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5.08 09:11 수정 : 2014.06.13 11:35

‘아마조네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여성 전사 종족이다. 그들은 활을 쏠 때 걸리적거리지 않도록 한쪽 유방을 도려내거나 불태우고, 전쟁에 나가서는 남자들을 모두 학살하는 대신 일부를 사로잡아 되돌아온다. 붙잡혀온 남자 포로들은 다음 세대의 아마조네스를 잉태시키기 위해 1년에 한 번씩 아마조네스 여성 전사들과 관계를 맺는다. 작가 게르드 브란튼베르그는 소설 <이갈리아의 딸들>에서 아마조네스적 여성들이 고대부터 남성 전체를 지배해온 세계, 즉 젠더 권력이 반전된 세계를 상상해본다. 이 세계에서 연약함을 미덕으로 개발하고 대물림한 남성들은 결국 정말로 여성보다 ‘약해진다’. 오직 힘으로 지배 서열이 결정되는 포유류 동물 안에서도 모계패권사회, 심지어 여왕지배사회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성역할의 분화가 그리 오래된 것도 확정적인 것도 아님을 암시한다. 남성은 강인한 신체성으로 여성을 지배했는가? 아니면 그들의 지배 규범이 남성을 강인하게 만들어왔는가? 신체성은 오로지 생물학적 요인으로 결정되는가?

-박은선은 여자 축구 WK리그의 서울시청 ‘아마조네스’팀 소속 공격수다. 압도적인 신체능력을 가진 탓에, 그녀는 선수 생활을 시작한 뒤로 여러 차례 성별을 의심받아 검사를 받았다. 지난해에는 WK리그의 6개 팀 감독들이 담합해 박은선이 출전하면 리그를 보이콧하겠다고 선언하며 성별 검사를 요구해 논란이 됐다. 소식을 접했을 때 나는 분노하기 이전에 이해를 하지 못했다. 박은선은 이미 성별 검사에 여러 차례 응했다. 한 번의 성별 검사보다 두 번의 성별 검사가 성별을 더 확증하는가? 성별 검사가 몇 번이어야 인간의 성별이 충분히 확정되는가? 단지 탁월한 신체능력을 가진 선수를 리그에서 내쫓기 위한 감독들의 계략인 것일까? 그런 이유였다면 차라리 여자축구리그에 체급 제한 규정을 신설하는 게 더 명쾌하고 안전하지 않을까? 박은선을 만나 직접 물어보았다. 선수로서 신체를 우수하게 개발하려는 욕망과 여성다움을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이 충돌하지는 않는지.

박은선- 진작에 포기했어요. 축구를 시작하기 전에는 남자라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어요. 선머슴 같지만 귀엽다는 말을 많이 들었죠. 운동을 하면서 덩치와 골격이 급작스럽게 커졌죠. 내가 축구를 위해서 태어났구나, 저는 그렇게만 생각했어요.

-운동을 제외한 일상에서는 어떤가. 의외로 여성적인 면은 없는지 궁금하다. 취미라든가.

박은선- 온라인 게임을 좋아해요. <스타크래프트> <서든어택> <리니지>…, 재미있다는 게임은 거의 다 해봤어요. 그것 말고는, 합숙 생활을 하다보니 시간이 없어서 친구들과 커피숍에 가는 정도예요.

-여자와 남자 중 어느 쪽 친구와 많이 어울리는가.

박은선- 대부분 여자죠. 사실 남자친구는 별로 없어요. 일단 따로 만날 시간이 없어요. ‘게임 길드’(게임에 관련된 모임) 오빠들이 가끔 만나면 예뻐해주긴 하는데, 시간이 없어서 자주는 못 만나요. 거의 외박을 못하지만, 어쩌다 외박을 나와도 힘들어서 돌아다닐 수 없거든요. 일주일에 두 경기를 뛰는데, 한 라운드가 끝나면 몸이 완전히 녹초가 돼요.

-사적인 영역이 많이 궁금해서 그런다. 연애는 어땠는지 물어도 될까.

박은선- 하하, 전혀 없었어요. 아예 생각 자체를 안 했어요.

-한채윤이 물었다. “혹시 살아오면서 신체성 때문에 받은 오해나 상처가 있는지?”

박은선- 어릴 때부터 축구뿐이었어요. 거짓말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전혀 없었어요. 항상 운동 생각만 했죠. 하는 일이 축구고 축구와 관련된 것뿐이다보니, 상처에 대해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던 거죠. 이제 현역 선수 생활 막바지이고 가장 중요한 시기인데, 지금도 그만두기 전에 여자 축구에 보탬이 될 만한 게 무엇인지를 생각해요. 사람들의 관심과 많은 지원을 끌어낼 수 있으면 좋겠어요. 후배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축구를 할 수 있도록. 제가 국가대표로 좋은 성적을 내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한채윤이 물었다. “사람들은 여자가 운동을 잘하는 걸 바라지 않는 경우가 많다. 여자 운동선수로 산다는 것, 즉 많은 사람들이 바라지 않는 방식으로 산다는 건 어떤 것인가?”

박은선- 잘 모르겠어요. 신체적 차이 때문에 여자선수가 더 노력을 해야 하지만, 그런 식의 고민은 잘 안 해요. 질문이 이해가 안 돼요. 운동선수는 직업일 뿐이잖아요. 다만 아쉬운 건, 남자선수는 운동을 잘하면 잘할수록 인기를 얻는데 여자선수는 잘하면 잘할수록 뒷이야기가 무성해진다는 거죠. 제 경우를 보세요. 성적이 나쁠 때는 아무 말도 없던 사람들이, 제가 득점왕이 되고 팀이 좋은 성적을 거두니까 여자가 맞느냐고 손가락질을 하잖아요. 저번에 문제가 터졌을 때 겨울훈련을 절반도 소화 못했어요. 운동을 하면서도 멍하니 있다 날아온 공에 맞거나, 뛰다 말고 갑자기 혼자 울음이나 웃음을 터뜨렸죠.

문득 깨달았다. 내가 박은선의 성별 논란을 잠재우고 그녀를 구출하겠다는 무의식적인 야심을 품었다는 것을. 박은선의 숨겨진 여성성을 드러내 여성임을 증명하려는 희망은, 그녀의 숨겨진 남성성을 드러내 여성이 아님을 증명하려는 욕망과 거울 대칭을 이루는 편견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그러한 시도로 증명되는 것은 그녀의 여성성/남성성이 아니라 여성성/남성성이라는 특질이 존재한다는 믿음일 것이기 때문이다. 정작 박은선 자신은 자신이 여성으로서 결여됐다고 인식하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알고 보면 저도 여성적이에요”라는 식으로 항변하는 대신, “나는 스스로 그러한(自然) 여자”라는 투로 당당하게 말한다. 그녀의 불만은 오로지 축구선수로서 삶의 조건이 결여됐다는 것이다.

박은선- 월요일과 목요일마다 경기가 있는데, 우리는 숙소가 서울일 뿐 연고 구장이 없어서 떠돌아다녀야 해요. 이번에도 보름 동안 모텔을 전전해서 피로가 아직 안 풀렸어요. 잠자리가 바뀌면 못 자는 선수도 있는데, 적응할 때쯤 되면 다른 모텔로 옮겨야 하죠. 시즌 내내, 그리고 겨울훈련 때도 모텔에서 지내요. 구장이 없어서 경기력에도 문제가 생기고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축구에 대한 애정이 분명히 느껴지는데, 20대 초반에는 합숙소를 빈번하게 이탈하고 잠적하기까지 했다. 왜 그랬나?

박은선- 고3 때까지 국가대표팀에 몸담으면서 선수생활을 잘했어요. 대학을 거치지 않고 실업팀으로 바로 올라왔는데, 한국여자축구연맹에서 그게 규정 위반이라고 2년 출전 금지라는 징계를 내렸어요. 축구를 할 의욕이 사라졌어요. 경기를 제대로 못 나간 채 2년간 연습만 해야 했으니까요. 학생에게 시험에 응시할 자격을 주지 않고 공부만 하라는 거나 다름없잖아요. 너무 화가 났죠. 출전 금지에 동의한 다른 실업팀 감독들도 다들 저를 자기 팀에 데려가려고 했거든요. 다른 팀에 들어가니까 제게 등을 지고 출전 금지 징계를 내린 거죠. 훈련에 집중할 수도 없고, 축구를 계속해서 뭐하나 싶고, 그래서 떠난 거죠.

박은선의 사례가 논란이 된 뒤 폐지됐지만, 과거 한국여자축구연맹 선수 선발 세칙 제3조 3항은 “고교를 졸업하는 선수는 실업팀으로 진출할 수 없고 대학에서 최소한 2년을 뛰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었다. 당시 여자축구리그를 대학과 실업팀이 병합한 채 운영했기에, 리그 균형을 맞추기 위해 징벌적 규정을 둬서 선수의 선택권을 희생시킨 것이다. 위헌 소지가 있어 대한축구협회로부터 인가받지 못한 규정이었다.

박은선- 규정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대학을 거치지 않고 실업 리그로 바로 가는 게 심각한 문제라곤 생각 안 했어요. 2년이나 출전을 금지하는 징계가 떨어질 줄은 전혀 몰랐어요. 경기 자체를 못 뛰게 해버릴 줄이야…. 저도 대학에 가고 싶었어요. 대학 졸업장을 받고 싶었어요. 집안 형편이 좋지 못해서 얼른 돈을 벌려고 실업 축구로 온 건데…. 징계를 받고 축구장을 떠나서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PC방, 커피숍, 야구장에서 일했죠. 텔레비전에서 축구 경기가 나오면, 내가 지금 뭐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너무 아깝게 시간을 허비했어요. 그때 참고 꾸준히 훈련했다면 지금쯤 선수로서 훨씬 성장해 있을 텐데.

끝내 자신을 탓한다. 심지어 규정의 내용이 정당했다고 해도, 징계 대상이 왜 그녀였는지 의문이 남는데도. 진로를 결정할 당시 박은선은 여고생이었으므로 연맹 선수가 아니었고, 따라서 연맹 규정에 구속되는 신분이 아니었다. 엄밀히 말하면 책임은 연맹 규정을 위반하고 박은선을 선발한 연맹 소속 실업팀, 즉 연맹 내부에서 찾아야 했던 게 아닐까? 그러나 선수로서 성장할 기회를 놓쳤다는 그녀의 지난해 성적은 리그 19골, 득점왕이다! 한채윤이 말했다. “박은선의 압도적 신체능력 때문에 다른 선수들이 다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는데.”

박은선- 오히려 제가 더 많이 다쳐요! 심판들이 저한테는 유독 파울을 안 불어주거든요. 그걸 알고 고의적으로 도발하는 선수들이 종종 있어요. 며칠 전 경기에서 상대 선수가 팔꿈치로 목을 찍어서 아직도 목이 잘 안 돌아가요.

-얼마 전에는 서울시청팀의 서정호 감독이 심판 판정에 항의하는 뜻으로 선수단을 철수시켰다가 1년 자격 정지의 중징계를 받았다. 혹시 박은선 선수가 여러 논란을 겪은 이후, WK리그 안에서 서울시청에 대한 적대적인 기류가 생겼는가.

박은선- 선수를 보호하려고 위험을 무릅쓴 감독님께 개인적으로 고맙게 생각해요. 그날 시합은 축구하러 간 건지 맞으러 간 건지 모를 지경이었거든요. 하지만 저 때문에 다른 선수들이 적대감을 가진 건 아니에요. 오히려 그 일이 있은 뒤 다른 팀 선수들의 전화를 많이 받았어요. 내 편이니까 힘내라고 격려해줬거든요.

-성별 검사에 여러 차례 응했는데, 감독들이 다시 성별 검사를 요구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박은선- 저도 이해를 못하겠어요. 지금 하는 이 말은 제 말이 아니라 주위에서 들은 말이라는 걸 강조해둘게요. 다른 선수들과 능력 차이가 나니까 죽이려고 그러는 거라는 말도 있어요.

-개인적으로 친했거나 알고 지냈던 감독들이라고 들었다. 사과는 못 받았나.

박은선- 중·고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감독님들이에요. 학생시절 코치님이었던 분도 있어요. 사과는 못 받았어요. 최인철 감독님이 언론에 심심한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더군요. 심심한 유감…, 그게 다예요.

한채윤이 당시 여론이 압도적으로 박은선의 편이었다고 말했다.

박은선- 아니에요! 제가 보기엔 반반이었어요. 주변에서 만류해도 궁금해서 댓글들을 찾아 읽었거든요. 보면서 많이 울었어요. 응원하는 나머지 절반에게는 고맙지만….

한채윤이 말했다. “최근 국가대표에 선발돼 복귀했지 않나. 보상받은 기분이 드는지?”

박은선- 보상은 아니죠. 한동안 대표팀이 싫었거든요. 소속팀에서는 뛰지 못하게 했잖아요. 그러면서 국가대표로만 뛰라니. 나보고 뭘 하라는 건가 싶었어요. 어른들이 너무나 싫었고요. 축구와 관련된 모든 게 싫었어요. 텔레비전에서 축구 경기가 나오는 것조차 싫었죠.

한채윤이 말했다. “진로 규정 위반으로 2년 출전 징계를 받은 것보다, 어찌 보면 이번 성별 논란이 훨씬 큰 문제였을 텐데 의연하게 대처했다. 예전처럼 뛰쳐나가버릴 수도 있었을 텐데.”

박은선- 예전이라면 분명히 그랬겠죠, 하하. 감독님도 저에게 책임감이 생겼다고 평가하시더라고요. 맞아요. 나이가 들어 공을 찰 날이 얼마 안 남았잖아요. 국가대표로 뛰는 게 기대가 많이 돼요. 지소연 선수와 함께 뛰는 것도 처음이고, 제 몸 상태와 경기력도 많이 올랐거든요. 제 스스로 부족한 것을 살피고 보완해야겠다는 마음가짐도 갖췄고요.

-최고의 재능과 실력을 갖춘 선수가 아닌가. 부족한 게 뭐라고 생각하는가.

박은선- 피지컬은 뛰어나지만 기술적으로 부족하다는 평가를 많이 받는데, 스스로도 그렇게 느껴요. 공격수는 공을 가지지 않았을 때 움직임이 중요하거든요. 공을 받는 순간에 골을 넣느냐 못 넣느냐가 50 대 50으로 결정되는데, 아직 저는 움직임을 더 개선해야 해요.

-사람들이 ‘여자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의심할 정도라면, 박은선 선수의 실력은 어느 정도인지 궁금했다. 혹시 남자선수와 축구해본 적이 있는가.

박은선- 전직 프로선수 출신들로 구성된 조기축구회랑 연습경기를 많이 해요. 이기기는 어렵죠. 아무래도 실력 차이가 나니까요. 하지만 여자축구 수준도 계속 높아지고 있어요. 예전에는 중·고등학교 남자 축구부 선수들과 연습경기를 했거든요.

한채윤이 물었다. “여자축구가 더 성장하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는가?”

박은선- 환경이오. 천연 잔디에서 축구하고 싶어요. 넓은 곳에서 프리킥 연습도 하고 싶고요. 우리 서울시청팀 선수단 숙소가 잠실 종합경기장 안에 있는데, 바로 앞에 있는 좋은 경기장들을 못 써요. 개인적으로 바깥에 나가서 조그만 풋살 경기장에서 운동을 하죠. 고등학교 때는 아예 맨땅에서 훈련했고, 잔디는 국가대표팀 시합에 나가서만 밟아봤어요. 일본 여자선수들은 잔디 깔린 전용 구장에서 연습하잖아요. 아무래도 우리나라보다 빨리 성장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죠.

-해외 진출을 고려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박은선- 고등학교 때부터 해외팀에서 제안을 받았어요. 어릴 때는 겁이 나서 거절했어요. 언어도 안 통하고, 스스로 기량도 다듬지 못한 채 힘과 스피드로만 축구를 했거든요.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죠. 최근에도 제안이 들어오는데, 이제 나이가 있어서 연봉 조건이 맞지 않아요. 그 부분만 해결되면 나가고 싶어요.

-혹시 한국이 지긋지긋해진 이유도 있나. 모든 것을 이제 그만 버리고 떠나고 싶다든가. 안현수 선수가 러시아로 떠났듯이.

박은선- 아니요. 어릴 때는 축구를 못하게 하는 나라를 위해서 국가대표로 뛰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했어요. 이제는 그렇지 않아요. 아직도 주위에서는 차라리 다른 나라로 귀화해버리라고 하죠. 하지만 축구계에 몸담은 사람들이 저를 망가뜨린 것이지, 국적과 연관짓고 싶지는 않아요. 저를 둘러싼 것들이 보기 싫긴 하죠. 아직도 경기장에서 마주치면 저를 차갑게 대하는 감독님들을 보면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해요.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나요?” 며칠 전 경기장에서 몸을 풀고 있는데 어떤 감독님이 오셔서 악수를 먼저 청하셨어요. 손을 잡아 흔들면서 “박은선 선수, 요즘 잘나갑디다”라고 말하는 거예요. 숙소로 돌아와서 혼자 울었어요. 그 일을 겪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고,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가 않은가봐요.

-남자축구도 관심 있게 보는가.

박은선- FC서울 경기와 해외리그 경기를 챙겨 봐요.

-김영하의 단편소설 <마코토>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국어 공부가 남성성을 앗아간다.” 축구와는 반대로, 언어를 다루는 일에서는 개발된 여성성이 큰 장점으로 작용한다. 평범한 남성 작가라면 여자친구와의 말다툼에서 승부를 보기조차 벅차다! 작가를 직업으로 가진 나로서는 2등으로 태어났다는 비애에 젖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반대로 여자 축구선수로서 박은선은 어떤지 궁금하다. 주인성을 빼앗긴 분야에 종사한다는 생각이 드는 때는 없는지.

박은선- 여자축구는 비인기 종목이죠. 경기장에 관중이 거의 없어요. 소외됐다고는 느껴요. 어떤 때는 우리만의 리그 같아요. 하지만 남자축구가 2002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발전했듯이, 우리 선수들이 잘하면 앞으로 달라지지 않겠어요? 이건 좀 조심스러운 말인데…, 해도 되겠죠? 인터넷을 보면, 월드컵에서 우승할 확률이 남자축구보다 여자축구가 훨씬 높다는 말이 많잖아요.

-해도 되는 말이다. 너무 겸손한 걱정을 한다. 혹시 남자 축구선수들이 상처받을까봐 걱정되는가.

박은선- 하하. 남자 축구선수들 멋있어요. 다른 감독님들이 저 때문에 리그를 보이콧한다고 했을 때, 지도자들이 진짜 문제라고 김진규 선수가 말했잖아요. 정말 멋있었어요. 하고 싶은 말을 그렇게 단호하게 할 수 있다는 게.

리오넬 메시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처럼 큰 성공을 거둔 선수들을 보면 ‘나도 남자였으면 저렇게 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 법도 해서 물어봤다.

박은선- 그런 아쉬움을 갖기에는 제가 방황을 너무 많이 했죠. 만약 제가 그렇게 말한다면, 사람들은 이렇게 대꾸하지 않을까요? “네가 스스로 버린 시간이 얼만데, 그건 잊고 영예만 바라냐?” 감독님께서도 그러세요. “네가 버린 시간이 없다면, 지금 여기에 없었을 거다. 너는 그 시간과 함께 가질 수 있는 것들을 놓쳤다.” 제 발로 이렇게 온 거예요. 환경 탓은 안 하고 싶어요. 제 탓을 할래요. 그냥 제가 이겨내지 못한 거예요. 제 생각이 짧았을 뿐이에요.

-마지막으로 묻겠다. 메시인가, 호날두인가.

박은선- 즐라탄이오.

-여자선수 중에서는.

박은선- 저요.

인터뷰가 끝난 뒤 팀 훈련을 따라갔다. 5시간을 관찰했지만 박은선에게서 내가 아는 ‘여성적인’ 특징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나는 여전히 그녀에게서 내가 가진 기준을 발굴하고 적용하려 하고 있었다. 이론에 맞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끝없이 실험을 반복하는 과학자처럼. 부끄러움을 심하게 느꼈다. 만약 사석에서 우연히 만났다면, 나 역시 그녀의 성별을 의심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여성을 남성으로 의심하는 것은 성적 모욕이다’는 선에서 정리한다면 지나온 논란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일 터다. 오히려 이런 질문들이 더 적절해 보인다. 성적 특질의 기준은 정당한 것인가? 고정된 것인가? 더 나아가 과연 존재하는 것인가? 여성은 어떤 기준에서 여성인가? 외형? 사회적 합의? 호르몬 수치? 태생적 성징? 성기의 형태? 염색체 배열? 기준을 무엇으로 잡아도 결정할 수 없는 존재가 우리 사이에 이미 있어왔다. 지난 논란에서는 박은선 편에 다수가 섰지만, 과거 인터섹슈얼 여성, Y염색체 보유 여성, 트랜스젠더 여성인 운동선수의 성별 논란이 불거졌을 때는 반대쪽에 다수가 섰다.

생물학적 극소수자와 ‘남성으로 의심받은 여성’인 박은선의 사례를 어떻게 감히 비교할 수 있느냐고 누군가 되물을지도 모르겠다. 진정한 차원의 논쟁은 거기서부터 시작일 것이다. 그런 말은 박은선과 다른 여자선수들을 감히 동등한 비교 선상에 둘 수 없다는 WK리그 감독들의 판단과 아주 흡사하게 들린다. 논리적 기저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남성과 여성을 가름하기 위한 논쟁은 우리의 젠더 인식과 상상력이 아마조네스, 남성화된 여성의 신화를 한계로 하여 머물기 때문에 일어난다. 그리스 신화는 여전히 성별을 ‘결정 문제’로 남겨둔다. 반면 힌두 문화권에는 ‘히즈라’라는 기타 성별이 이미 실존하고 있다. 그들은 무성(無性·성적 무지향자), 간성(間性·유전적 중간자), 양성(兩性·양쪽 성징 발현자), 그리고 비결정적(Indeterminable Gender)이며 사회적으로 구성된 젠더(Social Construction of Gender)를 인정한다.

여기서 생각해봐야 할 것은, 성별 논란이 역사적으로 ‘여성/남성이 아닐 것이다’라는 배제형 문장으로만 제기돼왔다는 사실이다. 논란을 제기하는 쪽은 뒤집어 ‘남성/여성일 것이다’라고 단정하는 법이 없었다. 그렇다고 남성도 여성도 아닌 제3의 젠더를 받아들일 용의가 있는 것도 아니다. 애초 의혹은 범주 어휘가 단 두 개뿐이라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박은선에 대한 WK리그 감독들의 보이콧 선언 역시 단순히 뛰어난 자를 제거하려는 관료적 담합만은 아닐 것이다.

과연 그들은 박은선이라는 특출하고 초인적인 선수를 제거해 팀의 성적을 지키려고 했던 것일까? 혹시 박은선이라는 특수하고 초월적인 사례를 제거함으로써 여성성과 남성성으로 배타이분되는 세계관을 지키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대체 젠더 이분 논리에 따라 제기된 의혹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다고 봐야 할까? 여자도 아니고 남자도 아니지만, 여자도 남자도 아닐 수는 없는 초논리적 젠더가 존재한다는 것? 어쩌면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구도 아니고 달도 아니지만, 지구도 달도 아닐 수는 없는 행성에서라면.

글 손아람 힙합 그룹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의 멤버로 활동했다. 그룹 이름과 같은 제목의 소설을 써서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서울 용산 참사를 소재로 정통 법정소설인 <소수의견>을 썼으며, ‘전태일’이라는 이름을 가진 인물을 찾아다니며 인터뷰해 <너는 나다-우리 시대 전태일을 응원하다>에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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