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11.04 17:59 수정 : 2014.01.07 10:37

이강오: 서울그린트러스트 사무처장은 “망가진 도시생태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인간사회의 문제를 푸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한다.
인도 서벵골주의 주도 캘커타(현 콜카타)시의 헌장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 ‘도시는 문제가 아니라 해법이다.’ 도시 문제를 푸는 것은 지구 생태 문제를 푸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학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도출한 결론이다.

그리고 그들과 같은 생각을 하는 남자가 있다. “내 사고방식이 산에서 도시로 내려왔다.” 숲에 묻혀 살고 싶었던 그를 도시로 이끈 건 육신이 아닌 영혼이고 사명감이었다. 그리고 어느덧 10년째 서울의 생태를 고민하고 있다.

이강오(46) 서울그린트러스트 사무처장. 그를 휴일의 가을 햇살 아래 광합성하기 딱 좋은 곳, 성수동 서울숲에서 만났다. 그는 영국 과학자 제임스 러브록의 책 제목처럼 <가이아의 복수>를 막기 위해 지속 가능한 발전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후퇴, 즉 ‘생태를 위한 후퇴’를 서서히 준비하고 있었다.

열대림에서 도시로 내려온 숲전문가

이강오 사무처장이 서울에 눌러앉게 된 것은 전혀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군사정권 시대에 학생운동권(서울대 임학과 86학번)이던 그는 대학원 진학 뒤 필리핀·스리랑카·인도 등지로 현장 공부를 하기 위해 떠났다. 자본의 침투 앞에 산림의 절반 이상이 남벌로 파괴된 곳이 있는가 하면 천혜의 원시림을 간직한 곳까지 동남아시아의 열대림은 인간과 자연의 파괴와 공존이 함께 살아 숨쉬는 곳이었다. 박사과정 때는 이른바 ‘머슴살이’를 한 독특한 이력도 지녔다. 참나무 표고버섯 연구를 위해 경기도 용인의 농부 집으로 무작정 들어간 것이다. 먼 산을 보고도 단박에 그곳의 참나무들의 총값을 알아맞히던 그를 현장의 스승으로 모셨다. 그리고 탁상공부를 접었다.

숲을 찾아다니던 그가 도시에서 숲 가꾸기를 시작한 것은 2002년 ‘서울그린트러스트’ 운동에 동참하면서부터다. 1997년 외환위기 뒤 만들어진 시민단체 ‘생명의 숲 가꾸기 국민운동’(이하 생명의 숲) 활동으로 한국의 숲을 경험한 뒤 필리핀으로 다시 갈 채비를 할 때 제안을 받았다.

“많이 고민했어요. 어느 날 불암산에 올라가 서울을 보니 정말 엉망이더군요. 그전부터 시민운동을 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는데 의미 있겠다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이렇게 오랫동안 도시 문제에 얽힐 줄 몰랐어요.”

우리나라 산림 생태계의 가장 큰 문제는 산에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박정희 정권 때 산림녹화사업으로 화전민들을 내쫓고 산은 절대보호구역이 되었다. 농부들도 화학농법이 일반화되자 더 이상 산에서 유기물을 얻지 않았다. 산을 가까이 하게 만드는 각종 이야기, 즉 미신 같은 것도 함께 사라졌다. 산림 생태계 보전에 중요한 기능을 했던 이야기가 없어지면서 숲을 가꾸려는 의지도 없어졌다.

그는 도시 문제를 푸는 것이 농촌 문제도 푸는 지름길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기회가 되면 ‘5도2촌’(5일은 도시에서, 2일은 농촌에서 살기) 사업을 해볼 생각이다. 농촌이 가진 인프라, 즉 체험마을 등을 잘 활용하면 도시민이 귀촌을 하지 않더라도 농촌에 의존하는 삶을 살 것이다. 그는 실제 충북 괴산 솔매마을에 또 다른 터를 잡고 도촌 이중 생활을 하고 있다.

미국 뉴욕의 빈민가였던 브루클린에 세워진 프로스펙트파크는 녹지를 넘어 녹색의 공공성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센트럴파크가 도시민들의 ‘문화적 피난처’라면 프로스펙트파크는 흑인 청소년들을 품음으로써 진학률을 높이는 ‘사회적 피난처’ 역할을 하고 있다. 청소년 문제뿐만 아니라 노인 문제 해결책도 녹색에 있다. 중국 상하이의 루쉰공원(윤봉길 의사가 폭탄을 투척했던 옛 훙커우공원)은 노래·기타·붓글씨 등 노인들의 온갖 자발적 커뮤니티로 유명하다. 우리네 탑골공원과 대비되는 풍경이다.

서울숲을 뉴욕 프로스펙트파크로

그가 서울그린트러스트에서 서울숲 공원 운영 사업을 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떻게 하면 프로스펙트파크나 루쉰공원처럼 녹색과 공공을 연계시키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처음 서울숲이 생기고 주민들과 마찰도 많았다. 주민들이 유원지 문화에 길들어 있어선지 공원을 술 마시고 화투 치는 공간으로 사용했다. 그가 처음 펼친 사업은 엉뚱하게도 책 읽는 공원이었다. 수년간 지속적인 관리로 책 읽고 산책하고 조깅하는 문화가 정착됐다. 하지만 아직도 관리의 주체는 관이다.

“공원에 여러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들에게 주인의식을 갖게 하는 것이죠. 공원은 그들이 관리하고 서비스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입니다.”

아름답기만 한 서울숲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서울숲 안에는 삼표레미콘, 승마장, 아리수정수센터 등 녹지와 상반된 공간이 존재하며 겨울에는 이용률이 현저히 떨어진다. 일반인에게는 생소하게 들리겠지만, 공원에 나무가 많은 것도 고민이다. 우리나라 공원은 처음부터 완성형으로 만들어놓아서 나무들이 너무 빼곡히 살고 있다. 마치 인간처럼 ‘서울살이’를 하고 있다.

하지만 대규모 공원의 가장 큰 우려는 다른 곳에 있다. 원주민을 위한 녹지가 아닌 일부 계층의 전유물이 될 가능성 때문이다. 서울숲 입구에도 이물스러운 초고층 주상복합 빌딩이 있었다. 한 채에 수십억원씩 하는 이곳의 입주민들이 서울숲을 앞마당처럼 독차지하는 구조였다. 원주민들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입주민들이 일부 부지를 공공도로로 내주었지만 기자가 보기에 주택가에서 접근하기는 원활치 않았다. 시민들의 녹지 공간을 위해 공공자금을 투입한 대규모 공원이 주변 집값 상승을 부추기고 원주민을 내쫓는 역설적 상황이 된다면, 대규모 공원의 어둠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서울숲에서 직선으로 불과 10여m 거리에 있는 성수동 재개발 예정 지역의 한 2층 주택에 들어가 있는 서울그린트러스트 사무실에도 서울숲의 향기는 미미했다. 서울숲과 사무실 사이에 녹색의 점점이 미약하기 때문이리라. 오래된 연립주택들만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사무실 옆 연립주택은 많은 사람들이 떠나고 바뀌어서인지 여유 공간이 많은데도 을씨년스러웠다. 담은 무너지고 화단은 망가져 있었다. 이강오 사무처장의 문제의식은 여기서 출발한다. 대규모 공원의 기능과 소규모 동네 공원의 기능 분리이며 생활 속 녹지의 필요성이다.

그는 녹지의 종착점인 숲으로 가는 가장 중요한 동기를 동네 공원과 도시 텃밭으로 생각하고 있다. 직접 채소를 기르고 열매를 따 먹는 행위 자체가 자연과 멀어졌던 관계를 회복하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현재 서울은 산과 강을 포함한 경계까지 치면 거의 절반이 녹지지만 순수 공원 녹지로 지정된 곳은 20% 정도다. 녹지지표에서 중요한 1인당 생활권 공원 녹지 면적은 4.9m²로1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의 최저 권고 기준(9m²)에 크게 못 미친다.

그런 점에서 대규모 공원보다는 저층 주거지역에 마을 인프라로 동네숲이나 도시 텃밭을 조성해주는 게 서울에서는 훨씬 더 중요한 원칙이 될 수 있다. 서울그린트러스트는 현재 동네숲 26개를 조성 중이며, 문래철공소 도시 텃밭과 같이 텃밭을 원하는 공동체 100여 곳(주머니 텃밭은 3만여 개)을 지원해왔다.

“최근에 한 재개발구역에서 조경디자인 공모를 했는데 3등이 레인가든 등 수경관 콘셉트, 2등이 힐링소나무 숲과 안마당 콘셉트였어요, 1등이 뭔지 아세요? 텃밭이었습니다. 녹지 공간도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는 증거죠.”

밀양의 고민 이강오의 해법

기후 문제를 이야기할 때 ‘개구리 안 냄비’를 비유한다. 뜨거운 물에 넣으면 튀어나오는 개구리는 서서히 달구면 열기를 못 느끼고 죽음을 맞이한다. 비유가 맞다면 우리는 서서히 달궈지는 환경 재앙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앨빈 토플러가 <미래의 충격>에서 “어느 날 갑자기 다가서는 충격이 인간에게 커다란 파문을 가져올 것이다”라고 말한 ‘충격’에 기초해서만 시민들은 생태 문제를 각성할 뿐이다. 10년간 생태운동을 한 활동가가 “10년간 했는데도 남은 것이 없다”고 푸념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1991년 낙동강 페놀 사건이 환경오염에 대한 인식을 바꿔놨다면,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는 먹거리에 대한 인식을 바꿔놨다. 두 사건 모두 우리 생활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하지만 메가톤급 ‘충격’으로 생각했던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여진에 그치는 모양새다. 원전 공포에 대한 각성의 계기는 됐지만 ‘님비’ 앞에서 확산은 멈춘 듯하다. 서울 시민들은 한강에 원전이 만들어져 직접 영향권에 들지 않는 한 원전 공포에 둔감할 것이다. 서울로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해 경남 밀양 노인들에게 절대적 피해를 강요하는 상황에서 분노하지 않는 이유다.

이강오 사무처장은 전문적인 반원전 활동가는 아니지만 에너지 문제도 도시에서 해결책을 찾는다. 문화적 해결이다.

현재 서울의 에너지 자급률은 3% 정도다. 미국의 한 에너지 전문가의 발표에 따르면, 서울의 옥상 면적이 전체 면적의 21% 정도 되는데 태양광에너지를 이용하면 자급률을 15%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고 한다. 그는 비용 문제로 주택에 가정용 태양광을 설치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시가 지속적으로 지원사업을 진행한다면 충분히 자급하는 토대를 만들 수 있다고 기대한다. 또한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해 도시에서 공동체 문화가 되살아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치냉장고는 에너지 소비의 주범이자 나눔의 공동체 문화를 없앤 장본인이다. 동네마다 지하에 저장고를 만들어 공동으로 사용하면 되는데 시민들의 공동체 문화가 형성돼 있지 않아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싱가포르에선 닭의 자급률이 높은 편인데, 옥상에서 닭을 기르는 문화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란다. 우리나라 같으면 민원이 빗발칠 일이다.

요즘 이강오 사무처장은 스스로 “환경운동을 하는 것 같지 않다”고 말한다. 마을 속으로 들어간 뒤 공동체 운동을 가미한 “사회운동을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환경문제를 삶의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고 실질적인 결실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에게 힘을 실어줄 녹색당의 출현은 반갑지 않을까.

비제도권에서 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제도권 진출은 사회변혁을 위한 기회다. 그 역시 지역운동에서 구의원과 구청장이 중요하다고 말할 정도다. 그러나 그는 운동의 순수성을 잃기 싫어서인지 정당 활동에 관심이 없었다. “당 활동을 하면 이걸 못하니까.” 그는 철저히 현장주의자다.

독일 녹색당은 통독 뒤 옛 동독 지역을 공략할 전략으로 녹색 의제에 노동 의제를 더했다. 당시 동독은 화폐개혁으로 실업이 사회문제로 대두되던 때였다. 사회민주당이 버젓이 제1야당으로 존재하던 때에 당원들과 지지자들이 보기에도 조금은 의외의 결정이었다. 생태 사회주의자 앙드레 고르의 주장인 ‘노동시간 단축’이 녹색당의 선거 슬로건으로 전면에 등장했다.2 녹색를 넘어서 노동이란 또 하나의 날개를 추가한 것이다.

그 역시 녹색에 공동체를 더했다. 녹색 의제를 넘어 녹색의 가치를 더 증폭시킬 수 있는 공동체라는 사회운동의 병행이었다. 그리고 거대한 생태계가 아닌 일상의 생태계 속으로 들어갔다. 서울그린트러스트가 동네숲과 텃밭을 통한 공동체 운동에 천착하는 이유다. 그의 의도대로 성수동 사무실은 주민들로 북적였다. 외벽 간판도 딱딱한 서울그린트러스트가 아니라 ‘녹색공유센터’로 달았다. 사무실 마당에는 아이들을 위한 씨폭탄(흙 속에 씨앗을 넣고 주먹밥 모양으로 만들어 아이들이 투척하게 하는 녹색 놀이 도구), 기타 화분, 페트병 온실, 화분 의자 등 녹색과 함께하는 다양한 아이디어 기구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는 도시생태에서 공동체 운동이 왜 중요한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서울 같은 대도시의 생태계는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습니다. 그동안 나 자신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망가진 도시생태 공간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왔는데, 포커스가 잘못 잡힌 거죠. 문제는 도시생태계를 구성하는 인간에게 있었습니다. 인간사회의 문제를 푸는 것이 도시생태 문제를 푸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민주주의, 주민자치, 공동체운동과 도시생태운동이 분리될 수 없는 이유죠.”

공동체 운동과 공공의 재구성

이강오 사무처장은 또 ‘공공의 재구성’을 구상 중이다. 책 출간도 염두에 두고 있다. 열대림에서 도시로 내려와 숲을 가꾸고, 도시 텃밭을 통해 공동체운동을 경험한 것이 자산이 됐다. 공공의 재구성은 관 주도의 사업에서 벗어나 주민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직접 사업의 주체가 되는 것이 핵심이다. 그는 서울 땅의 대부분을 공공의 공간으로 여긴다. 모든 골목과 공터가 대상이다. 하지만 누구도 그런 생각을 안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공 공간을 대규모 공원 등 몇몇 장소로 한정해 생각하는 협의의 개념에 매몰돼 있다.

미국 시애틀의 ‘커뮤니티가든’이 모델이다. 커뮤니티가든은 시애틀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세금을 더 걷어 공원을 만들고, 방치되거나 버려진 공유지를 개간해 도시 텃밭으로 만든 곳이다. 공무원들은 시민들이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는 인프라를 제공해주고 물을 공급했다. 그리고 시민 스스로 리더십을 갖게 했다. 그 외에는 손대지 않았다.3

“예를 들어 내 집 앞 눈 치우기 조례를 어겼을 때 벌금을 내듯이 지금까지 공공성을 전적으로 시 행정에 의존했습니다. 하지만 공공성은 세금을 낸 만큼만 관에 위탁한 것일 뿐이에요. 나머지 부분은 시민들의 것입니다. 서울숲 같은 경우에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커뮤니티를 만들고 공공성을 확충할 수 있습니다. 방치되거나 버려진 공간을 개간해 텃밭을 만들 수도 있고요. 대부분이 정부나 시 소유의 공간이지만 시민들의 재산이기도 합니다.”

글 김원일 기자 nirvana@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1 ‘글로벌 톱5 도시를 향한 서울시의 인프라 투자방향’ 연구보고서, 서울대 도시계획연구실 등.

2 <미래가 있다면, 녹색>, 최백순, 133쪽.

3 이강오 사무처장이 번역한 <시애틀의 도시농업 이야기> 중.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