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11.04 17:38 수정 : 2013.11.04 17:38

희망식당 ‘하루’가 시즌2로 돌아왔다. 지난 10월9일 서울 대학로 ‘벙커1’에서 음악다방 형식으로 문을 연 ‘하루’에서는 1만원으로 뷔페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이날 심보선 시인(오른쪽)이 일일 DJ로 활약했다.사진가 정택용
희망식당 ‘하루’는 밥집이다. 2012년 3월 조용하게 연 이 식당은 서울 지하철 상도역 부근 1호점을 시작으로 5호점(서울 지하철 상수역 부근 2호점·충북 청주 3호점·대전 4호점·대구 5호점)까지 늘어났다. ‘하루’는 한 끼 식사를 해결하는 평범한 밥집 같지만, 만들어가는 사람들은 조금 다르게 모였다. 사장도 종업원도 요리사도 손님도 없다. 희망식당에 찾아오는 모든 사람이 사장이고, 종업원이고, 요리사이고, 손님이다. 일반 식당을 빌려 일주일에 하루만 문을 연다. 메뉴는 매주 다양하게 바뀐다. 가격은 5천원이지만, 더 내도 상관없다. 밥과 반찬 모두 무한 리필이 가능하다. 술은 팔지 않지만 1인당 1병씩 가져와 마셔도 된다. 좀체 돈을 벌기 어려울 것 같은데 이상하게 그럭저럭 모였다. 그 돈은 다 비정규직, 해고노동자들이 힘겹게 길거리 투쟁을 하는 사업장에 후원금으로 전달됐다. 그런데 나름 유명세를 타던 희망식당 ‘하루’가 지난해 12월, 5호점을 빼고 모두 문을 닫았다. 유령처럼.

유령처럼 닫더니 음악 싣고 또 왔네

2013년, 희망식당이 다시 문을 열었다. “다시 식당 문을 열 것을 그때 왜 닫았느냐?” 희망식당 기획자인 블로거 ‘오후에’는 “처음 준비할 때부터 2012년 한 해만 하겠다고 밝히고 시작한 것이니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사실 그는 2012년 말 희망식당 문을 닫은 날부터 희망식당 시즌2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형식을 달리하는 것을 비롯해 장소 섭외 등 고민거리가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희망식당 시즌1이 그랬던 것처럼, 소리·소문 없이 희망식당 ‘하루’ 시즌2가 시작됐다.

지난 10월9일 서울 대학로에 위치한 ‘벙커1’에 희망식당 ‘하루’의 현수막이 걸렸다. 시즌2는 밥집이 아닌 음악다방이 콘셉트다. DJ가 있고, 사연이 있고, 음악이 있다. 결정적으로 희망식당에서 밥이 빠질 수 없다. ‘밥 한번 먹읍시다’를 실천하기 위해 시작했다는 희망식당. 이 말은 사람들이 기쁜 일이 있을 때, 슬픈 일이 있을 때, 친구를 만났을 때 습관처럼 자주 쓴다. 희망식당은 이렇게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말에서 착안해 출발했다.

희망식당은 애초 주객이 따로 없다. 영업 전부터 각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준비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다. 누군가는 음향기기를 나르고, 테이블을 정리하고, 음식을 차리고, 현수막을 건다. 이들은 서로 잘 알지 못하는 사이다. 눈인사만 가볍게 나누고는 그저 ‘함께하는 사람이구나!’ 느낄 뿐이다.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는 사람들인지, 왜 이곳에 있는지 등은 자세히 모르지만 희망식당의 취지와 목적에 서로 교감하며 즐거워한다.

식당 안 무대에 작은 현수막이 내걸린다. ‘희망식당 시즌2 <친친만! 친구의 친구 만나기> “친구야 밥 한번 먹자~”’라고 쓰여 있다. 그리고 작은 현수막 앞에 원형 테이블과 의자가 놓이고, 테이블에 행사 순서지가 놓인다. DJ 자리가 만들어진다. 음악다방 콘셉트인 만큼 객석의 사연을 받아 소개하고 사연에 어울리는 신청곡도 틀어야 한다. 음악을 담당하는 사람은 인터넷을 연결하고 실시간 신청곡이 들어오면 곧바로 틀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한다. 조금은 상기된 얼굴이다.

식당 입구 쪽에선 테이블이 정리되고 이어 보기에도 맛깔스러운 음식들이 놓인다. 뷔페 음식이다. 희망식당 시즌1에서는 메뉴판에 적힌 음식을 주문하면 무엇이든 5천원을 받았다. 주문과 동시에 주방에서 재료를 다듬고 음식을 만들어 손님들의 식탁에 올렸다. 희망식당 시즌2는 식당에 들어올 때 무조건 1만원을 낸 다음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방식이다. 영업시간은 오후 6시부터 밤 10시까지다. 이날 음식은 전국금속노동조합 삼성지회 조합원들이 직접 만들어서 가져왔다. 이들은 에버랜드에서 음식을 만드는 셰프다. 형형색색의 빛깔을 뽐내는 김밥과 롤, 싱싱한 채소 샐러드, 담백하고 구수한 수프와 시원한 물국수 등은 보기만 해도 입맛을 돋우기에 충분하다.

팻 메스니의 <워터컬러>(Watercolor) 오프닝 음악이 영상과 함께 나온다. 시즌2는 식당을 여는 날마다 1일 DJ가 있다. 이날의 DJ는 심보선 시인이다. DJ석에 자리잡은 그는 식사를 하고 있는 손님들에게 사연과 함께 신청곡을 적어 무대로 보내달라고 이야기한다. 처음엔 어색하게 반응하던 사람들이 하나둘 사연과 신청곡을 적기 시작한다. 식당 문을 닫기 직전까지 밀려드는 사연과 신청곡을 모두 소개할 수 없을 만큼 쪽지가 들어온다. (신청곡이 들어오지 않으면 어쩌나 싶어 사전에 준비했던 음악들은 결국 한 곡도 틀 수 없었다.)

심보선 시인은 인사를 한 뒤 곧바로 희망식당 기획자인 블로거 ‘오후에’를 소개하고 그를 무대 위로 불렀다. 희망식당을 다시 기획하고 문을 연 까닭은 뭘까. 그는 가볍게 웃으며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희망식당을 왜 안 하느냐’고 해서 다시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밥을 구하기 위해 일하러 나갔다가 누군가의 밥이 되어 돌아온 해고노동자들의 문제는 여전합니다. 나도 내 밥벌이를 하느라 해고노동자들과 항상 함께하기 힘들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노동자 아닙니까. 서로서로 따뜻한 밥 한 끼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해고자가 아니더라도, 누군가에게 밥이 되어버린, 또 언젠가 누군가의 밥이 될지 모르는 한시적인 위험에 놓여 있는 우리 사회의 모든 노동자, 실업자 혹은 청년들과 따뜻한 밥 한 끼 나누기 위해 다시 희망식당을 오픈하게 되었습니다.”

이어 신청곡이 식당 내부에 흐르고, 손님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웅성거리며 희망식당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희망식당을 모르고 온 사람들은 입장료를 내기 위해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서둘러 매표소 쪽으로 가기도 한다. 서울 대학로에 있는 ‘벙커1’은 사실 꽤나 알려진 곳이다. 이곳을 운영하는 딴지그룹은 “이명박 정권 5년간 각개전투로 병력을 소진한 아군들을 위해 개설한 마지막 진지”라고 벙커1을 소개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벙커1에는 희망식당 오픈 시간인 오후 6시 이전부터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이들 역시 희망식당의 취지와 의미를 공유하고 동참하는 모습이었다.

쌍용차 해고자 사연에 울고 웃고

무대 위에서 오늘의 음식을 준비한 삼성지회 조장희 부지회장이 인사를 한다. 조금은 머쓱한 표정으로 “전날 야근을 하고 새벽부터 음식을 준비했다”며 “부족하더라도 맛나게 먹어달라”고 당부한다. 사연이 적힌 신청곡들이 쉴 새 없이 들어온다. 특별한 내용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친구와 듣고 싶은 곡들을 적는다. 장르도 다양하다. 팝송, 가요, 클래식, 민중가요…. 이날 DJ를 자처한 심보선 시인을 보러 온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시인의 시를 신청한다. 심보선 시인은 “제가 쓴 시지만 외우지 못하니 틀려도 이해해달라”며 살짝 부끄러운 미소를 보인 뒤 멋진 목소리로 시를 낭송한다. 야마가타 트위스터의 <돈만 아는 저질> 뮤직비디오가 영상으로 나오자 모두들 박장대소하며 영상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영상이 꺼지고 무대 위에 허클베리핀이 나온다. 그동안 보여주었던 록밴드의 이미지가 아닌 어쿠스틱한 분위기다. 멋진 콩가, 콘트라베이스, 멜로디언, 기타 소리가 무대를 가득 채운다. 허클베리핀은 “우리는 쌍용자동차 명예조합원”이라며 “언제든 이런 자리에 함께하겠다”고 인사말을 한다. 객석에서 박수가 터져나온다. “새롭게 밴드를 구성하고 첫 공연을 희망식당에서 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겸손한 미덕을 보인다.

이어 심보선 시인이 준비한 음악을 듣는 시간이다. 시인은 첫 곡으로 임재범의 <살아야지>를 들려준다. 이 곡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투쟁 과정에서 가장 많이, 자주 듣는 음악이라고 한다. 음악과 함께 시인은 서울 정동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시시때때로 경찰과 구청 용역들에게 시달리며 농성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두 번째 곡은 고 김광석의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다. 심 시인은 한 일용직 노동자가 자신보다 어린 현장감독과 시비가 붙었고, 이 과정에서 자존심이 상한 노동자가 자신의 아내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우울한 모습으로 술을 마시던 모습을 지켜보다 그 아내가 던진 한마디에 영혼의 울림을 받았다는 사연을 전한다. 궁핍함에 찌든 남루한 인상의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당장 일 나가! 내가 당신에게 일을 나가라고 하는 건 자존심 굽히고 돈 벌어 오라는 게 아냐. 일 안 나가고 여기서 이러는 게 뭐하는 짓인지 알아? 이건 영혼을 낭비하는 짓이야!”

심보선 시인은 살아가면서 만난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음악과 함께 들려준다. 벨벳 언더그라운드(미국 록밴드)의 노래가 흐르고 잠시 뒤 전화벨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울린다. 전화 사연 소개 시간이다. 전화기 너머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고동민씨다. 그는 지난 9월 해고자 복직을 외치며 20일간 단식투쟁을 한 뒤 현재 경기도 평택에서 몸을 추스르는 중이다. 우려했던 것보다 힘찬 목소리에 식당에 모인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그는 김민기의 <아름다운 사람>을 신청곡으로 틀어달라고 했다.

도대체 이 노래엔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 지난 4월 서울 중구청 직원과 경찰들이 몰려와 대한문에 설치된 분향소와 농성천막을 모두 철거해 폐기물 트럭에 실어갔다. 그리고 분향소를 철거한 자리에 거대한 화단을 만들었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은 화단 앞에서 농성을 이어가려고 했다. 그러자 경찰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들을 괴롭혔다. 밤이면 길바닥에 은박지를 깔고 잠자는 해고노동자를 손으로 툭툭 건드리며 “시민에게 불편함을 주니 일어나라”고 하는가 하면, “피켓을 들고 있으면 집회시위다. 불법이니 당장 치워라”는 등 매 순간 모든 사소한 움직임조차 불법 운운하며 노동자들을 괴롭혔다. 이즈음 고동민씨는 우울증과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졌고, 정신 치유 상담을 받았다고 한다. 그때 조용히 흘러나오던 김민기의 <아름다운 사람>이 그의 가슴에 깊이 남았다. 뭔가 편안하게 치유되는 느낌이었다고.

“어두운 빛 내려오면

처마 밑에 한 아이 울고 서 있네

그 맑은 두 눈에 빗물 고이면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세찬 바람 불어오면

벌판에 한 아이 달려가네

그 더운 가슴에 바람 안으면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새하얀 눈 내려오면

산 위에 한 아이 우뚝 서 있네

그 고운 마음에 노래 울리면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그이는 아름다운 사람이어라”

음악이 흐르는 동안 식당에 모인 사람들 모두 마음 한구석이 울컥하는 분위기다. 누군가는 잠시 눈시울이 촉촉하게 젖어들기도 한다. 고동민씨와 평소 잘 알고 지내던 한 시민은 그에게 “단식 이후 가장 생각나는 음식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고동민씨가 “대한문에서 2년 가까이 생활하다보니 거의 매일 먹었던 대한문 옆 빵가게의 크림빵이 먹고 싶다”고 해서 순간 웃음바다가 된다. 울었다가 웃었다가, 묘한 분위기는 숙연하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다.

한바탕 웃고 난 뒤 무대 위에서는 ‘원펀치’ 밴드 박성도의 공연이 이어진다. 그는 심보선 시인의 친구다. 잘생긴 외모에 감미로운 목소리가 식당에 모인 사람들을 감동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점점 무르익어가는 분위기는 공감의 장이 되어 흐르고 있다. 준비된 음식은 초반에 다 떨어졌지만 차를 마시는 분위기로 전환되면서 식당 손님들의 눈은 무대 위를 떠나지 않는다.

시인 심보선·문화연대 이원재 ‘일일 DJ’

희망식당 ‘하루’ 시즌2 영업 첫날, ‘하루’는 멋지게 마무리됐다. 150명 정도가 다녀갔다. 기대 이상이다. 희망식당을 기획하면서 의도했던 것처럼 함께 나누는 시간이었고, 운영비를 제외하고 투쟁 사업장에 후원할 수 있는 돈도 모을 수 있었다. 다만 아쉬움이 있다면 식당을 찾은 손님들이 서로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회포를 풀기보다는 무대를 중심으로 DJ에 집중하거나 공연을 관람하는 형식인데다, DJ 혼자서 4시간을 끌고 가는 것이 부담스러웠다는 평가가 있다.

이날에 이어 두 번째로 희망식당 ‘하루’가 10월30일 열렸다. 인디뮤지션 ‘시와’와 ‘황푸하’의 감미로운 목소리, 일일 DJ인 문화연대 이원재씨와의 멋진 만남이 이루어졌다. 이날 취합된 아쉬운 평가들은 조금씩 수정해가면서 희망식당 시즌2는 다시 자리를 잡아갈 것이다. 희망식당은 상투적인 인사치레가 아니라 나의 시간과 나의 것들을 쪼개고 나누는 진심의 말로 ‘밥 한번 먹자’를 나누고자 한다. 희망식당은 11월12일, 28일과 12월11일, 25일에도 계속된다.

글 신유아 문화연대 활동가. 용산참사진상규명범국민대책회의 문화행동, 희망버스 등을 기획했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와 함께하는 희망지킴이 기획단 활동 등 노동 현장과 연대하는 다양한 문화기획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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