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2.04 15:10 수정 : 2014.03.02 14:25

마침내 나는 취사장에서 벗어났다. 새로운 작업장은 영치창고다. 먼지가 자욱한 창고의 목재 선반에는 큼직한 주머니(영치낭)가 빡빡하게 진열돼 있다. 1천여 개의 주머니마다 수번과 이름이 매직으로 적혀 있고, 그 안에는 방에서 사용하거나 보관하기 곤란한 수형자의 물건이 들어 있다. 갓 입소한 신입의 주머니라면 수의로 갈아입기 전 마지막 옷이, 장기수의 주머니에는 편지 꾸러미나 성경 필사 노트가, 출소를 앞둔 사람의 것에는 얼마 전 가족이 부친 새 옷 따위가 들어 있는 식이다.

영치일은 교도소 내 다른 작업장과 달리 속세의 사물을 다루는 작업이다. 물류창고에 가깝지만 묵은 공간과 사물들이 뿜어내는 퀴퀴한 냄새는 내게 낡은 도서관을 연상시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일하면서 영치낭 속의 물건을 텍스트 삼아 재소자의 과거나 징역살이를 헤아리는 버릇이 들었다. 의식적인 행위는 아니었지만, 열악한 환경에서도 위안거리를 찾아내고 마는 재소자의 생존 본능이었다. 취사장에서 함께 일한 40대 재소자의 영치낭에는 집 열쇠, 딸 사진, 로또복권, 출장 마사지 명함, 부두 임시 출입증이 있었다. 에○메스, 카○티에 같은 고가의 ‘명품’도 여기서 난생처음 접해봤다.

창고는 작업장들이 모인 공장 구역 바깥에 외따로 위치해 있다. 이곳은 사동에서 직업훈련소로 이동할 때 거쳐야 하는 유일한 길목이기도 하다. 새로운 노래를 들을 수 있는 생활상의 변화도 생겼다. 아침 8시10분이면 교육받으러 가는 훈련생들의 합창 소리가 창고까지 울려퍼졌다. 2열 종대로 발걸음을 맞춰 부르는 그 노래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희망찬 아침 햇살 가슴에 안고/ 오늘도 정열로 기술을 닦는다/ 인내와 땀방울은 나의 보람이요/ 새길을 창조하는 거름 되리라/ 우리는 긍지의 직업훈련생/ 우리는 보람찬 직업훈련생”

글 현민 자존심이 강하고 자존감은 낮은 사람, 거기서 자의식이 생긴다. 자의식이 한낱 자의식에 그치지 않고, 머무른 자리를 통해 내면성을 갖추기 바란다. 그 내면성에 대한 고찰이 사회에 대한 공부가 될 것이라 믿고 있다. 병역을 거부해 1년4개월간 옥살이했다.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