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12.02 13:49 수정 : 2013.12.06 15:09

그룹 연수부터 하계수련대회로 이어지는 삼성의 신입사원 교육은 오랜 전통과 노하우를 갖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김창민씨는 “일련의 교육을 마치면 뼛속까지 ‘파란 물’이 들게 된다”고 말했다.한겨레 이종근
“이유는 간단해요. 나의 미래를 보장해주지 못할 거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지난해 김창민(34·가명)씨는 4년간 꼬리표처럼 달고 다니던 ‘파란색 딱지’를 뗐다. 현재 그는 자발적 백수가 되어 새 직업을 찾고 있다. 새 직업의 조건은 평생의 생계 수단일 뿐 아니라 만족과 행복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그의 직업 찾기는 해를 넘겨 2년째 계속되고 있다.

지난 11월15일 그를 만났을 때, 첫 느낌은 ‘평온하다’는 것이었다. 실직자로서의 불안감이나 조급함 같은 건 없었다. “제 선택을 후회한 적이 없고, 또 지금 행복합니다.”

그가 잘 다니던 삼성전자를 그만둔다고 했을 때 가족과 동료, 친구들은 하나같이 ‘미친 거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당연하다는 듯이 만류했다. 삼성전자는 언제부턴가 대학생들의 취업선호도에서 부동의 1위 기업이다. 물론 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입사 이후로도 한동안은 그랬다.

“신입사원 교육을 받으면서부터 뼛속까지 ‘파란 물’이 들었습니다.”

올해 삼성직무적성검사(SSAT) 시험에는10만여 명이 몰렸다. 그러나 그 많은 젊은이들이 삼성 문 앞에서 동시에 머리를 들이밀 때, 그는 홀연히 안에서 밖으로 빠져나왔다.

“제 인생에 대한 성찰 없이 직장을 선택했어요. 대부분의 취업준비생처럼 당장의 연봉과 회사 규모만 중시했던 거죠. 그게 문제였어요. 삼성에 계속 다니면서 누릴 수 있는 프리미엄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10~20년 뒤에도 삼성이 제게 그런 안락하고 풍요로운 삶을 보장할까요?”

그는 퇴사 전까지 연구원이었다. 국내 명문 공대에서 석사를 마쳤다. 처음부터 삼성·현대·SK·GS 등 대기업 취업만 염두에 뒀다. 선배들이 대부분 대기업에 취직했기에 자신도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중에서도 단연 삼성이었다. “연봉과 네임 밸류 면에서 월등하니까요. 청년 구직난 시대라지만 워낙 취업이 잘되는 학교여서 공기업 취업은 다들 고려하지 않았어요. 준비하는 이들이 채 10%도 안 됐어요.”

부모님이 더 반긴 ‘삼성전자’ 입사

그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기’보다 어렵다는, 삼성그룹 내에서도 인기가 높은 삼성전자에 그가 입사한 건 2008년이다. 주변 지인들에게 한순간에 부러움의 대상이 됐다.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 부모님이 더 반겼다. 기성세대에게 ‘삼성’은 젊은 세대가 생각하는 삼성 그 이상인 것 같았다. 그는 “어른들에게 삼성은 우리나라도 먹여살리는 회사라는 인식이 있다”며 “계열사 중에서도 삼성전자라고 하니 더욱 자랑스러워하셨다”고 말했다.

“한번은 어머님께 직원 보급가로 김치냉장고를 사드렸어요. 김치냉장고를 설치하러 온 기사분이 ‘아드님 좋은 데 다니시네요. 좋으시겠어요’하고 말했대요. 어머니는 ‘그렇다’고 얘기할 때 정말 우쭐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뿐인가요. 결혼을 앞두고 처가에 인사하러 갔을 때 장인·장모님께도 후한 점수를 받았죠.”

직장생활은 만족스러웠다. 삼성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삼성맨’으로서의 삶은 풍요롭고 안락했다. 연봉은 3500만~4천만원 수준으로 다른 대기업이나 금융회사 등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밥벌이 수단으로 쏠쏠했다. 삼성그룹 내에서도 실적이 좋은 삼성전자는 연말 성과급이 후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이 금액까지 포함하면 신입사원인 그의 연봉은 7천만원에 육박했다. “친구들을 보면 서울 강남의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10만원이 훌쩍 넘는 뮤지컬을 보고, 스쿠버다이빙 같은 고급 취미 생활을 하더군요. 저도 씀씀이가 커지긴 했지만, 저축할 수 있을 정도로 벌었어요.”

‘그래, 이런 삶을 살려고 삼성에 온 거야!’

명함을 내밀 때마다 어깨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스스로 생각해도 삼성맨이 된 자신이 기특하고 대단해 보였다. 이제 그에게 더 이상 새로운 도전, 혹은 위기 같은 건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세상을 다 가졌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40대에 대부분 퇴사… 10년 뒤 암담한 미래

그가 달라지기 시작한 건 입사 3년째 되는 2011년 무렵이다. 그날은 우연처럼 찾아와 ‘필연’처럼 뇌리에 깊은 울림을 남겼다. 2년 전 삼성전자는 일본의 한 중소기업을 인수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 쪽 관계자들이 수시로 삼성을 방문했다. 삼성 쪽은 고위 임원을 비롯해 모두 30~40대 젊은 층이었는데, 일본 쪽에서는 나이가 지긋한 평사원도 있었다. 삼성전자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일본 엔지니어가 우리 팀 연장자인 40대 상무보다 나이가 훨씬 많았어요. 우리 조직에서는 입사 7~9년차, 35~40살에 책임엔지니어가 되면 기술 업무보다 관리 업무를 맡고 그러다가 부장이 됩니다. 그때가 50살 안팎, 한창 업무에 경륜이 쌓여 효율이 높을 때죠. 그런데 삼성에서는 상무, 즉 임원이 되지 않으면 퇴사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어요. 그 뒤의 제 생계와 인생에 대해 삼성뿐 아니라 아무도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죠.”

그가 근무할 때 삼성전자의 직급 체계는 사원-선임연구원(대리)-책임연구원(과장)-수석연구원(부장) 순이었다. 책임연구원이 되는 데 걸리는 기간은 대개 대졸 사원 기준 9년(석사 기준 7년) 남짓이다. 만약 석사 출신인 그가 올해까지 다녔다고 가정하면 내년쯤 과장급 책임연구원이 된다. 이때부터는 사실상 실무인 연구직에서 배제되고 관리 업무를 전담하게 된다. 그런데 그가 속한 팀의 팀원 200여 명 중에서 상무는 단 1명뿐이었다. 치열한 경쟁을 통해 ‘선택’되지 않으면 낙오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그 상무님 또래 혹은 동기들이 어디에서 일하고 있나 찾아봤는데 흔적조차 없었다”며 “상무로 진급하지 않으면 자발적으로라도 회사를 뜨는 게 삼성 문화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제 부서의 경우 수석엔지니어의 나이가 저보다 10살 남짓 많았으니까, 고작 40대였죠. 만약 그분이 임원 배지를 달지 못하면 50살도 채 되지 않아 그만둬야 할 거예요. 선배들을 보면서 10년 뒤 제 미래와 인생을 고민한 거죠.”

출퇴근 맘대로 ‘S급’과 나 같은 육두품들

신입사원 교육 때 삼성이 강조한 점은 ‘이곳에서 너희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였다. 하지만 그걸 이룰 수 있는 시간은 절대적으로 짧았다. ‘모두는커녕 그 어떤 것도 이루지 못하고 떠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현실이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일본 기업의 나이 든 엔지니어와의 만남을 통해 ‘사오정’ ‘오륙도’가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님을 깨닫게 됐다. 3년이라는 짧은 회사 생활을 돌이켜봤다. 문제 사원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선택받은 인재’도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공채 사원 중 한 명일 뿐이었다.

“삼성에는 우수 인력을 특별 관리하는 시스템이 있어요. 암암리에 ‘S급 직원’ 리스트가 떠돌거든요. 유능한 박사급이거나 외국의 유명 대학을 나와 그룹에서 직접 찍어온 사람인 경우가 이에 속하죠. 출퇴근 등 근무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높은 인사고과나 연봉도 수년간 보장되고요. 지역 전문가라고 해서 1년간 외국을 경험할 기회가 주어지기도 하고, 성과가 좋은 부서에 배치되지요. 반면 저는 공채 신입사원 다수가 그렇듯, 임원 승진에서 탈락하면 떠나야 하는 평범한 한 명의 직원일 뿐이었어요.”

삼성에서 실직, 즉 해고와 퇴사의 불안과 공포가 상존한다는 걸 모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공포는 ‘삼성’이라서 더 크게 다가왔다.

“삼성에는 노조가 없잖아요. 조기 퇴직의 문제점이나 부당성, 늙어서도 현업에서 일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힐 통로가 전혀 없는 거죠. 그렇다고 평소 회사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는 분위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요. 답답한 사람이 알아서 나가는, 그런 분위기였으니까 더욱 그렇죠. 사내 인트라넷이 있지만, 항상 감시받고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아무도 그곳에 익명으로라도 건의 사항이나 불만 글을 올릴 엄두를 내지 못했고요.”

조기 퇴직의 불안감은 삼성뿐 아니라 대기업에 다니는 화이트칼라 직장인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감정이다. 그럼에도 그의 고민이 더욱 깊었던 건 삼성 특유의 직원 관리와 조직문화가 한몫했다. 삼성은 그룹의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을 통해 인사·감사 등 계열사와 그룹 경영을 총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직원들은 항상 ‘회사가 나에 대한 불리한 정보를 갖고 있고, 밉보이면 까일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갖고 있었어요. 이렇게 회사가 두려운 대상이다보니, 삼성의 요구대로 도구화되고 통제될 수밖에 없는 거죠. ‘관리의 삼성’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었어요. 그런 분위기에서 제가 삼성에 더 있는다고 무슨 이득이 있겠어요?”

그는 1년여 고민 끝에 사표를 던졌다. 만약 삼성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회사의 부조리나 잘못된 처우, 경영 방침을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거나, 연차가 쌓여도 현업에서 엔지니어로 일할 수 있는 곳이었다면 지금 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삼성 탈출, 지금 생각해도 잘했다

그는 다시 신입사원 교육 때 얘기로 돌아갔다. 그만큼 그의 뇌리에 강하게 각인된 때다.

“삼성맨으로 인간 개조가 이뤄지는 시기입니다.”

그는 “온몸에서 파란 물이 흘러넘쳤고, 신입사원 대부분이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며 “다들 왜 ‘삼성, 삼성’ 하는지, 삼성이 우리나라의 최고 기업으로 꼽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삼성의 신입사원 교육은 오랜 전통과 노하우를 갖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 달간의 그룹 연수를 거친 뒤에도 기업 연수, 전문 연수 등이 이어진다. 연수의 피날레는 1만 명 가까운 그룹 신입사원 전체가 참가하는 2박3일 일정의 하계 수련대회다. 물론 이건희 회장을 비롯한 임원들도 대거 등장한다. “일련의 교육을 마치면 뼛속까지 완벽한 삼성맨이 됩니다. 교육은 삼성의 일원이라는 동질감과 자부심, 충성심을 불어넣는 시간입니다.”

백미는 몇 해 전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던 ‘신입사원 매스게임’이다. 여기에 선발된 신입사원은 일상 업무에서 빠진 채 한 달여간 합숙을 거쳐 동작을 익힌다. 그는 “지금 생각해보면 우습지만, 동기들 대부분 선발되고 싶어 할 뿐 아니라 선발된 동기들을 부러워했다”며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태양의 서커스’급은 안 되지만, 북한의 ‘아리랑’급은 될 정도로 퀄리티가 상당하다”고 말했다.

삼성의 무노조 경영, 총수 일가 지배와 불법 승계 등과 관련해 정당성을 주입하는 교육도 이때 실시된다. 그 역시 ‘노조가 꼭 필요한 것이 아니다, 노조의 과욕 때문에 회사와 국가는 성장 동력을 잃는다, 일부 노조의 이기주의 때문에 많은 국민이 피해를 본다’거나 ‘전문 최고경영자(CEO)가 반드시 상속받은 후계자 CEO보다 나은 것이 아니다, 도요타·3M·애플 등 세계적 기업엔 노조가 없다, 노조의 불필요한 파업은 회사 성장에 큰 걸림돌이 된다’ 등의 내용을 집중적으로 교육받았다고 했다. 그는 “이런 교육을 받고 나면 삼성의 논리가 100% 참인 것이 되고, 그 때문에 철저하게 삼성에 순종적인 직원이 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삼성의 실체를 깨닫게 되지요. 도전과 창의를 중시하기보다 변화와 도전을 꺼리는 삼성의 관료화된 조직문화와 접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불만이 밖으로 터져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고, 이 때문에 조금씩 지쳐갑니다. 술자리에서 농담 삼아 얘기하는 게 전부죠. 뭐랄까, 노조와 총수 이야기는 불문율이니까 알아서 입 밖에 내지 않는 거죠. 업무를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절대로 시키는 일을 거부하거나 불평하지 않아요. 그 일이 불합리할지라도, 윗선의 지시 사항은 밤을 꼴딱 새워서라도 해내고 맙니다.”

그렇다면 삼성맨들은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떡값 폭로, 불법 비자금과 불법 승계, 삼성전자 여직원의 백혈병 등의 문제와 관련해서 어떻게 생각할까. “김용철 변호사의 경우 내부에서는 배신자라고 욕하는 분위기가 더 많았대요. 다른 문제는 아예 언급도 안 되었죠. 당장 자신의 일상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으니까, 이런 이야기를 했을 때 남는 건 하나 없고 괜히 찍히기만 한다는 걸 다들 알고 있으니까요.”

평범한 직장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실직의 두려움과 공포다. 그런 점에서 자신의 생존을 위해 삼성맨들이 선택할 수 있는 건 삼성에서 참고 버티거나, 아니면 탈출하는 것이다. 삼성에서는 직급이 올라갈수록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또 앞다퉈 충성 맹세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진로와 취업을 결정할 때 당장 내게 주어지는 돈이나 명예,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아니라 평생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부터 고민하라고 조언해주고 싶어요. 적어도 저처럼 시행착오는 겪지 않아도 되니까요. 취업난이 심해질수록 빨리 취업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구직자들 사이에서 더 심해지는 것 같은데, 지금 저부터 조급함을 버리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만둘 때는 막막하기만 했는데, 이렇게도 살 만하더라고요.”

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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