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11.04 18:05 수정 : 2014.01.07 10:37

10년 전 전북 부안의 학폐기장 반대 투쟁 때는 표현의 자유가 만발했으나 지금 경남 밀양에서는 송전탑 반대 현수막 한 장 걸기도 어렵다. 지난 10월 밀양 부북면 평밭마을 주민들이 송전탑 예정지 진입로를 막고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한겨레 박승화
대구~부산 간 고속도로 밀양 나들목을 빠져나간 뒤부터 경남 밀양시 부북면 대항리의 평밭마을까지 찾아가는 길은 약 13km다. 밀양 시내도 거쳐간다. 밀양은 지금 ‘전쟁’ 중이다. 그러나 그 길은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 평온한 가을 풍경을 보여주고 사람들 또한 누렇게 물든 들판에서 가을걷이에 여념이 없다. 전쟁의 목소리를 담은 현수막 한 장 걸려 있지 않다. 전운은, 평밭마을로 올라가는 화악산 길목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느낄 수 있다. 비닐하우스형으로 지은 움막과 그 움막을 에워싼 소나무들 사이에 작은 현수막이 펼쳐져 있다. ‘밀양 76만5천 볼트 송전탑 반대 주민 일동’ 명의로 새겨진 글귀도 보였다. ‘핵폭탄보다 더 무서운 할머니들’이라는 제목의 메시지다.

“천혜의 밀양 땅을 죽이지 말라고 한 할아버지, 땅 대신 죽으셨다. 건강, 환경, 사유재산 빼앗지 말라고 철탑 설 자리 앞뒤 동산에 움막을 쳤다. 그서 먹고 자고, 눈물로 유서까지 써두고 24시간 365일 3년째 땅을 지키고 있다. 핵폭탄에도 죽지 않을 영혼들이다. 한전 사람들은 총칼보다 더 무서운 허위 홍보, 공갈·협박, 물질 유혹을 일삼아 마을 공동체 삶의 미덕을 파멸시키고 있다. 한전에 동조하는 못난 주민 몇몇 있지만 주민 분열을 조장하는 한전 폭력 나라 망친다.”

부안과 밀양, 힘의 가시화 차이

이렇게 할 말이 절절할 텐데 길가에 현수막 하나 없습니다, 했더니 움막의 한 주민은 얼마 전에도 밀양 시내에 걸어놨는데 1시간도 채 안 돼 사라졌다고 했다. 현수막 한 장 자유롭게 내걸 수 없는 밀양에서,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불통의 한국 사회를 본다.

그러고 보면 10년 전 전북 부안 핵폐기장 반대 투쟁 때, 한때는 경찰 계엄 상황에서 국가폭력이 극에 달할 정도였으나 위도를 제외한 부안 전 지역은 현수막은 물론이거니와 반대 의사를 보여주는 온갖 기호 행위들로 출렁거렸다. 집집마다 반핵 깃발들, 담벼락마다 반핵 벽화들, 온통 반핵을 상징하는 노란색 물결이었다. 표현의 자유가 무한 질주할 수 있는 해방 공간이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반대 투쟁의 힘이 압도적으로 지배하고 주민들의 권력이 형성됐기 때문이다. 결국 현수막 한 장 걸 수 있느냐 없느냐, 표현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힘, 즉 세력의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밀양은 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싸워왔다. 움막 투쟁만 해도 3년이 되었다. 부안은 전 지역의 군민들이 한데 모여 싸우며 힘을 결집할 수 있었으나, 밀양은 수십 기나 되는 송전탑 자리를 마을별로 저지해야 해서 힘이 분산되는 상황이다. 함께 송전탑을 반대하던 지역이 한국전력과 합의해 상황이 종료되거나 지역 사회단체들이 반대 투쟁에서 빠져나가기조차 했다. 그만큼 밀양은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한국전력은 공권력을 무기로 밀양에서 송전탑 터를 하나하나 점령해가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밀양 송전탑 반대 여론이 급등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0월4일 첫 여론조사에서 59.6%가 찬성하고 22.5%가 반대(한전 발표)했으나, 17일에는 ‘예정대로 공사 진행’이 46.7%, ‘공사 재검토’가 38.8%(JTBC 보도)로 나타났고, 24일에는 ‘예정대로 공사 진행’이 48.2%, ‘일단 중단 후 지역주민과 대화’가 46.9%(<프레시안> 보도)로 나타났다. 10월4일 조사에서 밀양 주민은 50.7%가 찬성하고 30.9%가 반대했다. 밀양 주민들의 여론이 어떻게 변화되고 있느냐는 드러나고 있지 않지만 반대 여론으로 크게 돌아서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송전탑을 둘러싼 문제는 반대 여론이 행동으로 나타날 수 있는 힘의 가시화에 있다.

부안 투쟁과 밀양 투쟁의 공통분모는 반핵·탈핵의 가치에 있다. 부안은 핵폐기물 처리시설을 짓는다는 것이 문제였고, 밀양은 핵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를 초고압선으로 이동시키고자 송전탑을 짓는다는 것이 문제다. 이 모두가 핵발전소 확장 정책과 관련 있다. 이것은 지역의 삶의 문제, 지역주민들이 자기 삶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의 문제다. 따라서 관련 정보가 충분하고 투명하게 공개돼 적어도 해당 지역주민들의 자기 판단과 의사결정이 동반돼야 할 사안이다. 더군다나 핵발전소 문제는 일본에서도 경험했듯이 대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 적어도 민주주의적 의사결정 과정이 중시돼야 할 까닭이다. 그러나 부안에서도 그랬듯 밀양에서도 민주주의가 무시된 악순환의 굴레를 본다.

반핵·탈핵의 공통분모

밀양 주민들의 765kV 송전탑 반대 투쟁은 충분한 공론화 과정과 의사소통을 무시한 채 사업을 강행하려 한 데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2005년에 주민설명회가 있었으나 내용을 제대로 알리지 않은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했다. 주민들은 반대했으나 주민의 의견을 무시하면서 송전탑 공사를 강행했다. 주민들은 신고리~북경남 765kV 송전선로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제기하며 백지화를 요구했다. 특히 밀양 구간에서 근본적인 문제란, 765kV 송전선로가 흔히 볼 수 있는 송전선로와 달리 초고압으로 엄청난 전자파가 나오며 더군다나 이 전자파는 세계보건기구(WHO) 국제암연구소에서 2003년 발암가능물질로 지정됐는데 밀양에서는 이 송전선로가 마을과 너무 가깝고 논밭 위로 지나 주민들 피해가 크다는 점이다.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인 하승수 변호사는 이 점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전자파 때문에 사람이 안심하고 살 수도 없고, 농사도 지을 수 없으며, 부근의 땅들은 재산가치도 없게 된다는 것이 주민들의 호소이다. 실제로 송전선로 주변의 땅들은 거래도 되지 않고 금융기관에서도 담보로 받지 않는다.”(밀양 송전탑 문제 관련 긴급토론회 발제문, 2013년 5월28일)

실제 사례를 보면, 2012년 1월에 분신자살한 이치우 어르신(밀양시 산외면 보라마을)의 경우 삼형제의 시가 6억9천만원 상당의 토지에 대한 실제 보상금이 8700만원에 불과했다. 하 변호사는 또 이렇게 지적한다. “한전이 보상을 비현실적으로 하는 이유는, 제대로 보상하면 765kV 송전선로에 너무 많은 비용이 들어가서 그 자체로 타당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합리한 법 규정을 앞세워 시골 주민들에게 일방적으로 피해를 강요하는 불의한 일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주민들 처지에서 보면 ‘정부와 한전이 동네를 파괴하고 재산을 강탈한다’고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

민주정부에서 탄생한 2마리 괴물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들은 보상 자체를 거부하면서 생존권으로 이어지는 재산권과 건강권(전자파·소음·경관 공해) 등의 문제를 들어 송전탑 자체를 세우지 못하도록 요구했다. 지중화, (다른 지역 기존 송전선로의) 증용량, 우회 노선 등 여러 대안을 제시하고 있지만 정부와 한국전력은 불가능하다며 전력난을 핑계로 공사를 밀어붙이기만 할 뿐 이들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는다. 아니, 이들의 말을 틀어막고 있다. 지난 10월21일 오전, 단장면의 바드리마을 입구에서는 그 단면을 잘 보여주었다. 경찰은 주민을 포위한 상태에서 레미콘 운반 차량들을 송전탑 현장으로 들여보냈다. 몇몇 인근 주민들은 도로 바닥에 주저앉아 거칠게 분노를 토해냈다.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와 밀양 주민들이 그 며칠 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며 송전탑 공사 중단과 사회적 합의기구 구성 등을 요구했지만 묵살당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밀양의 현장을 보고 목소리를 들어달라고 요청했지만 묵살당했다. 국무총리는 10월3일 개천절 행사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화와 타협, 배려와 소통으로 우리 사회를 통합된 선진 공동체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국가권력은 밀양 주민들의 목소리를 틀어막는 데 더 능숙할 뿐이다.

그러나 이런 사태가, 국책사업과 관련해 국가권력이라는 거대한 힘과 공포의 논리로 밀어붙이며 발생하는 사태들이, 박근혜 정부에서만 나타난 일인가. 불통의 권력을 행사했던 이명박 정부에서는 물론이거니와 그 이전 정부들도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여줬다. 이전의 이른바 민주화된 정부들은 막무가내 불통은 아니었지만 밀어붙이기의 고리를 끊어내지는 못했다. 밀양 사태는 노무현 정부 때 이미 불거졌다. 그리고 2003년 부안 핵폐기장 사태 때 보여준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은 부안 주민을 매우 화나게 만들었다. 주민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기는커녕 독단적인 결정을 내린 군수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격려해주었다. 부안 사람들이 그렇게 분노해 싸울 수밖에 없던 것은 반핵에 앞서 민주주의가 실종됐기 때문이다. 민주정부라는데 여전히 비민주적으로 움직이는 국가권력의 기계들, 법적 근거를 교묘히 이용해 법적으로는 문제없는 듯 진행하지만 온갖 탈법을 동원해 해당 주민의 의사는 빙글빙글 무시하는 밀어붙이기식 국가주의 행태는 끊임없이 반복돼왔다. 이게 어디 부안과 밀양만의 일이랴. 새만금사업과 4대강사업 같은 국책사업뿐만이 아니라 국가주의 기계들인 지방자치단체 사업에서도 부지기수다.

동일하게 반복되는 이런 과정에서 어김없이 찾아오는 것은 지역주민들이 국책사업에 대한 찬성과 반대로 갈리면서 서로의 적대감이 심각한 지경으로 깊어진다는 것이다. 부안에서는 심지어 부모·자식, 형제 간에도 이런 일이 벌어졌다. 밀양을 바라보는 아픔과 슬픔이 더 큰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밀양 주민들 사이에도 이런 현상은 어김없이 나타났다. 송전탑 찬성 주민의 집 앞에는 폐쇄회로텔레비전(CCTV)까지 설치해놓았다고 한다. 밀양 주민들은 송전탑 문제로 3명의 대통령을 맞이하고 있다. 그 대통령들은 하나같이 겉으로 국민 통합을 주창하면서도 실제로는 국민 분열을 방조하거나 조장한다. 한국 사회의 오랜 골칫거리 중 하나가 지역감정 문제였고, 지역감정 해소를 내세우면서 그 와중에 진행되는 공동체 지역주민 간 적대감의 형성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책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조장한다. 국책사업이든 지자체 사업이든 이 문제는 전국적으로 광범하게 발생해왔다. 생활쓰레기 소각장 건설 문제로 지자체마다 말썽이 있었고 핵폐기장 문제로 해안 지역들이 떠들썩했다.

감정 악화로 얼룩진 이웃 간 적대감은 그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져 평생 풀리지 않은 채 살아가야 하는 비극을 낳고 있다. 소중한 사회적 자본인 공동체적 삶의 신뢰가 하루아침에 무너진다. 그뿐만 아니라 또 다른 사회적 자본인 사회적 연대를 악의 세력으로 몰아붙인다. 밀양의 연대자들에 대해 새누리당은 ‘외부세력’이니 ‘종북세력’이니 하며 마침내 색깔론의 무기를 휘두르고 있다. 조·중·동류도 가세하고 있다. 비뚤어진 시각이다. 저들이야말로 자기결정권을 정당하게 행사하려는 밀양의 가난한 사람을 찍어누르는 외부세력 아닌가. 국민 통합과 사회적 자본을 중시하는 진정한 지도자라면 폭력적인 밀어붙이기의 강행을 방관하거나 묵인하기에 앞서 이 문제들에 대해 깊이 성찰하고 중용의 정치를 펼쳐야 한다. 그 성찰은 지역주민으로 하여금 말하게 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충분히 듣는 데서 시작해야 할 터인데, 오늘 다시 밀양은 그것의 부재가 반복되고 있다. 한국 사회가 늘 그래왔던 것처럼, 국가폭력을 동반하고 악마의 그림자가 되어.

움막서 뛰쳐나와 거리의 광장으로

부안에서 밀양을 바라보는 까닭이다. 부안 주민들은 승리했지만 핵발전 정책을 전환시켜내지는 못했다. 다른 지역으로 옮겨갔을 뿐이다. 반민주주의적 밀어붙이기 행위는 중단시킬 수 있지만 민주주의적 실천을 확장시키지는 못했다. 부안 주민이 이것들을 다 감당해내야 할 몫은 아니지만 또다시 밀양에서, 그리고 또 다른 밀양들에서 반복되고 악화되는 현실이 역사의 아이러니로 짓누른다. 그럼에도 짓밟고 무시하는 국가권력 앞에 무력하면서도, 고통과 두려움에 처하면서도 무던히도 살아 움직이며 세상을 변화시킬 힘을 가지고 있고 새로운 존재 방식으로 세상과 대화하려는 가난한 사람들, 그들의 정당한 목소리가 있기에 우리는 어떤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역사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투쟁사는 중요한 공통점 하나를 보여준다. 그들은 비로소 말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프랑스 68혁명이 그랬고 가까이는 2002년 부안의 핵폐기장 반대 투쟁에서도 그랬다. 말할 수 없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19세기 후반 쿠바의 시인이고 사상가이자 혁명가였던 호세 마르티는 이렇게 말했다. “이 땅 위의 가난한 사람들과 내 행운을 나누고 싶습니다. 산속의 냇물이 바다보다 더 큰 기쁨을 주는군요.” “단 한 사람이라도 불행한 사람이 있다면 그 누구도 편안하게 잠을 잘 권리가 없다.” 밀양의 가난한 할머니들, 그들은 말하고 싶어 한다. 공권력에 갇혀 떼쓰듯 욕설을 섞어가며 분노를 표출하게 하지 말고, 산중의 움막을 뛰쳐나와 거리의 광장에서 말하도록 하자. 그리고 경청하자. 불행하게, 아픔과 비극으로 내몰지 않고, 너나 나나 편안하게 잠잘 수 있으려면. 그들의 이야기가 곧 우리의 이야기니까.

글 고길섶 <문화과학> 편집위원과 문화연대 편집위원장 활동을 했으며, 지금은 전북 부안·고창에 살면서 지역문화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부안 끝나지 않은 노래> <스물한 통의 역사진정서> <소수문화들의 정치학> <어느 소수자의 사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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