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11.04 17:49 수정 : 2013.11.04 17:49

하승수: 서울대를 졸업하고 공인회계사로 일하다 1995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참여연대 첫 상근변호사·협동사무처장으로 활동하며 소액주주운동,조세개혁운동, 정보공개운동, 예산감시운동 등을 이끌었다. 제주대 법대 교수,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소장을 지냈다. 이후 녹색당 창당에 참여했고, 현재는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 하승우: 경희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와 경희대에서 각각 정치학 석사와 박사 과정을 마쳤다. 한양대 제3섹터연구소·경희대 교수를 지냈고, 2007년엔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지행네트워크’를 만들었다. 현재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운영위원이자 교육공동체 벗 조합원, 녹색당 평당원이다. 최근 땡땡책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유행가 가사처럼 한번쯤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을 상상해본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백년 살고 싶어.” 굳이 님과 함께가 아니더라도 소음과 매연, 마천루와 전깃줄에 휘감긴 도시와 문명을 떠나 자연에서 여유를 찾고 싶어 하는 건 현대인의 공통된 바람이다.

안타깝게도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자연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개발과 토건, 또 환경파괴 앞에서 자연은 신음하고 있다. 인간도 자연의 재앙 앞에서는 무기력하다. 2011년 3월 일본을 휩쓴 쓰나미와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여실히 보여줬다. 환경 대신 물질문명을 중시하는 인간에 대한 경고일까. 원자력발전은 우리가 배운 것처럼 안전하고 경제적이지 않았다. 여기 이 두 사람, 하승수(46)·하승우(43) 형제에게도 이날 후쿠시마 사고는 큰 충격이었다.

“한순간에 파괴되는 인간과 삶의 터전을 보면서 토건사회에서는 인간이 행복할 수 없다는 걸 알았죠.”(하승수)

“이제 원자력발전 문제를 남의 집 불구경하듯 바라봐서는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하승우)

두 형제는 각자 그날을 계기로 그때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 어쩌면 그때까지의 삶을 좀더 급진적으로 밀고 가는 것일 수도 있다. 생태와 환경, 풀뿌리 민주주의를 우리 사회의 의제로 삼고, ‘녹색인’1이 되기로 결심한다. 형 승수씨는 녹색당으로, 동생 승우씨는 풀뿌리 지역 공동체를 이전보다 더 구체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승수씨는 2011년 녹색당 창당 과정에 결합했고, 현재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다. 승우씨는 교수라는 안정된 직업을 버리고, 지역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교육과 공동체 모델을 현장에 접목할 방법을 구상 중이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비슷한 시기에 각각 충남 홍성과 충북 옥천이라는 농촌 지역으로 이주를 실행했거나 실행 중이다. ‘녹색정치’와 ‘풀뿌리 민주주의’를 몸소 실천하기 위해서다.

두 형제를 찾아갔다. 경남 밀양으로 대변되는 권력과 물질문명의 중앙집중, 그 안에서 핍박받는 지역의 약자의 문제 해결 방안으로 녹색당을 주목했기 때문이다. 또 이들은 개발과 성장, 물질이 아닌 지역에서부터 실현되는 민주주의, 행복과 공존을 중시하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그 구상들을 실천하려 한다.

두 사람의 불문율은 비슷한 공간에서 활동하더라도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거나 간섭하지 않는 것이다. 활동 공간에서 함께 마주하는 것도 가급적 피하려 한다. 이는 각자의 활동과 생활을 존중해주기 위한 일종의 배려다. 그런 두 사람이 지난 10월21일 서울 명동의 한 카페에서 마주했다. 두 사람을 별도의 공간에서 만나 인터뷰했음에도, 사진 촬영을 빌미로 이들을 과감히(?) 불러모았다. 이날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눈을 마주치지 못할 정도로 쑥스러워했다.

“전에는 ‘승수 동생 승우’를 찾던 이들이 요즘엔 ‘승우 형 승수’를 찾아요. 나한테 전화해서 승우 연락처를 알려달라는 사람도 있고, 얼마 전 승우 강의를 들었는데 좋았다고 말해주는 이들도 있어요. 승우 덕분에 유명해지고, 배우는 것도 참 많습니다.”(하승수)

“나한테 형 안부를 묻거나, 연락처를 알려달라는 사람도 많아.”(하승우)

이 두 형제, 훈훈하다.

*

형, 하승수 이야기-

후쿠시마 이후, 녹색당에서 해답을 찾다

먼저 형인 ‘하승수’ 이야기를 풀어보기로 한다.

“요즘 바쁘시죠?”

“네.”

하 위원장은 요즘 몸이 10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강행군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밀양∼홍성∼수도권을 오가는 빡빡한 일정이다. “밀양은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니까요.”

사실 그는 안락한 삶을 살 수도 있는 사람이다. 녹색당 운영위원장이기 이전에 회계사에다 변호사였다. “철이 없어서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스타일”이라며 웃는 그의 표정에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결연한 의지가 묻어난다. 지금 그의 신경은 온통 생태, 환경, 녹색당 그리고 밀양에 쏠려 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그의 삶을 180도 바꿔놓았다. “내 삶은 후쿠시마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스스럼없이 이야기한다.

애초 하 위원장은 2010년 제주대 법학부 교수직을 4년 만에 그만둘 때, 어린이·청소년 운동을 본격적으로 해볼 요량이었다. 단순히 복지와 인권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된 이들이 사회에 대한 시각을 키울 수 있게 하는 활동을 계획했다. 하지만 후쿠시마 사고로 그의 관심은 환경과 생태, 즉 ‘녹색’으로 급격히 기울었다. 2011년 12월2일부터 후쿠시마 사고 1년이 되는 지난해 3월11일까지 매일 정오에 1시간씩 총 311시간 동안 서울 광화문에서 그는 ‘신규원전 부지 선정 반대 1인시위’를 벌였다.

“후쿠시마 이전엔 우리 사회가 유지된다는 전제하에 환경보다 사회·경제적 문제를 고민했다면 이제는 더 이상 우리 사회가 유지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전제하에 생각합니다.”

그가 녹색당 활동에 뛰어든 이유다. 후쿠시마 이전, 하 위원장은 참여연대 상근변호사와 협동사무처장,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소장 등을 거치며 공익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주로 국가권력 감시와 시민권리 회복 운동이다. 반면 지금은 녹색당을 매개로 탈핵과 에너지 수급, 기후변화 등 우리 사회의 생존 문제를 해결할 대안들을 찾고 있다.

“밀양 안에 우리나라의 모든 문제가 들어 있어요. 원자력의 안전성과 경제성, 바닷가 발전소-초고압 송전선-대도시 공급 방식의 전력 시스템 문제까지. 밀양 주민들이 본질을 건드린 겁니다. 초고압 송전선을 마구 건설하는 방식은 주민들의 피해도 크지만 경제적으로도 지속 가능하지 않아요. 또 언제까지 원자력이나 석탄·화력 발전소에 의존할 수 있느냐는 문제도 밀양에서 드러나고 있고요.”

그는 유일한 타개책이 녹색정치라고 봤다. 환경과 생태, 기후변화 대처를 핵심 과제로 삼는 정치세력, 장기간에 걸쳐 이 문제를 정치 이슈화하고 대안을 제시하며 유권자와 소통하는 정당의 존재가 필수적이었다. “임기가 정해진 국회의원과 대통령이 환경이나 기후변화처럼 중·장기적 대책에 매달릴 가능성은 희박하죠. 경제·복지·교육처럼 당장 임기 안에 성과를 낼 수 있는 이슈에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어요. 환경과 생태 문제는 사회 구성원의 가치가 변하고 정책도 바뀌는 방향 전환이 필요합니다. 의식과 문화가 함께 바뀌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립니다. 다시 말해 장기적으로 환경 문제와 대안을 지속적으로 제공하고 이슈화하는 정치세력이 있어야 하는 거죠.”

이런 고민을 하던 즈음, 국내에서도 최초로 녹색당 창당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그가 여기에 결합하는 건 자연스러웠다. 총대를 멜 거라고 예상했을까. 그는 “정당의 윤곽이 나오면 (나 말고) 앞장설 분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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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하승우 이야기-

후쿠시마 이후, 풀뿌리 민주주의에 주목하다

“원전 사고 강 건너 불구경해도 되는 건가?”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본 순간 하승우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운영위원의 머릿속에 든 생각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고향인 부산 인근엔 원자력발전소(고리 원전) 6기가 가동 중이다. 지금껏 부모님이 원전을 걱정하는 걸 한 번도 못 봤다. 학교에서도 원자력이 깨끗하고 안전하다고 배웠다. 원전에 대한 문제의식은 늘 있었지만 핵 관련 자료를 꼼꼼히 찾아보기 시작한 건 후쿠시마 사고 이후다. 비슷한 사고가 우리나라에서 일어난다면? 끔찍했다.

승우씨도 형과 마찬가지로 이후 녹색당을 주목했다. “정당 활동을 좋아하지 않지만, 녹색당이 지금과 다른 형태의 정당 모델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녹색당이 중시하는 탈핵·탈토건·농업·생명·평화·인권의 가치 외에 그는 녹색당이 당 안에서 실현하려는 평등과 민주적 절차를 높이 샀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겪으며 그의 의문들은 식량에너지 위기, 수도권 과밀화, 원전, 기상이변 등으로 범주가 확대됐다. 우리 사회가 너무 이 문제에 안일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형이 녹색당 깃발을 드는 데 총대를 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형은 그에게 “나나 녹색당 신경 쓰지 말고, 네 갈 길을 가라”고 충고했다. 그럼에도 녹색당을 통해 뭔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녹색당 당원이다. “분권화된 지역정당 네트워크가 있으면 좋겠다는 게 평소 생각이었는데, 녹색당에서 실현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녹색인’이지만, 두 형제는 성향도 관심사도 다르다. 형인 하승수 위원장이 녹색당을 통한 생태정치 구현에 천착하는 데 비해, 동생인 하승우 운영위원은 풀뿌리 민주주의와 협동조합에 더 천착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비슷한 시기의 귀촌도 서로 다른 목적과 목표가 있지 않을까.

하승우 운영위원은 이르면 올해 말 늦어도 내년 봄쯤 충북 옥천으로 거처를 옮길 계획이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새로운 가능성과 모델을 옥천에서 찾아볼 요량이다. 다행히 아내인 유해정(38) 인권연구소 ‘창’ 연구원도 지역에서의 인권찾기 활동을 오래전부터 고민하고 있던 터라 어렵지 않게 의견일치를 보았다. 그가 귀촌을 고민한 시기는 2006년쯤이다. 그즈음 지리산 공동학습 프로그램에서 기록 업무를 맡으며 ‘전문가를 지역에 불러오는 방식이 아니라 지역에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떠올린 것이 계기다.

“‘귀촌’ 개념으로 옥천으로 이주하는 게 아닙니다. ‘지방을 어떻게 강화할 것이냐’는 고민에서 출발했어요. 이주 지역으로 여러 곳을 고민하다 최종적으로 옥천을 결정한 것은 <옥천신문>이라는 기반을 높이 샀기 때문입니다. 지역의 소식을 유통하고 고민할 사항을 주민의 관점에서 전달해줄 수 있는 언론이 있는 곳과 없는 곳은 의미가 굉장히 다르거든요. 그곳에서 재미있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그 안에서 파동을 만들기보다는 제가 해온 연구와 네트워킹을 활용해 교육과 문화, 외부 지역과 옥천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그가 생각하는 풀뿌리운동은 권력을 통해 사회를 바꾸는 게 아니다. 그가 옥천에서 당분간 이방인처럼 살면서 점진적으로 관계를 만들어가려고 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그가 생각하는 풀뿌리운동은 권력을 통해 사회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통해 사람을 바꾸는 것이다. 그가 지역으로 내려간다면 그 역시 기존의 그 사회에 맞게 체질이나 마음 등을 바꿔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운동은 권력을 잡는 집권 전략이고, 진보정당도 이 말을 씁니다. 시민단체도 위원회, 거버넌스 등 제도 개혁 중심으로 운영됩니다. 시민을 계몽 대상으로 보는 건데, 반면 풀뿌리운동은 시민들이 함께 그 안에서 회의와 민주적 절차를 거쳐 바꾸는 운동입니다.”

그는 함석헌 선생의 ‘함께 나서 함께 자라 함께 썩어 함께 부활하는 풀’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권력을 가진 자들을 따르며 함께 썩어가는 자도 민중이고, 썩어버린 정치를 갈아엎고 희망의 씨앗을 심는 자도 민중이라는 뜻이다.

녹색당 창당과 무관하게 승우씨가 ‘녹색사상’에 관심을 가진 건 대학교 2학년 때인 1991년의 일이다. 그해 3월 낙동강에 페놀이라는 오염물질이 유출된 사건을 겪으며 생태의 위기를 목도한 것이 계기다. 한살림 선언과 김지하의 생명사상도 그즈음에 접했다. 폴 애브리치가 쓴 <러시아 아나키스트 1905> <러시아 아나키스트 1917>을 읽고 아나키즘과 녹색사상이 서로 배치되는 게 아님도 알게 됐다. 인간과 생명이 살아가는 방식은 경쟁과 적자생존이 아니라 협동하고 돕는 것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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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듯 다른 꼴’ 하씨 형제 농촌 이주

“지역에서 대안을 만들어보자는 게 풀뿌리 정치인데, 후쿠시마를 보니 풀뿌리만 잘한다고 마을이 행복하고 지속 가능한 것은 아님을 알게 됐어요. 후쿠시마 지역에는 생산한 곳에서 소비한다는 ‘지산지소(地産地消) 운동’이 있었어요. 유기농업도 꽤 하고 있어서 일본 생활협동조합에 농산물을 공급하는 생산지 중 하나였죠. 원전 사고 한 번으로 마을 공동체가 망가지는 걸 보고, 풀뿌리 정치만으로 우리 사회에 닥친 위기 상황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겁니다.”(하승수)

승우씨가 ‘지역 강화’를 위해 이주를 선택했다면 승수씨의 귀촌은 녹색당 뿌리내리기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홍성은 일찍부터 유기농업과 협동조합운동이 자리잡은데다 ‘풀무학교’라는 대안학교가 있는 곳이다. 녹색당이 지역에서 자리잡기에 유리한 조건을 갖고 있다. “한 지역에서라도 녹색당의 정책을 관철할 수 있는 정치적 힘을 가질 필요가 있어요. 에너지·먹거리·농업·노동 등의 문제를 녹색당이 어떻게 풀어나가는지 보여줄 수 있는 지역 말이죠. 녹색당의 이념과 정책을 알리기 위해서라도 필요해요.”

하승수 위원장이 요즘 고민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내년 지방자치단체 선거를 어떻게 치르냐다. 당의 이름을 건 지자체장과 의원을 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녹색당은 이미 뼈아픈 상처를 한 차례 입었다. 2011년 창당 뒤 이듬해 국회의원 선거에서 지지율 0.48%(10만3811표)를 얻는 데 그쳐 정당이 해산됐다. 지지율 2%를 넘지 못하면 정당 등록을 취소하도록 한 정당법 때문이다. 지금의 녹색당은 지난해 10월 재창당한 것이다. 그는 지자체 선거를 대중적 기반을 넓히는 계기로 삼고 싶다고 했다. 현재 녹색당 당원은 당비 납부 기준 5천여 명 수준이다. 하 위원장은 “녹색당이 처음 치르는 지방선거인 만큼 당선도 중요하지만 정책 측면에서 좋은 사례나 모델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며 “기존 정당과 다르게, 선거를 돈 안 들이고 치르는 방법도 함께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녹색당의 가치를 공유하는 지역의 시민사회와 생협, 협동조합 등과 함께 만드는 의정활동 모델도 구상하고 있단다. 녹색당이기에 가능한 것들이다.

“녹색당이 지금 우리한테 반드시 필요합니다. 우리는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만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재도 문명의 위기 상황인데, 문제는 점점 더 악화될 수 있다는 거예요. 앞으로 생태환경적인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것이고, 인류 생존 문제까지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닥칠 겁니다.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까요? 어떻게 해야 생존 위기를 겪지 않을까요? 해답은 녹색입니다.”(하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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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도 가능한 생태적 삶

녹색정치를 실천하는 하승수 운영위원장은 2년째 채식 중이다. 일상에서 환경에 부담을 덜 주는 삶, 소박한 밥상과 소비를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홍성에 집을 지으면서 초소형 태양광발전기를 설치했다. ‘녹색인’은 농촌에서만 가능한 것일까. 그는 “도시 사람들이 다 귀촌·귀농해야 녹색 생활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도시와 농촌의 균형, 즉 농촌과 농업이 중요하듯 도시를 지키는 일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도시에서 실천할 수 있는 녹색·생태적 삶은 어떤 모습일까. “베란다 텃밭에서 상추라도 키우고 사는 게 중요합니다. 작은 실천이오.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야 녹색당의 정책과 방향에 공감할 수 있게 되거든요. 도시에 살면서도 녹색에 가깝게 사는 것이란 물과 전기 등을 덜 쓰고, 소박한 먹거리를 생활화하고, 주변에 채소나 식물을 가꾸는 것이겠죠. 주위 사람들과 협동적인 관계를 맺는 모임을 만들고, 가족·학교 등의 일상에서 민주적 의사결정을 실천하는 것도 녹색의 삶이죠. 녹색당 당원 중에는 귀농하거나 농촌에 사는 분도 많지만, 다수가 도시에 살고 있어요. 생태적 삶은 도시에서도 충분히 가능합니다.”(하승수)

하승수 위원장은 “녹색당을 풀뿌리에 기반한 ‘좋은 정당’으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하승우 운영위원 역시 녹색당에서 지향하는 가치 속에서 풀뿌리 민주주의가 조금이나마 구현될 수 있다고 봤다. 풀뿌리 민주주의를 떼어놓고 생태와 자연, 녹색을 실현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뜻으로 들렸다. 녹색당은 여성, 청소년, 장애인, 성소수자 등 기존 정치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소중하게 여긴다.

우리 사회는 국가 차원의 민주주의를 강조하면서도 지역 등 작은 공간에서의 민주주의는 묵살해왔다. 가정과 학교, 기업에서조차 권위와 폭력이 범람한다. 도시와 중앙 엘리트 중심의 민주주의와 정치가 지역과 농촌의 약자들을 억압해왔다. 국가 차원의 민주주의는 강조하지만, 지역이나 더 작은 공간에서의 민주주의는 무시되는 게 현실이다. 밀양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단적인 예다. 이 땅의 민주주의가 올바르게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현재의 대의민주주의가 아니라 직접민주주의를 경험하고 민주적 절차를 실천하는 토대가 마련돼야 한다.

지난 3월16일 열린 녹색당 첫 전국대의원대회에서 전국 대의원 146명을 100% 추첨으로 선출한 것은 유례를 찾기 힘든 실험이다. 시민의 의견을 정치에 반영하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당 안에서부터 회복하려는 시도여서 더욱 의미가 있다. 국가 차원의 민주주의가 정착하려면 이보다 더 작은 단위의 민주주의가 먼저 자리를 잡아야 한다. 아직은 미미하지만 녹색당이, 하씨 형제들이 그 역할을 조금씩 해나갈 것이라는 기대를 품어본다. 하씨 형제가 홍성과 옥천에서 새롭게 일구게 될 마을과 공동체가 우리나라 녹색정치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그 가능성이 우리의 건강과 행복,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작은 밑거름이 되기를!

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1 <나·들>이 두 형제에게 붙여본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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