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11.04 19:28 수정 : 2013.11.11 13:42

인터폴에 의해 수배령이 내려진 ‘화이트 위도’ 서맨사 루스웨이트. 하지만 수배령 전문에는 케냐 웨스트게이트 쇼핑몰 테러에 대한 언급은 없다.인터폴 누리집 갈무리
“오 셰이크 라덴, 내 아버지, 내 오빠여/ 당신을 향한 내 사랑은, 그 누구에게도 견줄 수 없어요/ 오 셰이크 라덴, 이제 당신은 가고 없지만/ 무슬림이 깨어납니다, 강해져야죠/ … 당신이 멈추신 바로 그 자리에서, 우리가 다시 시작합니다/ 순교하는 그날까지, 승리를 위해/ 적들에게 공포를 줄 때까지/ 라 일라하 일랄라, 오직 한 분뿐인 신의 뜻에 따라 세상이 다스려질 때까지.”

지난 10월22일 <인디펜던트>를 비롯한 영국 언론이 일제히 시 한 편을 소개했다. ‘오사마 빈라덴을 위한 송가’란 제목을 달고 있는데, 무슬림 여성으로 보이는 아마추어의 ‘작품’이 분명하다. 누가 이런 시를 지었을까? ‘시인’을 만나기 위해선 제법 긴 여정이 필요하다. 첫 번째 여행지로는 적도를 허리에 끼고 있는 동아프리카의 케냐가 적당하겠다.

“영어를 사용하는 여성의 목소리”

케냐 수도 나이로비는 생각보다 고지대다. 평균 해발고도가 1661m에 이른다. 1990년대 들어 그곳 옛 시가지의 부동산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북서쪽으로 약 3~4km씩 떨어진 세 군데로 나이로비의 심장부가 옮겨가기 시작했다. 이 지역들은 모두 해발고도가 평균치보다 40~50m가량 높은, 말하자면 나이로비의 ‘언덕’이라 부를 만한 곳이다.

그 가운데 파크랜드 지역은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주로 공무원들이 모여 살았다. 자연스레 고급 주거단지가 주종을 이루게 됐다. 어퍼힐 지역은 업무용 빌딩이 빼곡하게 들어섰다. 관공서와 국제기구, 다국적기업과 대형 병원도 상당수 입주해 있단다. 그리고 웨스트랜드가 있다. 새롭게 떠오르는 고급 주거단지이자, 쇼핑가와 각급 은행 지점 등이 들어서 있다. 케냐의 ‘월마트’로 통하는 ‘나쿠마트’ 역시 그곳에 대형 매장을 두고 있다.

나쿠마트가 입주한 건물은 웨스트랜드 지역의 음완지 거리와 링로드 파크랜드가 만나는 곳에 자리해 있다. 2007년 문을 연 5층짜리 건물이 통째로 쇼핑몰이다. 나쿠마트 외에도 나이키·아디다스를 비롯한 의류·신발 업체와 피자헛 등 식음료 분야의 다국적 브랜드가 즐비하다. 또 페덱스 등 외국계 물류업체와 은행 지점, 극장 등을 포함해 이 건물에 입주한 업체는 모두 80여 개에 이른다. 케냐의 떠오르는 중산층과 외국인 장기 거주자들이 즐겨 찾는 명소, 바로 ‘웨스트게이트 쇼핑몰’이다.

사건은 지난 9월21일 벌어졌다. 정오 무렵이었고, 토요일을 맞아 쇼핑을 나온 인파로 건물이 북적였다.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괴한 10여 명이 삽시간에 들이닥쳤다. 반자동 소총과 수류탄 등으로 중무장한 이들의 등장에 놀란 이들이 혼비백산 탈주에 나섰다. 그나마 운 좋은 이들이었다.

총알이 날아들고, 수류탄이 섬광을 내며 터졌다. 출동한 경찰이 주변을 에워쌌다. 인질극이 이어졌다. 사건 당시 건물 안에는 괴한들에게 인질로 붙들리거나, 구석구석에 숨어 있던 쇼핑객과 매장 직원이 적어도 1천 명에 이른 것으로 전해졌다. 케냐 정부의 호언과 달리 상황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산발적인 교전과 목숨을 건 탈출이 이어졌다. 사건이 일단락된 것은 사흘 뒤인 9월24일이다. 케냐 정부는 “민간인 61명과 진압 부대원 6명, 테러범 5명 등 모두 72명이 숨졌다. 부상자도 175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사건의 배후는 소말리아의 이슬람 반군단체 ‘샤바브’(아랍어로 ‘젊은이’란 뜻)로 밝혀졌다. 샤바브 쪽은 사건 발생 직후 성명을 내어 “소말리아에 파병한 케냐군을 즉각 철군시키라”고 요구했다. 케냐 정보 당국이 내놓은 자료를 종합하면, 웨스트게이트 쇼핑몰 사건을 주도한 것은 6명으로 구성된 ‘세포조직’이다. 일부에선 이들이 사건에 앞서 쇼핑몰 내부 또는 인근 건물에 입주해 치밀하게 사전 준비 작업을 했다는 주장까지 내놓기도 했다. 이제 ‘시인’을 만날 차례다.

언론의 용의선상에 오른 ‘루스웨이트’

“소말리아인이 대부분인 테러범들 틈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여성의 목소리를 들었다.” 인질극이 한창이던 때, 등 외신들은 현장에서 극적으로 탈출한 생존자들의 말을 인용해 이렇게 전했다. 사건이 막바지에 다다른 9월24일엔 우후루 케냐타 케냐 대통령이 직접 국영방송에 출연해 이렇게 주장했다. “영국인 여성 1명과 미국인 3명이 사건에 연루돼 있다는 정보 당국의 보고를 받았다. 지금으로선 구체적으로 확인하기 어렵지만, 전문가들이 테러범의 국적 확인 작업을 벌이고 있다.”

케냐타 대통령의 말과 달리 조셉 올레 렌쿠 내무장관도, 샤바브의 대변인을 자처한 인물도 전혀 다른 주장을 내놨다. “여성은 이런 사건에 참여시키지 않는다”는 거였다. 그럼에도, 세상의 관심은 온통 ‘영국인 여성 1명’에 쏠리기 시작했다. 이른바 ‘화이트 위도’(백인 과부)로 불리는 서맨사 루스웨이트 말이다. 특히 영국 언론들의 관심은 ‘스토킹’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텔레그래프> 등 영국 언론의 보도를 종합하면, 루스웨이트는 1983년 12월5일 태어났다. 출생지에 대해선 북아일랜드의 밴브리지라는 설과 영국 버킹엄셔라는 설로 엇갈린다. 직업군인 출신인 아버지가 1970~80년대 북아일랜드에 주둔하던 당시 현지 여성과 결혼해 가정을 꾸렸기 때문이다. 다만 런던 북부 버킹엄셔의 에일스베리에서 줄곧 자란 것은 분명해 보인다.

루스웨이트가 만 11살 때인 1995년 그의 부모가 별거에 들어갔다. 이 무렵부터 그는 종교서클 활동에 심취하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학교 종교서클 활동에 열심이던 그는 15살 무렵 돌연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셰라피야’란 무슬림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해 주변을 놀라게 했다. 그는 17살 때 무슬림 채팅 사이트를 통해 남자친구를 사귀었다. 자메이카 출신 저메인 린지였다. 두 사람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고교 졸업 뒤 런던대학(SOAS)에 진학해 종교학과 정치학을 전공하던 그는 2002년 린지와 결혼한 뒤, 바로 학업을 포기하고 에일스베리로 귀향했다. 2004년엔 첫아들이 태어났다. 평온해 보였던 그의 삶이 요동치기 시작한 건 이듬해 7월이다. 통근시간대 런던에서 벌어진 동시다발 자살폭탄 테러 사건에 남편 린지가 가담한 게다. 린지는 테러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당시 현지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루스웨이트는 이렇게 말했다.

“런던 참사에 공포를 느낀다.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다. 린지는 사랑스럽고 좋은 남편이고, 훌륭한 아빠였다. 이런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남편은 과격한 이맘(이슬람 성직자)의 영향을 받았다. 그 사람들이 남편을 세뇌시켜, 마음속 가득 독을 품게 만들었다. 끔찍한 일이다.”

이민자 출신 테러범 남편은 참혹하게 숨졌다. 아기의 손을 잡고 우는 가여운 20대 초반의 아내는 둘째를 임신하고 있었다. 그가 타블로이드 신문 <미러>에 개인사를 팔아넘기고 거액을 챙겼다는 일부 주장이 있긴 했지만, 당시만 해도 영국 언론 대부분은 그를 ‘순진한 피해자’로 다뤘다. ‘화이트 위도’란 별칭이 만들어진 것도 잠시, 그는 곧 잊혀졌다.

잠잠하던 루스웨이트가 다시 언론에 모습을 드러낸 건 2012년 3월께다. 그때도 뉴스의 출처는 케냐였다. 앞서 케냐 정부는 2011년 크리스마스 시즌을 전후로 외국인 관광객이 몰리는 몸바사를 포함한 케냐 동부 해안가 일대에서 동시다발 테러를 모의했던 일당을 체포했다. 이 과정에서 루스웨이트의 이름이 등장했다.

당시 케냐 당국은 루스웨이트가 몸바사 외곽에 집 한 채를 빌려 폭탄을 조립하는 한편, 루사 후세인 압디란 이름의 테러범이 2011년 6월 소말리아에서 사살되기 전까지 여러 차례 만나 ‘몸바사 테러’를 모의한 혐의가 있다고 주장했다. 근거가 아예 없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2011년 12월과 1월 사이 케냐 당국은 수사의 고삐를 조였다. 몸바사 외곽의 수상한 집 3채를 수색하던 케냐 당국은 루스웨이트로 추정되는 백인 여성과 마주쳤다. 그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여권을 보여주고 유유히 사라졌단다. 여권이 위조된 사실은 나중에야 알려졌다. 이후 루스웨이트는 다시 자취를 감췄다. 그가 소말리아로 향했을 것이란 추측만 난무했다.

기름 부은 인터폴… 만들어진 범인?

우연이었을까? 지난 9월26일 인터폴은 190개 회원국을 상대로 루스웨이트를 ‘발견 즉시 체포하라’는 이른바 ‘적색경보’를 발령했다. 영국 언론이 다시 들끓기 시작했다. 루퍼트 머독이 발간하는 타블로이드 <선>은 루스웨이트의 학창 시절 사진을 전면에 내세웠다. 제목이 기막히다. ‘천사의 얼굴을 한 영국 여학생, 어젯밤 전세계 수배령 떨어지다’.

타블로이드가 앞장서 치고 나가면 그때까지 점잖게 있던 대판 신문들도 뒤질세라 쫓아갔다. 루스웨이트의 길지 않은 삶은 그렇게 낱낱이 까발려졌다. 이를 두고 <뉴욕타임스>는 “이른바 ‘화이트 위도’에 대한 영국 언론의 호들갑은 가히 집착”이라며 “나이로비 사건과 관련해 그의 혐의 내용을 뒷받침할 만한 구체적인 증거가 전무한데도, 그는 이미 신화적 존재로 등극해 있다”고 꼬집었다.

흥미로운 점은 인터폴의 수배령 전문을 아무리 훑어봐도 웨스트게이트 쇼핑몰 사건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이다. 루스웨이트에 대한 ‘적색경보’의 이유는 2011년 12월 발생한 몸바사 테러 연루 혐의 때문이었다. 그럼 ‘빈라덴 송가’는? 누군가, 의도적으로 흘린 것으로 보인다. 케냐 당국은 2011년 12월 몸바사 가택 수색 당시 총기류·탄약 등과 함께 발견된 노트북컴퓨터와 루스웨이트가 쓴 것으로 보이는 일기장을 발견했다. 케냐인으로 알려진 두 번째 남편과의 사이에서 2009년 태어난 셋째아들까지 삼남매에 대한 얘기와 신앙 고백, 그리고 ‘무자헤딘’(전사)가 되고 싶다는 다짐이 담겨 있단다. 앞서 10월20일 등 외신들이 케냐군이 웨스트게이트 쇼핑몰에서 진압작전 도중 진열된 상품을 약탈했다고 폭로하면서 비난 여론이 들끓던 터였다.

‘화이트 위도’는 어디 있을까? 다시 오리무중이다. 그가 쇼핑몰 진압 도중 사살됐다는 소문도 있고, 진압 과정에서 얼굴을 피칠갑한 채 다른 인질들과 뒤섞여 현장을 빠져나갔다는 주장도 나온다. 루스웨이트가 사건에 가담했는지조차 확인할 길이 없다. 그가 ‘테러범’이란 증거도 현재로선 ‘정황’뿐이다. 그러니 대체, 이게 웬 소란인가?

글 정인환 <한겨레> 국제부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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