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3.04 14:11 수정 : 2014.03.10 18:19

박철민은 ‘이기주의자’를 자처하지만, 이기적인 인간은 그 이기심 때문에 자신을 이기주의자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가 말하는 이기주의는 사전적으로 이해되지 않고, 다만 자기의 꿈을 이루기 위해 나이나 시선 따위는 의식하지 않는 태도를 이르는 것처럼 들린다. 2011년 11월30일 열린 리영희 선생 1주기 추모식에서 시를 낭송하고 있는 박철민.한겨레 김봉규
오후 4시15분쯤 그가 스튜디오에 나타났다. 패딩 조끼에 양손을 푹 찔러넣은 채 들어선 그는 약간 쑥스러운 듯 허둥댔다. “뭐부터 해야 하지, 아 옷부터 갈아입어?” 탈의실이 따로 없었기에 스튜디오 내 작은 빈방에 매니저와 함께 들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왠지 이 인터뷰 자체를 어색해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말쑥하게 차려입고 “자, 이제 시작해볼까요”라며 운을 띄우는 그에게 먼저 “요즘 인터뷰가 너무 많아 피곤하시죠”라고 위로의 말부터 건넸다. 물론 그는 아니라며 괜찮다고 답했다.

이기적인 탓에 맡은 황상기 역

사실 나는 인터뷰란 참 예의 없는 만남이라고 생각한다. 친하지도 않은데 얼굴을 맞대고 앉아야 하고, 질문을 던지는 자와 대답해야만 하는 자로 구도를 정해놓고 온갖 것을 대놓고 물어본다. 특종을 노려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친근함을 가장해 사생활을 침범하며, 예리한 분석인 양 답변을 부풀리곤 한다. 이미 영화 <또 하나의 약속> 개봉 전후로 많은 횟수의 인터뷰에 응대했을 터이다. 더군다나 이미 새로운 작품의 촬영에 들어갔고 월간지라는 특성상 이 인터뷰가 세상에 나올 때쯤엔 주연을 맡았던 영화는 극장에서 막을 내린 시점일지도 모른다. 오늘의 인터뷰가 다소 어색한 자리인 건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왜 인터뷰를 굳이 하기로 한 것일까.

그가 웃으며 답했다. “홍보 담당자가 그러더라고요. 영화가 극장에서 내린다 해도 이후 VOD 시장이 있기 때문에 인터뷰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듣고 보니 그 말도 일리가 있다 싶어서 한 명이라도 더 보는 데 도움이 된다면 해야겠다 싶었죠.”

그렇다. 아무리 인터뷰이에게 불편하고 불리한 구조라고 해도 인터뷰란 쉽게 거절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듣는 일은 수천∼수만 명이 동시에 할 수 있지만 말을 전하는 마이크의 수는 늘 한정돼 있다. 그러므로 내게 마이크가 오는 것, 나의 이야기를 듣겠다고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은 이른바 지나간 뒤엔 잡을 수 없도록 뒷머리가 벗겨져 있다고 하는 그 귀한 ‘기회’ 자체인 것이다. 우리의 주연배우가 그걸 놓칠 리 없다.

“이 영화는 제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 있어요. 이 영화가 갖는 의미가 있고 역할이 있고 메시지가 분명하게 있으니까…. 우리가 가진 것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는 게 중요하죠.” 그는 영화를 찍을 때는 몰랐지만 막상 개봉을 앞두니 이 영화의 주연을 자신보다 좀더 티켓 파워도 있고 연기력도 좋은 배우가 해야 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노개런티로 출연했는데도 오히려 영화에 빚진 마음이 그는 있나보다.

티켓 파워를 아쉬워하는 건 아마도 영화의 제작비를 모아준 이들에 대한 감사함 때문이리라. 연기생활 20년차 배우가 새삼스레 연기력을 운운하는 건 실존 인물에게 혹여 누를 끼칠까 하는 소심함이 발동했기 때문이고. 작품 전체를 책임지는 주연배우로서 그가 갖는 부담감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런데 뜻밖이다. 그는 이 모든 것이 다 자기가 “이기적인 탓”이라고 한마디 툭 내뱉었다.

이기적? 그는 인터뷰 내내 “나는 이기적인 놈”이란 말을 반복해서 썼다. 아하, 혹시 이것이 근래 그의 화두인가? 아니나 다를까 검색해보니, 이전에는 한 번도 언급된 적이 없다가 영화 <또 하나의 약속>과 관련한 인터뷰에서부터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2014년 이전에 ‘이기적’이란 단어가 등장하는 인터뷰는 딱 한 번 있었는데, 바로 2010년 전태일 열사 40주기 문화제 홍보대사로 위촉됐을 때다.)

아내가 생계와 가사를 모두 부담하는 것을 모른 척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았던 것도 자신의 이기심 때문이라고 말했다. 영화 속 상구의 캐릭터가 정말 매력적이어서, 이런 보기 드문 역할을 내가 또 언제 할 수 있을까 하는 욕심으로 덜컥 주연을 맡은 것도 이기적인 결정이었다고 한다. 자기 돈을 조건 없이 내면서도 ‘너무 적어서 죄송하다’는 말을 하는 후원자들을 보며 처음엔 저 사람들은 왜 저럴까, 어찌 저럴 수 있을까 싶었단다. 세상에 이타적인 사람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조차 자신의 영화 제작과 관련이 되었을 때나 겨우 깨달았으니 역시 자신은 이기적인 것 같단다. 전태일은 자기의 것을 모두에게 나눠준 사람인데 자신은 그렇게까진 하지 못하는 이기적인 사람일 뿐이기에 그나마 있는 유명세라도 도움될까 홍보대사라도 하는 거란다. 맙소사! 그가 가진 이기심의 스펙트럼이 너무나도 넓다.

나는 그에게 “중년 남성이 자신을 가리켜 자발적으로 이기적이라고 말하다니 놀랍다”고 했다. 그는 “아마 다들 그렇게 속으로는 생각하는데 말을 못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직접적으로 발언하는 것과 아닌 것의 차이가 크다”고 말했다. 이기적인 인간은 바로 그 이기심 때문에 자신을 이기주의자라고 말할 수 없기 마련인지라. 영화에 영향을 받아서든 아니든, 난 이 이기적 성찰에 빠진 중년의 남성에게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난 힘들었던 적 없다, 항상 행복했다”

그의 이력을 살펴보면 누구나 ‘어!’ 하고 놀라는 대목이 있다. 독재정권에 맞선 민주화 투쟁의 열기가 가득했던 1980년대 후반에 대학을 다녔던 그는 시대와 민중을 걱정하던 열혈 청년이었다. 중앙대학교 사회대 학생회장을 맡았다가 총학생회장직까지 대행하게 되었고, 시위와 집회 현장을 주름잡던 이름난 사회자로 활약하기도 했다. ‘대머리 독재자만 있는 게 아니라 민주대머리도 있다’는 집회에서의 발언은 엉청나게 히트를 쳐서,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한동안 ‘민주대머리’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 정도 이력이면 손아람의 표현대로 “운동권 성골”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그가 자신을 그저 ‘운동권 날라리’였을 뿐이라고 말하는 대목이 좋다. 짐짓 겸손을 떠는 말일지라도 좋다. ‘날라리였을 뿐’이라고 말하는 데도 내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날라리는 철없는 사람이 아니라 겁 없는 사람이다. 겁은 꿈이나 목표가 명확할 때 사라지는 법이 아니던가. “그때는 어려서 철이 없었다”며 부러 점잖은 척 말하지 않는 것도 고마웠다. 철이 든다는 건 길들여진다는 것과 맞닿아 있다. 꿈을 지키는 대신 자신을 지키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익힌 이들이 쓰는 표현이다. 한때는 구국의 투사였다가 너무 철들어버린 이들이 지금의 정치판을 좌지우지하는 꼴이 보기 싫어서 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렇게 보면 서사는 다시 구성된다. 그는 ‘날라리’였는데 시대의 아픔을 모른 척하지는 않았다. 학교에서 연극을 했는데 당시에 대박을 쳤다. 학생들 사이에 유명해져서 총학생회장까지 맡게 되었고, 그저 남들 앞에 나서기 좋아하는 본성을 살려 집회 사회를 보는 등 민주화운동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날라리’는 졸업 뒤 망설임 없이 극단으로 들어간다. 원래 연기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으므로.

1989년 연극 <껍데기를 벗고서>로 데뷔했고 오랫동안 <품바> 같은 마당극을 했다. 걸쭉한 입담을 자랑하는 만담꾼으로 정식 무대가 아닌 시위나 파업 현장에서도 공연했고, 양심수나 노동자들을 위한 문화행사에도 사회자로 참여하곤 했다. 1995년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로 영화판에 발을 들여놓았고, 2004년엔 단막극으로 드라마도 시작했다. 영화 <목포는 항구다>,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 같은 작품들을 통해 이젠 꽤 유명해졌지만 연극배우로도 꾸준히 활동을 이어왔다. 2000년 연극 <대한민국 김철식>에서의 열연으로 첫 팬클럽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지난 3월부터는 <그와 그녀의 목요일>이란 작품으로 서울 대학로 무대에 오른다.

이렇게 보면 그의 삶은 참 일관성 있게 흘러왔는데도 툭툭 눈에 띄는 대로 보면 잘나가던 대학생이 연극한답시고 고생하다 서러운 무명 시절을 오랜 시간 버틴 끝에 드디어 스타가 되는 스토리로 구성된다. 이제야 그가 인터뷰에서 한 말이 이해된다. “사람들은 자꾸 과거에 고생했던 이야길 하라고 해요. 그만 말하고 싶다고 질문지에서 빼달라고 해도 기어이 또 물어보죠. 얼마나 힘들었느냐고 위로하는데 사실 하나도 안 힘들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배는 고팠지만 즐겁고 행복했거든. 후회되지도 않아요.”

맞다. 세상에는 자꾸 잊혀지는 매우 간단한 진실이 있다. 가난이 곧 불행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을 때는 가난해도 초조해지지 않는다는 사실,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할 때엔 가난해도 부끄럽지 않다는 사실 같은 것 말이다. 우리는 질문을 바꿔 던질 줄 알아야 한다. 어떻게 극복했느냐고 물을 것이 아니라 어떻게 즐겼는지를 물어볼 수도 있어야 한다. “나는 운동권 날라리였어요”라는 말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질문에 그가 먼저 보내는 답변이지 싶다.

그는 결혼을 일찍 했다. 아내의 배가 만삭에 가까워지자 책임감이 느껴졌단다. 연극판을 나와 장사를 시작했다. 노점상으로 과일도 팔고 신발도 팔았더랬다. 과일을 팔면서 제법 재미를 보고 장사에 재주가 있다고 생각한 뒤 정주영 같은 거상이 되리라며 도매업에 뛰어들었다. 이 대목에선 사람 좋은 너털웃음을 날리는 지금의 모습이 아닌 패기와 치기가 뒤엉킨 젊은 시절의 그를 상상할 수 있다. 하지만 도매의 세계는 소매와 달랐다. 큰돈을 버는 대신 순식간에 큰돈을 날려버린 다음에야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구나라는 생각으로 다시 무대로 돌아왔다. 이는 다시 가난해졌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가족 부양의 책임을 아내에게 넘겼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참 넓고 깊은 스펙트럼 가진 이기주의

이쯤에서 손아람이, 선배 격으로 박철민이 먼저 통과했을 숙제이기도 하고 앞으로 자신의 고민이기도 한 주제에 대해 물었다. 불안정하고 적은 수입에 기댈 수밖에 없는 예술가 남성은 어떻게 가정을 꾸릴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그는 딱 잘라 한마디로 말했다. “이기적이어야만 가능한 거 같아요.” 이기적일 수 있어야지만 예술가로 살겠다는 꿈을 버리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리라. 그러곤 좋은 배우자를 만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만약 그가 여기까지만 말했으면 설사 내가 그의 아내는 아니어도 같은 성별의 여자로서 분개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뒤이어 더 냉정하게 한마디 덧붙였다. “그러지 않을 거면 아예 결혼하지 말아야 해요. 감당하지 못할 사람의 인생까지 끌어들이는 건 너무 이기적이잖아요.”

아하, 이 사람 점점 흥미롭다. 사람이 자기 꿈을 지키면서 살려면 이기적이어야 하는데 그렇다고 또 너무 이기적인 건 사람답지 못해서 안 된단다. 그의 이기주의 스펙트럼은 넓기도 하고 참 깊기도 하다.

하긴 생각해보면 정말 그렇다. 대한민국의 많은 남성들은 결혼을 하면서 도리어 꿈을 잃어버린다. 독립된 주체로서 개인적 꿈을 갖는 건 사치가 된다. 가정을 꾸리는 것, 성공한 가장이 되는 것 자체가 꿈이 되어버렸다. 모두가 이렇게 살아갈 때 좀 힘들어도 내가 하고픈 일을 하겠다고 선택하는 건 가족에게도, 어쩌면 이 세상에도 이기적인 결정일지 모른다.

내가 그에게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 다작을 하는 것에 대해 물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대답은 “제가 사막의 한가운데 있었을 때…”로 시작했다. “뜨겁게 무대를 준비하고 뜨겁게 무대에 올라선 시간만큼 또 무대 밖에서 놀고 있어야만 하는 시간이 있었어요. 그 시절엔 아내가 집에서 과외를 하면 그 시간만큼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 돌봐야 했지요. 딸과 함께 올챙이도 잡고 학교 운동장에서 놀기도 하며 소중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동시에 누가 나를 안 찾아주나 하는 엄청난 갈증도 있었어요. 가끔 누군가 전화로 ‘요즘 뭐하고 있어’라고 물어만 봐도 눈물이 핑 돌았으니까. 그래서 그때 결심했죠. ‘나를 찾는 사람이 있으면 충성을 바치자, 정말 고마워하자’라고. 어쨌든 내게 어떤 매력이 있으니까, 내게서 어떤 향기를 맡고 싶으니까 나를 부르는 것이 아니겠는가. 내가 여기서 거부하면 다시는 나를 안 찾아줄 거 아닌가. 물론 너 너무 소비되고 있다, 그러다 지친다, 이런 이야기도 많이 듣긴 하는데 있을 때 많이 하자, 내 매력을 발휘할 수 있는 배역이라면 그것이 잠깐 나오는 것이라도 나는 한다….” 그는 이렇게 말을 하면서도 또 말미에 “이것도 이기적인 거지”라고 덧붙였다.

묘한 기시감을 주는 배우, 박철민

대중에게 사랑받는 연기자가 되고 싶었고, 그 사랑으로 관객 앞에든 카메라 앞에든 서서 더 많은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내고 싶다는 꿈은 그에겐 지금도 현재진행형의 소망이다. 아이고, 이제 나는 이기심이고 뭐고 간에 지금 내 눈앞에서 대한민국 40대 후반의 남성이 먼 미래를 더듬는 꿈을 꾸는 듯한 표정으로 자신의 현재 꿈에 대해 말하는 희귀한 장면을 목도하고 있음에 더 놀란다. 정년퇴직이 없는 직업적 특성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지금 한국의 중년 남성들 중에서 연봉이나 손에 쥐어질 권력과 상관없이 순수하게 어떤 내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진 이들이 몇이나 될까. 배우는 이래서 좋은 것일까.

한 친구가 내게 자기 나름의 ‘박철민 배우론’을 펼친 적이 있다. 친구의 분석은 이러했다. 한국인의 대표적 정서를 표출하는 것을 중심으로 남자 배우들을 꼽아본다면 ‘억울함’을 가장 잘 담아내는 배우가 박철민이라는 것이다. 나는 즉각 억울함이라고 한다면 이문식, 유해진, 김인권 등의 배우가 더 있다고 반박했다. 친구는 억울함에도 종류가 있다고 했다. 가령 이문식의 억울함이 무시당하는 데서 생기는지라 결국 버럭 화를 내고, 유해진의 억울함은 뭔가 더 잘해보려 하지만 실패하는 것이기에 결국 타협을 하는 종류이며, 김인권의 억울함은 주로 영문도 모른 채 당하는 것에서 온다면, 박철민의 억울함에는 상대보다 힘이 약해 당하긴 해도 결론적으론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뭐…’라는 말을 건네는 느낌이 있다는 것이다. 부당한 일을 당하면 ‘에이 씨팔’은 외치겠지만 그렇다고 복수를 하진 않을 것 같은, 자기보다 더 힘들어하는 사람을 보면 웃겨주려고 실없는 농담을 꺼내고야 마는, 속상해하다가도 세상 뭐 별거 없다며 찧고 까부는 것을 택하는, 그야말로 시류를 따라 흘러가며 사는 보통의 선한 사람.

친구의 독창적인 분석은 코치에서 드디어 감독이 되었다가 단일팀 구성 때문에 바로 다시 코치로 주저앉는 인물로 나왔던 영화 <코리아>나 고아가 된 남의 집 아들을 건사하느라 돈도 시간도 자존심도 모두 털어내는 역할이었던 <노브레싱>을 떠올리면 어느 정도 납득이 된다. 특히 <노브레싱>에서의 박철민은 물 만난 고기처럼 캐릭터를 거의 완벽하게,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아주 현란하게 소화해낸다.

솔직히 감독의 탓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엉성한 스토리와 연출로 인해, 모든 등장인물의 캐릭터가 모호하고 개연성도 부족했던 그 영화에서 그가 맡았던 역할은 가장 현실성이 떨어지는 인물이었다. 수영 코치를 하다 제자가 죽자 택시 운전을 하는데 아내도 없고 딸 하나를 키우면서도 그 딸보다 더 애지중지 제자의 아들을 헌신적으로 기른다는 정도의 설정이라면 이 인물이 이럴 수밖에 없는 전후 설명이 나와야 하는데, 감독은 이 모든 것을 관객의 상상에 맡겨버린다. 그는 러닝타임이 젊은 남녀 주인공의 오글거리는 연애사로 할애되는 통에 등장할 때마다 혼자 스토리를 이끌고 가느라 고군분투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관객은 그에게 감정이입을 할 수 있다. 비현실적인 내용이란 것을 알지만 왠지 세상에 저런 사람도 있을 것 같고, 이왕이면 우리 아빠였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어느새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건 배우가 박철민이기 때문이다. 배우의 아우라가 오히려 극중 인물을 살리는 경우인데, 저 사람이라면 저렇게 행동할 수도 있겠다 싶어져서 상상의 빈 공간이 메워지는 것이다.

<시라노: 연애조작단>에서도 마찬가지다. 장르의 특성상 주인공들은 진지하게 로맨스를 이끌고 조연들이 과장된 연기를 하면서 웃음을 유도할 수밖에 없는 구도인지라, 박철민이 맡은 ‘작가’도 비현실적 인물이 되기 쉽다. 오버를 하면서 웃기되 영화에 몰입하는 데 방해되지 않으려면 인물이 설득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는 ‘나는 세상에서 애드리브하는 놈이 제일 싫어’ 같은 대사로 현실감을 자연스럽게 획득한다. 정말 저런 말 하는 사람은 꼭 하나 있을 거 같으니 말이다.

그만큼 인간 냄새 나는 배우도 없다

그는 어디엔가 존재할 것 같고, 한 번은 만난 적 있는 듯한 묘한 기시감을 주는 배우다. 그래서 나는 익살맞은 감초 이미지가 강한 그가 정극 스타일의 <또 하나의 약속>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우려에 동의하지 않았다. 오히려 누구보다 그가 적격이다. 타고난 초능력을 가진 영웅도 아니고, 갑자기 충격받아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특별히 법을 어기지 않고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살면 그걸로 괜찮은 삶이라 자족하며 살아온 평범한 소시민일 뿐이다. 그런데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도저히 이해되지 않아 조금씩 세상과 싸우게 된다. 대기업을 상대로 이긴다고 해도 딸이 살아 돌아올 수는 없고 삶의 여건도 그대로일 수밖에 없는 어느 아버지의 이야기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 건, 그것이 할 수 있는 전부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영화 <변호인>의 송우석과는 또 다르다. 상구에겐 꽤 넉넉하지만 깊게 파인 입가의 팔자 주름이 그래서 필요하다.

오후 4시15분에 만나 사진 촬영까지 마친 시간이 저녁 6시40분. 2시간30분 남짓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그에 대해 잘 알 수는 없다. 다만 그를 많이 이해하고 싶었다. 일전에 어느 강의에서 한 역사학자가 한 말이 생각난다. 한 인물을 가지고 논문을 쓰다보면 결국엔 그 인물을 사랑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 사람에 대해 집중적으로 파고들다보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며 자신의 전공이 히틀러가 아닌 게 얼마나 다행이냐고 껄껄 웃었다. 지금 보니 인터뷰어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온통 그에 대한 생각만 하면서 그를 더 많이 알고 싶어지고 더 많이 이해하고 싶어진다. 못다 한 이야기들의 조각을 찾기 위해 새삼 더 많은 검색질도 하게 되니 이건 짝사랑의 초기 단계에 버금간다.

관찰한 결과, 그가 지금 자신의 모든 행동을 이기적인 것이라 보는 성찰을 하고 있다는 건 알았다. 가만 따져보니 내가 오래전부터 그의 연기를 좋아한 팬이었다는 것도 새삼 알았다. 그가 아내랑 싸우면 며칠씩 맘을 먼저 풀지 못하는데다, 평론가의 한마디에 연기를 그만둬야 할까 자책하는 소심함이 있다는 건 의외의 정보로 모른 척해두자. 예술인의 예민함으로 봐줄 수도 있겠다.

그러고 보니 황유미씨와 황상기씨의 스토리는 영화보다 먼저 만화로 만들어졌다. <사람 냄새>라는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이런 장면이 있다. 황상기씨가 강원도 속초의 특산품인 송이버섯을 손님에게 내놓으면서 혼자 읊조리듯 말한다. “사람은 나이가 먹을수록 늙을수록 사람 냄새가 나는 거야. 나이가 좀 먹으면 다른 사람이 좀 안 되어 보이면 마음이 편치가 않아. 그게 인간미야…. 이 송이도 맛과 향이 있잖아.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맛과 향이 나야 돼. 맛과 향이….” 인간미, 사람 냄새라는 말은 참 따뜻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박철민, 그가 이 말에 어울린다는 생각도 뒤따른다. 아, 이 글의 마지막에 꼭 해야 할 말이 이제야 떠올랐다. 이 인터뷰의 목적을 잊지 말자. 극장에서 <또 하나의 약속>을 아직 못 본 분이 계신다면 TV로라도 영화를 ‘굿 다운로드’해서 꼭 보시길. 사람 냄새가 나는 세상을 위해 만들어진 영화다.

글 한채윤 1998년 한국 최초의 동성애 전문지 <버디>(BUDDY)를 창간했다. 2001년부터 퀴어문화축제(kqcf.org) 기획에 참여하고 있으며, 2002년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kscrc.org)를 조직해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생계는 주로 강의와 원고로 해결하고 있는 전업활동가이며, 낸 책으로는 <한채윤의 섹스 말하기> <남성성과 젠더>(공저) 등이 있다. ‘마포 민중의 집’ 공동대표이기도 하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에 이어 이번호 ‘3차원 인터뷰’부터 한채윤 한국퀴어아카이브 퀴어락 운영위원이 새 인터뷰어로 참여합니다.

[관련 영상] ‘가족’이라 부르지 못한 <또 하나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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