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2.04 14:36 수정 : 2014.02.05 13:57

경기 남부권과 서울을 오가는 신분당선은 대표적인 민영열차다. 정부는 민영화를 밀어붙이면서 서비스 향상을 내세웠지만 결과는 요금 인상과 안전사고 위험 증가, 적자 누적으로 인한 운행 중단 가능성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철도 민영화의 미래가 ‘신분당선’이다.뉴시스
지난 1월20일 아침. 눈보라가 몰아쳤다. 출근길 눈은 낭만이 아니라 조바심을 부른다. 경기도 성남시 판교의 한 마을버스 정류장은 직장인들로 붐볐다. 목도리와 모자로 중무장한 인파 틈에 김성진(45·가명)씨도 끼어 있었다. 그는 판교에서 서울 서초동으로 출근한다. 아침 7시46분. 마을버스에 올랐다. 30여 명이 들어차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승객은 점점 늘었다. 버스 안은 열탕으로 변했다. 땀 냄새, 입 냄새, 화장품 냄새 등이 뒤엉켜 역했다. 숨을 쉬기도, 그렇다고 숨을 참기도 힘들었다. 김씨 얼굴엔 땀이 흥건했다.

아침 8시. 버스가 신분당선 판교역에 도착했다. 그는 “눈 때문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이 평소보다 더 늘어난 것 같다”며 땀을 훔쳤다. 버스에서 내리니 이번엔 냉탕이다. 식은땀이 날아가자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판교역 광장엔 판교테크노벨리로 출근하거나 서울로 출근하는 이들이 서로 교차했다. 8시14분. 신분당선을 탔다. 열차는 5분마다 온다. 이미 자리는 만석이다. 과거 김씨는 판교역에서 광역버스를 타고 출근했다. “짐짝처럼 문에 매달려 갔어요. 출근 내내 긴장의 연속이었죠.” 그나마 짐짝이라도 되면 다행이었다. 사람이 많을 때는 버스가 그냥 지나갔다. 다음 버스는 20여 분 뒤에 왔다. 승객을 가득 채운 채.

신분당선도 서서 가는 건 마찬가지다. 그래도 숨 쉬기 힘든 마을버스나 극기훈련을 하며 가는 광역버스에 비하면 쾌적하다. 승객들은 가방을 메거나 들고 탔다. 신분당선에는 짐을 올려놓는 짐칸이 없다. 김씨는 ”회사 서류 등으로 가방이 무거울 때면 가방을 다리 사이에 낀 채 바닥에 놓고 간다”고 했다.

정확히 17분 뒤 강남역에 도착했다. 검은 물결이 출렁이며 흘러간다. 가방에 치이고 사람에 밀렸다. 서초역으로 가기 위해 2호선 승강장으로 갔다. 2호선은 3분 만에 왔다. 회사에 가까워지자 김씨 얼굴에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는 신분당선 이용에 만족했다. 신분당선(2050원)은 광역버스(2천원)보다 50원 더 비싸다. 김씨는 “광역버스보다 신분당선을 이용하는 게 쾌적하고 시간도 10분 더 빠르다”며 “마을버스를 안 탈 수는 없지만 아침마다 광역버스 안에서 녹초가 됐던 걸 감안하면 50원 더 내는 게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두 번째 요금 인상 준비… 시민들만 억울

신분당선은 경기 남부권과 서울을 오가는 직장인의 발이다. 민간에서 먼저 제안해 추진된 민자사업(BTO)이다. BTO는 민간이 건설해(Build)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 소유권을 이전하고(Transfer) 일정 기간 운영(Operate)하며 투자금을 회수하는 것이다. 2005년 7월 착공해 2011년 10월 개통됐다. 신분당선(주)1의 1대 주주는 29.03%의 지분을 가진 두산건설(주)이다. 민간자본 8407억원, 판교신도시 개발부담금 4850억원, 국비 1913억원 등 총 1조5808억원이 투입됐다. 47%가 공적자금이다. 사업시행자인 신분당선(주)이 위탁한 네오트랜스(주)가 2041년까지 30년간 열차를 운영한다.

신분당선은 서울 강남역에서 분당 정자역 사이(17.3km, 6정거장)를 16분대에 갈 수 있는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서울 도심을 통과하는 서울도시철도이자 강남∼판교∼분당을 잇는 수도권 남동부 지역의 광역교통망이기도 하다. 열차가 지나는 곳은 땅값이 비싸고 학군이 좋아 상대적으로 소득수준이 높은 이들이 거주한다. 신분당선은 ‘뉴골드라인’으로 불리며 성공 가능성이 가장 높은 민영열차로 기대를 모았다. 개통 햇수로 3년째. 그런데 신분당선은 ‘파산 위기’라며 정부 지원을 요구했다.2 어떻게 된 사연일까.

정부는 코레일의 독점이 낳은 비효율을 개선한다며 철도 경쟁체제 도입을 내세웠다. 민간이 철도를 운영하면 효율화된 경영으로 서비스가 향상된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다. 국토교통부는 “코레일이 아닌 다른 회사가 강성노조 영향 없이 아주 슬림한 구조로 경영했을 때도 진짜 적자가 나는지 검증해보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정책을 신분당선은 3년째 실행하고 있다. 철도 파업이 한창이던 지난해 말, 국토부는 신분당선을 비용 절감 운영 사례로 홍보하기도 했다.

신분당선의 오후는 한산하고 쾌적했다. 6량인 열차에는 빈자리가 많았다. 배차 간격은 8분이다. 안내방송은 한국어와 영어로만 나왔다. 중국어·일본어 방송은 서비스되지 않았다. 신분당선은 국내 최초로 무인운전 시스템이 적용된 중전철이다. 세계에서 5번째, 아시아에서 3번째다. 원격시스템에 의해 열차 운행이 자동 조정된다. 비상사태를 대비해 기관사 한 명이 안전요원으로 탑승한다. 열차에는 칸마다 폐쇄회로텔레비전(CCTV)이 설치돼 있다. 자동화 시스템에 의해 최소 인력으로 운영된다. 노조도 없다.

경영이 효율화되면 요금이 내려갈 것이라는 정부 예측은 빗나갔다. 신분당선 요금은 고공행진 중이다. 2011년 개통 당시 신분당선의 기본운임은 1600원이었다. 10km 기준으로 5km 초과시 100원이 추가된다. 당시 수도권 전철의 기본운임은 900원이었다. 노인·장애인 등에 대한 무임운송은 수도권 전철과 동일하게 적용된다. 2012년 서울 지하철 요금이 150원 오르자, 신분당선도 1750원으로 요금을 인상했다. 국토부는 올해 또다시 신분당선 요금을 200원 인상하도록 허용하고, 현재 지방선거를 의식해 인상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적자 탓이다.

운임수입 예측 실패… 불어나는 적자

<나·들>이 박수현 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국토교통부·기획재정부 자료를 보면, 신분당선의 운임수입이 예측 운임수입의 30%에도 못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개통 뒤 실시협약 대비 실제 수입(수요×통행료) 실적은 29.8%에 불과했다. 누적적자액은 1345억원이다. 하루 평균 승객이 30만 명에 달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9만 명대에 머물고 있다. 신분당선은 요금 인상과 함께 최소운영수입보장(MRG) 기준 완화를 국토부에 요구했다. 현행 기준으로 MRG를 받으려면 실시협약 대비 운임 실적이 50%를 넘겨야 초기 5년 80%, 이후 5년 70%를 지급받을 수 있다. 현재 수요로는 기준 달성이 쉽지 않다.

신분당선은 빗나간 수요 예측의 책임을 국토부로 돌렸다. 실시협약 체결 당시 국가가 계획한 연계노선(용산~강남, 정자~광교, 성남~여주) 개통이 연기돼 수요가 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신분당선 쪽의 입장이다. 신분당선 건설사업 예비타당성 조사는 정부출연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이 했다.

신분당선은 재정 여건도 좋지 않다. 2012년 매출액은 422억원에 매출원가는 862억원으로, 매출총손실이 439억원이다. 운영매출의 2배 가까운 손실을 보고 있다. 별도 이자비용도 428억원에 달한다. 이 또한 매출액을 웃돈다. 당기순손실액은 874억원이다. 열차를 운영할수록 손해 보는 구조다. 같은 해 당기말 자본금 총계는 767억원이다. 아직 2013년도 경영 자료가 공개되지 않았지만, 2012년까지의 자료를 토대로 추론해볼 때 현재 자본잠식 상태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토부는 요금 인상을 수락했지만, MRG 기준 완화는 거부했다. 이에 맞서 신분당선은 기재부 산하 민간투자분쟁조정위에 실시협약 변경을 위한 분쟁조정신청을 냈다. 조정위는 지난해 12월 ‘조정 불가’ 결정을 내렸다. 국토부 손을 들어준 셈이다. 조정위는 “연계노선 개통 시기 지연은 실시협약 수요 예측에 내재된 불확실성의 위험으로 봐야 한다”며 “이를 협약 체결 뒤 객관적 사정 변화 사유인 제반 사정 변경으로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사안은 수익형 민자사업 전반의 문제로 실시협약에서 예측한 교통수요의 기초가 된 연계교통망계획이 가정한 대로 이뤄지지 않고, 현재 시점의 통행량이 실시협약 통행량에 비해 현저히 미달된다는 이유로 협약 수요를 조정하는 문제는 MRG 지급 요건에 영향을 끼쳐 그 파장이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요금 오르고, 서비스 같고, 안전 미지수

연계노선인 성남~여주선 완공은 2012년에서 2015년 이후로 연기됐다. 강남~용산 구간은 첫 삽을 뜨기도 전에 공사가 무기한 연기됐다. 과도한 수요 예측이 화근이었다. 감사원은 지난해 9월 “국토부가 경제적 타당성이 떨어지는데도 민간투자사업을 강행하고 있다”며 국토부에 수요예측 재조사를 통보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용산 개발 좌초로 수요 감소가 예상됐음에도 적격성 재조사 및 실시협약 변경 등을 기재부에 요청하지 않고 그대로 사업을 추진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토부는 감사원의 요청을 받아들여 수요 감소 영향 등을 분석하고 단계적 추진 방안을 검토 중이다.

연계노선 지연으로 승객이 늘어날 가능성이 없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 200원 인상에 이어 추가로 요금이 오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200원 인상은 임시방편일 뿐, 그것으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가 지난해에 이어 또다시 요금을 올리기로 하면서 민간산업자의 적자를 시민의 돈으로 채워준다는 비판이 나온다. 더구나 요금을 올려 운임수입이 예측치의 50%를 넘어서면 MRG 혜택을 받을 수 있기에 사업자로서는 요금 인상의 필요성이 더욱 커진다. 이와 관련해 국토부 관계자는 “관계기관과 전문가의 논의를 거쳐 민간투자비 및 운영비, 광역버스 기본요금 등을 감안해 인상을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정부가 민영화를 밀어붙이며 명분으로 내세웠던 서비스 향상은 이루어졌을까. 승객들 중 대다수는 신분당선이 민영열차라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이승준(35)씨는 “승객 입장에서는 민영열차와 일반열차가 제공하는 서비스의 차이는 없다”고 말했다. 철도의 산업적 특징 때문이다. 실제로 수도권 전철은 복수기관이 운영하지만 운영기관마다 차별화된 서비스와 가격을 제공하지 않는다. 철도는 앞차 추월이 불가능하다. 선로 위 열차가 유기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네트워크 산업이다. 신분당선도 2호선(강남역)·3호선(양재역)·분당선(정자역)과 연결된다. 환승 승객이 많을수록 연계노선 모두가 이익을 얻는다. 공존할수록 효율적이다. 경쟁을 통해 가격이 조정되는 시장의 효율성이 적용되지 않는다.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소 철도정책 연구위원은 “신분당선은 공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승객을 흡수하면서 별도의 비싼 요금을 도입해 이익을 챙기고 있다”며 “그런데도 신분당선의 적자가 쌓이는 건 공공기관의 비효율을 민간의 효율로 극복할 수 있다는 정부의 주장이 허구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시민 상대로 실험한 정부의 민영열차

철도는 대표적인 사회간접자본(SOC) 산업으로, 요금수입으로 원가 보전이 어려워 정부보조금이 필요하다. 정부보조금 없이는 흑자 달성이 어렵다. 민영화한 지 27년 된 일본 여객철도 2곳(홋카이도·시코쿠)은 민영화 전보다 더 많은 보조금을 받는다. 인구 감소와 산악지대 등 지역적 특성으로 인해 경영 상황이 더 악화된 탓이다. 철도 운영의 흑자 여부는 노선이 지나가는 지역과 정부 보조금 양에 달려 있는 것이다.

적자가 누적된 신분당선도 요금 인상과 정부 지원 없이는 흑자운영을 기대하기 어렵다. 최악의 경우 정부가 운영 적자를 메워주느라 재정에 더 큰 부담을 지게 될 수도 있다. 박수현 민주당 의원은 “시민 부담을 가중하는 신분당선은 정부가 강행하는 철도 민영화의 미래”라며 “철도에 경쟁체제를 도입해 효율성을 올리겠다는 정부의 주장이 허구임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신분당선의 미래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건설사인 주주들의 추가 출자도 쉽지 않다. 민간투자분쟁조정위는 신분당선의 운영 적자 해소를 위해 산업기반신용보증기금을 활용한 운영자금 대출을 건의했다. 하지만 논의가 진척되지 않고 있다. 신분당선 관계자는 “연계노선이 건설되면 승객이 꾸준히 늘어날 것”이라며 “주주들과 함께 적자 해소를 위한 모든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토부 쪽은 “신분당선이 정리된 입장을 건의해오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을 검토해보겠다”고 말했다. 코레일의 부채를 줄이겠다며 수서고속철도주식회사 설립을 강행한 국토부가 적자 노선을 인수해 코레일에 넘길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신분당선으로서는 수요가 늘 때까지 버티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요금 인상을 앞두고 있어 승객이 늘어날지 미지수다.

신분당선 객실에서 만난 전혜원(40)씨는 요금 인상 소식에 “정부가 공공요금을 쉽게 올리려고 공공재를 민영화하는 것 같다”고 황당해하며 “요금이 오르면 나부터 신분당선 이용을 줄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공공재에 대한 책임을 정부가 민간을 통해 개인에게 전가하는 게 올바른가”라고 의문을 표시했다.

퇴근길에 오른 김성진씨를 다시 만났다. 출근길과 달리 표정이 한결 밝다. 판교로 향하는 신분당선도 아침보다는 더 여유로웠다. 운이 좋은 날에는 앉아서 가는 행운을 누리기도 한다. 김씨는 요금이 200원 더 올라도 신분당선을 이용할 계획이다. 단, ‘전제’를 달았다. “요금 인상의 합리적인 근거와 원칙을 투명하게 시민들에게 공개해야 합니다.” 과연 신분당선은 성진씨의 바람대로 시민 친화적인 민영철도가 될 수 있을까.

김은성 객원기자 frame4@hanmail.net

손은민·오다인 인턴기자(경북대 신문방송학과)

1 신분당선(주)에는 이 밖에 대림산업(9.71%), 대우건설(9.71%), 동부건설(4.85%), 코오롱글로벌(4.85%), 태영건설(4.85%), (주)포스코건설(4.85%), 한국인프라이호투융자회사(17.50%), 한국산업은행(10.98%), 농협은행(3.67%)이 주주로 참여했다.

2 신분당선은 지난해 국토교통부에 요금 인상과 최소운영수입보장(MRG) 기준 완화를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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