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12.02 10:29 수정 : 2014.01.07 10:45

여름이 끝났다. 나의 연애도 끝났다. 헤어졌다. 사귐이나 맺은 정을 끊고 갈라서는 것이 헤어짐이라는데, 나는 맺은 정을 끊은 적이 없으니 ‘헤어짐’을 당한 것이다. 그 이유를 물어도 이별을 고한 자는 말이 없다. 말 못할 이유가 있단다. 이별의 까닭은 혼자 감당해야 할 무게가 되어버렸다. 지난 시간을 복기하다보면 그 원인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하루하루씩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는데, 또 다른 누군가가 나온다. 맞다. 나, 2년 전에도 누군가를 만났고 좋아했고 헤어졌구나. 그런데 그때는 왜 헤어졌더라?

헤어진 사실은 분명했다. 그 절차가 이상했을 뿐. 만나기로 약속한 날 전화를 걸었는데 상대방은 받지 않았다. 그렇게 끝났다. 지난여름 이별 이후 지금까지 나는 헤어진 이유를 몰라 괴로운데 그때는 어떻게 일방적인 연락 두절로 인한 헤어짐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이 사랑과 저 사랑은 무슨 차이일까. 그래서 2년 전 그 남친에게 연락했다.

옛남친과 이별 뒤 찾은 옛옛남친

“나를 사랑하긴 했니?” 헤어진 연인에게 묻고 싶은 말 1위를 차지한 질문이란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질문을 던질 것인가. 지난 사랑을 확인하고 싶은 건 아니다. 지난 연애를 아름답게 포장하거나, 화해하고 싶지도 않다. 어쩌면 나의 상태를 진단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옛옛남친과의 이별에서 어떤 단서를 찾아낸 뒤 옛남친과의 이별에 대입하고 싶었던 건지도). 닉 혼비의 소설 <하이 피델리티>(Hi-Fidelity)의 주인공 로브가 옛여친들을 찾아다니며 이별의 원인을 묻다가 자신도 몰랐던, 혹은 부정하고 싶었던 자기 모습과 직면한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옛옛남친과의 연애에는 아주 보통의 연애라고 할 수 없는 관계의 특이성이 있었다. 그 특이성을 제하면 지난 시간을 조금 다르게 바라볼 수 있을지 궁금했다.

그는 선생님, 나는 학생이었다. 제도권 내에서는 아니었지만 우리는 사제지간으로 만났다. 이런저런 책을 읽으며 세미나를 하고 글도 쓰는, 인문학 공부를 하는 곳이었다. 그는 선생이라기보다는 똑똑하고, 말 잘하고, 섬세하고, 예술적 감수성이 풍부한 대학 동아리 선배 같았다. 우리의 나이 차는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 한 바퀴를 돌고도 다섯 동물을 더 나아갔다.

그에게는 연인이 있었다. 8년째 연애 중이자 6년째 동거 중인 파트너 P. 둘은 자유연애주의자다. 결혼제도나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 사랑하는 두 사람의 만남과 헤어짐이 국가제도의 승인 아래 이뤄지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당시 나는 ‘노마드’ ‘탈주’ ‘홈 파인 공간에서 매끄러운 공간으로의 이동’…, 이런 용어들이 나오는 철학책을 읽고 있었다. 새로운 사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접한 나에게 그는 말과 삶이 비교적 일치하는 자유로운 영혼으로 보였지만 한편으론 그래봤자 그와 P가 ‘사실혼’ 관계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그러니 그가 나를 비롯해 다른 여성을 만나면 바람이요, 불륜이요, 간음이자, 간통이었다. 그는 가끔 P와 싸웠다는 얘길 아무렇지도 않게, 무심하게 했다. 그는 종종 말했다. “두 사람을 동시에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해.”

선생과 제자, 지배와 종속의 만남

서울 종로구 정독도서관 앞에 강렬한 빨간색 트렌치코트를 입은 남자가 서 있다. 아마 그일 것이다. 늘 자신을 예술가적으로 보이게 하는 무엇 하나는 꼭 지니고 있는 사람. 이제는 짧아졌지만 가슴팍까지 내려왔던 긴 머리, 집시 스타일의 바지, 동그란 뿔테 안경 같은. 오랜만에 만난 그는 살이 올라 있었다. 얼굴이 이렇게 컸나? 자다 나온 것도 아니면서 눈은 왜 저렇게 부었대? 아, 저 갈라진 앞니! 콩깍지가 벗겨지긴 했나보다. 1초 만에 스캐닝을 하며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내가 우스워 자꾸 웃음이 나지만 감춰야 한다. 이건 재회의 반가움이 아닌, ‘시간의 흐름’을 깨달은 뒤 자연스레 나온 웃음일 뿐이므로.

“나한텐 누구보다도 탁월한 순발력이 있지.” 그는 말하곤 했다. 한때 열렬한 운동권으로서 사회과학 공부로 익힌 문제 파악 능력과 논리력, 그리고 몸짓과 표정과 대사로 자신을 표현하는 연극을 하기도 했던 그는 찰나의 순간 입술 끝의 미동, 동공의 흔들림, 눈썹 한 올의 일그러짐, 미간에 잡힌 실주름 하나까지 금세 알아채는 사람이었다. 나를 잘 알아주는 사람, 동시에 숨기고 싶은 부분을 기어코 들춰내는 사람. 그 앞에선 늘 상반된 감정을 느꼈다. 화동 고갯길을 나란히 걸으며 그는 말했다. “여전히 빨리 걷는구나.” “네가 좋아할 만한 음식을 파는 곳이 있어.” 다정한 본능인가, 내 웃음의 속내를 눈치챈 것인가.

“이별을 언어로 전달 못해 미안해”

“지적 교류라는 관심으로 변형되어 유지되는 가부장적 지배로서 선생과 학생 사이의 연애만한 것도 없으리라.” -김영민, <동무와 연인> 중에서

김영민의 <동무와 연인>에는 지적 반려 관계를 유지했던 연인들이 나온다. 그중 내 눈길을 끈 건 하이데거와 한나 아렌트. 그들은 사제지간이었다. 나이 차도 우리와 같아 감정이입이 쉬웠다. 헤어진 뒤 그 책을 읽고 그에게 편지를 쓴 적이 있다. 물론 보내진 않았다. 대화에 윤활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인터뷰 전날 비로소 그에게 전자우편으로 보냈다.

편지에 대한 소감을 물었더니 그가 말한다. “내가 하이데거였을 때…, 나도 하이데거 같았나?” 그는 스승과 제자가 지배와 종속이라는 틀 속에 있다는 건 인정한다고 했다. 그런데 어떻게 인간의 영혼을 틀 속에서 설명할 수 있느냐고 되물었다. 그런 틀 안에서라면 나는 그를 ‘지적 욕망’의 대상으로, 그는 나를 ‘젊은 살’로밖에 볼 수 없다고. 맞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 관계에서 사제지간의 권력 문제는 불륜만큼 중요했다. 그가 아무리 가부장제 구조를 싫어하고 여성적 특성이 강한 사람이라고 해도 그는 결국 남성이고 스승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내가 풀어야 할 숙제는 ‘왜 너랑 연락을 끊었는가’인 것 같아. 내가 누군가와 소통 없이 단절된 경험이 지금까지 크게는 세 번 정도 있었어. 나는 기본적으로 누구하고도 내 이야기, 그러니까 내가 처한 상황이나 속내에 대해 대화를 해본 적이 없어. 자신의 어두운 모습을 부정하기보다는 그런 면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밝게 살아온 거지. 그러다 어떤 상황이 되면 그게 폭발을 해. 늘 내 안에서 ‘울고 있는 아이’가 나오는 거지.”

그의 아버지는 사업을 했는데 다섯 식구가 단칸방에 살더라도 그랜저를 몰고 다녔고, 두 집 살림을 했다. 어머니가 생계를 떠맡았고, 형과 누이는 제 몫을 살아내기 바빴다. 가족 그 누구와도 자신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었다. 대화하는 법, 사람들과 관계 맺는 법을 몰랐다고 한다. 어떤 상황에 직면했을 때 그가 택한 방법은 회피였다. 가족, 친구 그리고 연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툭하면 잠수를 타시는구먼?” 나의 비아냥거림에 그는 별다른 반박을 하지 않았다. 정말 아무 이유가 없는 무기력한 상태가 된다고만 말했다. 나와 연락을 끊은 것도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어떤 판단을 하고 싶지 않은 무기력한 상태였기 때문이라고, 자신의 이런 모습을 인지하게 된 건 최근의 일이라고 했다.

연애하면서 1년 넘게 만나는 동안엔 몰랐던 그의 삶의 내력들. 연민이 느껴지긴 하지만 나에게 ‘선처’를 호소하는 것 같아 못마땅했다. 조금 이해를 해보자면 어쩌면 그의 무기력함과 나의 무기력함이 부딪친 건지도 모르겠다. 당시 나도 내 삶의 불안 속에서 어찌할 줄 모르는 상태였다. 각자의 불안 속에서 ‘말’을 지워버렸고 만나서 섹스를 하는 것에 안주해버렸다. 말보다 몸이 편했다. 막연한 사랑의 감정, 신체적 접촉, 육체적 관계, 거기서 오는 정서적 안정이 대화로 전환되는 시점을 놓쳤다.

그는 “당시 선택권이 너에게 있었다”고 말했다. “네가 관계를 끊었다면 되게 심플해질 일”이었지만 그러지 않았다는 거다. 자신이 먼저 놔주어야 하는 건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단다. 아, 설마 혹시 이거 그런 상황이니? ‘사랑하니까 보내주는 거야.’ 그 상투적인 변명?

“나는 급진적 자유연애주의자인 것 같아. 이런 생각이 현실에서는 받아들여지기 힘들다는 거 알아. 그렇지만 나는 두 사람을 동시에 좋아하는 감정에 죄의식이 없어. 인간은 누구나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만약 그때 너에게도 파트너가 있었고, 그럼에도 나와 또 다른 사랑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면 얘기는 달라졌겠지만. 내 가치관에선 내 행위가 잘못됐다거나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기본적으로 일대일 관계만을 정상적인 관계로 받아들이는 사람에겐 설명하기 힘든 부분인 거 같아.”

그렇다면 우리는 ‘틀’을 극복하지 못해 헤어진 것일까. 그가 자신의 가치관대로 행동하기 위해선 P에게 솔직하게 말해야 했다. P 역시 자유연애주의자다. 그럼에도 P는 소유욕이 강하고 철저히 일대일 관계를 원한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일대일 관계는커녕 그 무엇을 원한다고 말한 적이 없다. 내가 선택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도권이 넘어간 것이 아니다. 이건 감정-권력의 문제가 아닐까. 우리 관계에서 희비의 쌍곡선을 쥐락펴락한 건 그가 아니었을까.

그는 자신이 선생과 학생이라는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대화의 주도권이 늘 자신한테 있었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했다. 다만 오늘 만나는 순간부터 ‘그때의 그 학생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당시 내 안엔 ‘학생의 자기’가 자리잡고 있었던 거지. 이젠 너에게 이렇게 문제를 던질 수 있는 힘이 생겼고, 나도 너를 학생으로 대하는 관성 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된 것 같아.”

그는 자신의 선택을 부정할 순 없다고 했다. 현실적으로 P와의 관계를 끊을 수 없었으므로. 만약 그때 그가 나를 선택했다면, 그가 돈을 벌고 작업하는 방식이나 P와의 관계까지 모두 끊어져야 했다. 그러니 한 가정의 가장이 불륜을 저지르고 ‘현실’적인 문제로 결국 가정으로 되돌아가는 빤한 결론이 난 셈이다. 물론 그는 자신의 행동이 가족주의 안에서의 ‘불륜’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너의 틀로는” 그런 식으로밖에 설명이 안 된다고 말한다.

“그때 나는 해결책을 몰랐다고 생각해. 내가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을 너에게 언어로 전달하지 못한 거야. 서로에게 행복함보다 힘듦을 느끼기 시작했을 때, ‘우리 둘이 만나서 즐거운 것보다 괴로운 부분이 더 크지 않니? 그럼 여기서 그만해야 하지 않니? 나는 괜찮은데 넌 어때?’, 이런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끝내거나 혹은 계속 가거나 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 내가 너에게 예의를 다하지 못한 부분인 건 맞는 거 같아.”

사랑하지 않으니 ‘불륜’이 문제가 됐다

나는 ‘사람 마음이란 건 어찌할 수 없는 거야’라고 생각하면서도 스스로를 ‘정부’라는 ‘틀’ 속에 가두었는지도 모르겠다. 만나는 동안에도 우리는 ‘끝’이 분명한 관계라면서 덜 상처받을 수 있는 보호막을 쳐놓고 지냈으니까. 그러니 그때로 되돌아간다 하더라도 나는 ‘우리 그만 만나요’ 혹은 ‘P와 헤어져요’ 같은 말은 하지 못했을 거다. 그러길 바란 적도 없었지만 말이다.

인터뷰를 끝내고 광화문까지 걸어가는 길. 지독하게 허무하다고 말하는 내게 그는 지내온 시간이 중요한 것이니 ‘끝’ 때문에 허무해하지 말라고 한다. 누가 그걸 모르냐. 그는 끝끝내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는 불륜이라는 틀 속에 있었기 때문에 헤어진 것이 아니다. 선생-학생이라는 관성을 극복하지 못해 헤어진 것이 아니다. 그냥 한 시절 사랑했고, 그 사랑이 다해 헤어진 거다. 서로의 저무는 감정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거다. 아니다. 인정하지 못하는 건 나 자신일 것이다. 그래서 불륜이니 사제지간이니 관계의 특이성을 갖다 붙인 것인지도.

이별의 이유에 대해 설명할 수 없는 건, 이것도 원인이고 저것도 원인일 수 있는 건, 사실은 너무도 자명한 이유를 인정하기 싫은 데서 오는 것이다. 우리가 불륜이어도 나는 너를 사랑해서 만나지만, 우리가 사제지간이어도 나는 너를 사랑해서 만나지만, 우리가 나이 차가 많이 나도 나는 너를 사랑해서 만나지만, 그렇지만….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게 되니 모든 것이 문제가 된다. 더 이상 사랑하지 않으니 ‘현실’이 문제가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로 헤어졌다. 사랑, 은 지극히 환상이라는 물매였다.

글 조인영 프리랜서

‘독자의 인연 인터뷰’는 독자에게 열린 지면입니다. 독자가 인터뷰어가 되어 자신의 부모, 자식, 친구, 친척, 동료 등 가까우면서도 정작 궁금한 것을 묻지 못했던 이를 직접 인터뷰하는 형식입니다. 가장 가까운 사이일수록 오히려 못하는 이야기가 많을 수 있습니다. 일상의 소통 방식에서 벗어나 인터뷰를 하면 뜻밖에 새로운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200자 원고지 30장 안팎 분량에, 일문일답이나 수필, 일기 등 자유로운 형식으로 보내주십시오.

보낼 곳 <나·들> 전자우편 계정 na-d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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