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3.04 15:20 수정 : 2014.03.04 17:38

자유육식연맹 총재이자 홍익대 앞 밴드 ‘피해의식’ 리드보컬인 크로커다일 최는 “모든 문제의 시발점인 나약함은 육식으로 극복할 수 있다”며 “(육식을 통해) 정신과 육체가 조화를 이룰 때, 개개인이 강해지고 결국 강한 나라를 만든다”고 말했다.
“저기, 저… 총재님.”

“푸흡!”

누군가를 ‘총재’라고 불러보긴 처음이었다. 페이스북과 기타 모든 뉴스 보도에서 ‘총재’라고 불렸고 아직도 그렇게 불리는 이는 현실공간(가상공간과 대치되는)에서 실제 ‘총재’라고 호명되자 웃음을 터뜨렸다. 본인도 그 호칭을 아직 내면화하진 않았나보다 생각하며 덩달아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 호칭의 주인공은 자유육식연맹(이하 자육연)의 총재, 크로커다일 최. 자육연에서는 그를 ‘최 총재’라고 부른다.

본명을 밝히면 “좀 그렇다”는 그의 요청에 호칭은 그냥 ‘총재’로 정리하기로 했다. 인터뷰는 지난 2월15일 토요일 저녁, 서울 홍익대 앞 프리즘홀에서 그가 리드보컬을 맡고 있는 밴드 ‘피해의식’의 공연이 끝난 뒤 진행됐다. 공연장 바로 위 작은 커피숍에서였다. 그는 화려한 무대 의상과 분장 그대로였다. 커피숍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부디 이 사람이 공연이 막 끝난 차림인 것임을 감안해주길 바랐다. 정작 본인은 자신의 모습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있는 듯했다. 과연 총재다운 ‘기백’이었다.

노래를 부르며 관객들을 향해 거침없이 손가락질을 날리던 그는, 무대를 내려오니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그 분장’ 위로 안경을 쓴 모습에서, 안경이 없으면 앞을 잘 못 볼 정도의 시력을 가진 사람임을 짐작했다. 그는 온몸을 호피로 장식하고 머리카락은 산발을 했다. 산발 머리에는 다시 호피무늬 띠를 둘러맸다. 흡사 도적떼 두목을 연상케 하는 복장으로, 그는 우리를 ‘공손히’ 반겼다. 최 총재는 아주 ‘진지한’ 사람이었다. 인터뷰하는 3시간 동안 단 한 번도 그의 화려한 복장이 의식되지 않을 정도로.

자육연은 지난 1월3일 페이스북을 통해 공식 창립했다. 그러고 일주일 만에 회원 수(페이스북에서 ‘좋아요’를 누른 사람 수) 1천 명을 돌파한 이 진격의 단체는, 원래 최 총재와 뜻을 같이하는 7명의 이사진이 진행하던 프로젝트 중 하나였을 뿐이다. 그러나 얼마 전 미디어워치 대표 변희재씨가 어느 고깃집의 ‘서비스 미달’을 주장하며 고깃값 300만원을 덜 낸 사건을 두고, “고기를 먹었으면 고깃값을 지불하라”고 성명서를 발표해 큰 화제가 됐다. 이에 변희재씨 쪽이 1억원대의 소송을 준비한다고 해서 자육연은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됐다.

-자육연의 이사진은 어떤 사람들로 구성돼 있나.

최 총재- 저희는 주식회사 형태로 모여 있습니다. 그래서 직책이 ‘이사’인 것이고요. 이사진 구성원 모두 직업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대부분 산업현장에서 엔지니어 일을 합니다. 저부터 화학공학 엔지니어고요. 이사진 중에는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도 있고, 해외에 있는 친구도 있습니다. 주로 온라인으로 회의를 하고,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주식회사라 함은 ‘피해의식’의 레이블 회사를 말하는 건가.

최 총재- 레이블 업무 또한 진행 중이지만, 그것만 하려면 개인사업자 형태여도 됩니다. 저희는 레이블 사업 외에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실 레이블 사업은 ‘피해의식’ 하나밖에 없고요. 주식회사를 설립하면서 외부의 도움 없이 모두 저희 손으로 직접 구축했습니다. 구성원 중 회계, 세무, 법, 기술지원팀 등 각자가 담당하는 분야가 다 있습니다.

-변희재씨가 ‘자육연은 실체도 없는 단체’라고 지적한 바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최 총재-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버젓이 법인이 있고, 세금도 내고, 대표이사 이하 이사진도 있는 체계적인 단체입니다. (웃음)

-변희재씨 고깃값 사건은 언제 알게 된 건가.

최 총재- 뉴스를 보고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날 바로 성명서를 올렸습니다. 기사를 보고, ‘고기’와 관련된 일이니 자육연 총재로서 한마디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희는 단지 ‘고기’와 관련한 사건이라 성명서를 발표했을 뿐인데, 그게 이렇게까지 터질 줄은 몰랐어요. (웃음)

-변희재씨가 소송한다고 했는데, 진짜 했나.

최 총재- 아마 했을 겁니다. 그런데 그런 이유로 고소해서 저한테 법원 등기가 온다면…, 우리나라가 좀 이상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웃음) 그렇게 되면 저도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사실 더 이상 얽히고 싶지 않습니다. 더 싸우면 이전투구밖에 안 될 것 같고…. 소송이 오더라도 개인적인 차원에서 해결할 생각입니다. 회사에 법률자문도 있고요.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자유육식연맹의 기치인 고기사랑 나라사랑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제값을 치르고 고기를 먹어야 합니다. 애국이 별게 아닙니다. 각자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고기 많이 먹고 힘내서 열심히 일하고 맛있는 고기 더 먹으려고 또 열심히 일하면 그게 바로 애국이지 다른 것이 애국이겠습니까? 변희재씨는 더 이상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애국세력을 참칭하는 행위를 그만두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경고입니다. 고기사랑 나라사랑 - 자유육식연맹”(2014년 1월8일 자유육식연맹 페이스북 성명서 내용 중)

창립한 지 닷새 만에 성명서를 발표하고, 그 성명서로 논란의 중심에 선 자육연. 사람들은 왜 자육연에 열광했을까? 사전에 준비한 인터뷰지 질문 중에는 이런 것이 있었다. “변희재를 싫어하는 사람들(중도와 진보)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자육연이 주장하는 ‘육식주의’에 열광했다고 보나, 변희재를 비판해서 열광했다고 보나?” 최 총재는 선수를 치며 이렇게 말했다.

“둘 다 아니에요. 저보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100만 명 정도 있을 건데, 그래도 제 글이 인기가 있었던 이유는 ‘재미’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글 안에 재치가 있었기 때문에 글 솜씨가 부족했어도 어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웃기잖아요. 보면 빵 터지지 않아요? 그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럼 자육연을 구상한 것도 단지 재미있겠다고 생각해서인가.

최 총재- 단순히 재미로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재미에 의미를 담아야죠. ‘대의’를 항상 추구합니다. ‘사회통합’이라든가 하는 건 단지 웃자고 하는 소리는 아니거든요. 저희는 항상 공감을 얻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자육연이 생각하는 사회통합은 무엇인가.

최 총재- 2~3년 전까지만 해도 정치적 사상이 다르다고 해서 지금처럼 격렬하게 싸우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에 따라서 밴드도 많이 해체됐고, 정치관 때문에 싸우는 걸 자주 목격합니다. 자꾸 나눠지고 서로 싸우고 파벌을 만들고 하면서…. 그런데 사람 의견이 어떻게 둘로 나눠질 수 있겠습니까. 한 부분에서는 이쪽이 맞고, 또 다른 부분에서는 저쪽이 맞고 하는 거지, 의견을 양극화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금은 싸움만 하고 있습니다. 싸울 필요가 없는 걸 가지고 싸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을 자처해서 ‘성명서’를 발표하고, ‘고기사랑이 나라사랑’이라 주장하는 이 남자의 정체는 무엇일까. 무대 위에서 현란하게 아랫도리를 흔들어대다가, 무대 밑에서 안경을 쓰더니 진지함의 끝판왕으로 돌변하는 이 남자는 누구인가. 대통령 신년사에서나 들어볼 법한 ‘사회통합’을 일상 언어처럼 구사하는 이 남자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고기’라는 화두를 밀고 있나. 인터뷰를 진행할수록 처음 가졌던 질문보다 더 많은 수의 질문이 머릿속을 가득 채워갔다. 일단 ‘고기’부터 다시 시작하자.

-다른 것도 아니고, 왜 하필 ‘고기’인가.

최 총재- 한국에서 고기를 안 먹는 사람, 즉 완전히 채식만 하는 사람은 3만 명 정도입니다. 의식주 가운데서도 사람들이 모두 좋아하는 ‘먹는 것’이고, 그중에서도 사람들이 좋아하는 ‘고기’를 선택한 것입니다. ‘고기’는 모두가 공유하는 것이기에, 저는 ‘우리가 비록 싸우고는 있지만, 맛있는 고기를 먹으면서 화해하자’고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웃음) ‘고기’ ‘육식’, 재미있지 않나요?

-공통적인 것, 사람들이 많이 좋아하는 것, 또 재미도 있는 것이라서 ‘육식’인 것으로 이해했다. 그럼 ‘고기’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최 총재- 채식주의자가 먹지 않는 것들을 다 포함합니다. 채식주의에는 단계가 있는데, 완전한 채식주의자(비건)부터 생선까지 먹는 사람, 우유와 달걀까지 먹는 사람 등등입니다. 저희는 해산물도 육식의 범주에 포함하고 있습니다.

-“채식하는 건 좋은데 도덕적 세탁은 하지 말라”고 말한 적 있다. 채식과 도덕은 어떻게 연결되나.

최 총재- 채식주의는 ‘어떠한 생장이나 섭생, 삶이 가장 도덕적인가’, 즉 ‘어떻게 하면 다른 생명을 죽이지 않고 최대한 도덕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 기초하고 있는데요. 도덕적 삶을 추구하려는 것은 본인의 자유입니다. 채식주의와 도덕성에 관해 개인적 차원에서 충분히 자유를 누릴 수 있지만, 이러한 자신의 도덕적 기준을 법제화하고, 또 그것을 사람들의 보편적인 생각으로 만들려고 하는 강요, 그것을 거부한다는 것입니다. 자육연에서 ‘자유’는 그런 것에 의미가 있습니다. 채식하는 사람 중에 육식하는 사람을 거세게 비난하는 이들이 있어요.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은 자연과 공존하기 위해 현재의 20분의 1로 인구가 줄어야 합니다. 인간은 모든 면에서 자연에 반하는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그들 자신부터 없어져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들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너희 같은 육식주의자들을 먼저 없애고, 나와 같은 사람들을 더 많이 만들겠다’는 데서 찾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도덕성을 확인하기 위한, 아주 일그러진 방법입니다.

-앞으로 채식주의와 계속 싸우겠다, 이런 것은 없는가.

최 총재- 시비를 먼저 걸어오지만 않으면 싸우지 않습니다. 자육연은 평화주의입니다. (웃음) 저희는 육식에 관한 잘못된 편견들을 과학적으로 분석해서 자료를 생산하려고 합니다. 책으로 펴내기 위해 몇 주 전부터 집필에 들어갔습니다.

-‘고기사랑’이 ‘나라사랑’이라더니, 그러면서 또 고기만 먹자고 하는 단체는 아니란다. 최 총재가 구사하는 언어가 주로 ‘대의’ ‘사회통합’ 등 거대한 단어들이라서 구체적으로 ‘단체의 목적’이 와닿지 않았다. 육식만 하자는 게 아니라면 육식은 자육연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도대체 육식은 왜 애국인가.

최 총재- 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힘의 회복, 강함 등 상징적 의미가 있습니다. 예전부터 고기는 선택받은 자만이 섭취할 수 있는 어떤 사치 같은 것이었잖아요. 상황이 좀 나아져서 사치까지는 아니지만, 지금도 사실 육식을 하는 정도가 많이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저는 모든 문제의 시발점이 ‘나약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강함이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권력이나 힘의 강함이 아니라 그런 힘들에 휘둘리지 않는 정신적 강함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강한 정신은 강한 육체에서 비롯되고, 정신과 육체가 조화롭게 이뤄질 때 강한 인간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자육연은 그걸 추구하자는 겁니다. 이렇게 형성된 개개인의 강함이 결국 강한 나라를 만들게 되는 거죠.

-개개인을 강하게 만들어 다 같이 잘 살게 하는 것, 또 나라를 강하게 만드는 것이 자육연의 목표라면, 자육연이 현재 하고 있는 일은 굉장히 정치적인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은가.

최 총재- 그렇게 보면 어느 것이 정치적이지 않을 수 있겠어요? 그러나 기존 프레임으로 보면 자육연은 전혀 설명이 안 되는 조직이에요. 어떻게 보면 빨갱이 같은 소리를 하고, 어떻게 보면 수꼴(수구 꼴통) 같은 소리를 하는 것처럼 보이죠. 자육연은 좌도 우도 아닙니다. 한국에서는 정치성을 띤다는 것이 어떤 정당을 지지한다는 식으로 비치죠. 자육연은 그런 진영논리 프레임을 거부합니다. 지역주의 등을 떠나, 그런 모든 것을 해체하고 나서 가장 합리적이고 좋은 방법으로 사회통합을 추구하자는 것입니다.

-진영논리 프레임을 거부하는 것, 잘 알겠다. 그렇다면 자육연이 추구하는 최상의 가치는 무엇인가.

최 총재- 이 질문은 어렵네요. 사안에 따라서 경중이 달라지기 때문인데요. 개인의 자유나 나라의 이익, 이것들 중 한 가지가 절대적으로 높아질 수 없는 거죠. 개인의 희생으로 나라가 존속할 수 있는 상황에서는 어쩌면 희생을 택할 수도 있겠지만, 가치판단에서 어떤 것이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는 없어요. 늘 합리적인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국민의 행복’쯤이면 절대적인 가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무려 ‘피해의식’이란 이름을 가진 밴드의 리드보컬이면서 ‘국민의 행복’을 논하는 자. “왜 나한테만 지랄”(‘피해의식’의 노래 제목)이냐고 부르짖으면서 ‘사회통합’을 대의로 삼은 자. 최 총재와의 인터뷰를 통해 선명하게 다가온 단 한 가지는 어떠한 진영논리도 가치론적인 문제도 아닌, 자육연 페이스북 메인 화면에 보이는 붉디붉은 고깃덩어리 한 점이었다. ‘음악을 하려고 공대에 갔다’는 최 총재. 그가 만든 자육연을 무언가로 굳이 정의해보려고 했던 시도 자체가 무의미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조하기 위해 과도기적 단계로 자육연을 추진하고 있다는 최 총재의 말에서, 그가 내세웠던 ‘대의’가 어렴풋이 짐작될 뿐이었다.

어느덧 3시간이 흘렀다. 최총재에게 마지막 한마디를 부탁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다면 만족합니다. 자육연이 하는 이야기들에 공감하는 부분이 있다면 계속 지켜봐주십시오. 색안경을 끼지 말고, 프레임에서 벗어나 보는 것. 그것 자체로도 좋은 시도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글 오다인·손은민 인턴기자(경북대 신문방송학과),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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