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4.01 14:53 수정 : 2014.05.02 15:03

서울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의 박승옥 이사장이 ‘우리집 햇빛발전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가정마다 태양광발전시설을 설치해 직접 전기를 생산하게 되면 핵발전소를 줄일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먼저 이 이야기를 꼭 해야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모든 아이디어와 기획이 ‘개인’에게서 나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러 사람의 의견이 총체적으로 투영된 것이어서 사유화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소신을 갖고 있습니다. 제가 수십 년간 에너지 고갈과 대체에너지 문제에 관여해왔고, 또 2012년 1월 출범한 서울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 이사장으로 ‘우리집 햇빛발전소’ 모델을 구상한 당사자임에도 여기에 등장하는 게 옳은지 판단이 안 서는 이유입니다.

에너지 자급이 가능할까요? 최근까지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우세했습니다. 아니, 아무도 그 필요성에 주목하지 않았다고 하는 게 맞겠지요. 1986년 소련 체르노빌 원전 사고에도 국내 분위기는 ‘피크오일’ 이후 대체에너지로 원자력을 택했습니다. 저렴할 뿐 아니라 안전하고 청정하다고 여겼죠. 지금껏 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원전 진흥 및 수출 정책이었습니다. 1978년 고리 원전 가동을 시작으로 월성(1983)-영광(1986)-울진(1998)-신고리(2005) 등으로 원전을 확대했습니다. 지난 1월14일 확정한 제2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에는 2035년까지 원전을 최소한 39기로 확대한다는 내용이 포함됐습니다. 현재 가동 중인 원전 23기와 건설 중인 5기 외에 11기를 더 짓겠다는 것이죠.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원전이 가져올 재앙을 알았습니다. 독일은 ‘탈핵’을 선언했습니다. 우리 정부 정책은 거꾸로 가고 있어 안타까울 뿐입니다. <한국 탈핵>을 지은 김익중 교수는 “핵발전소 밀집도가 높은 한국을 후쿠시마 사고 이후 핵발전소 폭발 가능성이 가장 높은 나라”로 꼽기도 했는데 말이죠.

핵의 대안은 태양·물·바람 등을 활용한 재생가능(신재생) 에너지입니다. 우리 조합이 추진하는 ‘우리집 햇빛발전소’가 더욱 값진 이유는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신재생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제도이기 때문입니다.

55만원짜리 가전제품, 태양광 패널

서울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이 올해 초부터 대대적으로 추진하는 ‘우리집 햇빛발전소’가 뭐냐고요? 지역의 공공시설에 설치하는 ‘시민햇빛발전소’1와 달리 가정에 설치하는 발전시설을 뜻합니다. 공식적으로 ‘우리집 햇빛발전소 1기’는 지난 2월5일 조합 김광철(59) 이사의 서울 목동 아파트 베란다 난간에 설치됐습니다. 가로 165cm, 세로 100cm 크기(250W)의 태양광 패널인데, 설치가 간단합니다. 케이블 연장선, 인버터, 낙하 방지를 위한 고강도 견인 로프를 이용해 30분 만에 설치를 끝냈으니까요. 우려만큼 전망이나 시야를 가리지 않았습니다. 전선을 에어컨 구멍을 통해 안으로 들여온 뒤 직육면체 모양의 인버터에 연결하니, 곧바로 전기가 만들어지더군요. 각 가정의 베란다나 지붕에 설치하는 55만원짜리 가전제품이라고 생각하면 쉽습니다. 기존 가전제품과의 차이라면 전력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한다는 점이죠. 1대 설치만으로 냉장고 1대 돌리는 양의 전력을 자급하게 됩니다.

이쯤에서 ‘그게 뭐?’ 궁금증이 들 겁니다. 솔직히 각 가정에 태양광발전시설을 놓는 ‘우리집 햇빛발전소’는 새로울 게 없는 기획입니다. 태양열 주택은 1970~80년대부터 볼 수 있었으니까요. 요즘도 서울 성북동이나 전원주택 단지 등에서 흔하게 목격됩니다. 실제 ‘우리집 햇빛발전소’ 추진 이전부터 개별적으로 가정에 태양광발전시설을 설치한 분이 꽤 있습니다. 서울시가 2004년부터 추진한 주택태양광 보급사업 덕분이지요. 지난해까지 2579가구가 참여했으니 어마어마한 성과죠. 정부도 2002~2011년 발전차액지원제도(FIT)2 등을 통해 재생에너지 생산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했고요.

그동안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한국전력의 신재생에너지 육성 정책은 재생에너지 설비 지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그 결과 생산시설이 널리 보급되는 성과를 얻었고요. 문제는 에너지 수급에서 화력·원자력 의존도가 줄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절약한 전기요금만큼 전기사용량을 늘렸기 때문이지요. 실제 정부 지원금을 받아 전지판을 설치한 가정들을 조사했더니 월 전기료가 일시적으로는 줄었지만 장기적으로는 예전 수준을 회복한 것으로 나왔어요. 이는 재생에너지 육성 정책에서 시민들의 자발적 ‘전기 절약’ 노력이 중요하다는 걸 의미하죠. 시설 지원금 위주의 현행 제도만으로는 탈핵·탈원전이 불가능합니다.

‘우리집 햇빛발전소’는 이런 문제점을 보완해, 협동조합 단위에서 재생에너지 생산과 에너지 절약이 함께 이뤄지도록 모델을 구상한 것이 특징입니다. 저는 재생에너지 위주로 에너지 생산 구조를 바꾸려면 시민 개개인의 의식이 중요하고, 더 나아가 의식을 변화시킬 수 있는 협동조합 형태가 중요하다고 확신합니다. 무엇보다 조합 내 교육과 홍보를 통해 탈핵·탈원전·생태주의적 삶, 에너지 절약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시키는 장점이 있고요.

원전 하나 줄이는 건 식은 죽 먹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전기 사용을 왜 줄여야 하는지, 왜 탈핵을 해야 하는지, 에너지 고갈시 어떤 재앙이 오는지, 왜 재생에너지가 대안인지에 대한 인식이 낮은 편입니다. 체르노빌의 예를 들어볼까요? 거대한 시멘트를 부어 멜트다운(노심용융)해놓았어도 관리 인력이 2천여 명에 이릅니다. 그 짓을 10만 년 이상 계속해야 합니다. 얼마나 비효율적입니까? 이걸 아는 분이 얼마나 될까요? 후쿠시마도 또 언제 사고가 터질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원전은 그나마 빨리 폐쇄하는 게 정답입니다. 이런 진실을 알리는 게 저 같은 생태주의자들의 책무이고요.

최근 ‘햇빛발전협동조합(시민햇빛발전소)’3 결성이 봇물을 이루고 있습니다. 고무적 현상입니다. 지역의 ‘시민햇빛발전소’와 가정의 ‘우리집 햇빛발전소’ 설립도 지금보다 더욱 활발해질 것입니다. 지금껏 우리나라의 전력 생산 구조는 해안에서 화력과 원자력으로 전력을 생산해, 송전탑과 송전선을 활용해 수도권으로 전기를 운송하는 것이었습니다. 언제든 제2, 제3의 밀양이 나타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데, 햇빛발전소가 이를 막아줄 대안이 될 것입니다. 더 나아가 화력·원자력 중심의 에너지 구조를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탈바꿈시키고, 에너지 고갈 사태를 극복하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햇빛발전소는 지속 가능하다는 점에서 효용 가치가 높고 경제적입니다. 환경 파괴의 위험 없이 지구를 살리는 길이기도 합니다. 집집마다 김광철 이사처럼 ‘우리집 햇빛발전소’를 설치한다면, (제 제안으로) 서울시가 2011년부터 추진 중인 ‘원전 하나 줄이기’4도 이른 시일 안에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쯤에서 제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자원 고갈 문제를 처음 접한 시기는 대학에 다니던 1972년이었어요. 당시 로마클럽이 자원 고갈이 초래할 세계적 위기를 경고한 보고서 ‘성장의 한계’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죠. 그런데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사회주의를 통해 자원 고갈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고 봤거든요.

본격적으로 에너지 고갈과 재생에너지, 환경과 생태주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1990년대 이후입니다. 이즈음 <녹색평론>이 창간됐는데, 제게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당시 경기도 양평∼여주, 경북 김천 등지를 오가며 유기농업을 해서 자연스럽게 ‘에너지 문제=식량 문제’라고 인식할 수 있었죠. 알고 계세요? 우리가 먹는 한 끼 식사의 90%가 화석연료에서 나온다는 걸 말입니다. 곡물만 보더라도 농약, 비료, 이앙기, 트랙터, 콤바인, 경운기 등 생산·운송·보관 과정에서 석유가 쓰이지 않는 곳이 없어요. 논밭에 석유 에너지를 투입하지 않으면 식량 생산량이 현저히 줄어듭니다. 1960~70년대에 경제적 번영을 누렸던 북한과 쿠바의 경제 사정이 급격히 나빠진 이유는 경제 제재로 인한 석유 고갈 때문입니다. 북한에서 20만~30만 명이 기아로 사망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석유 자원은 유한합니다. 핵 역시 지속 가능한 에너지가 아닙니다. 에너지 고갈 이후 식량전쟁은 필연적입니다. 자원 빈국인 우리나라의 경우 자원 고갈로 블랙아웃이 오면 그 피해가 재앙에 가깝습니다. 정치·경제·산업·교통 등 모든 시스템이 올스톱 될 것이 뻔합니다. 북한과 쿠바가 한순간에 무너진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지금부터라도 에너지 자급률을 높여야 합니다. 협동조합, 햇빛발전소가 중요한 게 이 때문이고요. 에너지 문제를 협동조합을 통해 해결해야겠다고 본격적으로 생각한 것은 전북 부안의 핵폐기장 문제가 들끓던 2003년 즈음입니다. 그렇게 해서 만든 게 시민발전유한회사였지요. 당시만 해도 협동조합 관련 제도 등이 미미했기 때문에 유한회사 형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죠. 그게 햇빛발전협동조합의 가능성을 열어준 셈이죠. 시민발전유한회사가 2005년 부안군 내 부안성당, 원불교 교당, 생태학교 생명평화마중물 등 3곳에 설치한 햇빛발전소는 현재 햇빛발전소의 시초라 할 수 있고요.

에너지 민낯 프로그램부터 동참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우리집 햇빛발전소’는 1GW(1기가와트=1천메가와트(MW))의 핵발전소에 견줘 그 400만분의 1인 약 250W 용량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각 가정에 이런 발전소를 세울 경우 그 효과가 엄청납니다. 원전 1~2개를 줄이는 게 대수겠습니까? 서울의 360만 가구, 전국의 1400만 가구에 ‘우리집 햇빛발전소’가 세워진다면 핵발전소 몇 기 운영을 중단시키는 것도 시간문제입니다. 충분히 실현 가능한 아이디어이며, 궁극적으로 ‘탈핵’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에너지 혁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집 햇빛발전소’는 김광철 이사처럼 아파트 베란다에 설치할 수도 있고, 주택과 건물의 지붕이나 외벽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할 수도 있어요. 도시 고층 빌딩의 외벽을 활용하게 된다고 상상해보십시오. 그 효과가 상당하겠죠? 패널은 굳이 남향이 아니더라도 태양광이 들어오는 곳이면 어디든 설치할 수 있습니다. 여름뿐만 아니라 봄·가을에도 태양광을 얻는 데 큰 무리가 없고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탈핵의 기본 조건은 재생에너지 생산과 더불어 에너지 절약입니다. 제가 ‘우리집 햇빛발전소’와 동시에 ‘에너지 민낯 프로그램’을 병행하도록 한 건 이 때문입니다. 햇빛발전소 설치보다 더 중요한 게 민낯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설치 이후 1년간 월별 전기사용량과 전기요금을 공개하는 것이 핵심이지요. 햇빛발전소 설치 이후 전기 절감 효과와 전기 절약 습관 등도 자연스럽게 공개되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생활 방식이 몸에 밸 수 있게 될 겁니다.

앞으로 조합이 풀어야 할 일이 많아 어깨가 무겁습니다. 우리나라 전체 에너지 생산에서 신재생에너지 비율이 3.7%에 불과합니다.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공감대를 확대하고, 시민들의 햇빛발전소 참여를 이끌어내는 일이 시급합니다. 햇빛발전소 설립에 유리하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것도 조합의 몫입니다. 시민발전소를 설치할 공공장소의 지붕 임대료를 낮추는 것부터 (현재 불가능한) 공원 부지의 건물 지붕에도 설치할 수 있도록 관련 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서울시의 경우 2012년 7월 에너지 조례를 통해 햇빛발전소를 설치하는 공공건물과 학교 옥상의 임대료를 공시지가의 5%에서 1%로 낮췄습니다. 그럼에도 공시지가가 높은 지역이라 여전히 임대료 부담이 큰 편입니다. 현재 10여 가구뿐인 조합의 ‘우리집 햇빛발전소’ 참여 가구를 늘려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습니다.

각 가정마다 가장 큰 관심사가 전기료 절감이지요? 이참에 햇빛발전소 하나씩 들여놓으시죠. 전기사용량이나 햇빛 조건 등에 따라 다르지만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면 연간 최대 12만~15만원까지 전기료를 아낄 수 있습니다. 김 이사의 경우 1년 전부터 80W(95cm×65cm) 용량 햇빛전지판을 설치했는데, 월 5천~6천원 절감 효과를 봤다더군요. 조합에 가입도 하고, 가정과 지역 공공시설에 햇빛발전소를 설치하는 건 어떠신가요? 조합(solarcoop.kr)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이 글은 박승옥(60) 서울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 이사장의 인터뷰를 구술 형식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1 협동조합 내 각 사이트(학교·주민센터·도서관·구청 등 공공기관)별로 조합원 출자금을 모아 옥상에 태양광발전시설(햇빛발전소)을 설치해, 생산된 전기를 한국전력에 팔아 수익을 내는 형태를 말한다. 최소 출자금은 1계좌당 10만원(최대 200계좌)이다.

2 민간에서 신재생에너지를 이용해 전력을 생산할 경우, 이에 해당하는 기준가격과 전력거래가격 간 차액을 지원하는 제도.

3 전국적으로 서울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 우리동네햇빛발전협동조합, 금천햇빛발전협동조합, 강남햇빛발전협동조합, 둥근햇빛발전협동조합, 시흥시민햇빛발전소, 안산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 수원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 인천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 경남햇빛발전협동조합, 울산북구시민햇빛발전, (주)대구시민햇빛발전소, 한살림햇빛발전협동조합 등이 있다.

4 서울시가 2014년까지 원전 1기만큼의 에너지 소비량인 약 200만TOE(석유환산톤) 절감을 목표로 추진하는 사업이다. 에너지 수요 감축과 재생에너지 생산 확대가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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