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3.04 15:13 수정 : 2014.03.30 14:11

황우석 사태의 배경엔 과학자 집단, 정치·언론, 일반 대중에 뿌리내린 국익·애국 담론이 자리잡고 있다. 비과학이 과학을 압도하는 이런 비정상은 시간이 흘러도 바뀌지 않고 있다.한겨레 김진수
2010년 6월18일 서울 구로구 오류동 끝자락의 공터에 많은 사람들이 운집했다. 이들은 무엇 때문에 거기에 모인 것일까. 필자의 눈길을 끈 것은 참석 인원보다 행사에 참석한 사람들의 면면이었다. 전·현직 국회의원, ‘황금박쥐’ 멤버를 포함한 전직 고위 관료, 광역자치단체장, 대학 총장 등 거물급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박영선 민주당 의원은 축사를 통해 “재기에 성공해서 구로의 기적이 대한민국의 기적으로, 세계의 기적으로 열리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는 주류 언론에는 거의 보도되지 않은 황우석의 수암생명공학연구원 기공식이었다. 논문 조작이 밝혀진 지 4년이 지난 당시에도 황우석은 자신의 막강한 네트워크를 그렇게 과시하고 있었다.

2005년을 전후해 한국 사회에서 벌어진 황우석 사태는 현대 과학 활동의 속성과 한국 사회의 여러 모순을 동시에 보여준 것으로, 한국 과학계를 비롯해 사회 전체가 극복해야 할 많은 과제를 던져주었다. 이 사태를 한 개인의 일탈 행위로만 치부한다면 당시 겪었던 사회적 혼란에 비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황우석이 전세계 과학계와 대중을 상대로 부정행위를 저지를 수 있었던 중요한 사회적 배경은 그를 중심으로 형성된 강력한 동맹이었다. 이 가운데 정부와 정치권, 언론의 역할을 되돌아보는 것은 앞으로 전개될 상황을 평가하고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든든한 동맹과 초대형 특혜

황우석은 아직까지 진위가 명확히 확인되지 않은 복제소 ‘영롱이’로 정부 및 언론과 관계를 맺었다. 복제소 영롱이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에 보고됐고, 얼마 뒤 김대중 대통령은 황우석의 복제 한우에게 ‘진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기도 했다. 2000∼2003년은 황우석의 네트워크가 전방위로 확장되고 공고화되는 시기다. 세계 최초 배아 복제 소동, 무균돼지 개발, 광우병 내성 소 등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황우석은 우리나라의 대표 과학자로 자리잡았다. 동시에 황우석팀이 인간배아 복제를 할 수 있는 물질적·제도적 조건을 확보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문신용 서울대 의대 교수, 노성일 미즈메디병원 이사장과 관계를 맺고 줄기세포 추출 기술과 복제에 필요한 난자를 공급받을 수 있는 조건을 확보했다. 자신에게 불리하게 만들어지던 생명윤리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규제를 완화하는 데도 성공했다. 법률 초안에는 없던 이종 간 핵이식이 세계 최초로 허용됐고, 부칙 조항을 통해 황우석만이 보건복지부의 승인을 얻어 연구를 진행할 수 있도록 했다. 몇 년 동안의 사회적 논쟁을 거쳐 나온 법률조차 스타 과학자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이다.

황우석은 2004~2005년 <사이언스>에 연이어 논문을 발표하면서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이름을 날리게 되었으며, 정부와 일반 시민들의 전폭적 지원을 받게 되었다. 2003년 겨울 노무현 대통령이 황우석 교수 실험실을 직접 방문해 “이것은 기술이 아니고 마술이다” “감전됐다” 등의 발언을 하면서 연구팀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 약속은 금세 가시화됐다. 외국에서는 보기 힘든 과학자에 대한 경찰의 신변보호가 시작됐으며, 정보통신부에서는 기념우표까지 발행했다. 2004년 <사이언스> 논문의 공동저자이기도 한 박기영 당시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은 황우석의 적극적인 지지자를 자처하면서 각종 지원책을 쏟아냈다. 대표적인 것으로 최고과학자상 신설, 황 교수 연구 모니터링팀 및 지적재산권 관리팀 구성을 들 수 있다. 이에 따라 황우석에 대한 지원 금액도 2004년 65억원에서 2005년 265억원으로 대폭 늘어나게 됐다. 정부 안에서 황우석의 권력은 그가 가지고 있던 수십 개의 각종 위원회 직함을 보면 실감할 수 있다. 아마 그는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많은 지원과 특혜를 받은 과학자로 남을 것이다. 황우석의 인기가 높아지자 정치권의 친분 과시도 본격화됐다. 황우석의 국회 강연 직후에는 그와 사진을 찍으려는 국회의원들이 몰려 단상이 부족할 정도였다고 한다. 급기야는 여야 의원 수십 명으로 구성된 ‘황우석 후원회’가 결성돼 활동하기도 했다. 일부 정당은 황우석을 국회의원으로 영입하려 했으며, 심지어 연구팀의 편의를 위해 영수증 처리를 면해주자는 주장까지 나왔다. 차세대 성장동력 산업인 생명공학 정책의 추진 명분이 필요했던 정부에 황우석의 지속적인 퍼포먼스는 정책의 정당성을 더욱 빛낼 근사한 선물이었다.

국익을 위해서라면

연구논문 조작이 밝혀질 당시 황우석의 지킴이들은 연구팀의 비윤리적 행위에 적극 동조하거나 은폐하는 데 앞장섰다. 일차적으로는 정책 실패를 은폐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역사적 기원을 가지고 있다. 개발독재 시기에 과학기술 활동은 국가 목표인 경제성장의 도구였으며, 과학기술자들은 조국 근대화의 역군으로 인식됐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결과만 중요할 뿐 과학기술자의 사회적 책임이나 연구 절차에 대한 고려는 부차적인 것이었다. 이러한 정책 기조는 현재까지 큰 변화 없이 유지돼오고 있다. 1983년 제정된 생명공학육성법에는 생명공학 발전을 통해 국가경쟁력을 향상시키겠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 생명과학 활동에 범부처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의지를 생명공학 산업이 자리잡기도 전인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에 밝힌 것이다. 이처럼 수십 년의 전통을 가진 정부의 강력한 생명공학 육성 정책은 생명윤리와 안전 문제, 연구 절차에 대한 다양한 쟁점들을 경제성장의 장애물로 인식하게 했으며, 결론적으로는 쟁점을 점검하고 사회적 토론을 통해 대책을 마련할 기회를 막아버렸다. 황우석 사태 당시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던 ‘국익’ ‘국가경쟁력’ ‘애국’ 담론이나 조작이더라도 줄기세포만 있으면 된다는 주장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육성 일변도의 정책은 과학기술을 사회와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것이 아닌 실용적·산업적 측면에서만 바라보게 했다. 정책 결정 과정을 사회적 논의 대상에서 아예 제외해, 일부 관료와 전문가들만이 다룰 수 있는 영역으로 만들었다. 그 결과 사회적으로 파급력이 큰 과학기술 정책 결정에서 일반인들이 소외됐다. 과학기술에 대한 이런 일방적 인식은 현대 과학기술의 속성과도 맞지 않을뿐더러,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나타날 위험에 대한 대응책 마련에도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기자회견 과학’의 전형

황우석의 과학 활동 방식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유명 과학자들과 조금 다르다. 영롱이 출산부터 연구논문 조작 사건이 밝혀진 뒤 있었던 마지막 기자회견까지 황우석은 주로 과학계가 아닌 대중을 상대로 자신의 활동을 알리고 정당성을 획득하는 방법을 사용했고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인지 영롱이부터 최근의 복제개까지 수많은 사진과 동영상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얼마 전 발표된 미국 특허 등록에 대한 보도자료 또한 기사로 나오기 한참 전부터 기자들에게 배포됐다. 일명 ‘기자회견 과학’(Press-conference Science)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기자회견 과학은 연구 성과에 대한 제대로 된 동료 심사를 거치기 전에 보도자료나 기자회견을 통해 이를 언론에 먼저 알려 세간의 주목을 끄는 행위를 말한다. 물론 이런 방식을 황우석만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는 논문이 있더라도 성과를 극대화하고 싶은 과학자나 주가에 민감한 바이오 기업들이 주로 활용한다. 이런 행태는 점점 늘고 있으며 이를 대행해주는 업체까지 등장했다. 황우석 사태 전후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거의 모든 언론들이 황우석을 마치 연예인 취재하듯 다루면서 ‘황우석 영웅 만들기’에 적극 앞장섰다. 일방적인 주장과 복제에 대한 장밋빛 전망만이 신문과 방송의 주요 뉴스로 다뤄졌고, 이 과정에서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오보들을 쏟아내기도 했다. 우리나라 언론은 줄기세포가 없다면 난치병 치료와 경제성장은 불가능하다는 태도다. 그리고 생명윤리나 연구 절차는 과학의 발전을 가로막는 성가신 개입으로 바라본다. 일반인들은 과학적 발견이나 동향을 주로 언론을 통해 얻기 때문에 언론 보도 형태가 과학과 관련된 여론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비판적·성찰적 기사는 고사하고 ‘균형 잡힌 정보’조차 제공해주지 못했다. 오히려 대중은 사태를 통해 과학 활동의 특징을 학습했다. 논문의 작성부터 출판 과정, 상업화·분업화된 실험 방식, 실험실 문화, 인체를 다루는 생명공학에서 절차의 중요성, 학술지의 철회 제도, 줄기세포의 종류 및 가능성과 한계, 난자 채취의 문제점 등을 언론이 아닌 세기적 사태를 통해 학습한 것이다.

변하지 않은 육성 정책

지난해 5월, 세계적 학술지에 배아 복제 성공 논문이 실리자 국내 언론들은 우리가 하지 못한 일을 미국에서 해냈다며 연일 분석 기사를 쏟아냈다. 그런데 과학계의 전반적인 평가는 국내 언론의 흥분이나 아쉬움과는 조금 달랐다. 연구논문 조작 사건 이후 전세계적으로 난자가 다량으로 필요한 배아 복제 시도가 별로 없었고, 배아줄기세포의 활용에 대한 한계도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 이러한 분위기가 작용해 지난해 노벨생리의학상은 난자를 사용하지 않고서도 맞춤형 줄기세포를 만들 수 있는 유도다능줄기세포(iPSC) 제작 기법을 확립한 일본의 연구자가 받기도 했다. 유도다능줄기세포가 대세인 지금 이런 연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는 <네이처>에 실린 어느 과학자의 말은 현재 줄기세포 연구에서 배아 복제가 차지하는 비중을 잘 보여준다. 우리나라는 정말 괜찮은 기술력이 있음에도 강한 규제로 인해 ‘세계 최초’를 놓친 것일까? 괜찮은 기술력이 무엇인지는 논외로 치고, 많은 사람들이 황우석 사태 이후 우리나라 줄기세포 연구가 크게 위축된 것으로 생각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연구논문 조작으로 인해 일시적인 신뢰 하락은 있었지만 줄기세포 육성 정책이나 규제에는 큰 변화가 없었고 예산이 줄기는커녕 꾸준히 증가했다.

우리나라는 체세포 복제는 물론이고 잔여배아, 성체 줄기세포 연구를 공식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몇 안 되는 나라에 속한다. 즉, 일정한 조건만 갖추면 모든 종류의 줄기세포 연구를 합법적으로 할 수 있다. 지난해 복제에 성공한 미국 연구팀은 연방자금을 배아 파괴 실험에 쓸 수 없다는 규정 때문에 실험실을 따로 운영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한국 정부는 황우석 사태가 채 정리되기도 전인 2006년 봄, 범부처 사업인 줄기세포연구종합추진계획을 수립해 현재까지 추진하고 있다. 그해 가을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는 표결을 통해 세기적 사태에도 불구하고 배아 복제를 계속 허용하기로 결정해 육성 정책에 힘을 보탰다. 또 실비 보상을 통한 난자 수급을 합법화해 복제 연구를 위한 제도적 기반까지 마련해주었다. 당시 일부 심의위원들은 황우석 사건, 난자 수급, 배아 파괴, 개체 복제 가능성 등을 들어 결정을 미루자고 주장했지만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복제에 대한 찬반을 떠나 사태를 겪은 뒤에도 제대로 된 사회적 논의 없이 서둘러 법률과 지침을 개정해버린 것이다. 아무튼 이런 방침에 따라 2009년 정부는 국내 한 연구팀의 배아 복제 연구를 승인했다. 이 연구팀은 복제에 난자 800개를 쓸 수 있도록 허가받았는데, 황우석이 사용한 2200개를 더하면 3천 개 이상의 난자가 배아 복제 연구에 쓰인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이제껏 없었던, 우리가 좋아하는 ‘세계 최초’라고 할 수 있다.

왕의 귀환?

그동안 황우석은 언론 인터뷰를 비롯한 여러 경로를 통해 “다시 한번 기회를 달라”고 말해왔다. 그 기회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대중의 이목을 끄는 발판을 차곡차곡 만들어가는 것으로 보인다. 수암생명공학연구원은 국내외 기자, 투자자 등 방문객으로 북적이고 있고, 국내 보도와는 뉘앙스가 사뭇 다르지만 <네이처>와 <사이언스> 같은 국제 학술지에도 동향이 실리고 있다. 최근의 미국 특허 등록, NT-1의 성격 논란은 사회적으로 관심을 끌 만한 내용이다. ‘국제 경쟁’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멸종동물 매머드 복제 시도 또한 언론과 대중을 사로잡기 좋은 소재다. 10년 전에 비해 생명공학 거품이 많이 꺼진 지금 한국 사회가 다시 시험대에 놓여 있다. 우리 사회가 지난 사건으로 어떤 학습을 얼마나 했는지 곧 드러날 것이다. 정부와 언론은 물론 황우석의 성장과 몰락 과정에서 침묵했거나 판이 깨질까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던 과학계의 대응도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글 김병수 과학기술학 박사, 국민대 사회학과 연구교수, 시민과학센터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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