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1.05 17:17 수정 : 2014.02.04 10:48

지난 연말에도 ‘이웃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는 구세군 자선냄비에 따뜻한 손길들이 이어졌다. 세상이 각박해졌다고 하나, 우리 사회엔 아직 훈훈한 인정이 살아 있다.한겨레 박종식
‘땡~ 땡~.’ 종소리가 거리에 울려퍼진다. 2013년에도 어김없이 구세군 자선냄비가 등장했다. 전국 76개 지역에서 350여 개의 냄비가 온정을 모으기 위해 설치됐다. 우리나라에서는 1928년 자선냄비가 첫선을 보였다. 시민들에게 ‘빨간 냄비’는 연말을 알려주는 일종의 상징물이 되었다. 이렇게 모금한 돈은 기초생활수급대상자, 장애인, 소년·소녀 가장, 노인 등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쓰인다. 냄비를 운영·관리하는 구세군은 인류의 영혼 구원과 성결한 삶을 강조하는 기독교 단체다. 1865년 감리교 목사인 윌리엄 부스에 의해 창립됐다. 나는 구세군 사관(성직자)이다. 2013년에는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에서 빨간 냄비를 지키고 있다.

‘자원봉사자’ 모집 쉽지 않습니다

“자선냄비가 벌써 시작됐더라고요. 구세군 자선냄비가 나온 걸 보니 12월이구나 싶네요. 근데, 구세군 분 맞으시죠?”

얼마 전 외부 일을 마치고 잠시 사무실에 들러야 할 일이 있어 택시를 탔다. 서울 충정로 구세군 빌딩으로 가달라는 말을 전하고 창밖을 내다보는 내게 젊은 택시기사가 망설이는 어투로 자선냄비에 관해 물어오기 시작했다. 아마도 외투 속에 감춰진 남색 군복을 봤더라면 그런 질문 따위는 필요 없었을 것이다. “네, 맞습니다.” 신분을 밝히고 그와 자선냄비에 관한 대화를 잠시 나누었다. 그는 자선냄비 모금과 구세군의 활동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아 보였다. 특히 자선냄비 봉사자들에게 관심을 보였다. 올해는 5만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투입됐다.

“추운데 꼼짝 않고 서서 종을 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텐데, 자선냄비 앞에 선 분들을 보면 참 대단한 것 같아요. 다양한 연령의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모으고, 또 어떻게 참여하나요? 따로 고용하는 건가요?”

“대부분은 구세군교회 교인들입니다. 대체로 11월 중에 자원봉사자를 공개적으로 모집하지요. 그런데 요즘은 중·고·대학생들이 자원봉사를 신청하는 경우가 많아요. 학점과 봉사점수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자원봉사 신청자가 많으니 과거보다 봉사자를 모집하는 일이 훨씬 수월해졌다고 볼 수 있지요.”

이렇게 대답하고 나니, 내가 지역의 구세군교회에서 목회 활동을 하던 시절 자원봉사자 모집을 위해 교인들을 독려하고, 그럼에도 봉사자가 없는 날엔 아내와 단둘이서 정오부터 저녁 8시까지 온종일 자선냄비 봉사를 하던 때가 생각났다. 때로는 어린 자녀들을 집에 두고 아내와 둘이서 군복에 군모를 갖춰 입고 맞교대로 자선냄비 봉사를 하기도 했다.

지금은 인터넷이 있어 수월하지만, 1980년대 컴퓨터가 보편화되지 않던 시절에는 봉사자를 구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주로 자선냄비가 등장하기 보름 전부터 교회에 자선냄비 장소, 날짜, 2시간 간격의 봉사시간을 적은 벽보를 붙여놓고 신도 중에서 자원봉사자를 모집했다. 교인들 중에는 수차례 봉사에 참여하는 분들도 있지만, 더러는 담임사관(담임목사)인 내 눈을 슬슬 피하며 눈치를 보다 겨우 한 번 정도 마지못해 이름을 적어넣는 분도 있었다. 보통 20일 남짓 자선냄비 모금을 한다고 할 때, 자선냄비 한 통당 하루에 필요한 자원봉사자 수는 10~14명(2인 1조) 정도다. 전체 자선냄비 모금 기간에 필요한 봉사자 수는 200~280명인 셈이다. 그나마도 한 교회에서 자선냄비 두 통을 운영할 경우엔 필요 인력이 두 배로 늘어난다.

요즘은 꼭 구세군 교인이 아니어도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 봉사에 참여해주는 분이 많아 감사할 따름이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곳에서 자선냄비 모금 봉사자를 모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형편이다. 실제 지난해 구세군 사관인 막내딸이 갓 돌 지난 손녀를 20일 동안 시댁에 맡겨두고 남편과 자선냄비 두 통을 운영했다는 소식을 들어야 했다. “자원봉사자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힘들었다”고 딸은 말했다. 어쨌든 해마다 연말 범국민적 모금 활동을 벌이는 자선냄비에 자원봉사로 참여할 수 있는 길은 언제나 열려 있다. 더 많은 이들이 자원봉사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기를 바란다.

작은 손길 하나하나가 감동의 물결

구세군 자선냄비엔 해마다 훈훈한 인정이 넘쳐난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넣어주는 동전, 등이 굽은 할머니가 속주머니에서 꺼내주시는 꼬깃꼬깃한 1천원짜리 지폐 등을 볼 때면 감동이 넘쳐흐른다. 수년째 모은 100장의 헌혈증서, 채권, 수천만원의 현금 다발이 자선냄비에서 발견되기도 하는데, 이웃을 향한 따뜻한 마음과 인정이 아직 살아 있다는 방증이다. 회사에서 직원들이 성금을 모아 전달하는 경우도 있다. 서울에선 명동·종로·을지로 등 사람이 많이 오가는 곳에서 성금이 많은 편이다.

내가 평생 잊지 못하는 자선냄비 기부의 손길이 하나 있다. 지금도 그날 내게 ‘온전한 나눔’과 ‘삶의 희망’이 무엇인지 알려준 그분을 만난 것에 감사한다. 그날도 나는 홀로 자선냄비 앞에서 종을 흔들고 있었다. 해가 지고 곧 자선냄비를 정리해야 할 시간이 되어 내 몸은 몹시 지쳐 있었다. 나는 손목시계를 확인한 뒤 10분 후에 자선냄비를 정리하기로 하고 마무리 멘트를 고민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자선냄비 인근에서 구걸을 하던 이가 다가왔다. ‘혹시 나에게 무엇을 도와달라고 하는 것일까?’ 생각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곧장 자선냄비 앞에 서서 하루 종일 자신이 구걸한 돈을 털어 넣었다. 나는 너무 놀랍고 감사해서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몰랐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하루 종일 번 돈을 이렇게 전부 자선냄비에 넣으시면… 저녁 드실 돈은 있으세요?” 당장 저녁 끼니를 해결할 수 있을지부터 염려되었다. 그런데 그의 대답은 아주 간단했다.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저는 내일 또 벌면 됩니다.” 이 말만 남기고 그는 요즘 많이 쓰는 표현으로 시크하게 돌아서 가버렸다. 나는 잠시 멍하니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가 넣은 돈의 액수가 얼마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때 내게 중요했던 것은 그가 돈 많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과 그가 넣은 돈이 ‘그가 가진 전부’라는 것이었다. 그는 무엇을 위해, 어떤 생각으로 이렇게 ‘엄청난 기부’를 한 것일까? 그는 ‘나보다 더 어려운 이들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상식적으로 보면, 그보다 더 어려운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을 텐데, 그는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들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땡! 땡!’은 호소의 메시지

그 외에도 수많은 이들의 손길이 기억난다. 이북이 고향인 한 노부부가 첫해에는 1억원을, 이듬해에는 2억원을 기부하며 “오늘은 두 발 뻗고 편히 자겠네요” 했던 말이 기억난다. 또 부모님이 준 동전과 지폐를 단풍잎만 한 손으로 쥐고 와 힘겹게 자선냄비 입구에 집어넣던 아이들, 남루한 옷차림을 하고 꽤 큰 액수를 기부하던 손길, 택시 운전을 하며 지나다가 나를 불러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1천원짜리 뭉치를 손에 쥐어주며 대신 자선냄비에 넣어달라고 부탁하던 기사분, 급히 가던 길을 돌아와 기부하고 뛰어가던 회사원, 저 멀리서부터 기부할 돈을 준비하며 따뜻한 미소로 다가와 “수고하십니다” 인사와 함께 기분 좋은 나눔을 실천하는 분들은 자선냄비 모금 봉사를 해오고 있는 내게 무한한 감동과 기쁨의 원천이다.

“어려운 이웃을 도웁시다. 사랑의 종소리가 울려퍼지는 이곳은 구세군 자선냄비입니다. 여러분의 작은 정성이 모여 힘들고 지친 우리 이웃들에게 큰 힘과 소망이 되고 있습니다. 아직도 우리 주위에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들이 있습니다. 그냥 지나치지 마시고 여러분의 작은 정성으로 우리 이웃에게 힘과 용기를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을 한다고 하면 많은 이들이 ‘땡땡’ 종을 치는 것만 연상한다. 그러나 구세군 자선냄비 종소리는 자선냄비의 위치를 알리는 역할만 하는 것이고, 더 중요한 것은 ‘호소의 메시지’다. 이 메시지에는 내 어려움을 도와달라는 호소나 구세군 단체에 기부하라는 호소가 아닌, ‘어려운 우리 이웃들’을 돕는 데 동참해달라는 호소만 담겨 있다. 차가운 길에서 이런 멘트를 하다보면 만감이 교차한다.

첫째는 아무도 듣지 않는 ‘소리’를 내는 것에서 오는 소외감이다. 아무리 마이크에 대고 큰 소리로 외친다 한들 지나가는 그 누가 ‘이 메시지가 나에게 하는 소리구나’ 생각하며 듣겠는가? 우리의 목소리는 일방적인 외침에 불과할 때가 더 많고, 그래서 아무도 귀담아듣지 않는 멘트를 하며 부끄러움과 민망함을 느낄 때가 있다. 그뿐인가. 어떤 시민들은 우리의 목소리와 종소리를 소음으로 여기고 항의하기도 한다. 인접한 상점이나 노점상 주인들이 이 경우인데, 이들의 짜증 섞인 항의는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한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멘트를 하며 자선냄비 모금을 하는 곳이 부쩍 줄어들었다. 특히 실내에 위치한 자선냄비 모금 현장에서는 멘트뿐 아니라 종소리도 작게, 그것도 사람이 오갈 때만 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이런 경우엔 ‘내가 하는 자선냄비 모금 봉사는 대중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생각에 잠길 수밖에 없다.

둘째는 자선냄비 모금을 오해하는 이들이 내뱉는 말을 들을 때 느끼는 억울함과 안타까움이다. 자선냄비는 구세군단체를 위해 기금을 모으는 것이 아니다. 자선냄비 모금액과 사용 내역은 신문지면을 통해 보도될 뿐 아니라 안전행정부에도 보고된다. 또 각각의 자선냄비 모금 현장에서 대중에게 책갈피 형태로 사용 내역을 전달하고 있다. 그럼에도 자선냄비 모금 봉사를 하는 동안 부적절한 용어를 사용하며 구세군단체나 자선냄비를 비난하는 말을 종종 듣는다. 이처럼 어려운 이웃을 위한 모금 활동 캠페인인 구세군 자선냄비가 오히려 오해와 잘못된 인식 아래 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한 풍경같이 느껴질 때가 간혹 있다. 자선냄비 모금을 하며 느끼는 감정이 감사와 기쁨, 감동과 감격의 순간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봉사하는 사람만이 아는 재미

언젠가 어느 기자분이 나와 함께 있던 젊은 청년 자원봉사자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자선냄비 모금 봉사를 하면서 보통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십니까? 2시간 정도 다른 누구와도 아무 말 하지 않고 혼자서 종을 치고 가만히 서 있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그 청년의 대답은 꾸밈이 없었다. “몇 가지 테스트를 하면서 시간을 보냅니다. 가장 먼저 제가 자선냄비 모금을 한 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추정해서 맞히는 겁니다. 어떤 때는 30분 단위로 시간을 딱딱 맞힐 때가 있고요. 2시간 중에 마지막 ‘마의 30분’은 참으로 넘기 힘든 고비예요. 그동안 잘 가던 1시간30분보다 더 길게 느껴지는 30분이거든요. 다음으로는 제가 봉사하는 동안 얼마나 모금이 되었는지 액수를 가늠해보는 것입니다. 대충 지폐만 눈으로 세보는데, 5천원이나 1만원권 지폐를 넣고 가는 분들이 계시면 그렇게 신날 수가 없어요. 모금액이 얼마이든 간에 제 돈이 되는 것도 아닌데, 많으면 많을수록 힘도 안 들고 봉사하는 내내 신바람이 나더라고요.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봉사 시간 5분이나 10분을 남겨놓고 스스로에게 미션을 주는 겁니다. ‘이제부터 1만원 지폐 석 장이 들어가면 다음 봉사자에게 넘기고 집에 가야지’라고 룰을 정하는 겁니다. 그러다 이 미션을 완수하게 되면 뭔가 큰일을 이뤄낸 듯한 성취감을 느끼죠. 끝내 미션을 완수하지 못하면 마치 시험을 망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지요. 뭐 이런 갖가지 생각을 하다보면, 2시간이 훌쩍 지날 정도로 지루하지 않아요. 물론 둘이서 봉사를 하게 되면 이런 생각을 공유할 수 있으니 더 재미있겠죠?”

어쩌면 이 청년의 대답이 이웃 사랑이니 나눔이니 하는 주제와 동떨어진 내용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자선냄비 모금 봉사를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 짐작된다.

얼마 전에 겪은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할까 한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자선냄비 앞에 있는데, 단정하게 차려입은 한 중년 부부가 다가왔다. 두 사람은 부드러운 미소로 인사를 하고 나서, 아내가 준비한 것 같은 지폐 한 장을 자선냄비에 넣었다. 아뿔싸! 5만원권 지폐였다. 봉사를 하고 있던 나와 동료는 서로를 바라보며 적잖이 놀란 상태에서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때까지도 아내는 우리에게 부드러운 미소로 “수고하라”는 인사를 전하고 자리를 뜨려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남편이 자선냄비 구멍으로 보이는 지폐를 다시 한번 확인한 뒤 아내에게 물었다.

“5만원 넣었어?”

아내는 조금은 천진하게 눈을 뜨며 “네?” 하고 묻더니 자신의 손에 들린 5천원권 지폐를 쳐다보며 화들짝 놀랐다.

“5천원 넣으려고 준비했는데, 같이 들고 있던 5만원을 넣었네요.” 순간 당황한 표정이었지만, 아내는 “그래도 자선냄비에 넣은 것이니 괜찮다”며 오히려 실수를 재미있어하는 눈치였다. 아마도 그 부부가 이런 실수를 재미있게 웃어넘길 수 있었던 것은 기부가 자신의 공명심이나 만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나눔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려는 마음에서 비롯됐기 때문일 것이다. 종종 이렇게 실수나 착오로 목돈(?)을 기부하는 이들을 만날 수 있다. 이럴 땐 훈훈한 인정에 웃음이 절로 난다.

구세군 자선냄비에 대한 많은 수식어가 있지만, 잘 어울리는 것은 ‘이웃 사랑과 나눔’이다. 이것이 바로 구세군 자선냄비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자선냄비의 수많은 풍경 속에는 다양한 감정들이 담겨 있다. 또한 셀 수 없는 일화가 존재하지만 사실 이것들도 자선냄비의 진정한 의미를 고스란히 전해주지는 못한다. 내가 40년째 구세군 사관으로 겪은 경험이 ‘자선냄비’ 전체로 대변될 수는 없다. 자선냄비는 구세군 사역과 나의 사관 사역의 일부에 지나지 않지만, 자선냄비가 가진 ‘이웃 사랑과 나눔’이라는 의미는 매우 중요한 하나의 축임이 분명하다.

글 임영식 구세군 사관(부정령, 인사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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