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2.04 12:15 수정 : 2014.03.02 14:22

<나는 가수다>(MBC) 출연을 계기로 2012년 귀국한 서문탁은 기획사를 차렸다. 3년 안에 ‘국제가수’가 되는 꿈을 키우고 있는 서문탁은 직원이 3명뿐인 회사에 글로벌 마케팅 담당을 둘 정도로 열의가 대단하다. 이미하 락킹엔터테인먼트 대표, 이해인 글로벌 마케팅 담당 직원, 서문탁, 김진영 홍보실장(왼쪽부터).한겨레 박승화
나는 서문탁의 15년 팬이자, 현재는 서문탁 소속사 직원이다. 단언컨대 가수 서문탁을 나보다 더 잘 아는 팬은 지구상에 없다. 서문탁에게 평소 관심이 있든 혹은 그 반대이든, 어쩌다 우연히 이 지면을 펼쳤든 간에 이 글을 끝까지 읽어보길 권한다. 이 글만큼 솔직하게 진짜 서문탁을 이야기한 글은 없을 테니까.

1999년 2월 대학을 졸업했지만, 그해 가을까지 반백수 신분으로 취업 준비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라디오 토익방송을 듣다가 우연히 그녀의 <사랑, 결코 시들지 않는…>이라는 노래를 들었다. 서문탁 1집 앨범 에 수록된 타이틀 곡이자 데뷔곡이다. 그것이 사달이었다. 중성적인 허스키 보이스와 폭발적인 힘, 미친 가창력을 듣자마자 단번에 매료됐다. 돌아보면 결코 시들지 않는 고단한 내 ‘팬질’의 서막을 알리는 곡이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던 가수를 검색해 팬클럽에 가입했고, 콘서트에도 갔다. 하필 그날 그녀의 목소리 상태가 나빴다. 나름 냉정한(?) 기준과 취향을 가진 나로선 실망할 법도 한데, 소리가 잘 나오지 않은 그녀의 노래를 거부감 없이 듣고 있었다. 그때 처음 깨달았다. 노래는 목으로만 하는 게 아니란 걸. 온몸으로, 영혼으로 부르는 노래는 귀가 아니어도 가슴에 와 들린다는 것을.

그날 콘서트 이후 서문탁에 대한 존경심은 나보다 두 살 어린 그녀를 ‘탁님’이라 부르며 추종하는 것으로 표현됐다. 솔직히 그녀가 동생임을 처음 알았을 땐 적잖은 배신감을 느꼈다. 그 목소리와 외모가 애들(!)의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겠는가. 어쨌든 난 충격을 무사히 극복하고 팬클럽 모임, 공개방송, 공연 등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자그마치 6년이나 팬클럽 운영자를, 사생팬(?)으로서의 흑역사를 살았다.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온몸으로 노래하는 그녀의 그 몹쓸 마력 때문이었다.

그녀는 데뷔하자마자 독특한 이름과 음색, 가창력, 복서 이력 등으로 이슈를 몰고 다녔고 꽤 인기를 끌었다. 방송, 대학축제, 큰 무대 등에 자주 등장했고 팬클럽도 하나둘 생겼다. 특히 내가 운영했던 ‘질러탁’은 포털 사이트 다음 팬카페 회원 수 10위 안에 들 정도로 위용을 떨쳤다. 그에 걸맞게 흰 밴을 타고 다니며 매니저와 경호원들의 호위를 받는 그녀는 말 그대로 연예인이었다. 솔직히 그녀를 사적으로 처음 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희미하다. 다만 인상적이었던 건 그녀가 무대에서 보이는 것처럼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터프한 사람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말수가 적고 낯가림이 있는 범생이 여학생에 가까웠다. 데뷔 초기엔 팬들과 어울리는 것을 어려워했지만, 이후에는 곧잘 어울렸다. 그녀와 친분을 쌓으면서 나는 그녀가 예의 바르고, 자신을 꾸미기 위해 거짓말이나 빈말을 하지 않으며, 볼수록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3집 활동 이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일본으로 떠났다. “잠시 쉬러 가겠다. 곧 돌아온다”고 말했지만, 송별파티를 해주던 팬들은 한없이 눈물을 쏟았다. 우리 모두는 알고 있었다. 허상 같은 인기, 세상이 정해놓은 틀에서 벗어나 진짜 자신을 찾으러 떠난 그녀이기에, 어쩌면 예상보다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일본에서 그녀는 라면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꾸렸다. 단돈 100만원만 갖고 일본에 갔다는 사실을 10년이 지난 지난해에야 알았다. 그 시절 틈틈이 외국어 공부를 하고, 기타 가방을 들고 다니며 작은 공연장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 팬들의 편지에 정성스레 답장을 써서 보내주기도 했다. 그곳에서 그녀는 가수 서문탁이 아닌 인간 이수진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사이 나 역시 일상으로 돌아와 생업과 학업에 몰두하며 지냈다. 그러다 2012년 그녀가 미국 유학 3년 만에 돌아와서 선 <나는 가수다> 무대는 나를 제자리로 돌려세웠다. 텔레비전 속 그녀는 영화 <국가대표> OST인 <버터플라이>(Butterfly)를 온 힘을 다해 부르고 주저앉았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이 흘렀다. 그녀가 저런 진정성을 무기로 노래하는 한 나는 이 질긴 인연의 끈을 놓을 수 없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그리고 결심했다. 다시 한번 그녀의 힘이 되어주겠다고.

2014년 현재 나는 서문탁과 일거수일투족을 함께한다. 좋아하는 가수를 자주 볼 수 있어서 좋겠다는 생각 따윈 말길. 그녀는 그저 사장님이다. 평소 그녀가 보여주지 않던 모습을 목격할 때도 있는데, 솔직히 외면하고 싶을 때가 더 많다는 사실을 고백해야겠다. 그 외에도 팬일 때는 몰랐던 그녀의 철두철미한 생활을 본다. 과거 서문탁은 고된 스케줄에 치여 목소리 관리가 안 된 상태로 노래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서문탁은 ‘회춘했다’는 얘기가 들릴 정도로 목을 관리한다. 지난 1월18일, 2시간이 넘는 콘서트 내내 지르고 달렸는데도 목소리가 멀쩡했다. 실용음악과 학생들을 가르치는 그녀가 매주 몇 차례씩 보이스 트레이닝을 받으러 다닌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영어와 일어뿐 아니라 스페인어와 중국어도 틈틈이 공부한다. 요즘엔 언젠가 관객에게 보여줄 요량으로 춤도 배우는데, 기대 이상으로 운동신경이 좋아 감히 다음번 콘서트를 기대하라고 말하고 싶다. 한마디로 그녀의 일상은 노력과 도전의 연속이다.

서문탁은 무모하다. 꿈이 국제가수다. 전세계를 누비며 공연하면서 살고 싶어 한다. 그것도 30대가 끝나기 전, 그러니까 3년 안에 그 꿈을 이룰 거라고 자신한다. 그녀는 또 용감하다. 경험 없는 나를 데려다 홍보 일을 맡겼다. 그뿐인가! 서문탁을 포함해 직원이 4명뿐인 조그만 회사에 글로벌 마케팅 담당 직원이 있으니, 그녀의 담대한 스케일과 스타일을 짐작해보기 바란다.

서문탁은 고집스럽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맘껏 해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다. 그렇다면 그녀가 하고 싶은 음악은 뭘까? 록일까? 십수 년 전 댄스가수 제의를 받았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지 물었다. “하지 않았을까?”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녀에겐 록만 해야 한다는 장르에 대한 고정관념이 없다. 대중과 즐길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싶어 할 뿐이다. 시간을 엿가락처럼 늘여 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코디언처럼 접어 쓰는 사람이 있다. 인생에 후회가 없는 그녀는 후자다. 누구나 한 번쯤 자기가 처한 상황을 자신의 모습과 혼돈한다. 직업이나 사회적 지위, 가진 게 없으면 위축되고 비굴해지는 건 이 때문이다. 서문탁은 상황과 자신을 혼돈하지 않는 드문 사람이다. 사람들이 자신을 보는 모습이 아닌, 자신이 꾸는 꿈에만 집중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항상 세상이 아닌 자신에게 물으며 그 모습으로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렇게 말하면 빠순이의 뻔한 결론이라는 걸 알면서도 용기 있게 말할 수 있다. 서문탁은 멋지다. 내가 만나본 사람 중에 가장 멋진 사람이 아닌가 한다. 학벌이 좋아서, 노래를 잘해서, 예뻐서? 그녀만큼 자신의 모습에 충실한 사람을 본 적이 없어서다. ‘나’로 태어나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살다 가는 것, 이러한 인간의 사명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녀는 아름답다.

글 김진영 락킹엔터테인먼트 홍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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