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3.04 15:03 수정 : 2014.03.30 14:10

2005년 12월6일 난자기증모임 회원들은 서울대 수의대에서 난자 기증 의사 전달식을 했다. 이날 참가자들은 자기 이름을 적은 무궁화꽃을 황우석 집무실 책상에 올려놓은 뒤, 황우석이 빨리 돌아오길 바라며 ‘진달래 꽃길’이벤트를 벌였다.한겨레 장철규
2006년 5월12일. 검찰은 황우석 박사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와 업무상 횡령, 생명윤리법 위반 등의 혐의를 적용해 불구속 기소하고 수사를 종결했다.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인간 체세포 복제 맞춤형 줄기세포’가 사기극이었음이 다시 한번 확인된 그 시각,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는 “황우석 박사, 서울대 복귀·연구 재개”를 외치며 검찰 수사 결과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황우석의 열혈 지지자들, 일명 ‘황빠’. 그 속에는 지금 황빠에서 ‘황까’(황빠의 반대 의미로, 열혈 황우석 비판자들)로 ‘전향’한 A와 B도 목청을 돋우고 있었다.

그들은 MBC 〈 PD수첩 〉 보도, 서울대 조사위원회 발표, 검찰 기소로 황우석의 민낯이 만천하에 공개된 상황에서 왜 열혈 황빠로 남았을까? 그들의 어떤 신념이 ‘대국민 사기극’이라는 상식에 저항하게 했을까? 그리고 그들은 어떤 계기로 6년 여가 지나서야 상식을 받아들이게 됐을까? 인터넷의 한 황까 카페를 통해 어렵게 A와 B를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황우석과 여러 차례 직접 대면했던 몇 안 되는 ‘성골 황빠’였다.

“직접 보면 압도돼… 보살님의 아우라가 있어요”

2005년 11월22일. 〈 PD수첩 〉 보도는 대다수 국민들에게 인간 황우석과 과학자 황우석에 대한 진실을 깨우쳐줬지만, 역설적으로 황우석 지지자들을 황빠로 만드는 계기도 제공했다. 소극적인 지지자였던 A와 B는 ‘황우석 사건’이 일어난 뒤 황우석 지지 카페 등에서 글을 접하고 자발적으로 ‘황빠’가 된 케이스다.

“카페에 가입해서 글을 읽어보니 황우석은 완전 억울한 사람이더군요. 국가가 한 인간을 희생양 삼아 (사기극에서) 발을 빼려는 느낌을 받았어요.”

-논문 조작 논란이 있었는데요.

“저희 같은 주부들이 자세히 아나요. 입술이 터진 채 병상에 누워 인터뷰하는 황우석을 봤을 땐 (지금은 쇼인 줄 알지만) 정말 순수한 과학자가 피해를 보고 있구나 생각했어요.”

-황우석을 만난 적도 있나요.

“직접 보게 되면 압도당해요. 보살님의 아우라가 있다고 할까.”

-혹시 불교 신자인가요.

“저는 아니고 B만.”

그러니까 불국사 관음전의 보살 탱화를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흔히 억겁의 미소와 함께 항상 뒤따라오는 둥근 원 모양의 거신광을 본 것이다. 황빠들에게 억겁의 미소와 거신광은 인간 황우석의 대표 이미지다. 그리고 희생당한 과학자, 외부의 변수에 의해 꿈이 꺾인 과학자로 인식됐다.

그에 앞서 황우석의 이미지를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그에게 ‘최고 과학자’ 칭호를 안기며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헤치고 나와 ‘월화수목금금금’ 연구로 자수성가한 과학자와 상고 출신으로 계파정치를 뒤엎고 대통령이 된 자수성가 정치인은 곧잘 오버랩됐다.

“노 전 대통령이 입을 닫고 있는 것은 정치적 역학관계 속에서 입이 차단된 상황이고, 황우석이 재기할 수 없는 것은 서울대의 카르텔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우리 같은 시민들의 자발성이고요. 2002년 미선·효순이 때처럼 순수하게 촛불을 들었는데….”

그래서인지 초기 황빠를 이끌던 수뇌부는 ‘노빠’(고 노무현 전 대통령 지지자)가 많았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 지지 사이트인 ‘서프라이즈’에서 활동하는 황빠들은 ‘민초리’라는 지지단체를 결성하기도 했다. 시위 때도 서프라이즈의 몇몇 논객이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B는 수차례 서울 여의도 서프라이즈 사무실을 방문했다.

“당시 ‘서프’(서프라이즈) 스카프 한 장이 1만원이었는데 황빠 대부분이 두르고 다녔을 정도니까요.”

감성(파토스)은 종종 이성(로고스)의 명령에 반항한다. 스토아학파에서는 이것을 병이라고 여겼다. 황빠들이 이성의 명령에 반항할수록 상처는 곪아갔다. A와 B는 〈 PD수첩 〉 방영 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성의 명령에 의해 움직일 때 감성의 명령으로 ‘운동’에 뛰어들었다(A는 ‘데모’라고 칭했고 B는 ‘운동’이라고 말했다). 탑골공원·청계천 집회부터 2006년 3월까지 매주 지속된 광화문 집회에 참가했다. ‘전단지결사대’를 꾸려 지하철 등에서 구명 활동을 하는가 하면, ‘어머니애국단’에 소속돼 100만인 서명운동에 동참하기도 했다. 청와대 등에서 1인시위도 불사했다. 그들은 시간·노력·금전을 투자해 발 벗고 나서는 동안 가정불화를 겪기도 했다. 황까로 돌아온 지금 가정불화는 사라졌지만.

-총 몇 회나 참가했습니까.

“셀 수 없이 많아서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100회는 훨씬 넘는 것 같아요.”

-지령이 오나요.

“전철을 돌아라, 광화문에서 집회를 열자라는 식으로 주문이 왔어요.”

-혹시 난자 기증도 했나요.

“난자를 기증하려고 했죠. 난기모(난자기증모임)에 전화까지 했는데 잘 안 됐어요. ‘진달래 꽃길’ 이벤트1에는 직접 참여하지 못했지만 지지글을 올렸고요. 그땐 난자 기증을 착취의 개념보다 더 큰 생명체에 대한 공헌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금전적 후원도 했습니까.

“전단지를 만들거나 후원회비를 낼 때마다 조금씩…. 계를 깨서 넣기도 했어요. 총 수천만원 정도 될 거예요.”

수뇌부는 조직적으로 황빠들을 관리했다. 주부들에겐 서명운동과 촛불집회 참가 임무를 주고, 글재주가 좋은 사람들에겐 다음 아고라 같은 사이트의 ‘온라인 전사’로 활용했다. 한 지지자는 황우석을 인터넷 검색어 1위로 만들기 위해 50여 개의 아이디로 댓글 활동을 했다.

“‘(황우석 관련) 기사가 나갈 테니 준비하라’고 해요. (여론을) 조작하라는 의미였죠.”

전단지결사대·댓글부대 ‘황빠의 조직화’

댓글 부대들은 인터넷 ‘자동 클릭 프로그램’을 통해 여론을 조작하는 방법을 배웠다.

“어떤 분은 알바를 고용해서 PC방에서 매일 조회 수를 높이기도 했어요. 그땐 진짜 목숨 걸고 했죠.”

등단 시인이던 B씨는 글재주가 좋아 황우석이 특별관리를 했다고 한다. 그는 황우석을 찬양하는 시를 수십 편 쓰기도 했다. B는 부끄러운 과거라고 말했다. 황우석이 검찰에 출석한 2006년 3월부터는 운동이 더 바빠졌다. 낮에는 전단지를 돌리고 밤에는 ‘퇴청하실’ 때까지 촛불을 들었다.

“검찰 조사를 받다가 뛰어내리실까봐. 검찰이 모욕적인 조사를 한다는 소문이 있어서…. 촛불을 보고 지지자들이 있으니까 힘내라고.”

그런데 어쩐 일인지 검찰 수사 결과가 나올 즈음 운동을 주도하던 수뇌부들이 하나둘 사라졌다. 전단지 제작을 맡았던 ‘빠삐용’과 난기모의 어른 격인 ‘중전’ 등이 그들이다. 그들은 한마디 반성도 없이 선동만 해놓고 자취를 감췄다. 수뇌부가 만들어놨던 틀 안에서 움직였던 황빠들은 그때부터 점조직 형태로 자생하게 된다. 황우석은 수뇌부가 물갈이되자 점조직에 직접 접촉하는 상황이 됐다. A와 B가 황우석과 직접 대면이 잦아진 시점도 이때다.

-검찰 수사로 과학적 진실이 밝혀진 뒤인데요.

“안타까운 심정이었지만, 우리 요구는 황우석이 연구실로 돌아가는 거였기 때문에 더욱 열심히 지지운동을 했던 것 같아요.”

황우석을 지지하는 것이야 황빠들의 선택의 자유지만 과학적 사기까지 감싸는 것은 엄연한 팩트의 왜곡이다. 줄기세포에 대한 재현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단물 다 빠진 수식어 같은 황우석을 그토록 부여잡고 싶었을까? A와 B는 황우석의 사탕발림에 속았다고 후회한다.

“2007년 말인가, 큰 건(줄기세포)이 하나 됐다며, 논문 쓰고 언론에 발표하는 데 한 1년 정도 걸린다는 거예요. 저한테는 ‘남편한테 (가정을 못 지켜도) 1년만 더 기다려달라고 말하라’고까지 했어요. 또 아무개 PD와 함께 식사를 하는데 ‘과학자 황우석의 진실을 알고 보도한 언론인, 최초의 노벨상을 탄 사람을 지킨 언론인으로 남을 것이다’라고 하더군요. 그땐 믿었죠, 지금 생각하면 낯뜨겁지만.”

이뿐만이 아니다. 황우석은 몇몇 지지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고 함께 식사를 하며 “선택받는 느낌”이 들게 만들었다. 황우석과 긴밀한 관계가 된 B씨에게는 ‘찬양 시’를 모아 책을 내자며 제안하기도 했다.

‘황빠 현상’, 광신인가 정상인가?

혹자들은 황빠 현상을 스톡홀름증후군이나 인지부조화 이론으로 설명한다. 전자는 인질이 인질범들에게 동화돼 그들에게 동조하는 현상을 말하며, 후자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보다는 자신의 믿음에 대해 극단적인 합리화 형태로 나아가는 현상을 일컫는다. 한마디로 황빠들은 ‘비정상의 심리 상태’를 가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주장은 적어도 A와 B에게는 맞지 않는다. 그들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자발적 황빠이기에 인질이 아니며, 자신의 믿음에 대해서도 극단적인 합리화를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빠들이 생겨난 이유는 무엇일까? 김종영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에 따르면, 황빠 현상은 우리 사회에 이미 존재하는 민족주의적 열망과 줄기세포 비전에 기반한 집단적 감성이라고 보았다. 여기에 더해 사회체제에 대한 불신과 언론의 애국주의·경제주의 담론 조장 등이 복합적으로 상호 작용한 결과라고 말한다.2

A와 B가 겪은 ‘동료’ 황빠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초기에는 애국심이나 국익에 입각해서 지지한 분들도 계시고, 사회가 부조리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 중 황우석이 가장 부당하게 당하는 대상이라고 생각해서 운동에 참여한 분도 많았어요. 그래서 황빠가 돼 황우석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것이 부조리한 사회가 정상화되는 것이라고 생각했고요.”

-지금은요.

“황우석 사조직이죠. ‘황빠랜드’라고 할까. 그들 중에는 금전으로 얽혀 있는 사람도 있어요.”

-줄기세포 주식으로 한탕하려는 사람들?

“황우석 옆에 있으면 ‘특허’ 문제 등 정보가 있잖아요.”

-난치병 가족들도 있나요.

“처음에는 몇 분 왔었는데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아요. 그분들이 줄기세포는 더 잘 아니까.”

황우석의 사기 밝히려 ‘황까’가 됐다

2007년부터 황우석의 핵심세력이 되어가던 A와 B는 인식의 혼란을 겪는다. 멀리 있을 때 보지 못했던 황우석의 실체가 가까이 갈수록 보였기 때문이다. 황우석은 억겁의 미소와 거신광 대신 충성을 요구했고, 황빠 내부 점조직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토론 등 합리적 절차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들은 비로소 황우석의 아우라는 페르소나(가면을 쓴 인격)였음을 알게 된 것이다.

“황우석은 자신이 요구한 대로 움직이는 수족이 필요했을 뿐이에요. 우리는 액세서리였을 뿐이고요.”

인간 황우석에 대한 배신감은 그들과 황빠 초기부터 함께 활동했던 사업가 C를 황우석이 매도하는 과정에서 극에 달했다. 당시 C는 황우석에게 맹목적으로 헌신하며 자금줄 노릇을 해서 그의 총애를 받고 있었다. 황빠 내 다른 조직의 시기를 받을 정도였다. 그러다 C의 사업이 위태로워지자 근거 없는 루머가 떠돌았고, C를 비방하는 성명서도 인터넷에 올랐다. 그들은 황우석에게 ‘백색테러’를 시정해줄 것을 요구했지만 황우석은 되레 회유했다.

“그 일로 황우석을 만났는데 C를 비방하며 ‘C에게서 떨어지라’는 투로 이야기하더군요. 우리와 C를 갈라놓으려는 이간질이었죠. 돈이 있을 때는 동생 같은 사람이라면서 치켜세우더니…. 황이 C에게 꽤 많은 돈을 빌렸다고 들었어요.”

현재 C는 황우석을 상대로 ‘빌려간 16억원을 돌려달라’며 소송을 진행 중이다.

인간적인 배신감으로 황빠로서 회의감이 들 무렵인 2010년 12월, 수암생명공학연구원에서 근무하는 익명의 연구원 글이 황빠 카페에 올라왔다. 한때 엄청난 황빠였던 그는 ‘NT-1’(1번 줄기세포) 재검증 논문의 데이터 조작, 제1저자의 의견 묵살 등 황 박사 연구의 비과학적 행태를 꼬집었다. 고해성사였다. 황빠 과학자의 글은 A와 B가 황빠와 결별하게 만드는 결정타였다. 그들은 비로소 과학자 황우석에 대해서도 ‘사기’라는 결론을 내리고 미련을 버렸다. 마치 신이 만든 세계를 의심했던 이반(<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처럼 그들은 황우석이라는 신이 만든 모든 세계를 의심했다. 상식을 받아들이기까지 6년의 세월이 지난 뒤였다.

-과학자 황우석에 대해서도 실체를 알게 된 거네요.

“네. 지금까지 ‘줄기세포는 황우석’으로 브랜드화돼 있었지만, 그 글을 보고 황우석은 과학자가 아니라 줄기세포로 사업을 하는 사람이었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인터뷰 말미, 마지막 물음표가 남았다. 황빠로 얼굴 팔리며 열정적으로 활동하다 진실이 거짓임을 알게 되면 삶의 탈진 상태가 되거나 조용히 생활인으로 복귀하는 게 통상적일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왜 ‘황까’ 운동을 하는 것일까?

“인간적인 배신감만 느꼈다면 우리도 조용히 사라졌을 겁니다.”

-그런데 왜 전향하셨나요.

“제가 전단지결사대로 홍보했던 내용들, 즉 과학 사기를 비롯해 주식시장을 움직이는 세력들을 내 손으로 끝맺음해야겠다는 반성과 더불어 책임감이 든 거죠. 아직도 ‘줄기세포 화장품’으로 장난을 치잖아요. 황우석의 사기를 가장 잘 아는 사람으로서 다른 피해자들이 생겨나지 않게…. 6년간 황우석의 종적을 곁에서 본 우리 말고 더 정확히 말해줄 사람이 있나요?”

글 김원일 기자 nirvana@hani.co.kr

1 2005년 12월6일, 황우석 박사 지지자들이 그의 서울대 수의대 연구실로 가는 건물 계단과 복도에 진달래로 꽃길을 깔고 난자 기증 의사 전달식을 치른 것.

2 <‘황빠’ 현상 이해하기>. 한국사회학 제41집 6호. 2007.

한물갔다 인간 복제 배아줄기세포

줄기세포 연구가 무엇을 목표로 어떻게 이뤄져왔는지를 이해하는 데는 고전적인 비유 하나가 도움이 될 법하다. 1950년대에 콘래드 워딩턴이라는 과학자가 제시한 비유다. 그림을 상상해보자. 꼭대기가 있고 그 밑으로 여러 갈래의 골짜기들이 뻗어내린 산이 있다고 하자. 이 골짜기로 구르는 돌멩이와 저 골짜기로 구르는 돌멩이의 운명은 다르고, 그 운명은 중력을 거슬러 다시 되돌릴 수 없다.

세포의 운명은 돌멩이의 운명과 비슷하다. 꼭대기에 놓여 어떤 골짜기로도 굴러 떨어질 수 있는 돌멩이는 모든 세포로 분화할 능력을 지닌 전분화능(Totipotent) 세포다. 수정란이 그럴 것이다. 세포 하나가 계속 분열해 개체를 이루는 모든 유형의 세포와 기관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약간 아래에 놓인 돌멩이도 거의 모든 골짜기로 굴러 떨어질 수 있는데 이런 돌멩이는 태반 같은 몇 가지를 빼고는 역시 거의 모든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다분화능(Pluripotent)을 지닌다. 배반포의 내부 세포 덩어리에서 얻은 배아 줄기세포가 그럴 것이다. 이를 ‘만능줄기세포’라고도 부른다.

어느 정도 굴러 떨어진 돌멩이는 다른 골짜기로는 갈 수 없지만 완전히 밑바닥에 떨어진 돌멩이와 달리 몇 가지 다른 운명의 길을 선택할 수는 있다. 이런 돌멩이는 분화의 끝자락에 도착해 안정상태에 이른 말단세포와 달리, 부분분화능(Multipotent)의 능력을 지닌다. 상처 난 피부를 재생하는 피부 줄기세포나, 이미 의학에 많이 쓰이는 골수 조혈모세포가 그런 성체 줄기세포다.

이렇게 보면, 줄기세포 연구는 여러 방법을 찾아내 세포 분화능의 골짜기에서 이미 바닥에 떨어진 체세포를 다시 끌어올려 초기의 분화 능력을 갖는 세포를 만들려는 시도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이렇게 만든 줄기세포가 필요한 말단세포로 안전하게 분화하도록 유도하는 연구이기도 하다.

사실 줄기세포가 대중매체에 등장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90년대 말 무렵이었다. 이전까지 줄기세포 연구는 주로 암세포 연구 분야에서 이뤄졌고 오래전부터 골수를 의학에 쓰는 성체 줄기세포 연구가 이어졌지만, 1998년 미국의 제임스 톰슨 교수가 인간 배아 줄기세포를 처음 만든 뒤 줄기세포 연구가 활발해졌다. 줄기세포는 ‘세포의 어머니’ ‘난치병 세포 치료의 원료’로 불리며 대중적 조명을 받았다. 하지만 배아 줄기세포는 난자와 배아를 파괴하는 생명윤리 문제와, 줄기세포를 이식받은 환자에게 면역거부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안전성 문제를 안고 있었다.

적어도 면역거부 문제는 체세포 복제 배아 줄기세포가 등장하면서 극복되는 듯했다. 2004년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 연구팀이 발표한 인간 복제배아 줄기세포는 줄기세포 붐을 일으켰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연구논문 조작 사실이 드러나면서 연구 성과는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2013년 미국의 슈크라트 미탈리포프 교수 연구팀이 독자적인 방식으로 인간 복제배아 줄기세포를 수립하는 데 성공했지만, 복제배아 줄기세포에 대한 관심은 예전처럼 크지 않았다. 여전히 난자와 배아를 파괴하는 생명윤리 문제를 안고 있었고, 이미 몇 해 전에 생명윤리를 일으키지 않으면서도 배아 줄기세포와 비슷한 분화능을 지닌 줄기세포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일본의 야마나카 신야 교수는 2006년 체세포에다 몇 가지 유전자를 집어넣으니 이 세포가 역분화해 배아 줄기세포와 같은 초기 세포로 되돌아갔다는 연구 성과를 발표했다. 이른바 ‘유도된 다분화능 줄기세포’(iPS세포)라는 역분화 줄기세포였다. 그러나 역분화 줄기세포를 만드는 데 쓰인 유전자에는 암을 일으키는 성질이 있어 재생의료에 쓸 만한 안정적인 세포인지는 지켜봐야 한다. 최근인 1월 말엔 핵이식이나 유전자조작 없이도 약산성 용액에다 갓 태어난 쥐의 체세포를 담가두었다가 적절히 배양 처리하면 분화된 세포가 초기 상태로 되돌아간다는, 일본·미국 연구팀의 연구 성과(STAP 줄기세포)가 발표돼, 현재 일부 논란 속에 다른 연구자들의 검증을 받고 있다.

글 오철우 <한겨레> 기자 cheolwoo@hani.co.kr,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scienceon.hani.co.kr)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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