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12.02 10:52 수정 : 2014.01.07 10:46

(위)는 부산을 중심으로 10대 고등학생들의 풋풋함을 녹였다면 는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대학생들이 서울 신촌 하숙집에서 겪는 일상을 다룬다. 여주인공의 ‘현재 남편 찾기’라는 추리적 요소를 두 드라마가 공통적으로 내세우고 있는데, 이것이 인기 비결 중 하나다.tvN 제공
나는 95학번이다. 고등학교처럼 지정좌석제를 하고, 수업 시작과 끝을 알리는 종이 울리는 서울 신촌 소재의 대학교를 다녔더랬다. 제주도 출신으로 ‘육지’(제주도는 제주도 밖을 그렇게 부른다)에 공부하기 위해 나온 촌사람이기도 하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이하 <응사>) 속 풍경은 그래서 굉장히 친숙하다. 전작이라 할 수 있는 <응답하라 1997>(2012년·이하 <응칠>)보다 <응사>에 더욱 몰입하는 이유일 수도 있다. ‘제주도 촌놈이 나왔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은 접어두고, <응사>와 <응칠>의 같거나 다른 11가지를 열거해본다.

1. 김재준 찾기, 물음표 남편

두 드라마 모두 현재 시점에서 고교 동창회(<응칠>)와 집들이(<응사>)가 한창인 가운데 ‘여주인공의 남편은 누구일지’를 역추적한다. <응칠>에서는 성시원(정은지)의 남편, <응사>에서는 성나정(고아라)의 남편이 ‘물음표’ 안에 있다. <응사>에서는 아예 남편 이름 ‘김재준’을 던져주고, 같은 ‘신촌 하숙집’에 사는 쓰레기(정우)·칠봉이(유연석)·해태(손호준)·빙그레(바로)·삼천포(김성균)를 후보 5명으로 나열했다. 삼천포가 또 다른 하숙집 여학생 윤진(도희)과 결혼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현재 후보는 4명으로 압축돼 있다. 제작진이 지금껏 던진 떡밥에 의하면, ‘김재준’은 축구에 관심이 없고 센스도 떨어진다. 쓰레기의 성이 김씨이며, 칠봉이는 ‘준’으로 불린다는 사실도 밝혀진 상태다.

유력 후보가 친오빠 같은 쓰레기와 동갑내기 친구 칠봉이란 점에서 <응칠>과 비슷한 구도지만, <응칠>에서는 시원이와 윤제 형(윤태웅)의 감정이 극 초반에 잘 부각되지 않았던 반면 <응사>에서는 나정이와 쓰레기의 밀착 관계가 처음부터 도드라진다. <응칠>에서는 시원의 남편감으로 윤제가 응원을 많이 받았지만, <응사>에서는 나정의 남편감으로 쓰레기·칠봉이 둘 모두 호응을 받고 있는 이유다.

2. 서울 촌놈들, 칠봉이와 도학찬

<응칠> 초반부는 부산을 기반으로 전개됐다. 도학찬(은지원)이 학기 도중 전학을 와서 ‘서울에서 온 아이’의 지방 학교 적응기가 살짝 펼쳐지기도 했다. 촌놈들과 어울리려는 서울놈의 분투기라고나 할까. 하지만 <응사>는 역으로 ‘지방에서 온 아이들’의 서울 적응기를 담고 있다. 주요 캐릭터들 중 유일하게 칠봉이만 지방 출신이 아닌 서울 토박이다. <응칠>의 도학찬이 <응사>에서 칠봉이로 변주된 셈이다. 삼천포가 신촌 하숙집을 찾지 못해 서울 시내를 빙빙 돌거나 지방에는 없는 한 프랜차이즈 메뉴 속 비스킷이 과자 비스킷인 줄 알고 1인당 10개씩 주문하는 등의 에피소드를 <응사>는 과하지 않게 풀어놓는다. 촌놈과 관련된 에피소드 중 더러는 1980년대 분위기가 난다는 지적도 있지만, 시청자의 용납 범위 내에 있다. 신촌 하숙집 남학생들은 집안이 경제적으로 여유롭고 연세대까지 입학한 수재지만, 그들을 끈덕지게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촌놈들’이다.

3. 차진 사투리, 전국 팔도 대 경상도

경상도 사투리가 주류를 이뤘던 <응칠>과 달리 <응사>에서는 경상도·전라도·충청도 사투리가 쉴 새 없이 터져나온다. 이우정 작가가 경남 진주 출신이어서 혼자서도 <응칠> 사투리 대본을 고칠 수 있었지만, <응사>는 사투리 퍼레이드가 이어지고 있어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전남 순천·여수 출신 작가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 신원호 PD는 “대본을 쓰고 번역기를 3번 돌리는 셈이다. 하지만 대본대로 하면 입에 잘 안 맞는 게 있어서 현장에서 연기자들이 자기 입맛에 맞게 고치고 있다”고 밝혔다. 출연진 면면을 보면 고아라(성나정)는 진주, 정우(쓰레기)는 부산, 김성균(삼천포)은 대구, 손호준(해태)과 바로(빙그레)는 광주 출신이다. 여수 사투리로 차진 욕을 해대는 도희(조윤진)는 실제로도 여수 출신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서울 토박이 칠봉이 연기를 하고 있는 유연석도 진주 출신의 ‘촌놈’이라는 점이다.

4. 전통 연기파 대 아이돌 주인공

<응칠>을 이끌었던 두 축은 서인국과 정은지였다. 서인국은 <슈퍼스타 K>(Mnet) 시즌1 우승자이고, 정은지는 여자 아이돌 그룹 ‘에이핑크’ 멤버다. 본업이 연기자가 아닌 가수다. 서인국과 정은지의 친구로 나왔던 은지원이나 호야(인피니트)도 마찬가지다. <응사>에서도 아이돌이 출연하기는 한다. 바로(B1A4)와 도희(타이니지)가 그들이다. 하지만 이야기의 중심축에는 정통 연기파 고아라와 정우, 그리고 유연석이 있다. 신원호 PD가 가장 심혈을 기울인 캐스팅은 정우라고 한다. 신 PD는 “정우가 주연한 영화 <바람>이 무척 재미있어서 몇 번씩 돌려봤다. 캐릭터 자체가 ‘쓰레기’인데, 쓰레기 같은 허술함이 정우와 너무 잘 어울린다”고 했다. 고아라 또한 “굉장히 털털해서” 성나정 캐릭터와 잘 맞는다는 게 신 PD의 말이다. 김성균·손호준의 연기 또한 굉장히 흡입력이 높다.

5. 먹마방(먹고 마시는 방송)

‘서울에서의 첫 우리집’인 신촌 하숙집이 배경이다보니 자연스레 다 함께 아침을 먹는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이일화가 아침마다 푸짐하게 차려놓는 식탁은 ‘먹방’의 재미를 선사한다. 나정은 먹성 좋은 캐릭터로 등장하는데, 그의 손에는 항상 과자 등 먹거리가 들려 있다. 자장면, 소라 등을 매번 맛깔스럽게 먹어댄다. 삼천포가 윤진이를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진 것도, 커피를 못 마시던 윤진이가 자신의 엄마가 타준 커피는 사양하지 않고 한입에 털어넣는 모습을 본 뒤였다. 주인공들이 고등학생이 아니라 대학생이다보니 <응칠> 때보다 술 마시는 모습도 자주 나온다. 냉면 그릇에 여러 술을 섞어 마시는 것은 기본이다. 칠봉이가 나정에게 처음 뽀뽀를 한 것도, 윤진이가 ‘나정이가 쓰레기를 많이 좋아한다’고 폭로한 것도 만취 상태에서였다.

6. 빠순이의 등장

<응사>에서도 <응칠>처럼 일명 ‘빠순이’(‘오빠’와 ‘순이’의 합성어로, 가수·배우·운동선수 등을 엄청 좋아하는 여자팬층을 일컬음)가 등장한다. 나정은 연세대 농구 스타 이상민을 응원하다가 허리디스크에 걸릴 정도로 푹 빠져 있으며, 나정의 과 동기이자 하숙집 친구 윤진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광팬이다. 하지만 <응사>에서 ‘빠순이’ 설정은 배경으로만 쓰일 뿐 <응칠>처럼 극 전체의 흐름을 주도하지는 않는다. 신원호 PD는 “농구대잔치나 서태지 등은 시대감을 불러오는 소재로 쓰이는 정도”라고 했다. 그래도 음악 방송을 보러 갔다가 관중석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의 <마지막 축제> 노래에 맞춰 신나게 춤을 따라 추는 윤진의 모습에서, 공연장에서 H.O.T <전사의 후예>를 격하게 따라 추던 시원의 모습이 떠오르기는 한다. 윤진과 삼천포가 ‘미운 정’이 쌓이게 된 계기도 서태지가 윤진에게 준 과자를 삼천포가 멋모르고 먹어치웠기 때문이다.

7. 가족 구성원의 죽음

<응사> 2회에서 드러난 대반전은 친남매처럼 티격태격하던 쓰레기가 나정의 친오빠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병원에 누워 있던 나정은 쓰레기가 아파하는 자신을 꼭 안아주자 “나에겐 오빠가 하나 있다. 어릴 적 나의 꿈은 오빠와 결혼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오빠에겐 소꿉친구가 하나 있다. 우리 셋은 언제나 함께였다. 그러던 어느 봄날 마치 거짓말처럼 사랑하는 오빠가 멀리 떠나버렸다. 그리고 그날 이후 오빠 친구는 우리 오빠가 됐다”고 독백한다. 가족의 죽음은 <응칠>에서도 과거형으로 회상된 바 있는데, 시원의 언니가 대학생 때 버스 전복 사고로 죽었다. 나정과 시원은 오빠 혹은 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혼자 남았고, 그 외로움을 죽은 이와 가까웠던 사람에게서 채워간 공통점이 있다.

8. 아빠 성동일, 엄마 이일화

성동일과 이일화는 <응칠> 때와 똑같이 여주인공의 부모로 등장한다. 이름도 그대로 사용하고, 직업이나 성격 또한 비슷하다. <응칠> 때 롯데 자이언츠 2군 감독이었던 성동일은, <응사>에서는 서울 쌍둥이 코치로 나온다. <응칠>과 달리 프로야구 팀명을 그대로 못 쓴 이유는, LG 트윈스가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응칠>에 이어 <응사>에서도 성동일은 자주 야구 유니폼을 입고 등장한다. 이일화는 <응칠> 때처럼 여전히 음식을 한번 만들면 푸짐하게 차려내는 ‘손 큰 엄마’다. 바뀐 게 있다면 <응사>에서는 하숙집 여주인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폐경기가 찾아온 줄 알고 우울감에 빠져 있다가 뒤늦은 임신 소식을 전해듣기도 한다. 늦둥이 이름은 성준. 실제로 성동일의 첫째아들 이름이 성준이기도 하다. 시청자는 2002년 나정의 결혼식 때 진짜 성준이 깜짝 등장하기를 바라고 있다. 쑥쑥이가 1995년생이기 때문에 2002년이면 실제 성준과 같은 8살이 된다.

9. 따뜻한 가족 정서

2012년 방송을 탔던 <응칠>은 밤 11시대에 방송됐다. 지상파 드라마와의 정면 대결을 피했던 탓이다. 하지만 <응사>는 저녁 9시대로 방영 시간을 2시간이나 앞당겼다. 그것도 월·화, 수·목, 토·일 등 주 2회 드라마 방영 규칙을 깨뜨리면서 금·토로 방영 요일을 잡았다. 제작진이 저녁 9시대 시청률 경쟁에서 자신감을 얻은 것은, tvN의 예능 <꽃보다 할배> 때문이다. 역시나 이우정 작가가 참여하는 <꽃보다 할배>는 금요일 저녁 9시대에 방송돼 6~8%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신원호 PD는 “<응사>는 <응칠>과 달리 주말극 정서인 따뜻한 코드가 담겨 있어서 주말극이 나가는 시간대가 어떨까 싶었다. 금요일 저녁 9시대라서 걱정이 많았는데, <꽃보다 할배>의 성공을 보고 안심이 됐다”고 말했다. 신촌 하숙집에 모인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하숙집 아줌마 이일화를 제2의 어머니로 대한다. 고향 부모님과의 장거리 전화 통화도 빼놓을 수 없는 극의 장치고, 고민 상담도 하숙집 형에게 한다. 다 함께 둘러앉아 오순도순 밥을 먹으며 ‘한식구’다운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시원의 가족만 크게 부각됐던 <응칠>과 달리 <응사>는 주요 캐릭터의 가족들까지 다 살리면서 ‘따뜻한 정’을 이야기한다.

10. 카메오 출연 화려하게 더 화려하게

<응사>에서는 화려한 카메오 군단이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나정이 연세대 농구부를 따라다니면서 문경은·우지원·김훈이 현역 선수로 깜짝 등장했고, 신촌 하숙집을 거쳐간 하숙생으로 홍석천·허경영·나영석 PD가 출연했다. <1박2일> <꽃보다 할배> 등을 연출한 나영석 PD는 이우정 작가, 신원호 PD와의 인연으로 기꺼이 카메라 앞에 섰다. 정우(쓰레기)와 함께 영화 <바람>에 출연한 지승현·이유준·양기원도 쓰레기의 고향 선배 역을 맡아 동반 카메오 출연했고, 가수 김정민 등도 시대감을 불러오는 인물로 살짝 모습을 드러냈다. <응칠>과 <응사>는 카메오로 묘한 접점을 찾기도 한다. <응칠>에서 성동일의 암 수술을 집도했던 김종민이 <응사>에서는 의대생 쓰레기의 선배로, <응칠>에서 윤제의 형과 결혼했던 ‘동방신기 빠순이’ 주연(애프터스쿨)이 ‘듀스 빠순이’이자 쓰레기 의대 동기생으로 나온다.

11. 스무 살의 청춘, 10대의 풋풋함

<응칠>은 고등학생인 10대들의 풋풋함을 담았다. 그리고, 풋풋함 안에 첫사랑을 녹여냈다. <응사>는 스무 살 청춘의 고민을 이야기한다. 스무 살은 짝사랑의 설렘과 아픔이 있고, 미래에 대한 불안과 희망이 뒤섞인 나이다. 나정과 칠봉이는 서로 다른 짝사랑에 가슴앓이를 하고, 빙그레는 아버지에 의해 강요된 미래에 의구심을 품는다. 윤진은 폐쇄적이던 자신의 마음을 점점 열어간다. <응사>는 ‘아프니까 청춘’이던 스무 살을 그렇게 펼쳐 보인다. 1994년뿐만 아니라 2013년을 살아가는 스무 살에게도 해당될 수 있는 이야기다. 94학번인 신원호 PD는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으로서, 1990년대에 청춘을 보낸 이들에게 위로와도 같은 선물이고 싶다. ‘그때 정말 좋았어’가 아니라 ‘우리한테 저런 시절이 있었어’라는 회환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글 김양희 <한겨레> 오피니언부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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