하고 만화책을 사랑하는 그의 젊은 감각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짐작보다 훨씬 웅숭깊은 뜻을 풀어냈다.

“변화·혁신·진보, 다 진부해 보였습니다. 제가 젊어서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저 개념들이 녹색의 개념을 담아내지 못하거나 오히려 반녹색적이기까지 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새로고침’은 컴퓨터를 껐다 켜는 게 아닙니다. 파괴적인 의미가 없습니다. 대신 ‘전환’과 함께 ‘재생’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외부의 편견과 달리, 구미는 전환과 재생의 의미를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도시입니다. ‘박정희시’가 웬 말입니까.”

안영춘 편집장 jona@hani.co.kr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