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12.02 11:22 수정 : 2014.01.07 10:46

라디가 그냥 사랑 타령에 그쳤다면 지금처럼 각광받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는 사랑 타령을 멈추지 않고 그 경험을 보편적인 음악으로 만들어냈다. 그리고 새로운 호기심에 끝없이 몸을 던졌다. 곧 발매될 싱글 음반의 뮤직비디오를 직접 제작하고 있는 라디.한겨레 박승화
‘아이돌의 아이돌’. 라디(Ra.D)를 인터뷰하자고 손아람이 추천한 이유였다. 간혹 노래는 들었지만, 라디라는 인물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급히 인터넷에서 검색을 했다. 프로듀서이면서 동시에 가수라는 프로필이 떴다. 인터뷰가 잡힌 날에 2AM이 부른 그의 노래 <그냥 있어줘>가 음원 차트에서 1위를 했다. 첫 이야기는 그 소식으로 시작했다.

“여자의 마음을 흔들어놓는 무엇”을 가졌다는 그의 모습은 의외로 소년처럼 보였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첫인상이었을 뿐이고, 일단 입을 떼자 그는 꼿꼿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빠짐없이 쏟아냈다. 음악에 문외한임을 자처하는 나는 주로 듣는 입장을 취했다. 음악 활동을 했던 손아람은 집요하게 음악과 관련한 질문들 던졌지만, 나의 관심을 끈 것은 그가 음악에 끌린 계기였다.

싸움질 소년, 춤·음악으로 불태운 청춘

그는 부산 출신이다. 처음엔 반항심에서 아무나 잡고 싸움을 걸던 소년이 갑자기 ‘춤바람’을 맞게 되는 이야기는 부산에서 흔한 일이기도 했다. 당시 부산에서 라디 같은 소년을 발견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1990년대 들어 급격하게 성장한 한국의 대중문화는 성장기 소년에게 ‘다른 길’을 보여주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춤만 추던 그가 갑자기 음악을 하게 된 것도 흥미로웠다.

같이 춤을 추던 이들 중 하나가 편법으로 가수가 되는 것을 보고 본격적으로 음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는 이야기였다. 편법이 아닌 정공법으로 음악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정의감이 음악으로 그를 이끌었다고 볼 수 있을까. 고등학교 무렵 두발 단속을 ‘인권침해’라고 항의하기도 했단다. 지금도 중학교 때부터 연마한 무에타이를 계속한다는 걸 봐도 그의 기질은 확실히 ‘거칠다’.

부산에서 ‘한 주먹’ 한 것도 거친 그의 일면을 드러낸다. 그러나 이런 거친 시절에 대한 그의 진단은 의외였다. “그때는 덩치가 커서 그랬을 뿐”이라는 것. 싸움질로 빨려들어가던 에너지가 춤과 음악으로 바뀌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어른들이 보기에 둘 다 ‘날라리짓’처럼 보였겠지만, 엄연한 차이가 있었다. 전자가 파괴라면 후자는 창조이기 때문이다. 프로이트가 본다면 자신의 이론을 훌륭하게 증명했다고 칭찬했을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거친 시절을 보냈음에도 그의 노래는 도대체 왜 이런 것인지 궁금증이 대충 풀렸다. 그의 노래는 이런 거친 삶과 달리 달달하기 그지없다. “모두 제가 경험한 것을 곡으로 쓴 것이라서 지어낸 것은 없어요”라는 대답이었다. 연애를 해도 한눈팔지 않고 몰입한다는 고백이었다. 경험의 강밀성이 그의 노래를 풍부하게 해주는 것은 분명했다. 물론 음악이 가사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곡의 완성도도 한몫한다고 봐야 할 것.

“배치를 잘한다고 자평할 수 있겠죠.” 역시나 겸손한 답변이었다. 모든 걸 쏟아붓고 그것을 적절하게 재배치해내는 것이 이른바 라디의 작곡법이라는 것인데, 아무나 그렇게 할 수는 없을 테다. 라디에 대한 찬사는 대체로 그의 음악성에서 나온다고 볼 수 있었다. 특별히 아이돌과 개인적 친분을 쌓는 성격이 아니라는 전언이었다. 오히려 아이돌의 분위기에 맞지 않는 구석도 있다는 것이다. 가수 아이유 콘서트에 후줄근한 차림으로 나갔다가 당황했던 추억을 천진난만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보니 맞는 말인 듯했다.

그가 관심을 가진 것은 말 그대로 음악뿐인 것 같았다. “음악 이외에 다른 것을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라는 말은 진실이었다. 다른 것을 해보겠다고 생각해본 적 없이 음악을 시작한 뒤로 쭉 같은 길을 걸어왔다는 것. 그렇다고 그에게서 어떤 고집만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삶에 대해 관조적이었다. 감히 판단하건대, 자신의 음악에 대한 자부심 못지않게 삶에 대한 철학 같은 것을 내면화하고 있었다.

이런 점 때문에 ‘아이돌의 아이돌’이라고 불리는 것 아닐까. 한국의 아이돌 문화는 특이하다. 아이돌 문화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일본만 하더라도, 아이돌 가수를 논하면서 음악성 따위를 언급하지 않는 분위기다. 그러나 한국에선 아이돌 가수는 아이돌의 정체성에 만족하지 않고 음악성도 추구하려는 경향을 드러낸다. 한국형 평등주의가 여기에서도 발현되는 셈이다. 아이돌이 아이돌에 멈추지 않고 모든 것을 갖춰야 한다는 강박. 물론 이런 강박이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도덕적 판단을 벗고 생각해본다면, 이런 평등주의야말로 한국의 아이돌 문화를 단순한 소비재에 그치지 않게 만드는 요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라디는 이런 음악성에 대한 추구로 인해 호출된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라디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특별히 아이돌 가수들이 내 음악을 좋아한다고 말하기 어렵다”면서 “아마도 내 음악이 희소해서 관심을 받는 것이 아닐까”라고 조심스럽게 추측했다. 그의 음악은 솔(Soul)을 바탕에 깐 리듬앤드블루스라고 소개했다. 인터뷰 전에 들어보긴 했는데, 확실히 한국에서 흔한 음악은 아니었다.

알고 보니 세간의 싱글 장삼이사에게 닭살을 선사했던 <커플송>이 지금 라디의 아내가 피처링을 한 곡이라고 한다. 정말 라디는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삶을 사는 것 같았다. 아내도 가수냐고 물어봤더니 아니란다. 가수도 아닌 자신의 아내를 가수처럼 프로듀싱하는 능력에 대해 손아람이 감탄했다. 여하튼, 가수가 아니라니 나도 놀라웠다. 그의 프로필에 붙은 ‘프로듀서’라는 타이틀이 무색하지 않았다.

싱글들에게 닭살 선사한 <커플송>

그의 노래는 연애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이루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의외로 연애관은 보수적(?)이었다. “양다리를 걸치지 않았다”는 ‘신선한’ 고백이었다. 앞서 밝혔듯이, 연애를 하면 목숨 걸고 해서 다른 여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 이 대목에서 이광웅 시인의 시가 생각났다. “이 땅에서 참된 연애를 하려거든 목숨을 걸고 연애를 해야 한다”는 구절 말이다.

라디의 노래와 이광웅 시인의 시는 전혀 다른 ‘영역’에서 출현했지만, 사랑의 보편성으로 묶일 수 있는 것이다. 사랑의 진리를 추구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 라디의 노래 가사가 보여주는 절절함은 목숨 건 사랑 덕분이었다. 손아람이 결혼한 사람에게 그런 연애 노래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자, 라디는 웃으면서 “결혼생활을 노래로 만들면 누가 듣겠어요?”라고 되묻는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결혼생활은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것을 시시콜콜 노래에 담으면 들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연애는 결혼과 다른 것이고, 결혼한 이들조차 연애 시절을 그리워한다.

지금 아내를 만나서 장난처럼 만든 노래가 <커플송>이라고 한다. “그렇게 장난처럼 만들어서 진지한 결과물을 내놓는 것이 좋다”는 라디. 그런 그도 결혼 전날 회의를 느꼈다고 한다. 과연 결혼해도 되는 것일까, 살짝 갈등했다. 당연한 감정이었을 것이다. 처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그러나 이런 고민은 대체로 언제 결혼할 것인가의 문제다. 라디는 그보다도 ‘누구와’ 결혼할 것인지 질문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 아내와 ‘무사히’ 결혼했다는 경험담이었다.

사랑은 서로를 보는 것이기도 하다. 그 서로를 보는 것이 법적인 효력으로 묶이는 것이 결혼이다. 결혼의 전제는 ‘서약’이다. 연애와 결혼에는 이 차이가 있다. ‘서약’은 둘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한다. 그래서 결혼에 대한 노래는 필요 없는 것이리라. ‘서약’을 굳이 다시 노래할 필요는 없으니까.

라디가 그냥 사랑 타령에 그쳤다면 지금처럼 각광받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는 사랑 타령에 멈추지 않고 그 경험을 보편적인 음악성으로 만들어내려고 했다. 그것을 위한 기초도 탄탄했다. 독립적인 활동을 하기 이전에도 그는 이미 훌륭한 테크니션이었다. 그가 자신의 음악을 일컬어 ‘훌륭한 배치’라고 겸손하게 표현하는 것도 이런 경력 때문일 거다. “음악은 배치”라는 그의 생각은 이런 측면에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게다가 그는 거대 자본에 쉽게 기탁하지 않고 독자적인 음악세계를 추구해서 지금에까지 이른 것으로 주목받을 만하다. 그렇다고 독립음악만을 고집하는 것도 아니었다. 지금은 아이유와 같은 소속사에서 음악 작업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이력은 독특하기도 하다. 게다가 로엔엔터테인먼트는 그에게 전속계약을 제안한 것이 아니라, 공동제작을 제안했다고 한다.

말하자면, 소속사라기보다 동업자 같은 개념에 더 가까운 것이다. 이렇게 독자적인 영역을 인정받기까지 그에게도 힘든 일이 많았을 거라고 짐작할 수 있다. ‘리얼콜라보’라는 자신의 회사를 설립해서 활동하던 그가 로엔엔터테인먼트의 손길을 받아들인 것은 이런 짐작에 대한 근거를 제공하는 것 같다. 리얼콜라보의 음악성과 로엔엔터테인먼트의 물적 토대를 결합시키려는 의도가,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독립적으로 음악 활동을 이어가려는 라디 같은 가수의 처지를 잘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을 혼자서 기획하고 공연도 해봤다는 라디는 자본의 힘을 ‘이용’하긴 하되 그것에 종속되지 않는 음악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버스커버스커에 대한 그의 평가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었다. 버스커버스커의 경우 독립음악 출신이긴 하지만, 지금 유명세를 만들어준 것은 분명 자본의 힘이었다는 것이다. <슈퍼스타K>라는 ‘무대’ 자체가 바로 자본의 창조물이라는 사실에 대한 지적은 신선했다.

가수에게 중요한 것이 바로 ‘무대’라고 한다면, 라디의 문제의식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스타덤은 그냥 형성되는 것이 아니었다. 화려한 무대와 관객의 주목을 끌 만한 ‘미끼’가 있어야 했다. 물론 여기에 준비된 버스커버스커가 있었다는 사실도 빼놓을 수 없다. 라디가 말하려는 것은 버스커버스커가 자본의 힘을 빌렸기 때문에 잘못됐다는 게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독립적인 음악 활동과 자본이라는 물적 토대를 연결할 수 있는 모델로 버스커버스커를 상정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앞으로 독립적으로 음악 활동을 하고 싶은 가수들에게 버스커버스커는 그렇게 가능성 높은 모델일 수 없는 것이다. 우연성이 더 크다는 것. 연애는 비현실적으로 했다는 라디이지만, 이런 문제를 이야기할 때는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열풍이 꺾이지 않은 것만 보더라도, 오디션 프로그램은 한국에서 가수로 데뷔하려는 평범한 이들에게 희망의 채널 같은 노릇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경로가 그렇게 바람직한 것은 아닐 테다.

음악은 현실, 삶의 도구

가수로 데뷔해서 결과적으로 ‘예능인’으로 먹고사는 경우가 없지 않다. 그것이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가수로서 바람직한 등용문이었다고 말하는 것도 기만적이다. 가수와 ‘예능인’이 서로 구분되지 않는다면 무엇이 남겠는가. 부활의 김태원 같은 경우도 예능으로 새로운 인생의 전기를 맞이했지만, 음악을 위해 홀연히 떠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음악을 하는 이들에게 음악은 포기할 수 없는 삶의 의미 같은 것에 가깝다. 가수라면 자신의 음악으로 홀로 서기를 바랄 것이다.

조용필의 경우도 새로운 세대와 호흡하기 위해 과감하게 <헬로>라는 음반을 내놓아서 신선한 반응을 이끌어냈다. 가수라면 노래로서 자신의 생애를 평가해주기 바랄 것이다. 학자나 예술가도 마찬가지 아니겠나. 다른 분야에 기여하지 말란 법은 없지만, 기본적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중심에 놓은 뒤 다른 것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테다. 송충이가 솔잎을 먹는 것은 솔잎을 좋아하기 때문이 아닐까. 다른 이파리를 좋아할 수도 있겠지만, 송충이이기 때문에 당연히 솔잎을 제일 좋아할 것이다.

라디에게 음악은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제일 중요한 요소였다. 2집을 만들어놓고 음반을 찍어낼 500만원이 없어서 빌리러 다닌 적도 있다고 한다. 웃으면서 말했지만, 그 심정을 이해하고도 남을 만했다. 수익성을 보장할 수 있는 데이터를 제시하라는 말에 헛웃음이 났단다. 이런 까닭에 음악성보다 자본의 힘을 빌려서 과도하게 포장한 음악에 대한 불만도 없지 않았다. 자본은 예술도 만들어내는 마술 같다고 일침을 가했다.

멋진 표현이다. 예술과 마술. 라디에게 음악은 예술이다. 그렇다고 그가 무슨 예술지상주의 따위를 표방하는 것은 아니다. “저에게 음악은 삶의 방편 중 하나입니다.” 삶을 살아가는 수단 중 하나라는 것. 어쩌면 그의 음악은 사랑의 흔적 같은 것. 그래서 그에게 중요한 것은 삶을 살아가는 거지 음악을 위해 삶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이제야 그가 왜 독립적인 음악 작업과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협동 작업을 구분하지 않는지 알 것 같았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음악을 계속하는 것이었다.

“지속 가능한 음악 활동”이라는 말을 일전에 ‘자립음악생산조합’을 인터뷰했을 때 들었다. 라디도 마찬가지 고민을 하고 있었다. 생계 걱정 없이 음악 작업을 계속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지 않겠나. 글 쓰는 이들도 생계에 목매지 않고 글을 계속 쓸 수 있다면 이보다 더 나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무조건 음악을 하거나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음악을 하고 무슨 글을 쓰는지 그게 중요하지 않을까. 라디는 어떤 음악을 하고 싶은지 궁금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거죠.” 음악에 대한 라디의 태도는 이것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에 지금도 음악을 하고 앞으로도 할 것이라는 말로 들렸다. 음악을 통해 유일하게 처음 그는 칭찬을 받았다고 한다. 이 경험이 바로 ‘실재의 응답’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아마 계속 칭찬받는 음악을 하고 싶을 것 같다. 음악이 있기에 그는 다른 생각을 하지도 않았다. “사람들이 칭찬해주는 일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라디. 그게 사람의 본성이기도 할 것이다.

그가 만들고 싶은 음악은 정말 많았다. 음악에 대해 이것저것을 언급할 때 보니 해보고 싶은 것들을 말하는 어린애 같았다. 쏟아지는 그의 말은 두서없었지만, 일관된 리듬을 가지고 있었다. 리듬이 그의 말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것 같았다. 그의 말은 가사처럼 들렸다. “순간을 잡아서 쓴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그에게 음악은 순간을 잡아두는 그릇이었다. 영감이 떠오른다는 거창한 말보다도, 그는 ‘집중력’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자신의 노래는 순간을 포착해서 단숨에 써내려간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엮고 저렇게 꿰어서 억지로 만들지 않는단다.

그렇게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억지로 착상을 짜내서 무엇을 만들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그가 독립적으로 활동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특정 회사에 소속되면 아무래도 요구하는 음악에 자신을 맞춰가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갈등을 못 느끼나. 전속이 아니라 공동작업이라서 자유롭다고 한다. 소속사에 같이 있는 아이유 같은 가수에게 곡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도 없다. 그런데 그는 의외로 아이돌 가수들에게 노래를 많이 작곡해줬다.

2AM·아이유를 흔든 감수성

그의 말에 따르면 우연하게 그렇게 된 경우도 있고, 부탁해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번 2AM의 곡 같은 경우는 조권이 부탁해서 같이 작업을 했다는데, 앞서 말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것도 그냥 부탁했기 때문에 이루어진 일은 아닌 것이다. 음악적 측면에서 조권을 좋게 봤기에 가능했을 것이라는 말이다. 물론 그의 말은 이랬다. 그게 어떤 가창력 같은 능력에 대한 평가라기보다, 해당 가수를 만났을 때 노래가 나오면 주는 거고 나오지 않으면 못 주는 거라는 솔직한 귀띔이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자기도 모른다는데 인터뷰하는 이가 어떻게 알겠는가. 여하튼, 그래서 오해를 살 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는 곡을 줬는데 누구는 안 줬다면 긴장감이 흐를 수 있기 때문이다.

“제 노래는 갑자기 나온다기보다 이미 머릿속에 다 준비돼 있어요.” 무에서 유가 만들어진다기보다, 이미 머릿속에 들어 있는 것들이 대상을 만나서 나온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해당 가수를 만나야 노래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가사를 쓰고 곡을 붙이거나 곡을 먼저 만든 뒤 가사를 다는 식으로 만들지 않는단다. 동시에 나온다는 것이다. 곡은 오히려 보조적인 것에 가깝고, 자신의 노래는 대화라고 한다. 누군가와 나누는 대화.

아이돌 가수들이 선호할 만한 까닭을 나는 이 발언에서 발견했다. 아이돌 가수들도 모두 젊은 세대다. 이들에게 익숙한 소통 방식이 바로 대화다.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흐르는 라디의 노래가 이들의 감수성에 훨씬 친근하게 다가가는 것은 아닐까. 시장성 때문이라고 말하더라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라디의 노래를 40대나 50대가 즐겨 들을 리는 없다. 한창 연애에 모든 것을 거는 나이대인 젊은 세대가 그의 노래에 매료될 것이다. 아이돌 가수라서 라디를 좋아한다기보다, 라디가 젊은 세대의 심정을 이야기해주기 때문에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오랜만이죠>라는 노래를 들어보면 이런 짐작이 완전히 틀린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이 노래의 도입부 가사는 이렇다. “오랜만이죠/ 반가운 마음에/ 뭐라 말할까 할 말이 많았는데/ 입가를 맴도는 그 어떤 얘기도/ 생각처럼 나오지는 않아/ 오랜만이죠 그대는 그대로네요/ 조금은 어색할 줄 알았는데/ 여전한 말투와 여전한 농담에/ 시간이 흐른 게 믿어지지 않아” 여기에서 중요한 부분은 “오랜만이죠 그대는 그대로네요”와 그 뒤에 이어지는 “조금은 어색할 줄 알았는데”이다. 헤어진 옛 연인을 오랜만에 만났는데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요즘 젊은 세대가 ‘쿨하게 만나고 헤어진다’는 어른들의 선입견을 뒤집는 정서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쿨하게 만나고 헤어지기보다, 오히려 헤어진 연인과 함께했던 순간을 기억하고 지속시키는 관계가 묘사된다. 라디는 이런 가슴 아픈 사연을 노래로 만들어 들려주는 것이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 가사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란다. 지어낸 것이 아니다. 절절한 느낌이 노래 전체에 흐르고 있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는 지금까지 이 절절한 느낌을 찾아 달려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에게 음악을 더 잘하기 위해 서울로 간다고 했지만, 사실은 애인이 서울에 살고 있어서 왔던 거예요.” 대책 없는 엉뚱함을 느낄 수 있는 말이지만, 이것이야말로 라디의 음악에서 중심을 차지하는 동기라고 하겠다. 사랑을 찾아서 그는 서울에 왔다. 그 사랑의 결과물을 음악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음악에 남아 있는 사랑은 오랜만에 보더라도 “여전히 그대로”이다. 여전한 말투와 여전한 농담. “시간이 흐른 게 믿어지지 않아” 그는 노래를 만들었다.

이런 까닭에 그에게 음악은 ‘근원’이라기보다 표현하고 싶은 욕망의 발로였던 것이다. 그때그때 무엇인가 표현하지 않으면 살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어떻게 보면 가장 직접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음악을 선택한 것도 이런 표현에 대한 욕망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음악은 그에게 ‘수단’이다. 회귀할 수 있는 것이라기보다 지금 여기를 살아내야 하기에 필요한 도구인 것이다. 지금은 음악에 자신의 에너지를 쏟아부을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제대로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음악이 없었다면 삶을 뒤흔드는 열정을 어떻게 했을지 짐작하기 어렵다. 물론 라디는 여러 가능성 중의 하나로 음악을 선택했다고 겸손하게 말하지만, 그의 말대로 음악을 했을 때 칭찬받을 수 있었다.

삶을 사랑하는 음악을 꿈꾸며

라디는 요즘 젊은 세대의 모델일 수 있을까. 19살에 서울로 와서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음악을 계속했던 그 열정은 분명 귀감이 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친다면, 그의 삶은 너무 단순하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어슷비슷한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미쳐라’는 담론 이상을 넘어가기 어렵다. 라디는 결코 ‘음악에 미쳐라’고 말하지 않는다. 역설적으로 그는 삶을 위해서 음악을 ‘사용’하고 있다. 그는 삶을 사랑하는 것에 더 열중하는 것처럼 보였다. 음악도 이 삶에 열중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젊은 세대가 라디에게 배울 것이 있다면 이렇게 삶을 사랑하려는 태도일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라디는 그저 그런 성공 스토리로 소비될 것이다. 버스커버스커에 대한 라디의 문제의식은 이런 식으로 자신의 삶이 왜곡되는 걸 바라지 않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리라. 그가 원하는 것, 바로 그의 삶이 지속되기를 바란다. 그래야 그의 음악도 우리 곁에 계속 머물 것이기 때문이다. 팬들과 함께 나이 먹어가는 가수가 될 수 있다면 괜찮은 축복일 것이다. 나이 먹은 라디가 자신의 삶을 노래하는 광경을 그려본다. 그 노래에 담길 내용이 무엇이든, 그것은 라디가 온몸으로 살아낸 경험의 흔적일 것이다. “누가 성공했다고 무조건 따라가는 것은 틀렸다”고 말하는 라디. 자신이 잘할 수 있고 하고 싶은 것을 정확히 아는 가수로 오래 남아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글 이택광 영국 셰필드대학 문화학 박사. 경희대 영미어학부 교수. 다양한 문화 분석을 통해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코드를 찾아내는 작업을 한다. 저서로 <인문좌파를 위한 이론가이드> <이것이 문화비평이다> <한국문화의 음란한 판타지> <인상파, 파리를 그리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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