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3.04 15:35 수정 : 2014.03.30 14:13

김정일-김정은 부자는 둘 다 권력을 세습했지만, 세습 과정은 물론 개인적 스타일과 성향도 다르다. 이에 따라 권력을 행사하고 유지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 김정은은 김정일에 견줘 경험과 권력 기반이 약한 만큼 제도에 의한 통치에 의존하는 경향이 도드라진다. 그러나 김정은 체제의 가장 큰 변수는 그 자신이나 북한 내부가 아닌 외부 환경이다.조선중앙통신
김정일과 김정은. 아버지와 아들이다. 젊은 후계자는 ‘죽은 아버지’를 통치 기반으로 삼고 있다. 그는 당 총비서가 아니라 제1비서이고, 국방위원장이 아니라 제1위원장을 맡고 있다. 당 총비서와 국방위원장은 죽은 아버지의 것이다. 마치 스포츠 스타들이 은퇴하면 영구결번을 하듯이 말이다. 북한에서 가장 높은 직위는 ‘죽은 자’의 것이다. 세습 권력이 만들어낸 현상이다. 김일성이 사망했을 때, 김정일이 유훈통치라는 죽은 수령의 권위를 빌린 것과 마찬가지다. 이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한 지 2년이 지났다. 젊은 후계자, 김정은의 리더십은 아버지와 어떻게 다를까?

김정일은 아버지 김일성 사망 이후, 북한의 통치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의 정치 경력은 결코 짧지 않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그는 당의 선전·선동 부문에서 일했다. 1967년에는 이른바 ‘갑산파’를 숙청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리고 1970년대에는 ‘3대혁명소조운동’이라는 대중운동을 적극적으로 주도했다. 1980년대 중반 이후에는 사실상 김일성·김정일의 공동통치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의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했다.

국내파 김정일과 유학파 김정은의 차이

이에 비해 김정은은 너무 젊다. 알려진 경력이 거의 없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 때문에, 후계자로서 경력을 쌓을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예측하기 어렵다. 김정일 사망 이후 2년이라는 세월은 무언가를 보여주기에는 너무 짧다.

우선 젊은 지도자의 취향이 눈에 띈다. 최근 평양을 방문했던 사람들에 따르면, 평양의 자동차들이 대낮에도 등을 밝히고 운전한다고 한다. 유럽에서 생활한 유럽파 김정은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김정은은 스위스 베른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베른은 유럽의 도시다. 공업도시로 인구도 적지 않다. 김정은은 감수성이 풍부한 시기에 유럽의 도시에서 보고 듣고 경험했다. 사소한 교통법규의 변화라고 하지만, 김정일 시대에 보지 못했던 풍경이다.

이에 비해 아버지 김정일은 국내파다. 김정일은 소련 유학 대신, 김일성종합대학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했다. 대학생 시절에 그가 쓴 신라의 삼국통일을 비판하는 논문을 북한 당국이 강조하는 것을 보면, 지도자가 역사에 얼마나 관심이 많은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리라. 1964년 대학을 졸업할 때, 김정일은 졸업논문으로 ‘경제 건설에서 군의 역할’을 썼다. 군대가 아니라, 행정단위인 군의 중요성을 강조한 글이다.

청소년기의 경험 차이가 정책 변화로 나타날까? 아직 단정하기는 이르다. 유학파 김정은의 취향이 반드시 긍정적인 것도 아니다. 그가 지도자가 된 이후, 그의 초청으로 북한을 방문한 가장 유명한 인물이 데니스 로드먼이다. 유명한 프로농구 선수 출신이다. 김정은은 농구를 좋아하고, 특히 미국의 프로 경기를 즐겨 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로드먼을 통한 공공외교는 실패했다. 로드먼은 스캔들로 유명하고, 최근에도 음주방송을 하는 등 미국 시민들이 별로 좋지 않게 보는 인물이다. 로드먼 초청외교는 오히려 부작용이 크다. 미국 시민들에게 북한에 대한 이미지만 악화시켰다. 미국 정부는 로드먼이 김정은에게 준 고급 와인을 제재 법안 위반으로 조사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실제적인 결과와 관계없이 로드먼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의식한 조처다.

제도에 대한 입장 차이

김정은이 유럽에서 교육받았다고 해서, 그가 개혁적 성향을 가졌을 것으로 보기 어렵다. 그는 세습 후계자다. 북한식 정치체제의 수혜자다. 우리는 북한의 정치체제를 ‘수령제’라고 부른다. 수령제는 사회주의 체제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정치체제와 다르다. 단순한 권력 독점을 넘어서는 개인숭배 체제이고, 지도자는 정치적 지배뿐만 아니라 사회정치의 모든 분야를 통치한다. 북한에는 냉면집에도, 화장품 공장에도, 맥주 공장에도 지도자의 교시가 걸려 있다. 북한의 지도자는 냉면을 잘 만드는 방법뿐만 아니라, 품질 좋은 화장품과 맛있는 맥주를 만드는 방법도 지시한다.

김정일도 그랬지만, 김정은도 북한식 정치체제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것은 통치의 기반이다. 아버지도 아들도 ‘죽은 아버지의 권위’를 빌려 통치하는 유훈통치를 지속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1994년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을 때, 북한은 3년의 유훈통치 국면을 거쳤다. 김정일 사망 이후, 그의 직책을 ‘영구 기념’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지도자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된 북한식 정치체제의 특성을 보면 작은 차이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김정일과 김정은의 차이도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가장 중요한 차이는 제도에 대한 태도다. 김정일은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정부를 대표하게 해서 일상적인 외교를 맡게 했다. 외교부장 출신인 김영남을 이 자리에 앉혀, 비동맹 외교나 일상적인 외교사절을 접대하게 했다. 그리고 1990년대 이후 당은 제도로 기능하지 않았다. 1980년 6차 대회 이후 더 이상 당대회도 열지 않았고, 당의 전원회의도 1990년대 초반 이후 열지 않았다.

김정은 체제에서 나타난 가장 중요한 변화는 바로 제도의 부활이다. 김정일 시대에 주로 국방위원회가 중요한 정책 결정을 했다면, 김정은 체제에서는 당의 기능이 회복됐다. 김정일 시대에는 당의 정치국 위원이나 후보위원들이 사망해도 결원을 채우지 않은 채 방치됐으나, 김정은 체제에서는 정상적인 인사가 이뤄지고 있다. 김정은 체제에서 중요한 결정은 대부분 정치국 회의를 통해 이루어진다.

제도의 기능이 강화된 이유는 물론 지도자 개인의 성향 차이 때문은 아닐 것이다. 경험이 적은 젊은 후계자는 정책 결정의 내용뿐만 아니라 절차를 중시할 수밖에 없다. 협의와 합의를 강조하는 이유는 책임과 관련 있다. 개인적 결정이 아니라 제도적 결정을 보여주는 이유는, 개인적 책임이 아니라 제도적 책임을 앞세우기 위한 것이다. 김정일 시대와 달리 김정은 체제에서 대부분의 정책 결정이 곧바로 공개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당 정치국 회의가 열린 사실도 공개되지 않았고 결정된 내용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김정은 체제에 들어와서는 대부분이 곧바로 공개된다. 마찬가지 이유일 것이다.

장성택 처형, 정치력의 차이

너무 오랫동안 후계자로 살아온 김정일과 갑자기 지도자로 부상한 김정은의 차이는 정치력에서도 드러난다. 절대권력 체제에서도 권력 갈등은 벌어진다. 정치적 숙청을 처리하는 방식은 그 체제의 수준을 반영한다. 김정일은 오랫동안 통치했고, 그래서 노련하다. 언제나 견제와 균형을 적절하게 활용하면서 정권의 안정성을 유지했다. 2000년대 들어 박봉주 내각에 대한 그의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2002년 초보적인 경제개혁 조처를 취하고, 김정일은 이후 박봉주를 내각총리로 임명했다. 처음에 김정일은 경제정책의 권한을 내각에 주고 마음껏 바꿔보라고 격려했다. 2004년께 박봉주는 중국식 개혁과 유사한 과감한 개혁 조처를 준비했다. 그중 일부는 실행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당과 군에서 불만이 쏟아졌다. 권력을 이용해 경제적 이익을 취해왔던 군이나 당에서 내각의 개혁 조처를 반대하기 시작한 것이다. 김정일은 결국 당과 군의 강력한 반발에 직면해 박봉주를 내각총리에서 경질한다.

그는 권력 내부의 흐름을 거스르려 하지 않았다.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당시, 우리 쪽이 서해 평화협력 방안을 제안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김정일은 정회를 요청했다. 그 문제는 자신이 결정할 일이 아니라면서 국방위원회의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그는 군의 의견을 듣는 절차를 거쳤다.

김정은이 어떻게 정책 결정을 하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최근 고모부 장성택을 전격적으로 처형하는 모습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북한 당국이 여러 가지 죄명을 거론했지만, 본질은 권력을 둘러싼 갈등이다. 후계 이행 과정을 책임졌던 장성택은 임무가 끝났을 때,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해야 했다. 그는 자신의 배역이 끝났음을 깨닫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도 퇴장의 방식은 너무 과격했다. 북한의 역사에서 정치적 숙청은 여러 번 있었지만, 이토록 신속하고 공개적이며 과격한 방식으로 이루어진 경우는 별로 없다.

장성택 처형은 김정은의 정치적 리더십에 의문을 던져주었다. 북한은 세습체제이고, 일종의 가족사회주의적 특성을 지닌다. 당은 종종 어머니에 비유되고, 지도자는 어버이라고 부른다. 하나밖에 없는 고모부를 과격한 방식으로 처형한 것은 가족이라는 이데올로기에 흠집을 남겼다. 젊음이란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다. 과감하고 적극적인 정책 결정은 어느 정도 긍정적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정치는 그런 것이 아니다. 단선적이지 않고 복합적이다. 그래서 신중해야 하고, 다양한 가능성에 대비할 줄 알아야 한다. 세월을 통해 경륜이 어우러져야 즉자성을 줄일 수 있다. 젊은 지도자의 정치는 예측이 어렵고 실행이 빨라, 그만큼 실수도 많아질 수 있다.

김정은은 개혁할 수 있을까?

북한의 변화는 제한적이다. 중국이나 베트남이 걸어왔던 길과 다르다. 물론 김정일 시대에도 변화의 시도가 있었다. 다만 지속되지 못했고 발전하지도 못했다. 2000년대 들어 김정일은 중국식 변화를 높이 평가했다. 상하이에 가서 ‘천지개벽’이라고 말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경제특구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도 했다. 그러나 개혁 시도는 전통 세력들의 반발로 후퇴하고 다시 시작하는 과정을 되풀이했다.

북한에서 시장의 힘은 점차 계획의 영역을 침식해왔다. 북한 당국도 어쩔 수 없이 묵인하고 이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흘러왔다. 종합시장이라는 형태가 발전해왔고, 쌀 수매가격을 비롯해 자재의 공급가격을 시장가격 기준으로 인상하는 조처도 이루어져왔다. 농촌에서, 기업에서 아래 단위의 처분권을 부여해 인센티브 효과를 높이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식 체제와 시장이 가져올 분권화는 어느 지점에서 상충한다. 정치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 개인의 영역을 인정하지 않는 북한 체제에서 시장논리라는 것은 한계가 있다. 계획과 시장의 관계가 공존하지만 점차 상충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다.

김정은 체제는 어떨까? 장성택 처형에도 불구하고, 박봉주 내각이 주도하는 경제정책의 변화는 지속하고 있다. 박봉주는 2000년대에 실각한 경험이 있다. 그는 과거와 달리 신중할 것이다. 그러나 그가 다시 총리로 기용된 것은 바로 2009년 화폐개혁 실패가 가져온 결과일 것이다. 총체적인 경제정책 실패 국면에서 경험 많은 전문가를 기용한 것이다. 김정은 역시 박봉주 내각의 성과를 기대하고 있다.

김정은 집권 이후 식량 문제는 급격히 나아졌다. 2013 ·2014년 양곡연도를 보면, 부족분은 35만t이지만 통상적으로 상업적 수입을 30만t 정도 해왔기 때문에 실질 부족분은 5만t에 불과하다. 더 이상 식량이 부족하지 않은 상태가 되었다. 놀라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식량 증산의 이유에 대해서는 비료 생산 증가, 행정력 투입 등이 거론되지만 제도 개선 효과를 무시할 수 없다. 바로 ‘포전담당제’라는 것이다. 협동농장의 인센티브 단위를 중국이나 베트남의 가족영농제 수준으로 줄였다. 포전은 3명에서 5명 단위로, 국가에 일정 부분을 수매하고 나머지는 자유롭게 처분권을 허용하는 조처다. 박봉주 내각이 가장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개혁 조처다.

그러나 외부적 환경도 중요하다. 김정은은 아버지로부터 국제적 차원의 경제제재를 유산으로 물려받았다. 북한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다자적 제재와 미국·일본 등의 양자 제재를 동시에 받고 있다. 경제회복을 위해서는 외국인 자본의 유치가 필요한데 그럴 수 없다.

북한이 핵억지력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대외환경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막대한 군사비도 부담해야 한다. 북한은 핵무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재래식 군사비를 줄일 수 있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핵무기 보유와 관계없이 분쟁에 대처하려면 재래식 군비를 유지해야 한다.

김정은 체제도 김정일 체제와 마찬가지로 선군체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군을 앞세우는 정치는 핵무기를 포기하고 평화체제를 만들어야 극복할 수 있다. 그럴 수 있을까? 김정은 체제는 당분간 지속성에 무게를 둘 것이다. 변화는 안정돼야 가능하다. 북한의 대내정책은 대외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외교환경은 북한의 일방적인 의지로 불가능하다. 주변국들의 대북정책도 중요하다. 관계는 일방적인 게 아니라 상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김정은 체제의 변화를 바라는가? 그러면 변화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김정일 체제와 다른 김정은 체제는 그들의 선택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몫이기도 하다.

글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삼성경제연구소 북한연구팀,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통일부 장관 정책보좌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등을 거쳤다. 북한과 한반도 정세에 관한 글을 쓴다. 저서로 <냉전의 추억> <북한경제개혁연구> <북한의 산업화와 경제정책> <남북경협 가이드라인> 등이 있다.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