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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서 전남대 철학과 교수의 수업은 학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인기가 있다. 그는 “강의실에서만큼은 교수도, 학생도 모두 행복해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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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시30분. 복도에서부터 강의실의 뜨거운 열기가 전해진다. 강의 시작 5분 전. 40여 명 남짓 들어갈까. 젊은이들이 빼곡하게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 봄기운이 완연한 오후, 춘곤증이 몰려올 만도 한데 눈빛들이 초롱초롱하다. 산타클로스의 선물을 기다리는 어린아이처럼 기대에 잔뜩 부푼 표정이다. 도대체 어떤 강의길래?
드디어 검은색 뿔테 안경을 코밑까지 내려쓴 50대 후반의 남성이 들어선다. 한눈에도 꼬장꼬장하고 깐깐할 것 같은, 고지식한 학자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강의실을 한 바퀴 휘 둘러본다. 그러고는 출석 부르는 일도 생략한 채 곧바로 칠판에 글씨를 쓰기 시작한다.
BIBLE(성서).
또 쓴다.
biblion 책 → biblion 성서 → bible.
줄을 바꾼다.
bibliomania(서적광) bibliophobe(서적혐오자) bibliophile(애서가) bibliophage(독서광).
지금 이곳은 광주 전남대 교정 진리관 101호 강의실. 철학과 학부 교양과정 한 과목의 강의 시작 무렵의 풍경이다. 과목 이름은…, 무려 ‘기초 희랍어’. 그리스어, 그것도 고대어라는 말이다. 이걸 어디에다 ‘써먹을’ 수 있을까. 취업에도 도움이 안 되고, 학점 따기도 쉽지 않은 과목이다. 그런데 수강생이 40명을 넘는다. 강단 인문학이 위기라는 말이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인데, 이런 기현상은 뭐란 말인가. 이 과목만의 예외적인 현상일까.
강단의 위기, 여기선 없다
그렇지 않았다. 철학과 수업마다 수강생이 폭주하고, 부·복수 전공으로 철학을 선택하는 사례도 속출한다. 대학원생 수도 100명이 넘는다. 정규 교수가 13명에 이르고, 비정규 교수(강사)도 20여 명이나 된다.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현상만 보더라도 전남대 철학과는 르네상스라 할 만하다.
강의가 시작됐다. 교수가 말했다. “당신들은 비블리오포베(bibliophobe), 책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입니다. 여기 여러분과 반대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비블리오페이지(bibliophage), 책을 씹어먹는 사람. 즉 독서광입니다.”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하지만 산만함도 잠시, 교수는 개의치 않는 눈치다. 오로지 수업에만 열중할 뿐이다. 강의는 끊김이 없다. 교수가 학생들에게 물었다.
“여러분, 학문을 연구하는 대학에 애견미용학과 안경광학과가 있는 게 말이 됩니까?”
“철학과에서 정몽준 의원 명예철학박사 학위 수여를 거부했던 거 알고 있죠? 철학이랑 아무 상관 없는 재벌 총수한테 철학박사 학위를 주는 게 가당키나 합니까? 경영학이나 정치학이면 모를까. ‘철’을 생산해서 그런 건가요?”
“하하하.” “호호호.” “키득키득.”
학생들 사이에서 다시 제각각의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같은 날 오후 4시30분, 진리관 606호 강의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수업이 진행될 예정이다. 플라톤의 <향연>(Symphosion)을 옆구리에 낀 학생들이 하나둘 자리를 잡고 앉기 시작했다. 교수가 들어섰다. 아까 그 교수다. 칠판에 eros(에로스·육체적 사랑), agape(아가페·정신적 사랑), philia(필리아·우정)라는 단어부터 써내려갔다.
“소크라테스 부인 크산티페가 악처일까요?” 질문을 던졌다. ‘당연한 걸 왜 물어보나.’ 학생들의 표정에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악처가 아니라 현모양처죠. 소크라테스는 집에 한 번도 돈을 갖다준 적이 없어. 나도 그랬으면 좋겠네. 집에 박혀서 공부만 하게. 그래서 이런 얘기가 있어. 악처를 만나면 철학자가 된다고.”
“하하하.” “호호호.” “키득키득.”
자본에 맞선 수호자, 교수 이강서
두 강의를 이끈 주인공은 철학과의 이강서 교수다. 서양고대철학 전공자인 이 교수는 1996년 전남대에 부임했다. 올해로 18년째다. 전남대 철학과의 흥망성쇠를 경험한 산증인이나 다름없다. 그는 이 대학 최고 ‘인기 강사’이기도 하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강의는 무려 90여 명이 수강한다. 인기 비결은 무엇일까. 그의 수업은 재밌기로 입소문이 자자하다. 우선 눈에 띄는 건 그의 교수법이다. 그의 강의는 한 편의 무대 공연을 보는 느낌이다. 좌우로 쉼없이 움직이고, 간혹 손동작과 추임새를 끼워넣는다. 때로는 어린아이 같고, 때로는 할아버지 같다. 별명이 ‘두 얼굴의 사나이’다.
그의 인기를 가늠해볼 수 있는 과목 가운데 하나가 ‘기초 희랍어’다. 고대 그리스어는 서양철학을 하는 데 꼭 필요한 언어다. 뒤집어 말하면, 전공자가 아니라면 굳이 수강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과목이다. 그런데도 항상 20~40명이 그의 강의를 수강한다. 지난 10여 년간 단 한 번도 폐강된 적이 없다. 다른 학교였다면 줄줄이 폐강 신세였을지 모른다.
“이번 학기에도 44명이 들어요. 4년제 대학 가운데 희랍어를 정규 과목에 개설한 곳이 서울대를 포함해 다섯 곳밖에 안 됩니다. 여기에 전남대가 포함됐다는 사실은 엄청난 겁니다. 전남대를 빼고는 모두 서울에 있는 유명 대학이거든요. 그만큼 전남대에서 철학과, 철학이라는 학문에 관심이 많다는 뜻이지요.”
이날 마지막 강의를 마치고 연구실로 들어가는 이 교수를 뒤쫓아갔다. 단도직입적으로 그에게 물었다. 전남대 안에서 철학과로 사람이 모이고, ‘강단 인문’ 부활의 조짐이 나타날 수 있었던 배경이 무엇이냐고.
그는 “강단 인문학 부활이라고 보기에는…”이라며 말을 아꼈다. “그동안 진행했던 학과 구성원들의 작은 노력들이 학생들의 호응을 받는 정도일 뿐이에요. 현재의 분위기는 언제든 꺼질 수도 있고요. 전남대 철학과의 상황이 딱히 모범이라고 하기도 모호합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10여 년 전부터 학내 구성원들 사이에 대학과 인문학의 정체성 훼손을 막는 마지노선이 철학과가 되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회고했다. 2005년 김상봉 교수 특별 채용이나, 이후 2007~2011년 세 차례에 걸쳐 정몽준 의원의 명예철학박사 학위 수여를 막은 것도 그 일환이라는 것이 이강서 교수의 분석이다.
당시의 구체적인 노력을 보여주는 것이 2001년 설립된 철학연구교육센터다. 학과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철학 교육 프로그램 등을 개발하고 실천하는 일이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이와 맞물려 철학과 전반적으로 강의의 내용과 교수법 수준이 높아졌다. ‘사람과 세상을 바꾸는 인문강좌’ 등 시민을 대상으로 한 자체 강좌 프로그램도 운용하기 시작했다. 즉, 이때부터 철학의 대중화를 위한 행보가 진행됐다고 볼 수 있다. 강단 인문학 내 교수진과 강단 밖 인문학 내 시민의 접점이 넓어질수록 전남대 철학과와 교수들의 인지도가 높아졌다. 광주시민들 사이에서 전남대 철학과에 대한 인식이 점점 호의적으로 바뀌었다. 그러면서 강단 안팎에서 전남대 철학과 구성원들을 찾는 수요가 크게 늘었다. 당연히 학내에서 철학과 수업에 대한 평판과 인식이 좋아지면서 수강생도 증가했다. 그것이 지금의 ‘전남대 철학과 현상’으로 나타났다는 얘기였다.
이 교수는 자신을 전남대 철학과의 ‘고문관’이라고 규정했다. 나름 사연이나 사정이 있을 터였다.
“77학번인 저는 1970년대 후반과 80년대 초반으로 이어지는 격동기를 대학에서 경험했지만, 적극적으로 나서는 스타일이 아니었어요. 겁도 많고 체격도 왜소했어요. 할 줄 아는 건 겨우 책을 읽고 생각하는 거였어요.”
독일에서 유학하며 대학의 역할과 의무에 대해 심도 깊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적어도 전남대 철학과가 한국 내에서 대학의 역할과 의무에 복무하는 학과가 되기를 바랐다.
“한국은 짧은 시간 동안 수많은 것을 해결한 나라이고, 대학도 마찬가지입니다. 긴 세월에 걸쳐 만들고 형성해온 서양의 대학과 달리 우리나라 대학은 정부 주도로 급하게 만들었지요. 대학진학률이 80%인데, 29%인 스위스에 비해 3배 가까이 높습니다. 이제 와 정부는 2023년까지 대학 정원을 16만 명 줄인다고 발표했어요. 대학은 이미 더 이상 대학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피폐한 상태입니다. 고속버스터미널의 소주 광고 벽보처럼 대학을 광고하는 시대가 되었으니까요.”
그의 생각대로라면 대학의 위기, 인문학의 위기는 대학이 초래한 것이나 다름없다. 재벌과 자본에 고유의 정신을 팔아버린 대학들이 인문학을 중시할 리 만무하다. 그가 철학과 내에서 ‘고문관’을 자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적어도 전남대 철학과만은 대학의 정신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가 대학의 역할론과 관련해 모델로 삼는 대학은 독일의 튀빙겐대학이다. “시민들이 ‘대학도시 튀빙겐’이라고 부를 만큼 사랑하는 대학입니다. 여기에서는 시민들이 산책을 할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개설한 수많은 강좌를 듣습니다. 대학의 학문적 성과를 시민들과 함께 나누는 기풍이 조성돼 있어요. 1년에 하루는 어린이들을 초청해, 강의실과 실험실은 물론이고 총장실까지 개방합니다. 그게 대학을 사회에 환원하는 본연의 모습이지요. 그런데 우리나라 대학들은 말로만 ‘대학 개방’이라고 하면서, 오히려 반대로 가고 있어요. 대학 도서관도 개방하면서 좀더 시민 곁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대구서 광주로 온 까닭은, 대학원생 추교준
추교준씨의 이력은 독특하다. 대구 토박이로 영남대 철학과에서 학부를 마쳤다. 연고가 없는 광주에 온 건 100% 대학원 진학이 목적이었다. 왜 하필 전남대를 선택했을까. 그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고 말했다.
교준씨가 철학에 관심을 가진 건 고등학교 때 연합 독서토론회에 가입하면서다. 처음엔 여성들에게 허세를 부리고 싶은 목적이 컸다. 알베르 카뮈, 장폴 사르트르가 쓴 책들을 접하며 실존주의에 눈뜨기 시작했다. 철학이라는 학문이 새롭게 보였다. 인간과 세계, 즉 우리 삶과 가장 밀접한 학문이 철학임을 깨닫게 됐다. 대입 원서를 쓸 때 ‘철학과’를 택했다. 부모의 반대가 있었지만 “졸업 뒤 교사가 되겠다”고 설득했다. 알고 보니, 그것이 ‘삼단논법’이었다.
2006년 2월 대학 졸업과 동시에 본격적으로 임용고시를 준비했다. 당시만 해도 목표는 오로지 ‘국민윤리 교사’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도덕교육의 파시즘>(김상봉)이란 책을 접했다. 꿈을 접었다. 국민윤리 교사가 되는 건 곧 학문을 배반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참된 도덕적 능력의 함양이 아니라 국가 이데올로기에 꼭 맞춘 착한 인간이 되라고 가르칠 자신이 없었어요.” 김상봉 교수, 그리고 ‘파격’을 감행했던 전남대 철학과에 진학하고픈 욕구가 점점 커졌다. 1년 남짓 준비 끝에 2007년 3월 뜻을 이뤘다.
이곳에 온 걸 후회한 적은 없었을까. 실망을 했거나.
“전혀 없었습니다. 특히 정몽준 명예철학박사 학위 거부 사건은 지금 생각해도 뿌듯합니다. 전남대 철학과의 강점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니까요.”
교준씨도 전남대 철학과 현상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까. 그는 “대학원에 입학할 때도 이미 철학과 수업이 재미있고 유익하다는 입소문이 퍼져 있었고, 그런 기류는 2000년대부터 있었다고 들었다”며 “당시에도 3~4분반이 수시로 이뤄졌다”고 기억했다.
전남대 철학과 현상은 학내뿐 아니라 대외적으로도 알려져 있는 상태다. “실제 학부생 중에는 충청도 출신인데도 담임교사의 조언에 따라 이곳으로 진학한 경우도 있답니다.” 교준씨는 “입소문이 나면서 연구뿐 아니라 사회 참여도 열심히 하는 학과라는 인식이 쌓이고 있다”며 “강의 요청 등에서 전남대 철학과 출신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철학 전공자로서 만족도가 높은 편이겠네요?”
“그럼요. 대학원생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철학은 제 스스로 판단하고 결단을 내릴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학문이라는 점에서 매력적입니다. 주변 환경에 흔들리지 않고 조망하면서 주인으로서 내 삶을 개척할 수 있는 내공을 쌓는 연구를 하고 있어서 만족스럽고 행복할 수밖에요.”
이쯤에서 교준씨에게 가장 묻고 싶었던 질문을 던졌다. 전남대 철학과 현상이 왜 생겼다고 보나?
“전남대 철학과가 인문학 르네상스를 이끄는 게 아니라 광주라는 지역의 인문학적 요구가 전남대로 모여 나타나는 현상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광주의 특수성을 떼놓고 생각할 수 없으니까요.”
그는 그 근거로 광주 고유의 정서를 들었다. 그가 경험한 광주는 모든 면에서 자신의 연고지인 대구와 180도 달랐다. “대구에서는 1인시위만 해도 어른들께 혼날 각오를 해야 했어요. 반면 광주 시민들은 응원하고 격려해주죠. 광주는 다른 지역보다 인간과 삶, 세계를 탐구하는 인문학에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는 역사와 의식을 가진 도시라는 거죠. 약자에 대한 기본적인 공감도 있고요. 실제 광주에서는 마을도서관, 협동조합, 노조, 학교,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이 주축이 된 인문학 강좌가 수십 개 개설돼 있어요. 서울 못지않게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는 도시지요. 그런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학교 안까지 스며든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카페 ‘음악에’서 소통하는 ‘철학애’
“내 형제 그리운 얼굴들/ 그 아픈 추억도/ 아 짧았던 내 젊음도/ 헛된 꿈이 아니었으리/ 그날이 오면…”(<그날이 오면>)
늦은 밤. 전남대 인문대 쪽문 인근 카페 ‘음악에’에서 한 여인의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통기타와 민중가요가 대학가에서 수명을 다한 게 아니었다. <그날이 오면> <서른 즈음에> 등의 노래가 이어졌다. 철학과 원승룡 교수의 기타 연주에 맞춰 ‘음악에’ 여주인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10여 명의 손님들은 공연을 감상하거나, 노래를 따라 불렀다. 이곳은 7년여 전부터 전남대 철학과의 사랑방 구실을 하고 있다. 철학과 특유의 자유롭고 민주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데 ‘음악에’의 역할을 부인할 수 없다.
“대학원생뿐 아니라 학부생들도 종종 옵니다. 언제 오든지 학과 사람들이 꼭 있어요. ‘음악에’ 덕분에 교수와 학생의 거리가 좁혀지고, 이해와 인식의 틀을 넓힐 수 있었습니다. 다른 과에서 가장 부러워하는 철학과 고유의 문화죠. ‘음악에’ 덕분에 부족하나마 학과 내 소통과 민주적 절차가 더욱 빠르게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이런 요소들이 모여 학내에서 철학과가 인정받는 여건을 만들 수 있었던 것 같아요.”(추교준)
“철학과와 ‘음악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죠. 철학과만의 독특한 문화이기도 하고요. 스승과 제자 사이를 서로 존중하지 않고는 나올 수 없습니다.”(이강서)
광주라는 고유의 정서, ‘음악에’라는 공간. 전남대 철학과 현상의 배경으로 꼽힌다. 이 교수도 여기에 공감했다. “광주의 경우 동학, 광주학생운동, 5·18 등으로 이어지는 역사 속에서 인문학적 전통이 탄탄합니다. 이런 토양이 교수와 학생들의 인문학적 사유와 성찰, 또 여기에서 오는 실천을 독려했다고 볼 수 있어요.”
반면 이 현상을 ‘르네상스’ ‘부흥’ 등으로 확대해석하는 것에는 이강서 교수도, 추교준씨도 경계했다. 현상에 대한 주도면밀한 분석과 평가 없이 결론을 내는 것이 성급하다는 이유다. 또한 전남대 철학과 내부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도 있다. 현재의 긍정적인 분위기나 성과가 언젠가 거품이 되어 사라질 가능성도 상존한다.
“현재까지 탁월한 연구 성과를 낸 것도 아니고, 후속 연구 세대 육성이나 학풍 조성 면에서도 가시적 흐름을 만들지 못한 상태입니다.”(이강서)
이 교수에게 앞으로 철학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물었다. 그는 ‘탄광 속 카나리아’를 예로 들었다. 전남대 철학과가 우직하게 대학과 인문학의 정신을 지켜내는 보루가 될 수 있도록 앞으로도 ‘고문관’ 역할에 충실하겠다는 뜻으로 들렸다.
이들 사이에 맥주잔이 오갔다. 술기운이 오르니 분위기가 한껏 고조되고, 이야기꽃이 피었다.
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전남대 철학과의 어제와 오늘
“도를 아십니까?” ‘철학’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농담 섞인 대답이 돌아온다. 대부분 ‘잘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여기에 명쾌한 답을 내려주는 이는 드물다. ‘모르는 학문’에서 시작된 철학에 대한 단상은 ‘필요 없는 학문’으로 귀결된다. 한국 사회의 철학이 처한 위기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 바로 대학 강단이다. 충원율이 낮은 지방대뿐만 아니라 서울의 몇몇 대학에서도 이미 철학과 같은 비인기 학과들의 통·폐합이 진행 중이다. 취업률이 학교를 평가하는 하나의 잣대가 되어버린 지금,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 학문이라는 게 통·폐합의 주요한 이유다. 강단 내 철학 교육의 씁쓸한 현주소다. 그래서 전남대 철학과 현상은 더욱 이례적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리타분하고 어렵다는 선입견을 가진 학문이지만 이곳 전남대에서는 자리가 없어서 못 듣는다.
전남대 철학과가 처음부터 주목받는 학과는 아니었다. 1980년대 정권의 이념에 따라 재편된 철학은 이미 젊은 학생들에게 비합리적인 학문, 시대에 동떨어진 학문으로 인식됐다. 치열했던 현실과 조응하는 학문이라는 걸 느낄 수 없을뿐더러 기초 학문으로서의 존재감도 미미했다. 1986년 국민윤리가 철학과 교직을 대체하면서 학생들의 불만이 폭발했다. 그런 상황에서 전남대 철학과 87학번이 주축이 된 최초의 ‘철학과 학생연합회’가 전국적인 철학 교육 개혁의 서막을 올린다. 본질을 상실한 철학 교육의 변화와 어용·무능 교수 탄핵 등을 요구했던 전남대 철학과는 이 사건을 계기로 ‘철학 대중화’의 토대를 마련했다. 당시 주요 구성원이던 박구용·김양현 교수 등이 1990년대 후반부터 임용되면서 전남대 철학 교육의 개혁에 동력을 불어넣었다.
박구용 교수는 “철학과 학생연합회는 ‘철학의 대중화, 대중의 철학화’를 모토로 내걸었는데, 교수 임용 이후 김양현 교수와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할 방법들을 찾았다”며 “학과 전공수업을 강사들에게 개방하는 한편, 시민사회와 연계한 인문학 강좌에 철학과 교수진이 참여하기 시작했고 노양진·원승룡·이강서 교수 등도 적극적으로 동참했다”고 회고했다. 결코 간단치 않았던 역사적 전환점을 거쳐 전남대 철학과는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현재 전남대 철학과에는 13명의 전임교수가 포진하고 있다. 전국 철학과에서 서울대 다음으로 많다. 강사진은 20명에 이른다. 2014년 1학기에 개설된 강의 수는 21과목. 여기에 분반된 과목까지 더하면 실제로는 30개 가까운 강의가 열리는 셈이다. 학년당 정원은 35명이지만 수업을 듣는 학생은 평균 60명에 육박한다. 전공생만큼이나 타과생이 많은 셈이다. 전남대 철학과 수업은 부·복수 전공자가 아닌 학생도 자유롭게 신청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전공 외 학생들의 타과 수강 신청은 제약이 있는 경우가 많다. 반면 철학과 수업은 관심만 있으면 언제, 어떤 과목이든 선택해서 들을 수 있다. 자율전공학부에서 철학과로 전과한 권우현씨는 “철학과는 내가 듣고 싶은 수업을, 내가 찾아서, 내 학문을 위해 시간을 할애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김상봉 교수는 “전남대는 획일적인 교육 시스템의 해방구”라고 말했다. 전남대 철학과에는 교수와 강사 간의 수업 경계가 없다. 철학수업 분반을 통해 전공과목까지 강사의 수업 폭을 넓혔다. 가장 비인기 과목인 독일 관념론 수업을 무려 4개로 분반한 게 좋은 사례다. 어렵고 지루한 관념론 수업에 젊은 강사들을 배치하자 학생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철학과 분반 수업은 유례없는 일로 평가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강사들은 대학원 논문 심사에도 참여한다. 교수-강사의 수직적 관계가 아닌 학문공동체라는 인식을 심어주면서 강사들도 전임교수 못지않은 수업 열정을 보인다. 교수들은 올해부터 참여 범위를 넓힐 예정이다. 교과 개편 과정에 강사는 물론 학생들까지 위원 자격으로 참여하게 하는 것이다. 학생들의 의견을 듣고 그들이 원하는 교육과정을 구성하기 위해서다.
교수들의 노력은 강의실 학생들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학생들은 전남대 철학과 수업의 매력을 세 가지로 꼽았다. 열정, 재미, 몰입. 학생 90명이 넘는 철학 강의실에서는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키르케고르가 말하길, 결혼은 해도 후회하고 안 해도 후회하리라. 여긴 다 안 해서 후회하는 사람들이지? 나는 하고 후회한 사람이야.” 학생들은 박장대소하면서도 집중력을 흩뜨리지 않는다. 전가현(조경학과 4)씨는 “학생들 사이에서 철학 수업은 뭐든 재미있다는 인식이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사소한 철학적 관심, 찰나의 의문에서 시작된 지적 호기심은 ‘열정·재미·몰입’으로 집약된 수업을 통해 증폭된다.
강단 안의 철학에 머물지 않은 것도 전남대 철학 부흥의 또 다른 이유다. 전남대 철학과는 시민단체와의 지속적인 연대를 통해 지역사회 전반에 걸친 ‘철학의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 ‘교사의 인문학’과 ‘청소년 철학교실’을 운영하는 박구용 교수가 대표적이다. 그는 교사들뿐 아니라 중·고등학생들의 철학적 기초를 다지는 데도 적극적이다. 실제 전남대 철학과에는 청소년 철학교실을 통해 들어온 학생들이 있다. 전남대 철학과에 좋은 이미지를 갖게 된 교사들은 자신의 학생을 철학과에 추천한다. 이 선순환 구조가 이어지면서 학생들의 학습 분위기도 덩달아 좋아졌다. 교수들은 수업에서 ‘철학은 사회문제와 연계하는 학문’이라는 점을 늘 강조한다.
그러나 전남대 철학과가 나아가야 할 길은 아직 멀고도 험하다. 기존의 전통적인 격자형 철학에서 탈피해 횡단형 철학을 강조하면서 다양한 연구가 공존할 수 있었다. 대신, 시대를 관통하는 철학적 화두를 발견하지 못하는 점이 한계로 꼽힌다. 앞으로 논의의 간극을 좁히고 합의점을 찾아내는 것이 관건이다. 대학원에서 진행되는 ‘BK21’(우수 고등인력 양성 교육정책) 프로그램도 이제 막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학문과 자본의 결합’이라는 부정적 시선을 불식시키기 위해 제도적 단점을 뛰어넘는 학문적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 전남대 철학과의 최종 지향점은 철학적 다양성을 존중하면서도 한국의 독자적인 철학 모델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오합지졸’ 철학이 아닌 ‘백가쟁명’ 철학을 만들기 위한 전남대 철학과의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지희 인턴기자 amour.fati@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