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1.05 16:47 수정 : 2014.02.04 10:47

이춘희씨는 주현우씨에 이어 두 번째로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를 썼다. 그는 “현우씨의 대자보를 보고, ‘안녕하다’ 믿었지만 실제 ‘안녕하지 못한’ 내 자신의 현실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춘희.

갸름하고 예쁘장한 여성을 떠올렸다. 영화 <춘희>의 ‘동백 아가씨’, 뮤지컬 <라트라비아타>의 여주인공으로 각인된 이미지 때문이다. 예상은 빗나갔다. 남자였고, 안경을 쓰고 있었다. 키도 크고, 덩치도 제법 있었다.

무의식이 의식을 지배할 때가 있다. ‘춘희’라는 이름만 듣고 ‘여성’일 거라고 단정한 것도 그렇다.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안녕들 하십니까’ 열풍은 무의식에 지배당했던 현실, 그 억압과 분노를 자각한 시민들의 의식적 행동일지도 모른다. 경제적 풍요와 자유민주주의 속에서 당연하게 ‘안녕하다’고 믿었던 무의식이, 2013년 12월10일 서울 안암동 고려대 정경대 게시판에 붙은 주현우씨 대자보를 계기로 깨졌다. 대중은 이제 ‘안녕하지 못함’을 의식한다.

우리는 ‘처음’ 혹은 ‘최초’ 타이틀을 경외한다. 그러나 “안녕들 하십니까?”로 시작되는 첫 번째 대자보에 대한 응답들이 폭발적으로 나올 수 있었던 건 최초의 응답자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두 번째 대자보 등장으로 연쇄반응이 생겼고, 그 분위기가 대학가를 넘어 학교, 직장, 거리까지 확산됐을 것이다.

첫 번째 발화자인 주현우씨와 더불어 두 번째 대자보는 누가 붙였고, 왜 나섰을까. 그가 없었다면 주씨의 첫 대자보는 진부한 ‘안부 인사’로 묻힐 수도 있었다. 2013년 12월을 뜨겁게 달군 일련의 ‘안녕 대자보’ 현상 이면에 숨어 있는 인물이 이춘희(25·고려대 정치외교 3)씨다. 소리 없는 ‘외침’이 거대한 ‘메아리’가 되고, 호수에 던져진 작은 돌이 수많은 포말을 만들어내는 건 춘희씨를 비롯한 대중의 반응이었다. 12월27일까지 전국 대학과 고등학교 등에는 600여 개의 ‘안녕들’ 대자보가 걸려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최초의 응답자 춘희씨를 만났다. 그가 그 이름을 갖게 된 이유부터 물었다. 유명 정치인의 이름을 손주들 이름 속에 넣고 싶어 했던 할아버지의 소신 때문이란다. “권력을 동경하셨죠. 돌림자 ‘희’에 박정희·전두환·노태우를 따 정희, 두희, 태희라고 지었대요. 제 이름은 ‘춘’자가 들어간 정치인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더군요. 공안검사로 이름을 날린 끝에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을 역임했고, 현 정부 청와대 비서실장인 분의 이름에서 따왔는지도 모르겠어요.”

# D-1, 주현우의 대자보를 가슴으로 읽다

“한눈에 들어오는 대자보는 아니었어요. 당시 정경대 게시판에 붙어 있던 다른 대자보들과 차이점이 분명하게 보이지 않았거든요. 프린트 형식과 손글씨의 차이 정도였을까.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요.”

춘희씨가 현우씨 대자보를 접했을 때의 첫 느낌이다. 그가 그 대자보를 본 건 12월10일 정오 무렵이었다. 여느 학생들처럼, 그도 현우씨의 대자보를 무심히 지나쳤다. “종강파티, 동문회, 동아리 모집 등 다양한 내용의 대자보가 붙는 공간이잖아요. 자기한테 와닿는 정보가 아니면 잊혀집니다. 현우씨 대자보도 그런 것들 중 하나일 거라고 다들 생각했던 것 같아요.”

현우씨가 대자보를 붙일 거라는 건 미리 알고 있었다.

“페이스북 친구거든요. 현우씨가 자기 페이스북에 올려놓은 원고 초고를 이미 봤어요. 저와 현우씨는 단과대 세미나 모임 ‘사근사근’을 하면서 안면을 텄어요. 현우씨는 한다면 하는 사람이에요. 이렇게까지 반향이 클 줄은 몰랐어요.”

손으로 정성껏 썼을 텐데 그냥 지나치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다. 대자보를 다시 올려다봤다. “안녕들 하십니까~”로 시작되는 문장이 시야에 들어왔다. 기존 대자보 문체와 다르지 않았던 페이스북 초고와 달리 경어체로 쓴 문답형 글이었다. “나한테 묻고 있는 것 같아 먹먹했어요.” 한 글자 한 글자 의미를 새겨 읽기 시작했다. 현우씨 대자보는 제안이나 선동형 문장이 아니었다. 존댓말로 철도 파업, 경남 밀양, 비정규직 등의 이야기를 통해 ‘하 수상한’ 우리 사회를 잔잔하게 곱씹게 해주었다. 춘희씨는 “학점과 취업 준비 등에 지쳐 사회에 무관심한 채 바쁜 일상을 살았던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며 “안녕하다고 믿었지만, 실제로는 안녕하지 못한 나날을 보내고 있음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현우씨가 제 앞에서 묻고 있는 것 같았어요. ‘춘희야, 안녕하니?’ 나도 모르게 ‘안녕 못하다’는 말이 머릿속에서 튀어나오더군요. 특히 ‘하루 만의 파업으로 수천 명의 노동자가 직위해제됐다’는 구절에서 울컥했어요.”

지난 여름방학 때 ‘내일로’1 티켓을 끊어 기차를 타고 전국 각지를 여행했던 기억이 오버랩됐다. 광주 송정~밀양 삼랑진을 오가는 경전선을 탔을 때가 가장 생생하다. “나이 지긋한 노인을 제외하고 승객이 거의 없었어요. 한마디로 적자 노선이죠. 정부안대로 민영화를 한다면 요금이 대폭 오를 텐데, 저분들이 기차를 탈 수 있을까? 적자 노선인 경전선이 계속 운행될 수 있을까? 지금처럼 기차를 타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는 일이 가능할까? 갖가지 생각이 들었어요. 왜 철도를 자본의 논리가 아니라 공공재로 봐야 하는지 이해되더군요. 직위해제를 당한 철도노조 노동자가 안녕하지 못하겠구나. 아니, 우리 사회는 누군가의 노동으로 살아가는데, 노동자가 안녕하지 못한 세상이구나 싶었어요. 저 역시 조만간 노동자가 될 텐데, 저도 안녕할 수 없는 노릇이고. 결론은 나도 내 이야기를 하면서 ‘안녕하지 못하다’고, 현우씨의 물음에 답을 줘야 한다는 거였어요.”

이쯤 되면 철도 오타쿠 아닌가.

“하하, 그건 아닙니다.”

# “안녕하다고 믿었는데… 착각이었어요”

그는 여태껏 자신이 ‘안녕하지 않다’는 의심을 해본 적이 없다. 외고-고려대로 이어지는 엘리트 코스를 밟은 데다, 취업난은 아직 실감하지 못한 상태였다. 대자보를 읽는 내내, ‘브로콜리 너마저’의 <졸업>이란 노래가 떠올랐다. “졸업하고 취직하는 것을 ‘팔려간다’고 표현하는데, 맞는 말이었다”며 “취직한다고 해서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고, 그건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문제다”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대자보를 쓴다면 이 노래의 가사를 인용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했다. 요즘 <졸업>은 ‘안녕들’ 집회의 주제곡처럼 불린다.

춘희씨는 외모부터 말투까지 평범한 대학생이다. 실제 그는 운동권도 아니고, 그동안 사회문제와 관련해 적극적으로 나서 행동해온 인물도 아니었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문제로 촛불집회가 한창일 때조차 재수하던 시절이라 참여한 적이 없다. 술자리에서도 토론이나 논쟁을 벌이기보다 조용히 대화를 듣는 편이다. 그런 그가 대자보를 쓴 것이다.

결심이 결행되기까지, 고민은 없었을까. 그는 “화제가 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며 “대자보를 쓸 생각을 하던 그날 밤 철도노조 노동자 1500여 명이 추가로 직위해제된 뉴스를 접한 뒤에 마음을 굳혔다”고 말했다.

# D-day, 준희씨, 두 번째 ‘안녕’ 대자보를 붙이다

12월11일, 춘희씨가 대자보를 붙인 날이다. 이때만 해도 ‘안녕들’ 대자보는 주현우씨가 쓴 것 하나뿐이었다. 이날 평소보다 일찍 학교에 간 그는 오전 수업 중에 대자보 내용을 구상했다. 떠오르는 단어와 문구들을 조합해 문장을 만들어 휴대전화에 기록하기 시작했다. 밤새 생각을 다듬은 덕인지, 20분밖에 안 걸렸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그가 몸담고 있는 교지 편집실로 향했다. 그는 군에서 제대한 뒤 2012년 11월 계간지 <고대문화>를 만드는 동아리에 가입한 터였다. 복학생이면 취직 준비도 벅찰 텐데….

“그사이 학내 분위기가 확 달라져 있더라고요. 학내 문제나 학생 자치 등에 대해 말하고 글을 쓰는 문화가 거의 사라졌어요. 계속 공부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 언론계 쪽에도 관심이 있고, 제 주변에 교지 편집위원회에서 일하는 친구가 있어서 한 번쯤 해보고 싶었어요. 지금 수습위원인데, 선택하기 잘한 것 같아요.”

전지 위에 정성스레 손으로 글씨를 써내려갔다. “아니요. 안녕 못합니다”라는 문장을 첫머리에 올리고, 그 이유를 풀어썼다. 대자보 밑에 서명처럼 ‘12월11일, 정치외교 09 춘희’라고 실명을 박았다. 주현우씨의 대자보에 이어 고려대 정경대 게시판에 붙은 두 번째 손글씨 대자보다. 실명을 쓴 이유는 뭘까. “기자가 자기 기사에 바이라인을 박듯, 결국 글이라는 것도 자기 이름을 내걸고 말할 때 더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했단다.

오후 1시께 정경대 게시판에 대자보를 붙였다. 몇몇 학생이 그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봤다. 학우들의 분위기가 서서히 달라지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실제 대자보에 관심을 보이는 학우들, 잠시 멈춰 서서 읽는 학우들의 수가 늘고 있었다. ‘안녕’ 흐름에 물꼬가 트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의 대자보를 보고 친구들이 연락해오기도 했다. “네 뜻에 공감하며, 용기를 내어 대자보를 붙이겠다”는 의사를 밝히는 이들이 나왔다. “제 주변에서만 네댓 명이 ‘안녕들’ 대자보에 동참했어요.”

게시판의 분위기는 급반전됐다. 이튿날부터 본격적으로 대자보가 내걸렸다. 그의 첫 ‘응답’에 자극받고 용기를 얻은 이들이 행동에 나선 것이다. “12월12일부터는 붙일 공간이 없을 정도로 빼곡하게 ‘안녕들’ 대자보가 붙었습니다.” 기성세대는 ‘88만원 세대’로 대변되는 20대가 취업과 스펙에만 매달리고, 이기적일뿐더러 사회문제에 무관심하다고 여겨왔다. 오판이었다. 이들은 지금껏 2008년 촛불집회 때처럼 ‘발화 순간’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적어도 고려대에서는 주현우-이춘희 대자보가 기름을 부은 게 분명하다. 학생들에게 잠재돼 있던 ‘안녕하다’는 무의식을, ‘안녕하지 않다’는 의식으로 변모시켰다.

# 12월22일, “실명으로 인터뷰해야 하나요?”

춘희씨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그는 머뭇거렸다. “실명으로 나가야 하나요?” “사진을 꼭 찍어야 하나요?” 여러 번 물었다. “본인이 원하면 가명도 가능하고, 사진을 찍지 않아도 된다”고 그를 설득했다. “저 말고도 많은 분들이 참여하고 계시고, 훌륭하게 활동하는 분이 많은데 제가 굳이….” (그는 결국 자신의 이름과 얼굴을 공개하기로 했다.)

“인터뷰할 정도로 제가 한 일이 대단하다고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지금은 이 상황이 제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서 겁이 나기도 합니다. 지금 판에서는 제가 할 수 없는 일들도 존재하고, 또 하지 못하는 일도 있을 수밖에 없는데 말이지요. 이렇게 주목을 받는 것도 부담스럽습니다. 대자보만 썼을 뿐 이 판을 키운 건 현우씨, 그리고 그와 함께하는 수많은 분들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또 지금 제 상황이 적극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사정이 있었던 것일까. 그는 인터뷰 자리에서 그 이유를 털어놓았다. 대자보를 쓴 것을 부모님에게 들켰고, 인터뷰 전날까지 ‘외출 금지’ 처분을 받았다고 한다. 12월13일, 그가 고려대에서 선전전하는 사진을 인터넷 매체가 실었는데, 그 사진을 부모님이 본 것이다. 다음날 ‘안녕하지 못한’ 고려대생들의 모임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어찌됐든 ‘안녕하십니까’는 성패를 떠나 제가 쓴 대자보가 각자의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기폭제가 된 것 같긴 해요. 저처럼 평범한 사람이 이런 색다른 경험을 하고, 또 살아가는 동안 2013년 12월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으면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언제 어디서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일상을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요.”

인터뷰 당일, 민주노총 사무실이 18년 만에 경찰에 의해 점거됐다. 이는 철도노조와 협상이나 타협은 없을뿐더러 시민들과 소통하지 않겠다는 박근혜 정부의 의지 표현이나 다름없었다. 앞으로 더 빈번하게 국가폭력 사태가 벌어질 개연성이 농후하다. “춘희씨, 어떤 생각이 드셨어요?” 질문을 던졌다. 그는 “오싹했다”고 했다. “‘국가는 합법적으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집단’이라고 한 막스 베버의 말이 떠올랐어요. 다수가 침묵하면 그 폭력의 빈도와 강도가 세질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안녕들’ 대자보 열풍의 중심에 섰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제가 최초의 응답자이긴 하지만 그 판을 키운 건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입니다. 물이 끓기 직전 상황에서 제가 끓는 물 한 방울을 더 넣었을 뿐이에요. 철도 민영화 반대, 박근혜 퇴진까지 가기는 힘들겠지만,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말할 수 있고, 자기 정치를 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일련의 현상들이 의미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1 ‘내일로’는 코레일이 판매하는 패스형 티켓이다.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